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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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 35°59′41.02″N 126°39′16.81″E / 35.9947278°N 126.6546694°E / 35.9947278; 126.6546694
금강
호강·백강·백마강
錦江
Geum River
(지리 유형: 강)
금강 대청댐
나라 대한민국
지방 대전광역시 · 충청남도 · 충청북도
도시 대전광역시 · 청주시 · 공주시 · 논산시 · 세종특별자치시 · 군산시 · 부여군 · 서천군 · 옥천군 · 금산군 · 영동군
발원지 소백산맥신무산
 - 위치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식천리·수분리의
신무산뜸봉샘
 - 고도 895m (2,936ft)
 - 좌표 35°35′34.91″N 127°29′12.61″E / 35.5930306°N 127.4868361°E / 35.5930306; 127.4868361
하구 황해
 - 위치 전라북도군산만
 - 고도 0m (0ft)
 - 좌표 35°59′41.02″N 126°39′16.81″E / 35.9947278°N 126.6546694°E / 35.9947278; 126.6546694
길이 395.9km (246mi)
한강·낙동강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세 번째로 긴 강이다
연미산에서 바라본 공주 근처의 금강
공주의 금강철교
백제대교위에서 바라본 금강

금강(錦江)은 한반도으로 소백산맥에서 발원하여 금산, 영동, 옥천, 대전, 세종시, 공주, 논산, 부여, 서천을 지나 군산만에서 황해로 흘러들어간다. 금강은 한강, 낙동강에 이은 대한민국 3대 강으로 전북 장수군 장수읍의 뜬봉샘에서 발원하여 충청권을 지나 군산만에서 서해와 만나는 407.5㎞의 강이다. 금강은 호수처럼 잔잔하다고 호수 같은 강 즉 호강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대전·충청권의 주요 생활·산업·농업용수로 이용되고 있고, 과거에는 수로교통이 발달하여 금강 유역을 중심으로 도시가 번성하였다. 대전광역시 금강 유역에 대청댐이 있으고, 하류에는 금강하구둑이 있다. 부여군 인근에서는 백마강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국가하천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구간은 전라북도 진안군 하신천의 합류점부터 금강하구둑이다. 금강의 주요 지류로는 갑천, 논산천, 미호천, 유구천 등이 있다.

목차

발원과 종점 [편집]

뜸봉샘 [편집]

박은식은 한국통사에서 금강은 속리산과 덕유산에서 발원한다고 기술하였다. 금강은 섬진강의 발원지인 팔공산을 마주보고 있는 신무산의 뜸봉샘에서 발원한다. 뜸봉샘에서 발원한 물은 장수군 수분리 마을을 지나는 수분천이 되어 흘러내린다.

남대천 [편집]

무주구천동의 가파른 계곡을 흘러 내려오면 설천이라고 불리고 무주읍 근처에서는 남대천이라고 불린다.

양강 [편집]

금강이 충청북도 영동군을 지나는 구간에서는 양강이라고도 불린다. 양산면에 있는 강가의 명승지는 양산8경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냈다. 양산8경은 영국사, 강선대, 비봉산, 봉황대, 함벽정, 여의정, 자풍당, 용암을 일컫는다. 강편에는 송호유원지와 그 건너편 자라별유원지에는 우거진 소나무와 자갈밭, 그리고 은모래에서 쉴 수 있다.

적벽강 [편집]

금강이 금산 땅에 들어오면 적벽강이라고 불린다. 또한 천내리 일대가 천내강이라고 불리는데, 천내강 강변은 조약돌밭이 넓어 야영장소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대청호 [편집]

금강이 옥천 땅에 들어오면 대청댐에 물길이 막혀 대청호를 이룬다. 대청호로 인하여 금강 하류에 빈번하였던 홍수는 멎게 되었다. 그러나 금강의 수량을 줄여 금강하구언과 함께 금강의 수운이 쇠퇴하게 만드는 역할도 하였다.

곰강 [편집]

금강이 웅진 즉 고마나루에 이르며 그 이름은 곰강으로 바뀐다. 북쪽에서 이주해온 곰의 후손인 백제인들은 새로운 도읍에 흐르는 강의 이름을 곰강이라고 불렀다. 곰강은 곧 금강이 되었다.

백마강 [편집]

금강이 백제의 고도 부여 부근을 지날 때에는 백마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부소산 근처에는 백제를 멸망시킨 소정방이 백마를 미끼로 해서 용을 낚았다는 조룡대가 자리하고 있다.

금강하구둑 [편집]

군산장항 사이의 금강하구둑은 총길이 1841m로 1990년에 완공되었다. 금강하구둑은 충청남도전라북도의 도계를 이루며 농업용수공업용수를 공급하고 금강 주변 홍수를 조절한다. 담수 공급량은 연간 3억 6000만 톤이다. 이 둑의 완공으로 강경은 큰 배가 드나들지 못하고 물류의 집산지로서 기능을 잃게 되었다. 또한 지역의 특산품이었던 황복, 금강 장어, 참게 등도 사라졌다. 장항선 철길이 놓여 있으며 장항역군산역을 잇는다. 금강하구둑이 들어서기 전까지 밀물 때 하구로부터 64㎞에 있는 부여군 규암면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생태학적으로 우여황복, 참게, 뱀장어 등 회유성 어류도 금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지류 [편집]

뜸봉샘에서 발원한 금강은 진안군에서 구량천과 진안천을 만나고, 금산군과 옥천군에서 초강천, 송천천, 보청천을 만나고 대전 신탄진에서 갑천과 합류한다. 연기군에서 미호천과 만나 남서쪽으로 흐르다 공주와 부여를 지나며 정안천, 석성천을 만난다.

제1지류로는 장수천, 무주남대천, 하신천, 용추천, 장계천, 계북천, 구량천, 진안천, 정자천, 주자천, 삼유천, 현내천, 봉황천, 소옥천, 주원천, 회인천, 품곡천, 영동천, 이원천, 초강, 보청천, 갑천, 미호천, 금천, 용수천, 대교천, 정안천, 유구천 용성천, 치성천, 지천, 잉화달천, 은산천, 논산천, 석성천, 길산천, 산북천, 원산천등이 있다.

제2지류로는 유등천, 무심천, 조천, 노성천, 강경천, 석천, 추풍천, 보강천, 백곡천, 병천천, 월하천 등이 있고 제3지류로는 대전천, 미평천, 율량천 등이 있다.

논산천 [편집]

공주 계룡산 서쪽과 논산 연산면 산지에서 발원하여 논산 양촌면에서 명암천과 만나 논산시를 북서부를 남서쪽으로 흘러 탑정저수지에서 머물렀다가 강경읍 서쪽을 가로질러 금강 본류로 합류한다.

노성천 [편집]

한천(漢川)으로도 불렸던 노성천은 계룡산에 발원해 논산시 부적면에서 연산천과 합류한 뒤 다시 논산시 취암동에서 논산천과 만난다. 노성참게로 만든 간장게장이 유명하였다.

강경천 [편집]

미내(渼奈)라고도 불렸던 강경천은 충남과 전북의 경계를 이룬다. 익산시 망성면에서 마산천과 만난 강경천은 강경읍에서 논산천과 합류해 금강 본류로 흘러들어간다. 금강의 편리한 수운으로 활용도가 높았을 때 강경천은 강경읍 시가지 중앙을 곡류하기에 수운교통의 이점도 있었지만 여름철에는 홍수로 인한 범람으로 가옥피해도 컸다.

교통 [편집]

교량 [편집]

나루 [편집]

금강은 충청지역의 수운을 담당했던 중요한 수로이다. 금강을 따라 포구가 발달되었는데, 원산나루, 강경포, 입포나루, 규암나루, 구드래, 왕진나루, 곰나루, 마암나루, 신탄진 등이 주요 포구였다. 과거에는 200여톤 정도의 배는 강경포구까지, 50여톤 정도의 소규모 배는 하구둑에서 130㎞ 떨어진 충남 연기까지 운항할 정도로 내륙 수운이 발달했다. 공주지역 금강에는 곰나루 외에 불티, 말아구, 석정리, 오얏골, 장기대, 곰되네울, 머그럼, 놋점 등 11개의 나루터가 있었으나 현재는 몇 개의 나루만 그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왕진나루 [편집]

금강은 청양군의 동쪽을 지나는데 이 부근 10여개의 나루 중 가장 큰 나루였던 왕진나루는 1980년대까지 청양군 청남면과 부여군을 잇는 주요 교통로 였다. 청양에서 부여를 가려면 왕진 나루를 건너 부여읍 저석리를 통해 부여로 통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청양군 내의 청남면, 목면, 정산면 주민들까지 이용하였다. 일제시대에는 정산면과 목면, 청남면, 장평면 등의 쌀 공출이 왕진나루를 통해 이루어졌고, 강경이나 군산에서 반나절 정도면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에 7-8월에는 제주도에서 새우젓배가 왔었다. 현재는 왕진나루 일대를 생태레포츠 관광지로 개발하려고 구상하고 있다.[1]

정자 [편집]

금강 변에는 8정자의 유명한 정자가 있는데,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에 있는 독락정, 세종시 금남면 영곡리에 있는 한림정, 세종시 장기면 금암리이 있었던 금벽정, 공주시 소학동 오얏골 나루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벽허정, 공주시 월송동 아랫사송정마을에 있는 사송정, 공주시 공산성안에 있는 쌍수정, 공주 옛 철교 옆에 있던 안무정[2], 공주시 탄천면 유하리 원산 마을 뒷산으로 옮겨진 원산정이다.

역사 [편집]

고대 [편집]

백제는 금강을 통한 수운이 편리하고, 군사상 방어가 용이한 공주로 도읍을 옮겨왔으며 이후 중국과 백제를 잇는 교통로로서 금강을 이용하였다. 공주에서 천도한 부여지역도 금강의 수운을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백제는 금강을 통하여 중국 그리고 일본과 교류를 하였다. 당시 곰나루에서 출항한 선박은 한 달 쯤 후에는 오사카 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선 [편집]

구한말 1900년대에 금강 수계를 왕래하던 배의 숫자는 매년 1만 5천 척 정도였으며 군산, 강경, 공주, 부강 간에는 정기기선이 운행되었다. 또한 범선도 운행되었는데 군산에서 공주까지 이틀, 공주에서 군산까지는 하루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

참고자료 [편집]

주석 [편집]

좌표: 36°00′N 126°40′E / 36°N 126.667°E / 36; 126.6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