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권 경제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1986년 5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조리용 기름을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2차 대전소련동유럽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스탈린소련경제체제를 동유럽 일대에 시행했다. 소련이 했던 것처럼 동유럽 정부 계획자들은 중공업에 중점을 두는 5개년 계획을 지도했다. 집단 농장 체제는 소련에 비해 비교적 느슨히 진행됐다. 심각한 스태그네이션으로 인해 서유럽보다 경제적으로 뒤처지게 됐다. 저질 아파트 공급 등의 주택 부족 문제도 등장했다.

배경[편집]

2차 대전 동안 85%의 바르샤바의 건물이 파괴됐다.

볼셰비키러시아 혁명 이후 권력을 잡았다. 1919년 적군민스크로 진입함과 동시에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이 선포됐고 이어 1920년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선포됐다. 폴란드-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우크라이나의 패배와 리가 조약 이후 우크라이나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합병됐다. 1922년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자캅카스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소련으로 합쳐졌다. 2차 대전독일소련동유럽 침략의 결과로 산업과 인프라, 서민 생활의 많은 부분이 파괴됐다. 그 중에서도 폴란드는 산업시설의 62%가 파괴됐으며 여타 손실까지 합하면 2004년 기준의 환율로 6400억불의 피해를 봤을 정도였다. 다수의 고등 교육자 등을 포함한 6백만 명이 전쟁으로 죽었는데 이 또한 전후 복구에 걸림돌이 됐다. 이 과정에서 소련은 자기들의 모델을 도입하고자 했으며 이후 사유 재산 몰수를 지시했다. 소련 방식 정권들은 경제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소련식으로 변화했는데 이 과정에서 1945년부터 1949년까지 1200만 명이 국외로 이민 갔다.

초기의 변화[편집]

2차 대전 전에 소련집단 농장, 굴라크를 포함한 계획 경제에 많은 자산을 투자했는데 이는 2차 대전 이후 동구권 국가들에 크게 적용됐다. 스탈린은 사회경제적 변화가 필수적임을 느꼈다. 훈련된 간부단들은 사회, 정치 개혁을 위해 핵심 권력에 배치됐다. 토지와 산업으로 얻은 부를 몰수함으로써 부르주아의 사회적, 경제적 권력을 없애는 것이 절대적 우선순위가 됐고 또한 공산주의 체제에 맞지 않는 것들이 사라졌다.

자산 재배치[편집]

전후 소련동유럽의 산업 자산을 자국으로 재배치시키는 ‘전리품 정책’을 펼쳤다. 동구권 국가들은 소련 재건을 위한 석탄, 산업 장비, 기술, 철도 차량 등의 자원을 제공할 것을 요구받았다. 1945년부터 1953년까지 소련은 이런 방식으로 140억불 가량을 받았는데 이는 미국마셜 플랜으로 서유럽에 지원한 액수와 비슷하다. 또한 여러 회사들을 합자 회사의 형식으로 재조직했다. 그 중에서도 체코슬로바키아동독우라늄 광산, 폴란드석탄 광산, 루마니아유정은 저렴한 가격으로 소련에 물자를 제공했다.

무역코메콘[편집]

동유럽 무역 추이는 엄청나게 바뀌었다. 2차 대전 이전 동유럽 국가들의 소련에 대한 무역 비중은 1-2%를 넘지 않았다. 1953년 이 수치는 37%까지 뛰었다. 1947년 스탈린마셜 플랜을 비판했고 모든 동유럽 국가마셜 플랜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 소련유고슬라비아를 제외한 동유럽 국가들을 1949년 코메콘으로 묶어서 소련으로 자산과 제품이 모이고자 했지만 스탈린은 각국의 공산당을 통해 간접 지배하는 것보다 더 직접적인 수단을 원했기에 코메콘의 성격은 애매모호했다. 계획 경제 상에서 1950년대엔 중요한 구실을 담당하지 못했다. 처음 코메콘소련에 물자를 제공하는 성격이었지만 1970년대 소련이 저가의 물자를 조잡한 상품으로 바꾸면서 그 성격이 바뀌었다. 이후 소련은 자원을 수출하는 입장이 됐다. 루마니아의 자원과 농산품을 많이 이용하려는 코메콘 계획에 저항하여 1964년 루마니아는 더욱 독립적 입장에 서기 시작했고 이는 차우셰스쿠 집권 후 정도가 더해졌다.

5개년 계획[편집]

실제 상황과 관계없이 경제 활동은 5개년 계획에 따라 이루어졌다. 여러 부서 간의 합의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저 5개년 계획에 따라 도로주유소가 세워지기 전에 자동차가 공급되는 등의 불균형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정치적 목적에 부합하면 정치적 선전가들은 성과를 홍보했다. 비효율적 관료주의도 빈번했다. 한 예로 불가리아의 농장에선 서로 다른 600개의 생산 수치가 요구될 사례가 있었을 정도였다. 사회주의적 생필품 생산 체계로 암시장이 생성되기도 했다. 공장 감독들도 노멘클라투라의 보호가 있어야만 고위 직책을 유지할 수 있었다. 모든 계획은 공산당에 의해 결정됐으며 노동자들은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처벌을 받았다.

중공업 강조와 부족의 경제[편집]

폴란드의 어느 가게에 들어가기 위한 줄

동유럽 국가들은 빠른 경제 성장을 위해 경공업보다 중공업에 지나치게 투자했다. 지나치게 중앙으로 집중된 자원 분배와 할당 때문에 문제점들이 많이 드러났고 자원 낭비는 심해졌는데 이는 일종의 화전 농업으로 비유되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동유럽에는 중공업의 발전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고 획일적이고 자유가 없는 기관 때문에 이런 경제 체제는 더욱 효과적이지 못했다. 군수 산업기술 부분의 중요성 때문에 중공업은 우선순위가 됐다. 공장들은 비효율적 장소에 지어졌는데 높은 수송비용을 유발시키게 되고 이에 따라 독점 공급자나 중간 공급자에 의존하게 되며 발전이 지체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예를 들어 불가리아에 지어진 한 금속 공장은 금속을 소련에서 수입해서 부르가스항구에서 320km정도 더 옮겨져야 했다. 높아지는 임금경쟁력 감소 중에도 투자 비용은 늘게 됐다. 공업용 자원에 대한 과도한 투자는 실생활에 관련된 자원에 대한 투자를 양적, 질적으로 약화시켰고 결국 부족의 경제를 유발했다. 1970년대부터 재정 상태는 적자가 됐고 소비자 물가는 상승했다. 외국 상품은 특별 상점에서만 구입할 수 있었으며 생필품 공급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 결과로 암시장이 생겨나고 몇몇 농부들은 농산물의 일부를 도시의 소비자에게 몰래 팔아넘기기 위해 생산량을 낮추어 보고하기도 했다.

도시화[편집]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시골에서 온 이들이 생활이 어려운 등의 부작용이 일어나기도 했다.

집단 농장[편집]

동독의 농업 생산량 증대 홍보 선전 포스터

집단 농장1920년대스탈린에 의해 추진된 과정인데 동구권 국가에서 농촌에 정비된 사회주의 체계를 세우기 위해 시행됐다. 집단 농장 형성을 위해 소규모 농장 강제 합병과 토지 소유 계급에 속한 엄청난 재산이 대규모로 이용됐고 농촌 지역에 잔존했던 반공세력을 없애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 이 있었다. 또한 농촌에 남은 노동력을 도시 지역으로 옮기는 목적도 있었다. 집단 농장을 통해 농업은 소작농들을 프롤레타리아화시키고 국가가 결정한 가격에서 농산품을 통제하기 위해 재조직됐다. 집단 농업소련에서 이미 이뤄진 것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하지만 홀로도모르 같은 집단 기아를 야기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기에 1948년에서 1960년까지 불가리아, 루마니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동독에서, 1955년에서 1964년까지 알바니아에서는 집단 농업화가 느리게 이뤄졌다. 소련의 사례와 다르게 가축을 대량으로 도살하거나 생산량, 분배 수치 왜곡은 동구권 국가에서 등장하지 않았고 생산량이 높은 농부에게 더 보상을 해주는 등의 변형된 형태로 나타났다. 체코슬로바키아동독소련보다 더 산업화됐기에 양국은 집단 농장에의 전환을 용이하게 하고자 농업 장비와 비료를 공급해야 하는 상황에 있었다. 거대한 산업화농촌의 청년들이 도시로 떠나게 했는데 이는 농업 생산성을 떨어뜨렸다. 집단 농장은 기존 농부들의 강한 저항에 맞닥뜨렸으며 농부들은 건물을 파괴하기도 했는데 이는 1950년대 초기 폴란드유고슬라비아에서 심했다. 폴란드에선 1957년에야 대규모의 집단 농장화가 이뤄졌다. 그럼에도 폴란드가 타 동구권 국가들보다 대규모 산업화를 달성했다는 사실은 폴란드같은 계획 경제상에서 집단 농장화가 더 이뤄져야 한다고 선전됐다. 오데르-나이세선 동쪽에 인접한 폴란드의 서부 지역만 많은 폴란드인들을 좋은 농장지대에 정착시키기 위해 대규모로 집단 농장화됐다.

성장 침체[편집]

트라반트(Trabant) 601 리무진 한 대. 트라반트1957년에서 1991년까지 동독에서 생산된 자동차로, 동구권 전역으로 수출되었다.
어느 루마니아 사람다키아(Dacia) 1300를 만들고 있다. 이 차는 1983년까지 생산되었다.
1960년대 비토샤 컴퓨터를 제작하는 한 불가리아인
1950년부터 2003년까지의 1인당 GDP

동구권 국가들은 거의 비슷하게 경제 침체를 맞은 반면 서유럽 국가들은 서독라인 강의 기적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세계경제가 복잡해짐에 따라 경쟁이 없는 등의 비효율적 경제 구조는 성장 침체를 불러왔다. 2차 대전 전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서유럽동유럽경제 성장은 거의 비슷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서유럽의 많은 나라들의 1인당 GDP미국과 비슷해지는 동안 동유럽은 그렇지 못했다.

1인당 GDP 1938 1990
오스트리아 $1,800 $19,200
체코슬로바키아 $1,800 $3,100
핀란드 $1,800 $16,100
이태리 $1,300 $16,800
헝가리 인민 공화국 $1,100 $2,800
폴란드 인민 공화국 $1,000 $1,700
스페인 $900 $10,900
포르투갈 $800 $4,900
그리스 $800 $6,000
루마니아 인민 공화국 $700 $1,600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700 $2,200
1인당 GDP 1973 1990
미국 $16,689 $23,214
소련 $6,058 $6,871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6,577 $7,762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4,933 $5,995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5,234 $7,153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8,656 $10,733
라트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7,780 $9,841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7,589 $8,591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5,379 $6,211

인구[편집]

Eastern Bloc Population
나라 넓이 (000s) 1950년 (단위: 백 만 명) 1970년 1980년 1985년 연간 성장률(1950년1985년) 인구 밀도(1980년)
알바니아 인민 공화국 28.7 km2 1.22 2.16 2.59 2.96 +4.07% 90.2/km2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110.9 km2 7.27 8.49 8.88 8.97 +0.67% 80.1/km2
체코슬로바키아 127.9 km2 13.09 14.47 15.28 15.50 +0.53% 119.5/km2
헝가리 인민 공화국 93.0 km2 9.20 10.30 10.71 10.60 +0.43% 115.2/km2
동독 108.3 km2 17.94 17.26 16.74 16.69 -0.20 154.6/km2
폴란드 인민 공화국 312.7 km2 24.82 30.69 35.73 37.23 +1.43% 114.3/km2
루마니아 인민 공화국 237.5 km2 16.31 20.35 22.20 22.73 +1.12% 93.5/km2
소련 22,300 km2 182.32 241.72 265.00 272.00 +1.41 11.9/km2
유고슬라비아 255.8 km2 16.35 20.37 22.30 23.32 +1.22% 87.2/km2

주택[편집]

동구권 전역에 주택이 부족했고 저질 아파트가 많이 세워졌다.

루마니아 데바에 세워진 공산주의 시대의 아파트
부쿠레슈티와 같이 많은 도시들의 스카이라인은 획일화됐다.
트빌리시소련 시절 아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