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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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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
본명정주일
鄭周逸[1]
출생1940년 10월 24일(1940-10-24)
일제 강점기 강원도 고성군 거진면 거진리[2]
사망2002년 8월 27일(2002-08-27)(61세)
대한민국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마두동 국립암센터
직업희극인
활동 기간1963년~2002년
종교불교
배우자제화자
자녀슬하 1남 2녀

정치 경력
제14대 국회의원
선거구경기도 (구리시)
당선 횟수1
임기1992년 5월 30일~1996년 5월 29일

이주일(李朱一[3], 본명: 정주일, 본명 한자: 鄭周逸, 1940년 10월 24일~2002년 8월 27일)은 대한민국의 희극 배우이다. 제14대 국회의원(1992~1996)을 지냈다. 본관은 연일이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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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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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10월 24일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에서 정주일이라는 이름으로 5대 독자이자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운양초등학교, 경포중학교, 춘천고등학교를 거쳐 경원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하였다.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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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문선대에서 코미디를 시작하였으며, 1963년 연극배우로 무대에 올랐다. 1965년에는 《샛별악극단》 사회자로 활동하면서 연예계에 정식으로 데뷔하였다. 1980년 김경태 PD의 발탁으로 TBC 《토요일이다 전원출발》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방송 활동을 시작하였고, 이어 MBC 《웃으면 복이 와요》를 통해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그는 못생긴 외모로 인해 정상적인 방송 활동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이를 오히려 개성으로 승화시켜 1980년대 한국 코미디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하였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유행어를 비롯하여, 수지큐(Susie Q) 음악에 맞춘 특유의 ‘오리춤’은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또한 동료 코미디언 이상해와 함께 다양한 묘기성 코미디로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사회 활동에서도 활발히 참여하여 1985년 사회복지협의회 후원회장을 역임하였으며, 1988년에는 한국코미디연구회 창립 회장, 연예인협회 연기분과 명예위원장, 한국 BBS 중앙연맹 부총재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1991년 11월 22일 아들 정창원이 교통 사고로 향년 28세에 유명을 달리하였다. 장례식 직후 불과 3일 뒤, 그는 SBS 개국 특집 프로그램에 구지윤과 함께 출연하였다.

이듬해인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국민당 공천을 받아 경기 구리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45.34%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정계를 은퇴한 뒤 방송계에 복귀하여 SBS 심야 토크쇼 《이주일의 투나잇쇼》를 진행하였다. 해당 프로그램은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풍자와 해학으로 대중의 큰 호응을 얻었으며, 방송 100회 특집을 끝으로 방송 활동을 마무리하였다.

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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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소 하루에 담배를 2~3갑가량 피워 왔으며, 1991년 아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 흡연량은 급격히 증가하였다. 2001년 11월 17일,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이로 인해 그해 가을 SBS에서 기획했던 《이주일 최양락 남희석쇼》가 무산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최양락의 방송 복귀 또한 불발되었다.

폐암 판정 이후 그는 금연 명예교사로 위촉되어 범국민금연운동추진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았으며, 증언 형식의 금연 광고에 출연하는 등 금연 운동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결국 2002년 8월 27일 국립암센터에서 숨진 이후, 이주일의 장지는 강원도 춘천시의 경춘공원에 마련되었다. 사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되었으며, 같은 해 제29회 한국방송대상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생전 활발히 펼쳤던 금연 운동은 그의 폐암 투병과 맞물려 국민적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으며, 방송계와 대중문화 전반에도 깊은 영향을 남겼다. 특히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유행어와 ‘오리춤’으로 상징되는 희극적 유산은 후배 코미디언들에게 계승되었다.

이후 코미디계에서는 그를 "코미디의 황제"로 기억하며, 동료와 후배들은 추모 프로그램과 회고 인터뷰를 통해 그의 업적과 인간적인 면모를 기렸다. 또한 방송사들은 추모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하여 그의 주요 출연 장면과 생전 활동을 재조명하였다.

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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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학위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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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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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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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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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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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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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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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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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뭔가 말되네요》(1985)
  • 《돈이 뭐길래 정치가 뭐길래》(1992)
  • 회고록 《인생은 코미디가 아닙니다》(2002)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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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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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고교 재학 시절 박종환 감독과 같이 축구부[5]에서 활동(이주일은 라이트윙을 뛰었고, 박종환이 풀백)했었다. 1982년 연예인 축구단[무궁화축구단]의 단장을 지냈다. 병중이던 2002년에는 당시 서울에서 개최된 2002년 FIFA 월드컵의 개회식에 휠체어를 타고 참관한 것이 방송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이주일과 절친[박종환 전 감독]이 "1983년 FIFA U-20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4강 신화"를 계기가 되어 인연[5]을 맺었다고 한다.

유행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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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콩나물 팍팍 무쳤냐?
  • 얼굴이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
  • 뭔가 보여드리겠다니깐요...
  • 일단 한번 보시라니깐요~!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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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리역 폭발 사고 당시, 가수 하춘화를 구한 일화가 있다.
  • 당시 무명이었던 이주일은 이 일화로 유명해져서 스타덤에 올랐다.
  • 유랑극단 시절, 그의 못생긴 얼굴 등으로 인해 간첩으로 몰려 경찰서에 끌려가 매를 맞고 풀려난 적[5]이 있다.
  • 백남봉과는 코미디언 제1기로 동기다.

사후에 등장한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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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겨울 생전의 토크쇼, 오락프로그램의 주요 장면들을 편집해 만든 흥국쌍용화재의 이유다이렉트 광고에 등장하였다. 이 광고에는 이전에 사고로 죽은 액션배우 이소룡이 찍은 것도 있다. 이때 그의 목소리는 후배 개그맨 이봉원의 성대모사로 만들어져, 그의 사후 5년이 넘었음에도 이 광고는 일반인들에게 그의 향수를 자극하는 역할을 하였고, 광고수익금 전액은 고인과 유족의 뜻에 따라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사용되었다.

역대 선거 결과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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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년도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1992년 총선 14대 국회의원 경기 구리시 통일국민당 25,751표
45.34%
1위 초선

소속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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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정당소속 기간비고
통일국민당1992~1993정계 입문
무소속1993~1994탈당
민주자유당1994~1995입당
신한국당1995~1996당명 변경
무소속1996~2002탈당
정계 은퇴
사망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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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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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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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연기대상 《코미디부문 남자 최우수상》
1985년 1986년
이주일
1987년
김병조 배일집
웃으면 복이와요, 청춘행진곡, 청춘만만세, 일요일 밤의 대행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