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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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웅(華雄)
사망 191년 음력 2월
양현 양인
사인 전사
국적 후한
직업 군인
적수 손견

화웅(華雄,[1] ? ~ 191년 음력 2월)은 중국 후한 말의 무장으로 양인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생애[편집]

초평 원년(190년) 동탁의 전횡에 대항하여 발해태수 원소를 맹주로 반동탁 연합군이 결성됐다.[2] 그 일원인 손견하남윤 양현(梁縣, 지금의 허난성 루저우시)에서 목숨을 잃을 뻔할 정도로 패하였다가 이듬해 2월(음력)[3] 흩어진 군사를 수습하고 다시 양인(陽人)으로 진격하였다. 동탁은 호진은 대독호(大督護), 여포는 기독(騎督), 기타 무장들은 그 아래 도독(都督)으로 삼아 요격시켰는데[4] 화웅은 도독 중 한 명이었다. 호진과 여포는 서로 반목하여 패주했고 화웅은 다른 군인들과 함께 효수당하였다.

삼국지연의[편집]

사서가 아닌 소설삼국지연의》에서는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 9에 맹수 같은 으로 반동탁 연합군과의 서전인 사수관 전투의 지휘관으로 등장한다. 포신아우 포충, 손견의 수하 조무, 원술의 부장 유섭, 한복의 부하 반봉을 베는 등 무용을 자랑하다가 관우에게 죽는다. 관우가 나서기 전 조조가 따라준 이 채 식지도 않았다는 묘사를 더하였다.

각주[편집]

  1. 이와 달리 청나라 사람 반미(潘眉)는 《광운》의 葉 항목에 쓰여진 ‘〈오지 손견전〉에 도위 섭웅(都尉 葉雄)이 있다’라는 구절을 근거로 도독 화웅이 아니라 도위 섭웅이 옳다며 현재의 판본들이 틀리다고 주장했다. 반미, 《삼국지고증》7권 ; 노필 편, 《삼국지집해》에도 인용
  2. 《삼국지》1권 위서 제1 무제 조조
  3. 후한서》9권 본기 제9 효헌제 유협 초평 2년
  4. 영웅기》 ; 배송지 주석, 《삼국지》46권 오서 제1 손견에서 인용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