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바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샤바크(히브리어: שב"כ)는 이스라엘의 첩보 기관이다. 쉐루트 비타혼 클랄리  (צבא ההגנה לישראל) 의 약자이다. 신베트(Shin bet)이기도 하다. 모토는 מגן ולא יראה이고 한국어로 보이지 않을 방패를 의미한다. 해외 정보를 담당하는 모사드와 군사정보를 담당하는 아만과 함께 이스라엘 3대 정보 기관중의 하나이다. 규모는 대략 5천명이다. 이스라엘의 국내 첩보기관이다. 방첩 활동, 테러 활동, 폭력 혁명에 대한 공안 업무와 테러 용의자 심문, 웨스트 뱅크나 가자 지구에 대한 수사를 담당한다. 또한 공무원, 해외 이스라엘 대사관의 경호도 담당한다. 본래 국방부 휘하 조직이었지만 총리 직할로 옮겨졌다. 정보 수집은 주로 HUMINT(공작원, 협조자 등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수집)에 의존하며, 하마스 내부에도 신베트의 협력자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고문을 사용하다가 드러난 적이 몇 번 있다. 모사드와 같이 이스라엘의 양대 첩보기관이지만 국내 첩보기관인 만큼 해외 첩보기관인 모사드에 비해서 해외 인지도가 떨어진다. 이 때문에 신베트가 한 일이 모사드가 한 일로 잘못 알려지는 경우도 가끔 있다.

개요[편집]

아랍에 둘러싸인 유일한 유대국가라는 특수성이 더해진 탓에 이들은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자국과 주변 아랍에서는 샤바크(Shaback)라는 이름이 통용되고 있으며 국외 특히 영어권에서는 신벳, 혹은 신베트로 불린다. 하지만 정부기관으로는 ISA(Israel Security Agency)로 공식 표기된다. 다소 혼동의 여지는 있지만, 이들 이름들이 가리키는 조직은 단 하나다. 이스라엘에는 신베트를 비롯한 3대 정보기관 외에도 외무부 산하 정치기획 조사센터를 포함해 내무부의 경찰 조직 등이 안보와 치안을 각각 담당한다. 이들 기관을 아울러 조정역할을 하는 기관이 최고정보조정위원회다. 위원회 의장은 모사드 국장이 맡는 것이 관례로 돼 있으며 신베트 역시, 이 위원회 소속으로 국가의 정보조정 업무에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조직의 창설은 1949년 2월 8일로 총리의 직속기관에 소속됐으나, 당시 모사드를 이끌던 이세르 해럴이 맡아 기반을 다졌다. 신베트와 관련된 법령은 이후 1957년에 만들어졌으며 이때부터 모사드와는 독립된 합법적 조직으로 성장했다. 신베트의 역할은 국내 정보 업무로 국한되지만, 여기서도 크게 방첩과 경호, 그리고 최근 인터넷 사용 등의 급증으로 인한 IT 인프라 보안까지 활동 범위를 넓혀 왔다. 초기 조직의 주요 임무는 군 정보 지원과 방첩에 많은 역량을 할애하기도 했으며, 지금도 이스라엘 국내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골란고원에 이르는 점령지의 정보수집과 작전은 신베트가 맡고 있다. 특히 이들의 방첩업무는 올해 9월에도 자국에 침투해, 정보활동을 벌이던 만수리라는 이란 스파이 1명을 체포하면서 다시금 세계적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 스파이 사건은 미국과 이란의 해빙무드에 찬물을 끼얹기 위한 이스라엘 정부의 계산된 첩보전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편 신베트는 법령이 정해진 1957년부터 총리 등 정부 요인들을 밀착 경호하며 팔레스타인 등 아랍국의 집요한 암살 시도를 차단하는 경호대로써의 역할로도 명성을 쌓아왔다. 하지만 1995년 11월 텔아비브에서 발생한 이츠하크 라빈(Yitzhak Rabin-사진) 총리 암살 사건이 벌어지면서 창설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암살을 방지하지 못했다는 책임론과 함께 사건 배경에 신베트 내부자가 연루됐다는 의혹에 휩싸인 것인데, 결국 신베트 소속의 아비샤이 라비브가 혈기왕성한 우익청년이던 아미르에게 암살을 부추겼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조직의 명성은 크게 훼손됐다. 이에 대해 신베트 내부에서도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고 인정하며 조직정비에 나섰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숨겨진 방패 역할을 할 것"을 모토로 정하는 등 자정 노력에 힘을 쏟았다. 신베트가 세계적 비밀경호대로 명성을 얻은 데는 그 실체가 불분명한 조직과도 관련이 크다. 실제로 조직의 인적 구성이나 내부 편재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바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말과 신베트가 공개한 자료를 종합해보면 대략 5000여명 규모의 인력이 있고 조직은 심문과 분석, 기술 및 관리, 보안 장교, 임원과 경비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역사[편집]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한 후 샤바크는 이스라엘 방위군의 일부로 창설되었으나 현재 샤바크의 첩보 활동은 이스라엘의 총리가 지휘한다. 훗날 모사드의 우두머리가 된 이세 하렐이 샤바크로 이끌었다. 제1차 중동 전쟁당시 국내 보장을 담당했다. 전쟁이 끝난 후 샤바크는 간첩 대책과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의 감시를 맡게 되었다. 냉전당시 실제 전쟁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미국의 동맹국이었던 이스라엘대신 소련을 지지하는 정치인들을 감시하기도 했었다. 1956년 니키타 흐루쇼프의 비밀 연설을 입수하고 1961년에는 소련의 간첩이었던 이스라엘 바를 검거하는 등 성공을 거두었다. 바는 이스라엘의 최초 총리였던 데이비드 벤구리온과 가까운 친구사이였으며 다른 높은 지위의 정치인들과도 관련되어있는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때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기지를 요르단으로 몰아내기도했다. 제3차 중동전쟁이 끝난후 테러리스트 활동을 예방하기 위해 요르단 강 서안 지구가자 지구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샤바크의 활동은 논란의 여지가 되기도 했다. 1984년 4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네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납치한 버스를 다시 되찾았다. 이 과정에서 네 명 중 두 명이 생존했지만 이들이 재판을 받기 전에 샤바크의 첩보원들이 사망할 때까지 폭행했다.[1] 이 사건이 이스라엘 언론에게 알려지자 애초에는 이스라엘군이 테러범에게서로부터 버스를 사수하려는 과정에서 죽었다고 부인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팔레스타인인들이 부상되지 않은 상태로 버스에서 내리는 사진이 공개되었다.[2] 더불어 첩보원들은 그 당시 샤바크의 우두머리였던 아브람 샬롬의 명령아래 행동했다는 것이 알려졌고 이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기 위해 샤바크의 첩보원들은 거짓 증언을 했다는 게 밝혀져 샬롬은 사직했다. 1995년에는 이스라엘의 총리였던 이츠하크 라빈이 극우파 이갈 아미르의 손에 암살당하자 라빈을 보호하지 못한 이유로 카르미 길론은 사직해야했고 이 사건을 통해 기관내의 부실한 점들이 드러났다. 샤바크의 첩보원이었던 아비샤이 라비브가 아미르에게 암살을 부추긴 것이 공개되기도 했다.[3] 팔레스타인 출신의 피의자를 심문할 때 샤바크 기술이라고 불리는 고문 기술을 사용해 비난을 사기도 했다. 샤바크 기술은 피의자를 작고 낮은 의자에 수갑으로 결박한후 가슴과 허벅지 근처부분을 발로 차는 것을 의미한다.[4] 1999년 9월 6일 이스라엘 대법원은 이 기술을 전면 금지했다.[5]

각주와 참고자료[편집]

  1. Shabak, Shin Bet, Israel Security Service, Sherut ha-Bitachon ha-Klali (Shabak)
  2. Law Suit by Two Shabak Interrogators Reveals Much About Treatment of Their Victims
  3. Avishai Raviv, SHABAK agent, cover gets blown
  4. A terrorism case in the heart of America
  5. World: Middle East Israeli 'torture' methods illegal

같이 보기[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