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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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옹(簡雍, ? ~ ?)은 중국 후한 말의 정치가로, 자는 헌화(憲和)이며 유주(幽州) 탁군(涿郡) 사람이다. 본래 성씨는 경(耿)이지만, 유주(幽州) 사람들이 간(簡)으로 발음했기 때문에 발음에 따라 성을 바꾸었다고 한다.

생애[편집]

유비(劉備)와 동향으로 의용군 시절부터 유비를 따라다녔으며 유비군에 초기 모사이다. 종종 사자의 역할을 하였다.

유비가 익주(益州)로 들어가자 유장(劉璋)에게 사자로 갔고 유장도 그를 마음에 들어해서, 그 후 성도(成都)의 성문이 열리고 항복할 때는 유장과 같은 가마를 타고 성에서 나왔다. 소덕장군(昭德將軍)으로 승진하지만 무심하고 오만한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유비 앞에서도 다리를 아무렇게나 뻗고 팔걸이 의자에 기대어 응대하기도 하였다. 제갈량(諸葛亮)에 대해서도 자기만 긴 의자를 차지해 옆으로 기댄 채 논의하였다.[1] 그렇지만 사람들로부터 반감을 사지는 않았다.

유머 감각이 뛰어났다. 당시 금주령이 내려 주조용 도구를 가지고 있었던 것만으로도 같은 죄로 취급되었다. 간옹이 유비와 함께 거리로 나가 남녀가 함께 걸어가는 것을 보고 “저 두 사람은 간음을 저지르고 있으니 붙잡아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비가 그 이유를 묻자 “저들은 간음을 하는 도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유비는 잠시 생각한 뒤, 법 집행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아 법을 폐지했다.

《삼국지연의에서의 간옹》[편집]

삼국지연의》에서는 여포(呂布) 토벌 때부터 등장하며, 유비와 함께 각지를 전전하고, (蜀)에 들어갈 때는 유장에게 항복을 권하는 사자로 나선다. 일부러 오만한 태도를 취하는데, 유장의 신하 진복(秦宓)에게 거센 항의를 받고 자신의 무례함을 사과한다. 그리고 유장은 간옹의 수레에 동승해 항복한다.

주석[편집]

  1. 다만 법정이 나타나기만 하면 단숨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