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전역 (제2차 세계 대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동남아시아 전역
(태평양 전쟁의 일부)
Chindit column, Operation Longcloth.jpg
지도
Pacific Area - The Imperial Powers 1939 - Map.svg
날짜 1941년 12월 8일 - 1945년 9월 9일/1945년 9월 12일 [1]
장소 동남아시아
결과 연합군의 승리
교전국
중화민국 중화민국

미국 미국
베트남 민주 공화국 비엣민
캐나다 캐나다
영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뉴질랜드
네덜란드 네덜란드

일본 제국 일본 제국

프랑스 비시 프랑스
타이 타이

지휘관
영국 루이스 마운트배튼

영국 해럴드 알렉산더
영국 아서 퍼시벌
미국 조지프 스틸웰
미국 더글라스 맥아더
중화민국 장제스
중화민국 천청
베트남 민주 공화국 호치민
베트남 민주 공화국 보응우옌잡
네덜란드 하인 텔 포르텔

일본 제국 데라우치 히사이치

일본 제국 야마시타 도모유키
일본 제국 기무라 헤이타로
타이 쁠랙 피분송크람
미얀마 보죠케 아웅 산
인도 수바스 찬드라 보스
베트남 바오 다이


1941년 12월 8일, 일본군이 말레이 연방을 침공한 12월 7일부터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이 있을 때까지 일어난 일련의 전투들을 포괄하는 전역이다. 연합국의 식민지가 대부분이었던 이 지역에서 일본군 대부분은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식민지 침략 논리를 정당화했으나, 이는 일본군의 모략에 불과했다. 일본은 이 지역에서의 패배로 태평양 전쟁에서의 주도권을 상실했으며, 연합군의 본토 공습에 대비해야 했으며, 전쟁 물자의 보급원이 끊기게 되었다.

배경[편집]

1933년 일본 제국은 국제 연맹을 탈퇴하였고, 1936년에는 군비축소회의에서도 탈퇴하여 국제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상황이었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1940년 독일,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었다. 일본은 미국의 철 수출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이어 나갔는데 소비에트 연방과 1941년 4월,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여 철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합중국은 이에 분개, 일본에 석유 수출을 금지하였다. 일본이 이를 무효화해달라고 요구하자 미국은 만주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의 일본군 철수, 독일-이탈리아와의 동맹 무효화를 주장했다. 1941년 10월 17일, 도조 히데키를 중심으로 내각이 수립되었고, 이들은 미국을 공격하기로 결정내렸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말레이 반도 침공이 시작되었고, 55분 후에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격하고, 필리핀에 있는 미군 항공 기지를 공습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다.

확전[편집]

일본군의 침략[편집]

1941년 12월 8일 일본군은 말레이 반도, 필리핀, 네덜란드령 동인도 등을 공격하고, 타이를 침략하여 동맹국으로 삼았다. 1941년 12월 25일까지 일본군은 말레이 반도 전체, 싱가포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홍콩을 완전히 복속시켜 식민지로 삼았다. 1942년 1월 말까지 일본군은 보르네오 섬, 버마,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침공하여 완전히 점령하고, 3월에는 인도령이었던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를 점령했다. 이 시기에 국가 간의 항공전에는 4월 18일의 둘리틀 공습이 있었는데, 이 전투는 미국 공군이 일본 수도에 가한 전략적 폭격이었다. 이는 일본군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지만 이 때까지도 일본은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일본은 인도의 첸나이에 공습을 가했고, 5월에는 마다가스카르를 공격하였으며 10월 19일에는 포르투갈령 티모르를 공격하였다. 1942년 12월 31일까지 일본군은 동남아시아 대부분을 석권하였고 이는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 독일군의 진군 속도와 맞먹는 것이었다.

저항 운동과 연합군의 반격[편집]

일본의 패퇴[편집]

연합군의 승리[편집]

항복[편집]

결과[편집]

출처[편집]

주석[편집]

  1. 영국군의 싱가포르 탈환 작전인 티더레이스 작전은 1945년 9월 12일에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