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이라크 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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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의 전쟁의 일부 | |||||||
이라크 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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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이라크 국민 회의 | 이라크 | ||||||
다국적 연합군 | 사우디아라비아 | ||||||
지휘관 | |||||||
이야드 알라위 |
사담 후세인† 쿠사이 후세인† 우다이 후세인† 알리 핫산 알 마지드† 바르잔 이브라힘 이자트 이브라힘 알 두리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 물라 크레카르 | ||||||
병력 | |||||||
265,000명 | 375,000명 | ||||||
피해 규모 | |||||||
사망자: 4,500명 미군 3,500명 이상(2003년 5월 1일 이전 172명) 영국군 179명(2003년 5월 1일 이전 33명) 그 밖 139명 | 사망 : 21,221명~26,405명 게릴라 저항세력들 포함 정확히는 알수 없으나 최소 100,000명 이상으로 추정 |
이라크 전쟁 또는 제2차 걸프 전쟁 또는 이라크 자유 작전(영어: Operation lraq Freedom, 오퍼레이션 이라크 프리덤[*])은 2003년 3월 20일 미군의 이라크 침공으로 시작되어, 2011년 12월 15일 종전[1]되었다. 그리고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하자마자 이라크는 내란에 휩싸였다.
무력사용 권한부여
유엔안보리결의1441에 의해, 이라크에 대한 유엔회원국의 무력사용이 승인되었다. 국제법상 전쟁에는 크게 침략전쟁, 평화유지전쟁, 자위전쟁이 있다. "침략전쟁은 개별국가의 군통수권자가 무력사용을 승인한다. 그러나 침략전쟁은 국제법상 범죄가 되어 ICC에 의해 개인이 형사처벌되며, 침략국가는 타국들에 의한 평화유지전쟁, 자위전쟁의 저항을 받게 된다. 자위전쟁은 개별국가의 군통수권자가 무력사용을 승인한다.평화유지전쟁은 유엔안보리가 유엔헌장 제42조에 의해 무력사용을 승인하고 있다."
이라크 침공
여러 나라의 반응
- 대한민국은 3월 21일, 600 명 이내의 건설 공병 지원단과 100명 이내의 의료 지원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그 뒤 의회의 반대로, 여당이 분열되는 등으로 인해 파견 실현이 불투명했다. 4월 2일 국회 연설로, 노무현 대통령은 다시 파병의 승인을 의회에 요청했다.
-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전 수상은 정부 성명으로 미국의 무력 행사를 지지했다.
-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수상은 기자 회견에서 "미국의 무력행사를 이해하며 지지한다"라고 표명했다.
- 오스트레일리아는 공군의 전투 공격기, 해군의 프리게이트, 특수부대를 파견했다.
- 필리핀은 지지했다. 중국, 러시아, 유럽 연합, 아랍 연맹은 비난했다.
- 이스라엘은 이라크로부터의 미사일 공격에 대해 즉시 보복하겠다는 자세를 취했다. 국내에서는 비상사태 체제에 들어가, 생물, 화학 병기를 준비했다.
- 이라크 정부는 이 싸움을 성전(jihad)이라고 했다.
- 국제 연합의 코피 아난 전 사무총장은 강한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 미국 국내에서는 비상 용품, 권총, 라이플, 산탄총의 매상이 급증했다. 또 미국 공군은 이라크에 F-117 나이트호크를 파견시켰다.
전쟁 결과
징병제로 100여만 명이 넘는 이라크군은 수적 우세임에도 불구하고 미군에게 일방적으로 패배했으며 패배 이유 중에서는 이라크병사들의 군기는 엉망인 것이 큰 이유였다. 2006년 결국 후세인의 두 아들인 우다이 후세인과 쿠사이 후세인이 열화우라늄탄에 맞아 숨을 거두고[2] 이후 후세인은 미군의 체포로 인하여 종전되었다. 미군은 후세인 독재세력의 지지기반을 와해시킴으로써 그동안 유지되던 이라크 내 치안이 와해되었으며 이로 인해 보복살해 등 종파분쟁이 발생하고 치안부재로 인한 무장세력의 형성과 이들의 저항으로 미군 수천 명이 전사하는 결과를 낳았다. 뒤늦게 부족한 지상군을 증원하고 이라크 경찰과 군을 재건하여 미군 전사자 수가 크게 줄고 안정을 되찾아 갔으나 미군이 철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7년이 지난 2010년 8월 20일. 모든 전투병력을 철수시키기 시작, 2011년 12월 15일 미국에서 공식으로 종전을 선언하였으며 같은해 12월 18일 미군은 이라크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