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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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 髙)씨는 한국 성씨이다.

목차

髙 성 고 [편집]

제주 고씨는 시조는 제주 탐라건국신화에 등장하는 고을라(髙乙那)이다. 한라산에서 삼신인(三神人)으로 전하는 양을라(良乙那) 고을라(高乙那) 부을라(夫乙那)가 태어나 탐라을 건국했다고 한다. 양씨는 후대에 양(良)에서 양(梁)으로 성을 변경하였고, 고(髙)씨는 후대에 고(高)을 성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1세조는 고려 시대 초기 인물 고말로(高末老)이다. 한국 고씨의 많은 본관이 제주 고씨의 분파이다.

제주 고씨의 고을라(髙乙那)의 후손들은 공식적으로 髙를 사용해 왔다. 高, 髙는 모양이 조금 다른 한자이다. 제주 고씨와 분파 성본들은 계통을 달리하는 다른 고씨 성본과 구별하기 위해서 공식적으로 髙를 성으로 하며, 대내외적으로 표기할때는 高와 髙를 혼용한다.

高 높을 고 [편집]

횡성 고씨[1][2]의 시조는 고구려 보장왕의 둘째 아들 인승(仁勝)인데, 안승의 형이다. 그의 동생인 안승은 고구려 본기에는 보장왕의 서자, 외손으로 되어 있고, 신라 본기에는 연정토의 아들로 되어 있다. 후손은 고려 말기 밀직사를 지낸 민후(旻厚)이다. 횡성 고씨는 인구수가 적은 희귀 성본으로, 2000년 통계에 4,277명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요양(遼陽) 고(高)씨는 고구려의 20대 왕인 장수왕의 후손으로, 요령성(遼寧城) 태안현(台安縣)의 한 작은 읍인 大高麗房鎭(대고려방진)에 2천여명이 있다.

광녕 고씨의 시조는 명나라 한림원의 태학사였던 고한봉(高翰鳳)의 5대손 고유보(高有寶)이다. 그는 명, 청 교체기에 청나라 지배를 받기를 거부하고 심양에 인질로 잡혀간 조선의 척화파를 따라 조선에 들어와 평북 상원에 정착하였다. 고유보는 송(宋)나라 진종(968~1022) 때 인물 고경(高瓊)의 후손으로, 6대조는 명나라 예부시랑을 지냈다. 본관은 중국 함평로 광녕이다.

중국의 고씨 [편집]

  • 고(高 : 병음 Gao)씨: 중국의 고씨는 강성(姜姓)이다. 강태공의 후손이며 중국 인구순위 15위로 제나라 강태공의 강씨(姜氏)에서 파생된 성씨이다.

주석 [편집]

  1. [학술] "이것이 광개토대왕 얼굴"
  2. 장수왕 61대손 고붕씨 국내 대학서 석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