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기무사령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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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기무사는 내부 감찰활동에 탈피하여 창설 이래 최초로 군 검찰, 감찰관, 예비역 등 전 국방부 감사관을 팀장으로 임명하였다. 군 내외 전문가들로
결국, 기무사는 내부 감찰활동에 탈피하여 창설 이래 최초로 군 검찰, 감찰관, 예비역 등 전 국방부 감사관을 팀장으로 임명하였다. 군 내외 전문가들로
구성된 합동감찰팀을 투입하여 과감한 인적쇄신을 단행하였으며, 고강도 혁신을 추진하였다.
구성된 합동감찰팀을 투입하여 과감한 인적쇄신을 단행하였으며, 고강도 혁신을 추진하였다.

2018년 7월.
국군기무사령부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군 부사관의 신고를 받고도 징계에 넘기지 않고 종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8개월간 신고에 재신고를 거듭하던 여군 부사관은 결국, 전역을 택했다.
A씨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동료 중사 B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알렸다.
그러나 조사를 착수한 기무사는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폭행이 아니라 합의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고 B씨는 징계에 넘기지 않았다.
군 징계 규정에 따르면 성폭력 사건은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징계위원회를 열어야 한다. 징계권자의 자의적 판단을 막기 위함이다.
A씨 사건을 폭로한 군인권센터는 기무사가 성폭행 사건을 사실상 은폐한 것으로 규정했다.
군인권센터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이석구 기무사령관과 이런 처분을 조언한 기무사령부 법무장교에 대한 징계의뢰서를 국방부장관에게 제출하였다.
이에 대해 기무사는 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해, 자체 감찰을 벌인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해명했다.
기무사 결정을 납득하지 못한 A씨는 지난해 말 국방부 조사본부에 다시 신고했지만, 석 달이 지나도록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기무사와 국방부 두 기관의 조사를 지켜보던 A씨는
정신적 후유증을 호소하며 지난달 자진 전역했다.


== 역대 지휘관 ==
== 역대 지휘관 ==

2018년 4월 19일 (목) 21:31 판

국군기무사령부
활동 기간1948. 5. 27. ~ 현재
국가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소속국방부
종류사령부
역할방첩, 정보 보안, 범죄 수사
명령 체계대한민국 국방부
표어충성, 명예, 정의
군가기무부대가
마스코트호랑이
참전한국 전쟁
웹사이트http://www.dsc.mil.kr/
지휘관
지휘관이석구 중장 (제43대) 육사 41기
주요 지휘관정승화 준장
윤필용 소장
김재규 중장
노태우 대장
전두환 대장
김종태 중장

국군기무사령부(國軍機務司令部, Defense Security Command, DSC, 약칭: 기무사)는 대한민국 국방부 직할 수사정보기관으로 군사에 관한 정보 수집 및 군사 보안 및 방첩, 범죄 수사를 목적으로 한다.

1974년부터 2008년 11월 18일까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소격동 165번지(현재:국립현대미술관)에 있었으며 2008년 11월 19일에 경기도 과천시로 이전하였다.[1] 부대는 본부와 지원 부대로 구성되며, 지원 부대는 국군의 여단 이상의 부대에 배속되어 배속된 부대의 배속부대를 지원한다.

임무

  • 군내 군사기밀의 보안ㆍ관리
  • 군 내 주요 범죄 수사
  • 군사 정보, 정보 보안방첩업무
  • 군 관련 첩보의 수집ㆍ작성 및 처리
  • 정보 작전 방호 태세 및 정보전(情報戰) 지원
  • 군사법원법 제44조제2호에 규정된 범죄의 수사에 관한 사항
  • 정보통신기반 보호법 제8조에 따라 지정된 주요정보통신기반시설 중 국방분야 주요정보통신기반시설의 보호지원
  • 통신 감청 업무

역사

1948년 5월 27일 창설된 육군정보국 정보처 특별조사과가 모체이며, 1950년 육군 직할의 특무부대(特務部隊, CIC)가 창설되었다. 1960년에 육군 방첩부대(防諜部隊)로 개칭되었으며[2] 1968년 다시 한번 육군 보안사령부(保安司令部)로 개칭되었다. 한편 1953년에 해군 방첩대가, 1954년에 공군 특별수사대(特別搜查隊)가 각각 창설되었으며 1977년에 이르러서는 국군 보안사령부로 통합되어 3군의 첩보를 총괄하게 되었다. 신군부의 정권 장악 의도에 따라, 보안사는 1979년 12.12,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 ,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 등에 관여 하였다. 1989년에는 친위쿠데타에 대비하여, 청명계획을 수립하였다. 윤석양 이병 양심선언 사건 이후 1991년 국군기무사령부로 개칭되었다. 국군기무사령부가 해군교육사령부에서 고위 장교들에 의해 각종 군사 기밀이 유출되고 있는 것을 포착해서 1년 가까이 수사하고 있다. 허나, 기밀 유출에 관련된 구체적인 증거를 찾지 못해 수사는 난항을 겪고 있다. 군 내부자는 전역 후 다른 정부기관에 다시 민원을 냈다. 이 때문에 군 안팎으로는 유출된 자료의 민감성 때문에 수사에도 영향을 받는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군기무사령부 소속 소령이 중국 기관 요원에게 향응을 받고 군사기밀을 유출한 혐의가 드러나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결국, 기무사는 내부 감찰활동에 탈피하여 창설 이래 최초로 군 검찰, 감찰관, 예비역 등 전 국방부 감사관을 팀장으로 임명하였다. 군 내외 전문가들로 구성된 합동감찰팀을 투입하여 과감한 인적쇄신을 단행하였으며, 고강도 혁신을 추진하였다.

2018년 7월. 국군기무사령부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군 부사관의 신고를 받고도 징계에 넘기지 않고 종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8개월간 신고에 재신고를 거듭하던 여군 부사관은 결국, 전역을 택했다. A씨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동료 중사 B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알렸다. 그러나 조사를 착수한 기무사는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폭행이 아니라 합의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고 B씨는 징계에 넘기지 않았다. 군 징계 규정에 따르면 성폭력 사건은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징계위원회를 열어야 한다. 징계권자의 자의적 판단을 막기 위함이다. A씨 사건을 폭로한 군인권센터는 기무사가 성폭행 사건을 사실상 은폐한 것으로 규정했다. 군인권센터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이석구 기무사령관과 이런 처분을 조언한 기무사령부 법무장교에 대한 징계의뢰서를 국방부장관에게 제출하였다. 이에 대해 기무사는 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해, 자체 감찰을 벌인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해명했다. 기무사 결정을 납득하지 못한 A씨는 지난해 말 국방부 조사본부에 다시 신고했지만, 석 달이 지나도록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기무사와 국방부 두 기관의 조사를 지켜보던 A씨는 정신적 후유증을 호소하며 지난달 자진 전역했다.

역대 지휘관

제 43대 국군기무사령관 이석구 중장
제 42대 국군기무사령관 조현천 중장
제 39대 국군기무사령관 배득식 중장
  • 1991년 이후의 기무사령관은 대한민국 국군의 3성 장군 중에서 해병대사령관 다음의 의전 서열을 가지며, 현역 군인 중 10위이다.
성명 계급 기간 비고
특무부대장
초대 김형일(金炯一)
대령 1950. 10. 20. ~ 1950. 12. 15.
2대 백인엽(白仁燁) 준장 1950. 12. 15 ~ 1951. 1. 13.
3대 이한림(李翰林) 준장 1951. 1. 13. ~ 1951. 4. 6.
4대 김종면(金宗勉) 준장 1951. 4. 19. ~ 1951. 5.15.
5대 김창룡(金昌龍) 준장→소장 1951. 5. 15. ~ 1956. 1. 30. 육사 3기
6대 정인택(鄭麟澤) 준장 1956. 1. 30. ~ 1957. 9. 25.
7대 김재현(金在鉉) 준장 1957. 9. 25. ~ 1959. 10. 10.
8대 하갑청(河甲淸) 준장 1959. 10. 10. ~ 1960. 5. 1. 육사 2기
9대 이소동(李召東) 준장 1960. 5. 1 ~ 1960. 6. 1. 육사 2기
육군방첩부대장
10대 박창록(朴昌錄) 준장 1960. 6. 1 ~ 1961. 4. 1. 육사 3기
11대 이철희(李哲熙) 준장 1961. 4. 1 ~ 1961. 6. 10. 육사 2기
12대 김재춘(金在春) 준장 1961. 6. 10. ~ 1962. 7. 12. 육사 5기
13대 정승화(鄭昇和) 준장 1962. 7. 12. ~ 1964. 1. 8. 육사 5기
14대 박영석(朴榮錫) 준장 1964. 1. 8. ~ 1965. 3. 6. 육사 5기
15대 윤필용(尹必鏞) 소장 1965. 3. 6 ~ 1968. 2. 17. 육사 8기
육군보안사령관
16대 김재규(金載圭) 중장 1968. 2.17 ~ 1971. 9. 23. 육사 2기
17대 강창성(姜昌成) 소장 1971. 9. 23. ~ 1973. 8. 14. 육사 8기
18대 김종환(金鍾煥) 중장 1973. 8. 14. ~ 1975. 2. 26. 육사 4기
국군보안사령관
19대 진종채(陳鍾埰) 중장 1975. 2. 28. ~ 1979. 3. 5. 육사 8기 하나회
20대 전두환(全斗煥) 대장 1979. 3. 5 ~ 1980. 8. 21. 육사 11기 하나회
21대 노태우(盧泰愚) 대장 1980. 8. 21. ~ 1981. 7. 14. 육사 11기 하나회
22대 박준병(朴俊炳) 대장 1981. 7. 14. ~ 1984. 7. 6. 육사 12기 하나회
23대 안필준(安弼濬) 대장 1984. 7. 6. ~ 1985. 6. 1. 육사 12기 하나회
24대 이종구(李鍾九) 대장 1985. 6. 1. ~ 1986. 7. 4. 육사 14기 하나회
25대 고명승(高明昇) 대장 1986. 7. 4. ~ 1987.12. 29. 육사 15기 하나회
26대 최평욱(崔坪旭) 대장 1987. 12. 29. ~ 1988.12. 7. 육사 16기 하나회
27대 조남풍(趙南豊) 대장 1988. 12. 7. ~ 1990.10. 10. 육사 16기 하나회
국군기무사령관
28대 구창회(具昌會) 대장 1990. 10. 10. ~ 1991.12. 4 . 육사 18기 하나회
29대 서완수(徐完秀) 중장 1991. 12. 4. ~ 1993. 3. 8. 육사 19기 하나회
30대 김도윤(金度閏) 소장 1993. 3. 8. ~ 1993. 10. 22. 육사 22기
31대 임재문(林載文) 중장 1993. 10. 22. ~ 1998. 3. 25 학군 3기
32대 이남신(李南信) 중장 1998. 3. 25. ~ 1999. 10. 27. 육사 23기
33대 김필수(金弼洙) 중장 1999.10. 27. ~ 2001.10.10. 육사 26기
34대 문두식(文斗植) 중장 2001. 10. 10. ~ 2003. 4. 21. 육사 27기
35대 송영근(宋泳勤) 중장 2003. 4. 21. ~ 2005. 2. 5. 육사 27기
36대 김영한(金榮漢) 중장 2005. 2. 5. ~ 2006. 12. 4. 육사 29기
37대 허평환(許坪桓) 중장 2006. 12. 4. ~ 2008. 3. 20. 육사 30기
38대 김종태(金鍾泰) 중장 2008. 3. 21. ~ 2010. 4. 2. 3사 6기
39대 배득식(裵得植) 중장 2010. 4. 2. ~ 2013. 4. 24. 육사 33기
40대 장경욱(張璟旭) 소장 2013. 4. 24. ~ 2013. 10. 26. 육사 36기
41대 이재수(李載壽) 중장 2013. 10. 26. ~ 2014. 10. 13. 육사 37기
42대 조현천(趙顯千) 중장 2014. 10. 13. ~ 2017. 9. 26 육사 38기
43대 이석구(李錫九) 중장 2017. 9. 26 ~ 현재 육사 41기

같이 보기

각주

  1. 임미현 (2008년 11월 18일). “기무사령부, 37년 소격동 시대 마감…과천으로 이전”. 노컷뉴스. 2014년 4월 22일에 확인함. 
  2. “육군방첩부대로 내월부터 육군특무대개칭”. 동아일보. 1960년 6월 29일.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