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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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국어
사용 지역 한반도 전역(고구려 · 백제 · 신라)
어순 주어-목적어-서술어 (SOV)
형용사-명사 후치사 사용
사멸 고려의 건국(중앙어의 이동)
문자 이두 · 향찰 · 구결
언어 계통 한국어족
 고대 한국어
초기형태 한국조어
언어 부호
ISO 639-3 639-3 고대 한국어

고대 한국어(한국 한자古代韓國語)는 한국어가 처음으로 문증되는 단계 언어로, 훗날 중세 한국어로 발전한다. 언어사의 구분은 정치사적 시대 구분이나 전쟁 또는 대규모적 제도의 개편에 따른 사회사적 시대 구분이 언어에 급격한 영향을 주었다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면 이러한 시대 구분을 사용해서는 안되므로, 일반적으로 고대 한국어는 한국어가 문헌을 통해 등장하는 5세기부터 몽골어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1274년까지로 규정된다. 한국어의 경우는 현존 방언과의 차이가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만큼 심하지 않고 과거의 방언 자료를 구할 수 없으므로 과거 국가들의 수도 이전에 따른 언어사적 시대 구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고대 한국어의 마지막은 1274년이라고 할 수 있으나, 한국조어에서 언제 분리되었는지는 알기 어렵다.[1]

고대 한국어는 한자이두, 향찰, 금석문, 지명 자료를 통한 문헌적 연구방법과 고대 일본어로 차용된 어휘를 분석하는 계통학적 연구방법이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대 한국어 기록은 광개토왕릉비, 중원 고구려비, 서봉총은합, 영일냉수리비, 울진 봉평리 신라비, 영천 청제비, 신라 적성비, 임신서기석, 고구려 평양성 석편, 경주 남산 신성비로 그 자료가 매우 적고 이들을 통해 알 수 있는 언어는 단편적이나 7세기 이후의 자료들이 반영하는 언어와 일치한다. 모든 언어사는 현존하는 자료에 그 언어사적 시작을 일치시키는 것이 관례이므로 고대 한국어의 시작을 이들 자료가 등장한 때로 본다.[2]

삼국 시대 이전의 한국어는 자료가 많지 않아 그 모습을 명확히 알 수 없다. 또 삼국의 언어 중 고구려어백제어는 사서에서 나타나는 지명 및 인명의 한자 표기 등에서 약간의 형태소가 밝혀져 있을 뿐, 언어의 전체상은 파악하기 힘들다. 한편 신라어향가와 같은 언어자료가 비교적 많이 남아 있어, 이들에 비해 언어의 모습이 비교적 잘 파악되어 있다.

고대 한국어에 대한 자료는 일본중국을 비롯한 고문헌에 적지 않은 양이 남아 있으므로 이를 참고하는 연구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런 자료들은 고대 일본어에 대한 음운의 역사적 변화와 당시의 음운 인식, 고대 중국어음운론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원래 고대 한국어 어휘를 재현하기 쉽지 않다. 때문에 현재 고대 한국어 연구는 자료가 일본이나 중국에 있다는 점, 외국 고대어에 대한 높은 전문성이 요구된다는 점 때문에 원활한 연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3]

음소 체계 상에서는 중세 한국어보다 자음이 적을 것으로 보인다. 유형론적으로는 중세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SOV형 어순을 지닌 교착어이다. 그러나 고대 한국어에서 명사절과 용언 어간의 비통사적 활용이 확인되는 등, 후계 언어와 일부 유형론적 자질에서 차이점이 나타난다.

가설상의 어족인 알타이어족 혹은 특히 일본어족에 종속시키려는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고대 한국어는 한국어족 이외의 언어와의 유전적 관계가 실증되지 않았다.

자료와 표기[편집]

고대 한국어 시기에는 한글이 없었기 때문에 그 자료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 등 역사서에 나타난 지명과 인명, 이두, 향찰, 구결과 같은 한자 표기된 자료에 한정된다. 한국어가 한자에 의하여 암시적으로 표시되기 때문에 그 어형을 정밀하게 복원하기는 쉽지 않다. 아래에 몇 가지 복원 예를 제시한다.

《삼국사기》(권34)의 신라 지명 ‘永同郡本吉同郡(영동군은 원래 길동군이다.)’의 기술에서 ‘永’과 ‘吉’이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한자 부분의 원래 한국어는 ‘*길’로 추정되는데, ‘길’과 같은 소리의 한자로 표기한 것이 ‘吉’이며 형용사 ‘길(다)’의 뜻을 나타내는 한자로 표기 한 것이 ‘永’이다. 여기서 신라어에서 ‘길다’의 뜻을 나타내는 단어가 현대어와 같은 ‘길-’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향가 “처용가”에 나타나는 향찰 표기 ‘遊行如可’는 ‘*놀니다가’ 또는 ‘*노니다가’로 해석된다. ‘如可’는 이두에서 ‘다가’로 읽히며 향찰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추정된다. ‘遊’, ‘行’은 각각 중세 한국어 ‘놀-’, ‘니-’ (가다)와 관련되며 ‘遊行’은 그 합성어 ‘노니-’(놀아다니다)였다고 추측된다. 다만 중세 한국어에서는 ‘놀-’의 받침 소리 ‘ㄹ’이 탈락되지만 고대 한국어에서는 탈락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음운[편집]

자음[편집]

고대 한국어에는 예사소리와 거센소리의 대립이 있었다고 추측된다. 예를 들어 《삼국유사》(권3) ‘或作異次, 或云伊處, 形音之別也, 譯云厭也(「異次」라 하거나 「伊処」라 하는데 소리의 차이이다, 번역하면 「싫다」라는 뜻이다)'의 「次」「處」는 둘다 차청자(次淸字)인데 「異次」「伊處」는 중세 한국어 ‘잋-’(困)과 관련되는 단어이다. 그 한편, 된소리에 관해서는 그 존재를 명시해 주는 자료가 없다.

중세 한국어에 있었던 어중 마찰음 ‘ㅸ’[β], ‘ㅿ’[z], ‘ㅇ’[ɦ]이 고대 한국어에서 어떤 소리였는지에 관해서는 몇 가지 가설이 있지만 파열음 ‘*ㅂ, *ㅅ, *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가설이 유력하다. 또 이와 관련하여 중세 한국어에서 일부의 ‘ㄹ’이 고대 한국어에서 ‘ㄷ’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추정된다. 예 : 波珍 *바ᄃᆞᆯ(중세 한국어 : 바ᄅᆞᆯ)‘바다’.

모음[편집]

단모음은 중세 한국어에서와 마찬가지로 7개 모음 체계였다고 추정되는데 /ㅣ/에 두 가지가 있었다(/i/, /ɨ/)고 하는 가설이 있다. /ㆍ/(아래아)는 중세 한국어에서는 [ʌ]였다고 추정되지만 고대 한국어에서는 원순성이 강한 [ɔ]였다고 추측된다. 중세 한국어에서 일부의 /ㅓ/는 고대 한국어에서 /ㆍ/로 거슬로 올라가는 것이 있다고 추정된다.

문법[편집]

후기 고대 한국어의 주된 어미류는 아래와 같다. (   ) 내는 중세 한국어형이다.

  • 대명사
    • 1인칭 ― 吾(나)
    • 2인칭 ― 汝(너)
    • 矣身(의몸)
    • 他矣(ᄂᆞᆷᄋᆡ, 져의)
  • 격조사
    • 주격 ― 伊・是(-이)
    • 속격 ― 衣・矣(-ᄋᆡ/-의), 叱(-ㅅ)
    • 대격 ― 乙(-ㄹ~-ᄅᆞᆯ/-를~-ᄋᆞᆯ/-을)
    • 처격 ― 中, 良中(-애/-에. 이두의 독음은 ‘-ᄒᆡ, 아ᄒᆡ ~ -ᄀᆡ, 아ᄀᆡ’)
    • 구격 ― 留(-로~-ᄋᆞ로/-으로)
    • 공동격 ― 果(-과)
    • 호격 ― 良~也(-아~-야), 下(-하)
  • 보조사
    • 隱(-ᄂ~-ᄂᆞᆫ/-는~-ᄋᆞᆫ/-은)
    • 置(-도)

중세 한국어에서는 체언이 자음으로 끝나느냐 모음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또 모음조화에 따라 어미류에 몇 가지 이형태가 있을 수 있었지만 고대 한국어에서는 이형태의 존재에 관해 명시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중세 한국어의 대격은 ‘-ㄹ~-ᄅᆞᆯ/-를~-ᄋᆞᆯ/-을’이며 고대 한국어에서도 양상이 유사하다고 충분히 추정할 수 있는데 실제 표기는 ‘乙’ 단 한 가지다.

  • 어미
    • 종결형 ― 如(-다), 古(-고)
    • 관형형 ― 尸(-ㄹ), 隱(-ㄴ), 期, 爲在(-ᄒᆞ견), 爲乎(-ᄒᆞ온), 爲臥乎(-ᄒᆞ누온)
    • 연결형 ― 古·遣(-고), 弥(-며), 良(-아/-어), 如可(-다가), 爲乎矣(-ᄒᆞ오되)
  • 선어말어미
    • 존경 ― 賜(-시-)
    • 겸양 ― 白(--ᄉᆞᆲ-)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