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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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董)씨는 한국 인구순위 127위 5564명이다.[1][2]

광천 동씨 董[편집]

동(董)씨는 광천 동씨(廣川 董氏)가 대종을 이루고 있다. 광천(廣川)은 중국 북부지방의 화북성(華北省) 조강현(棗强縣)에 속한 지명으로 지금의 북경(北京)근처이며, 고대 중국의 중요 산업지대로 유명하다. 동씨(董氏)의 본관은 광천 을 비롯하여 광주, 경주, 설성, 수원, 안동, 영천, 영해, 원주, 전주, 청주, 청하, 청해, 충주, 풍천, 하동, 황주등이 있다.

광천 동씨의 시조는 고려 말기에 명나라의 접위사(接慰使)로 고려에 나왔다가 영주(榮州)에 정착한 승선(承宣)이라고 한다. 또 승선의 후손 외에 1597년 정유재란 때 도진사(都眞使)로 원병을 이끌고 조선에 온 명나라 장수 일원(一元)의 후손이 있다. 일원은 명군이 철수할 때 본국으로 돌아갔으나 그의 아들 대순(大順)은 그대로 머물러 있다가 귀화한 것으로 전한다. 일원은 승선의 종(從)7대손이 되기 때문에 그들의 후손은 다같이 한 집안이 되는 셈이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광천동씨(廣川董氏)는 남한에 총 1,095가구, 4,64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씨의 연원은 전한(前漢)의 대학자 동중서(董仲舒)로부터 시작된다. 광천동씨대동보에 의하면 대유(大儒) 동중서(董仲舒)는 기원전 179년(한 나라 문제 원년) 중국 화북성(華北省)에서 출생하여 고명한 학덕으로 유교 일존주의를 확립, 한(漢)나라 유교 독립의 기반을 중흥시켜 동양사(東洋史)에 빛나는 업적을 남겼으며, 문묘에 배향되어 동씨 가문을 더욱 빛나게 하였다.

동씨는 동중서(董仲舒)의 43세손인 동승선(董承宣)이 고려 말에 명나라 접위사로 동래하여 조선 개국과 함께 출사한 후 공을 세워 영천(榮川, 경북 영주)군에 봉록되었다. 동씨는 처음에는 승선(承宣)의 봉군지였던 영천을 관향으로 쓰다가 정유재란 때 귀화한 명나라 장수 동일원(董一元)의 소장문서를 근거로 하여 시조 동중서(董仲舒)의 출생지인 중국의 광천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동승선의 아우 인선(印宣)은 조선 태조조에 지휘사가 되어 전공을 세움으로써 이부상서에 올랐다. 그리하여 광천 동씨는 동중서(董仲舒)를 시조로 삼고, 영천군 승선과 이부상서 인선을 각각 일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승선의 손자 덕란(德蘭)은 공조시랑을, 현손 보하(寶夏)와 상하(尙夏)는 공조전서를 역임하여 태자태보에 오른 학정(學政, 인선의 현손)과 함께 가통을 이었다.

동일원(董一元)의 손자 한필(漢弼)은 인조 때 병자호란으로 청나라 와의 굴욕적인 화의가 성립되자 분개하며 벼슬을 버리고 지리산에 은거한 후 누차에 걸친 조정의 부름에도 불응하며 자손들이 벼슬길에 나가지 말도록 유언했다고 한다.

주석[편집]

  1. 네이버 성씨/본관
  2. 국회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