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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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등(馬騰, 152년 ~ 212년)은 중국 후한 말의 군벌로, 수성(壽成)이며, 사례 우부풍군 무릉현 사람이다.

강족의 여인(羌女)에게 장가들어 마등을 낳았다.

어려서는 가난해 가산이 없어 나무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키가 8척에 체격이 건장하고 성정이 어질고 온후하여, 많은 사람들이 공경했다.

유언(劉焉)과 함께 이각과 곽사 등을 무찌를 모의를 하고 한수와 함께 장평관까지 진격했으나, 계획은 들통났고 마등은 한수와 함께 이각 · 곽사와 싸워 져 양주로 달아났다.

양주로 돌아온 후에는 한수와 친밀하게 되어 서로 의형제를 맺었으나, 곧 사이가 벌어져 마등은 한수를 쳤고, 한수는 달아났다가 돌아와 마등의 처자를 죽였다. 종요(鍾繇)가 사례교위가 되어 양주목 위단과 함께 마등과 한수를 설득하여 화해하게 하니, 둘은 조정으로 자기 아들을 출사시켰다. 마등은 자신의 아들인 마초를 보내 원상(袁尙)의 장수 곽원(郭援)과 싸우게 했다. 마등은 괴리에 주둔하였으며, 전장군·가절에 임명되었고 괴리후에 봉해졌다.

건안(建安) 13년(208년), 한수와 다시 사이가 벌어지자 조정에 요청하여 중앙으로 들어가 위위가 되었다. 이때 아들 마휴(馬休)는 봉거도위, 마철(馬鐵)은 기도위가 되었고, 가속들도 전부 (鄴)으로 이주했다. 다만 장남인 마초(馬超)는 양주에 남아 편장군에 임명되어 마등이 거느리던 부곡을 통솔했다.

건안 16년(211년), 조조가 종요에게 장로(張魯)를 토벌하게 하자 관서 지방의 여러 장수들은 자신들을 치려는 것이 아닌지 의혹을 품었다. 마초는 한수와 연합하고 양추(楊秋) · 이감(李堪) · 성의(成宜) 등과 함께 군사를 일으켰다. 건안 17년(212년) 5월, 마등은 마초의 난에 연좌되어 삼족이 멸해졌다.

《삼국지연의》에서의 마등[편집]

한수와 함께 양주의 군벌로서 군림했으며 삼국지연의 10장에서는 마등과 함께 이각과 곽사가 지키고 있는 장안을 습격하며, 삼국지 연의 20장에서는 유비 · 동승 · 왕자복과 함께 연판장 혈서를 써, 조조를 죽이기 위한 동승의 음모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삼국지 연의 57장에서 조조는 손권을 공격할려고 하나, 서량에 주둔하고 있는 마등이 허창을 습격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이때 순유(荀攸)는 마등을 불러들여 죽이라고 조조에게 조언한다. 그래서 조조의 입궐 부름을 받은 마등은 장남 마초(馬超)를 남기고, 조카 마대(馬岱)와 차남 마휴(馬休)와 삼남 마철(馬鐵)과 함께 수도인 허창(許昌)으로 갔고, 황완(黃琬)의 아들인 황규(黄奎)와 함께 조조를 죽이려 하나, 황완의 애첩 이춘향 (李春香)과 애부 묘택(妙宅)의 배반으로 인해 조조에게 발각되어 두 아들과 함께 처형되었다. 조카 마대는 후미에 남아 있어서 제때 도망칠 수 있었고, 장남 마초는 애초에 서량에서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둘은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마등을 섬긴 사람들[편집]

마등의 친족관계[편집]

마등.png

관련 인물[편집]

마대 마승 마운록 마원 마철 마초 마휴

주석[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