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의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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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의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 사건은 아시아와 오세아니아(국제 날짜 변경선)까지의 사건을 포함한다.

동아시아에서의 사건[편집]

동아시아에서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일본조선타이완에 세운 식민지 외에 쿠릴 열도사할린 섬 남부, 독일중국에 세웠던 조차지를 가졌다. 하지만 독일, 이탈리아방공 협정을 맺어 다시 세계 대전을 일으키려고 했다.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에 승리한 데에 이어서 한일 병합 조약으로 조선(대한 제국)을 병합시킨 일본은 세계에서 대표적인 산업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우려로 인해 대표적 원자제인 철광석석유 수출을 중단하자 산업에 어려움이 생긴 일본은 대표적인 원자재 생산지인 동남아시아를 공격하고 대동아 공영권을 주장하며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추축국에 합류한다.

중국[편집]

중국과 일본과의 전투는 노구교 사건부터 시작된다. 국공 내전을 하고 있던 중국은 갑작스런 일본의 선전포고로 국공 합작이라는 잠깐 동안의 평화도 만들었지만 임시 수도였던 난징까지 점령당하면서 난징 대학살까지 겪게 된다.

동남아시아에서의 사건[편집]

동남아시아에서는 영국령 인도 제국(인도와 미얀마), 타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네덜란드령 동인도(인도네시아)가 차지하고 있었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비시 프랑스가 차지하게 되고, 다시 인도차이나일본이 차지하게 되었다.

오세아니아와 서태평양에서의 사건[편집]

오세아니아와 태평양 지역에서는 대부분 미국과 프랑스, 영국이 차지하고 있었으며 일본은 마리아나 제도, 팔라우, 캐롤라인 제도, 마셜 제도, 류큐 제도 등 북서 태평양 지역(남양 군도)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미국의 원자재 차단으로 인해 이 지역에 보급이 힘들어지고 가운데에 끼어있는 필리핀 지역마저 미국이 차지해 불편하였다. 이로 인해 태평양 지역을 얻기 위해 전투(태평양 전쟁)를 벌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