전설사
전설사(典設司)는 조선 시기 궁중의 각종 의례나 행사에 사용되는 천막, 장막을 관리하던 관청이다.
역사
[편집]고려 시기에 같은 업무를 관장하던 상사국(尙舍局)이 있었다가 조선조에 들어 정4품 품계의 사막으로 계승되었다. 1403년(태종 3년)에 충순호위사(忠順扈衛司)로 변경하고, 1414년 다시 충호위(忠扈衛)로 변경했다가 1466년(세조 12년) 전설사가 되었다.[1] 시대에 따라 차츰 품계가 낮아져 영조 대에 이르러 종6품 별제(別提)가 관할하게 되었다가 다시 종8품 별검(別檢)이 관할하게 되었다.[2]
고종의 갑오개혁으로 군국기무처가 설치되고 종래의 육조가 혁파되면서 전설사는 종백부 소속으로 재편되었다.[3]
역할
[편집]전설사의 중요 업무는 여러 행사장을 설치하고 관리하는 것이었다. 세조 13년 10월 27일 의경세자가 정난 공신과 회맹 의식을 갖을 때 단의 배치와 차림을 맡는 등[4] 왕실의 중요 행사를 관장하였고, 사직단에서 지내는 제사의 단을 설치하고 관리하는 것도 전설사의 역할이었다.[5] 과거 시험을 치르는 시험장의 설치와 관리 역시 전설사가 맡았다.[6]
구성
[편집]전설사는 병조 소속으로[7] 조선 중기까지 정4품의 수(守)가 관장하여 비교적 중요한 직책으로 여겨졌다. 성종 시기 김제 군수 한치량이 임기 1년만에 전설사 수로 임명되자 사헌부 대사헌이 과한 특혜라며 이를 탄핵하기도 하였다.[8]
영조 4년 이후 종8품 별검이 관장하였으며 소속 관원으로 서원(書員) 1인, 제원(諸員) 14인, 사령(使令) 4인, 군사(軍士) 2인이 배속되었다.[2]
각주
[편집]- ↑ 신숙주·정인지·정현조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고 관제를 다시 정하다 Archived 2019년 2월 21일 - 웨이백 머신, 세조실록 38권, 세조 12년 1월 15일 무오 1번째기사, 조선왕조실록
- ↑ 가 나 전설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군국기무처에서 의안과 각 부, 각 아문 소속 관청 명세를 올리다, 고종실록 32권, 고종 31년 7월 18일 임진 5번째기사, 조선왕조실록
- ↑ 세자가 6공신을 거느리고 북단에서 회맹하다, 세조실록 44권, 세조 13년 10월 27일 기미 1번째기사 , 조선왕조실록
- ↑ 강문식, 이현진, 종묘와 사직 : 조선을 떠받친 두 기둥, 책과함께
- ↑ 과거 때 돈화문 개폐 여부에 대한 위장·금란관의 공술 내용. 이에 대한 이진수·김진규 등의 상소문, 숙종실록 52권, 숙종 38년 8월 1일 임자 9번째기사, 조선왕조실록
- ↑ 병조 터, 문화콘텐츠닷컴
- ↑ 대사헌 김유가 정석년·한치형·이회 등의 부당한 인사 철회와 이조 탄핵을 청하다, 성종실록 94권, 성종 9년 7월 6일 을축 3번째기사, 조선왕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