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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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蔡, 菜, 采)씨는 중국한국의 성씨이다.

나라, 거북 채 蔡[편집]

채(蔡)씨는 주무왕의 동생 채숙에 연원을 두며 채 (춘추)에서 계출되었다. 발상지는 하남성 상채(上蔡)현이며, 세거지는 산동성 정도(定陶)현, 절강성 반안(磐安)현이다. 인물로는 중국 후한(後漢) 때 발명가 채륜(蔡倫: 50-121), 후한(後漢)의 문인 채옹(蔡邕: 132-192)등이 있다.

채(蔡)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14,069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52위이다. 본관은 평강(平康), 인천(仁川), 광주(光州), 음성(陰城) 등 16본이 있다.

  • 평강 채씨(平康 蔡氏)의 시조 채송년(蔡松年)은 고려 고종 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냈다.[1] 채송년의 묘소는 강원도 평강군 유진면에 있다. 평강 채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45명, 무과 급제자 61명을 배출하였다. 주요 인물로는 조선 정조영의정에 오른 채제공(蔡濟恭)이 있다. 2000년 기준 인구는 69,256명이다.
  • 인천 채씨(仁川 蔡氏)의 시조 채선무(蔡先茂)는 고려 중엽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使)를 지냈다. 인천 채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1명, 무과 급제자 11명을 배출하였다.[2] 2000년 기준 인구는 37,391명이다.
  • 광주 채씨(光州 蔡氏)의 시조 채순희(蔡順禧)는 고려조에 평장사(平章事)를 지냈다. 2000년 기준 인구는 418명이다.
  • 음성 채씨(陰城 蔡氏)의 시조 채충(蔡冲)은 고려시대에 중랑장(中郞將)을 지냈다. 2000년 기준 인구는 248명이다.

인물[편집]

  • 채제공은 영조 19년(1743)년 문과에 급제 정조 초에 이르기까지 도승지와 6조 판서를 두루 역임하였다. 남인의 영수였으며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좌의정, 영의정에 이르기까지 10년 동안 재상의 자리를 지키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두루 업적을 남겼다. 특히 당시에 정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던 천주교에 대한 관대한 태도를 취했다.
  • 채만식(소설가)은 채씨의 문재를 빛냈으며
  • 채동선(작곡자)은 여러편의 예술가곡으로 우리나라 현대음악의 개척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됐다.

나물 채 菜[편집]

중국의 채(菜)씨는 허난 성에서 계출된 성씨이다.

채(菜)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3,516명으로 조사되었다. 본관은 영양, 진주 2본이다.

  • 영양 채씨(英陽 菜氏)의 시조 채성룡(菜成龍)의 원래 성은 지씨(池氏)인데 조선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소윤과 이조참의를 역임한 후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영양군과 채씨 성을 하사받았고 한다. 채성룡은 울진 지씨 지서룡(池瑞龍)과 형제라고 기록되어 있다. 2000년 기준 인구는 1,816명이다.

풍채 채 采[편집]

중국의 채(采)씨는 한족선비족이 주로 사용한다.

채(采)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666명으로 조사되었다. 본관은 여산 단본이다.

주석[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