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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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회(郭淮, ? ~ 255년)는 중국 후한 말 ~ 삼국시대 나라의 장수이자 정치가로, 백제(伯濟)이며 태원군(太原郡) 양곡현(陽曲峴) 사람이다.

생애[편집]

후한 말, 효렴에 천거되어 평원현의 현승이 되었다가 오관중랑장 조비(曹丕)의 아래에 들어가 도둑을 다루는 일을 맡은 문하적조로 일했다. 215년 승상 조조(曹操)의 병조의령사로 조조를 따라 한중 정벌에 나섰고, 곧 한중에 남아 정서장군 하후연(夏侯淵)의 사마가 되었다. 219년 하후연이 촉장 황충(黃忠)에게 살해 당하자 장합(張郃)을 도와 군사를 거느리다가 장합의 사마가 되었다. 220년 위의 옹주 자사로 승진하고 사양정후 작위를 얻었다. 228년 장합과 더불어 가정에서 마속(馬謖)을 격파하고, 건위장군, 양무장군으로 벼슬이 옮겨졌다. 234년 사마의(司馬懿)를 도와 위북에서 제갈량(諸葛亮)을 막는 데 성공했다. 240년 촉장 강유(姜維)를 이기고, 244년 촉을 치는 선두부대를 거느렸으며 247년 오랑캐 강족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강족의 추장인 아하소과(餓何燒戈)를 죽이고 다른 추장인 벌동(伐同), 아차새(蛾遮塞) 등을 물리쳤다. 249년 옹주 자사 진태(陳泰)와 더불어 촉장 구안(句安)과 이흠(李歆)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좌장군, 전장군, 거기장군 등 고급 무관을 역임했는데, 삼공과 같은 의장을 쓰는 특전을 누렸고 작위는 현후였다.255년 죽어 대장군이 추증되었다.

《삼국지연의》 속 곽회[편집]

한중 공방전에서 처음 등장한다. 조홍(曹洪)의 수하로 종군하여, 연패하여 책임을 지고 처형당할 뻔한 장합을 구해준다. 이 후, 제갈량의 북벌 기간 동안 조진(曹眞), 사마의를 도와 촉군을 저지하였다. 훗날 철롱산에 포위된 사마소(司馬昭)를 구출하려다 강유의 화살을 미간에 맞고 죽는다.

가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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