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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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훈
No. 7 – 부산 KT 소닉붐
개인 정보
출생 1974년 6월 3일(1974-06-03) (42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207cm
몸무게 115kg
선수 경력
고등학교 서울 휘문고등학교
대학교 세대학교
프로 선수 경력 1998년2013년
포지션 센터
클럽 경력
선수
1998-2001 대한민국 대한민국 청주 SK 나이츠
2001-2002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 SK 나이츠
2002-2007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 삼성 썬더스
2007-2008 대한민국 대한민국 전주 KCC 이지스
2008-2011 대한민국 대한민국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2011-2012 대한민국 대한민국 창원 LG 세이커스
2012-2013 대한민국 대한민국 부산 KT 소닉붐
국가대표팀
1994-2006 대한민국 대한민국
수상 경력
KBL 우승 (2000, 2006)
KBL MVP (2000, 2006)
KBL 챔피언 결정전 MVP (2000)
KBL 올스타전 MVP (2006)
KBL 리바운드상 (1999)
KBL 베스트 5 (1999, 2000, 2002, 2003, 2004, 2005, 2006, 2008)

서장훈(徐章勳, 1974년 6월 3일 ~ )은 대한민국KBL 프로 농구 선수를 지낸 전력이 있는 연예방송인기업가이다.[1][2]

이력[편집]

서장훈(徐章勳)은 서울의 독실한 개신교 신자 집안에서 아버지 서기춘(徐基春)의 슬하 1남 1녀 가운데 첫째로 출생하였다. 그의 본관(관향)이천(利川)이며 아버지 서기춘(徐基春)은 기업가이자 개신교 집사 신분이었다.[3]

서장훈의 신장은 207cm이고 체중은 115kg이다. 하승진이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그가 한국 프로 농구(KBL) 사상 최장신 선수였으며 앞서 거론한 것처럼 그의 종교개신교이다.

그는 서울학동국민학교 시절이던 1981년 야구 선수 첫 입문을 하였고 7년 후 서울 휘문중학교 시절이던 1988년 농구 선수 전향을 하였다.

이후 그는 1993년 대학 농구 분야에 입문을 하였으며 1998년 연세대학교졸업한 후 이어 같은 해 청주 SK 나이츠에 입단을 하며 프로 농구 선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그는 서울 SK 나이츠서울 삼성 썬더스를 거쳐 2007년 6월 전주 KCC 이지스와 계약을 하였으나 허재 감독과의 불화설 등을 비롯한 논란을 빚으며 2008년 12월 19일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로 이적, 그리고 2011년 5월 창원 LG 세이커스로 이적, 그리고 1년 후 2012년 5월 부산 KT 소닉붐으로 이적하였다가 이듬해 2013년 3월프로 농구 선수 분야에서 은퇴하였다.

그의 현역 프로 농구 선수 시절 닉네임국보급 센터[4] 였지만 농구 선수 은퇴 이후에는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을 하면서 새로운 닉네임들을 얻는 등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으며 그 인기의 여파는 농구 선수 분야 은퇴 이후 연예방송인으로 본격 전향한 서장훈 그가 2015년 SBS 연예대상에서 여가수 김완선과 공동으로 버라이어티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그야말로 농구 분야 은퇴 이후 예능 부문 최초 수상이라는 진풍경 어린 영광을 안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연예방송인으로 소위 예능 늦둥이 입문에 격하고도 거한 환영을 받은 서장훈 그의 현재 소속사는 미스틱 엔터테인먼트이다.

학력[편집]

비학위 수료[편집]

프로 농구 선수 경력[편집]

소속 클럽[편집]

프로 경력 통계[편집]

범례
 경기  출장한 경기 수  출장시간  경기당 출장시간  득점  경기당 득점
 야투  경기당 야투  3점슛  경기당 3점슛  자유투  경기당 자유투
 리바운드 공격  경기당 공격 리바운드  리바운드 수비  경기당 수비 리바운드  리바운드 총합  경기당 리바운드 총합
 어시스트  경기당 어시스트  스틸  경기당 스틸  블록  경기당 블록
 턴오버  경기당 턴오버  파울  경기당 파울  굵은 표시  최고 성적
우승한 시즌
시즌 최고 기록

정규 시즌[편집]

시즌 경기 출장시간 득점 야투 3점슛 자유투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 턴오버 파울
공격 수비 총합
1998–99 청주 SK 34 38'10" 25.44 10.4 0.3 4.5 3.5 10.5 14.0 2.3 0.6 1.6 4.1 2.9
1999–2000† 청주 SK 45 38'29" 24.24 9.7 0.4 4.5 2.1 7.9 10.0 1.5 0.8 0.8 2.1 3.0
2000–01 청주 SK 24 36'46" 24.58 10.5 0.5 3.1 1.8 7.2 9.0 1.4 0.8 1.1 2.4 2.5
2001–02 서울 SK 54 39'17" 25.30 10.6 0.5 3.6 1.9 8.1 10.0 1.7 0.7 1.5 3.1 2.4
2002–03 서울 삼성 54 38'27" 23.76 10.0 0.2 3.5 2.2 8.7 11.0 1.9 0.6 1.0 2.7 2.1
2003–04 서울 삼성 47 35'26" 22.09 8.9 0.5 3.8 2.0 6.6 8.6 1.9 0.9 0.9 2.1 2.4
2004–05 서울 삼성 54 36'8" 22.07 9.2 0.6 3.0 2.1 7.3 9.4 1.3 0.4 0.8 2.7 2.9
2005–06† 서울 삼성 54 34'28" 19.67 7.5 1.4 3.2 1.6 4.2 5.8 2.0 0.6 0.4 2.2 2.6
2006–07 서울 삼성 33 31'24" 16.27 6.0 1.2 3.1 1.0 3.7 4.7 2.1 0.4 0.2 2.9 2.1
2007–08 전주 KCC 54 30'47" 16.28 6.2 0.5 3.3 1.9 5.5 7.3 1.7 0.3 0.5 2.0 2.3
2008–09 전주 KCC 19 24'1" 12.11 4.7 0.3 2.5 1.1 3.3 4.4 0.9 0.4 0.4 2.0 2.4
2008–09 인천 전자랜드 32 33'45" 18.41 6.4 1.6 4.1 1.2 4.8 6.0 2.0 0.4 0.5 2.0 2.8
2009–10 인천 전자랜드 54 31'31" 17.11 6.7 0.4 3.2 1.5 5.2 6.6 1.6 0.4 0.3 2.6 2.2
2010–11 인천 전자랜드 54 29'17" 16.65 6.5 0.6 3.1 1.3 4.2 5.6 1.0 0.4 0.3 2.0 2.1
2011–12 창원 LG 35 21'17" 7.51 2.9 0.5 1.2 0.7 2.2 2.9 0.8 0.3 0.1 1.4 1.3
2012–13 부산 KT 41 24'1" 10.32 4.1 0.9 1.3 0.9 2.7 3.6 0.5 0.1 0.4 1.1 2.0
경력 688 33'11" 19.23 7.7 0.6 3.2 1.7 5.9 7.6 1.6 0.5 0.7 2.4 2.4

플레이오프[편집]

시즌 경기 출장시간 득점 야투 3점슛 자유투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 턴오버 파울
공격 수비 총합
1999–2000† 청주 SK 3 36'58" 17.00 7.0 0.3 2.7 1.7 7.7 9.3 1.7 0.7 0.0 4.3 2.3
2000–01 청주 SK 6 36'48" 27.67 11.3 0.2 4.8 2.3 7.3 9.7 0.8 0.3 1.3 3.2 3.3
2001–02 서울 SK 5 36'52" 22.40 9.2 0.0 4.0 2.8 5.6 8.4 2.0 1.0 1.0 1.8 2.6
2002–03 서울 삼성 2 36'15" 15.50 7.5 0.0 0.5 2.5 9.5 12.0 1.0 0.0 1.0 3.5 2.0
2003–04 서울 삼성 3 37'47" 22.00 9.7 0.7 2.0 1.3 5.0 6.3 2.3 0.3 0.3 1.3 4.0
2004–05 서울 삼성 4 36'17" 15.75 6.8 0.3 2.0 2.3 7.0 9.3 2.3 1.3 0.3 1.3 2.5
2005–06† 서울 삼성 3 35'39" 19.67 7.7 1.0 3.3 1.3 4.3 5.7 2.7 1.0 0.0 2.3 3.0
2006–07 서울 삼성 3 31'56" 14.33 4.7 1.0 4.0 0.0 3.3 3.3 1.0 0.0 0.0 2.0 2.3
2007–08 전주 KCC 3 30'52" 17.33 6.7 0.3 3.7 3.0 5.3 8.3 2.0 0.0 0.3 2.3 1.7
2008–09 인천 전자랜드 5 32'50" 14.60 5.8 1.4 1.6 1.2 4.0 5.2 1.0 1.0 0.2 1.6 3.6
2010–11 인천 전자랜드 4 30'17" 13.00 4.3 1.5 3.0 0.3 1.8 2.0 1.0 0.8 0.3 1.0 3.8
경력 41 34'49" 18.73 7.5 0.6 3.0 1.7 5.4 7.2 1.6 0.6 0.5 2.2 2.9

챔피언 결정전[편집]

시즌 경기 출장시간 득점 야투 3점슛 자유투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 턴오버 파울
공격 수비 총합
1999–2000† 청주 SK 6 32'50" 16.83 7.0 0.3 2.5 1.3 5.8 7.2 1.7 0.8 2.2 1.8 3.2
2001–02 서울 SK 7 37'55" 19.57 7.6 0.0 4.4 1.9 7.9 9.7 1.7 0.1 1.0 2.9 1.9
2005–06† 서울 삼성 4 26'6" 10.50 3.5 1.0 2.5 1.3 2.8 4.0 0.8 0.0 0.5 2.5 2.5
경력 17 33'20" 16.47 6.4 0.4 3.3 1.5 5.9 7.5 1.5 0.4 1.3 2.4 2.5

수상[편집]

  • 1994년 농구대잔치 최우수선수상, 신인상, 수비5걸상
  • 1995년 농구대잔치 리바운드상, 수비공헌상
  • 1997년 농구대잔치 최우수선수상
  • 1999년 KBL 리바운드상
  • 2000년 KBL 챔피언 결정전 MVP
  • 2006년 KBL MVP, 올스타전 MVP, 베스트 5
  • 2008년 KBL 베스트 5, 한국농구대상 리바운드상, 한국농구대상 베스트 5
  • 2009년 한국농구대상 득점상, 특별상
  • 2013년 KBL 특별상
  • 2015년 SBS 연예대상 버라이어티 부문 신인상

기록[편집]

KBL 10,000득점 달성[편집]

서장훈은 2008년 11월 19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전주 KCC 이지스창원 LG 세이커스의 경기에서 대한민국 농구 선수로서 최초로 개인 통산 10,000득점을 달성했다.[6] 기록을 달성하는 순간 서장훈이 몸담고 있는 전주 KCC 이지스 선수들은 물론 상대팀인 창원 LG 세이커스의 선수들도 서장훈의 기록 달성을 축하해줬다. 특히 서장훈의 상대편 선수이자 휘문고등학교 후배인 현주엽은 서장훈의 대기록을 도와주기 위해 수비를 하지 않고 2점을 내줬다고 한다. 이에 한국농구연맹에서는 서장훈에게 순금 40돈(24K)으로 된 시가 500만원 상당의 황금 농구공을 선물로 줬고 소속팀인 전주 KCC 이지스에서도 시가 600만원에 달하는 크리스탈 감사패를 증정하였다. 또한 이 경기 내내 전광판에서는 서장훈의 농구 인생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가 방송되었다. 서장훈이 10,000득점을 달성할 때 사용되었던 농구공은 영구 소장되었다.

서장훈은 꾸준한 득점과 기복없는 경기력을 시종일관 유지한 점, 그리고 센터라는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덩크슛과 3점슛, 레이업슛 등 슛을 가리지 않고 시도한 덕택에 대한민국 농구 선수로서는 유일하게 10,000점을 달성하여 1위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당시 2위인 문경은의 8,865점, 당시 3위인 추승균의 8,033점과도 큰 격차로 앞선 기록이었다.

이후 서장훈은 최종적으로 13,231점을 기록한 뒤 은퇴하였으며 2위인 추승균 역시 10,019점을 득점하여 현재까지 1만 득점을 달성한 선수는 이 두 선수밖에 없다. 3위인 문경은 선수는 최종적으로 9,347점을 기록하여 1만 득점 달성에는 아깝게 실패하였다.

일화[편집]

  • 농구를 처음 시작한 서울 휘문중학교 시절만 하여도 동료 윤제한에 밀린 185cm(농구화를 신었을 때 기준)의 백업 센터였으나,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키가 15cm나 자라면서 뒤늦게 주전으로 발탁되었다 한다.[7]
  • 3점슛 성공률이 높은 센터로도 유명한데, 처음 3점슛을 시도한 것은 서울 휘문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고 한다. 그가 후배 현주엽에게 골밑을 맡기고 3점슛을 쏘는 것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은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지만, 당시 휘문고등학교 농구 코치였던 김원호는 "내가 가르친 제자 중에 서장훈이의 슛 터치가 가장 뛰어나다"라고 옹호하였다 한다.[7]
  • 농구대잔치 시절 득점, 리바운드, 블록으로 트리플 더블을 작성한 적이 있다. 하지만 언론이 트리플 더블의 기준을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가 두자릿수인 것"으로 정의한 탓에 그의 트리플 더블 기록은 비공식 기록이 되어버렸다 한다.
  • 1994-95 농구대잔치에서 삼성전자박상관과 리바운드 다툼을 하다가 목 부상을 당한 이 후 대한민국 농구에 환멸을 느껴 1년간 미국 유학을 떠났다가 1996년에 복학하였다. 이 1년 간의 공백 때문에 1년 후배 현주엽과는 프로 농구 입단 동기가 되었다.
  • 2001-02 시즌프로농구 시상식 MVP 투표에서 2표 차이로 김승현이 서장훈을 제치고 MVP를 받게 되자 수상자 단체 기념촬영도 하지 않은채 굳은 표정으로 시상식장을 나가버렸다.
  • 등번호는 전주 KCC 이지스 시절을 제외하고 11번을 달았다. 전주 KCC 이지스에 있을 당시에는 11번을 달았던 이상민을 예의 차원으로써 7번을 달고 뛰었다.
  • 2013년 3월 농구 선수 분야 은퇴 이후 연예방송인으로 전향하였다가 2015년 12월 30일 SBS 연예대상에서 여가수 김완선과 공동으로 버라이어티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는 그야말로 예능 부문 최초 수상이라는 진풍경 어린 영광을 안았다.
  • 스포츠 선수 가운데 이례적으로 IQ가 상당히 높으며 이 때문에 프로 농구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끔 재테크를 하였다. 그것이 엄청난 대박을 터트리면서 서장훈은 갑부가 되었으며[9] 강남에 200억원 시세의 빌딩을 소유한 것을 비롯하여[10] 엄청난 자산가가 되었다.

사건[편집]

음주운전[편집]

그는 2번의 음주운전으로 인하여 2001년 9월에는 운전면허취소, 2003년 3월 10일에는 운전면허 100일 정지 처분을 받았다.

방송 출연작[편집]

텔레비전 프로그램(현역 대학 농구 선수 시절 출연작)[편집]

텔레비전 프로그램(현역 프로 농구 선수 시절 출연작)[편집]

텔레비전 프로그램(프로 농구 선수 은퇴 이후 출연작)[편집]

기타 출연작[편집]

CF 광고[편집]

각주[편집]

  1. 네이버 인물정보
  2. 네이트 인물정보
  3. 아버지 서기춘(徐基春)의 신장은 190cm이고 독실한 크리스천이기도 한 기업가이며 개신교 집사 신분이었다.
  4. 조선닷컴 포커스
  5. 93학번이며 1년 휴학하여 1998년 졸업.
  6. 네이버 스포츠
  7. 전창 (2000년 5월 1일). “[스타탐구­|프로농구 부동의 MVP 서장훈]”. 신동아. 2008년 4월 9일에 확인함.  |제목=에 소프트 하이픈 문자가 있음(위치 6) (도움말)
  8. 서장훈-오정연, 결혼생활 마침표 '이혼 조정 성립'
  9. 보도 자료 리스트
  10. 보도 자료 리스트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