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타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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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00년 경 스키타이와 파르티아
스키타이 금관

스키타이(고대 그리스어: Σκὐθαι)는 동부 아리안인(Eastern Iranian)이다. 그 이름은 헤로도토스(Herodot)에 따르면, 스콜로토이(Skolotoi)에서 유래한다. 스키타이(Scythian), 소그드인, 스쿠드라(Skudra), 소그디아(Sogdian), 사카(Saka), 스구디아라고도 한다. 유럽 스텝지역에서는 기원전(BC) 9세기에서부터 기원후(AD) 4세기까지의 기록이 존재하고 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에 존재한 스키타이인은 기원후(AD) 12세기까지 기록이 존재한다.[1]


스키타이족은 이란계의 기마민족(Eurasian nomads)이다. 우라르투의 유적들이 소련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기 이전에는,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보통 이 스키타이족으로부터 시작했다. 그 까닭은 이들이 러시아인과 혈통적으로 상관은 없는 기마민족이지만 오늘날의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영토에 살았던 민족들 가운데 역사책에 언급된 최초의 민족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문헌들, 예컨대 기원전 5세기에 활동했던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쓴 "역사"는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교역의 대상으로 삼았던 스키타이족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그들을 키메리아족 또는 메오티아족(Maeotians)의 후계자라고 지적했던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스키타이족이 키메리아족을 대체한 것으로 알고 있다.[2]

스키타이족은 기원전 9세기(BC 900년부터)경부터 기마 민족으로서 중앙아시아와 동부유럽에서 건너와서 지금의 중앙아시아 지역과 유럽스탭(steppe)지역 그리고 현재의 러시아연방의 영토에 있는 지역을 걸져서 고대에 국가를 건설하였다.

유럽의 스키타이인들은 기원후 4세기까지의 기록이 존재한다. 이들은 서쪽으로 유럽 도나우 강, 동쪽으로 돈 강, 북쪽으로 드네프르 강부그 강의 상당한 지역까지 뻗쳐 있었다. 기원전 6세기경부터 현재의 남러시아지역과 우크라이나지역에서 드네프르 강에 이르기까지 퍼져 살았다.

전성기 시대에는 중앙아시아의 카스피 해 동부와 캅카스, 서시베리아 남부 등 서북부 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일대까지 퍼져 살았다. 이 기마전사들은 훌륭한 궁술을 가지고 있었고, 바지를 입음으로써 기동력을 높였고, 용병으로 싸우기도 하였다.

기원전 5세기경에 흑해 지역을 방문한 헤로도토스는 이들에 관한 자세한 자료를 주고 있다. 스키타이인의 침입경로는 실롱스크, 모라바체히를 거쳐 왔음을 추적할 수 있다. 이것은 스키타이에 의해 파괴된 유럽의 루사티아 문화들과 스키타이 묘들에서 추측할 수 있다.

스키타이인들은 기마술로 동서를 오가며 무역을 하였고 특히 그리스와 교역하면서 그리스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그리스의 금세공 기법이 스키타이에서 더욱 발전되었고 그리하여 스키타이식 왕관과 금 공예품들을 제작하였다. [3]

스키타이는 동쪽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사카"라고도 불렸는데 지금의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쿠르간묘(Issyk kurgan)에 황금 인간(The golden man)이라고 불리는 유물이 발견되었다. 스키타이는 동쪽으로 동북아시아 스텝지역(現몽골초원)을 지나서 동아시아에서도 교역하였으며 스키타이인이 쓰는 검인 Gorytos는 경로라는 이름으로 흉노에게서 사용되었다. 스키타이는 중앙아시아에서 발흥한 흉노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흉노가 동쪽으로 동북아시아 스텝지역을 차지하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스키타이는 또한 동아시아에서 대한민국과 일본의 고대 공예품에도 영향을 주었다. 유럽에 있던 스키타이인들은 기원후 4세기쯤 스키타이식 공예품이 소멸되었고 중앙아시아에 있던 소그드-스키타이인(소그드인)은 이슬람으로 개종하였고 기원후 12세기에는 소그드인의 문화의 특색이 사라졌다. 소그드인은 투르크화 되었다.

고대 인골 DNA를 분석을 하며 연구를 하였는데 한반도, 몽골, 우즈베키스탄의 고인돌 인골 부계 DNA 분석을 한 결과 신라인의 고대 인골의 DNA가 중앙아시아의 청동기 문화의 안드로노보 문화의 영향을 받은 스키타이인의 인골 DNA와 근접하며 이는 흉뇨, 몽골, 스키타이의 인골 DNA의 근접성보다 신라인과 스키타이의 인골 DNA의 근접성이 더 높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연구 내용은 KBS 스페셜에도 방송되었다.

기원[편집]

고대 그리스의 헤로도토스의 저서 "역사"에서는 스키타이의 기원에 대해서 이렇게 적어놨다.

스키타이인에 의한 전설
  • 당시 아무도 살지 않았던 스키타이의 땅에서 처음 생겨난 것은 타르기타오스라는 남자였다. 그의 양친은 제우스와 보류스테네스강의 딸이라고 한다. 타르키타오스에서 리포크사이스,아르포크사이스,크라크사이스 3명이 태어났다. 이 세명이 있던 시대에 하늘에서부터 황금의 그릇붙이가 스키티아의 땅에 떨어져왔다. 장남이 제일 먼저 이것을 찾아냈고 이것을 얻을려고 하니까 황금이 불타올랐다. 장남이 멀리 떨어지고 둘째 아들이 가까이가니 다시 황금은 불타올랐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아들인 크라크사이스가 가까이 가니 불은 꺼지고 가지고 돌아갈 수 있었다. 이것으로 인해 장남과 둘째 아들은 셋째 아들인 크라크사이스를 왕으로 추천하였다. 시간이 지나고 장남의 리포크사이스를 시조로 하는 아우카타이씨,둘째 아들을 시조로하는 카티아로이씨와 트라스피에스씨, 셋째 아들인 크라크사이스를 시조로하는 왕족 파라라타이씨의 4씨족이 생겨났고 그들 모두의 이름과 왕의 이름은 스콜로토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크라크사이스는 광대한 스키티아의 국토를 3개의 왕국으로 나누어 자신들의 아들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그중에 하나의 나라를 가장 크게 하여 그 나라에 황금의 그릇붙이를 보관하였다. [4][5]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Sinor (1990, 97쪽)
  2. 김학준. 《러시아사》. 대한교과서(주). 18쪽. ISBN 89-378-3084-1. 
  3. 이정희. 《동유럽사》. 대한교과서(주). 23쪽. ISBN 89-378-3075-2. 
  4. Herodotus reported three contradictory versions as to the origins of the Scythians, but placed greatest faith in this version:
  5. Herodotus 4.11 trans. G. Rawlin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