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성씨)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尹)씨는 한국의 성씨이다. 윤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948,600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8위이다. 본관은 총 47본이 있으며, 인구는 파평 윤씨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파평 윤씨[편집]

파평 윤씨의 시조는 윤신달(尹莘達)은 고려 태조를 도와 후삼국을 통일한 공으로 개국통합삼한벽상익찬공신(開國統合三韓壁上翊贊功臣) 2등에 책록되었고 관직은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에 이르렀으며 소양(昭襄)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파평 윤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36명을 배출하였으며, 전체 합격자의 2.28%를 차지하였다. 이는 전주 이씨, 안동 권씨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합격자 수이다. 왕실 국혼(國婚) 가문으로 왕비 5명(성종비 폐비윤씨 포함)으로 조선조에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가문이다. 인구는 2000년 기준 713,947명이다. 인물로는 윤관, 윤동주, 윤봉길 등이 있다.

칠원 윤씨[편집]

칠원 윤씨의 시조는 신라 무열왕 때 태자 태사를 지낸 윤시영(尹始榮)이다. 윤시영의 17세손 윤길보는 고려조에 삼중대광 첨의찬성사를 역임하였으며 귀성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칠원에 정착 세거하면서 본관을 칠원으로 하였다. 인구는 2000년 기준 54,253명이다. 인물로는 윤탁연, 윤지술등이 있다.

해남 윤씨[편집]

해남 윤씨의 시조는 윤존부(尹存富)이다. 그는 11세기인 고려 중엽 문종(재위 1046~1083년)때의 인물이다. 인구는 2000년 기준 55,627명이다. 인물로는 윤휴,윤의중, 윤선도, 윤두서 등이 있다

해평 윤씨[편집]

해평 윤씨 시조는 고려 말 금자광록대부을 지낸 윤군정(尹君正)이다. 손자 윤석은 고려 충숙왕 때 해평부원군에 봉해지므로 해평을 본관으로 삼아 해평 윤씨라 하였다. 인구는 2000년 기준 26,341명이다. 인물로는 윤방, 윤치호, 윤덕영, 윤웅렬, 윤보선 등이 있다.

무송 윤씨[편집]

무송 윤씨의 시조 윤양비(尹良庇)는 고려 예종 때 보승랑장으로 무장현 호장을 지냈다. 그의 선조는 중국 당나라 사람 윤경(尹鏡)으로 중국 오계시대의 난을 피하여 무송(전라북도 고창군)에 정착했다고 한다.[1] 인구는 2000년 기준 13,384명이다. 인물로는 윤소종, 윤회, 윤자운 등이 있다.

경주 윤씨[편집]

경주 윤씨 시조 윤통(尹統)은 조선 태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참판을 지냈다. 2000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543가구, 1,684명으로 조사됐다.

예천 윤씨[편집]

예천 윤씨의 시조는 고려에서 추밀부사 윤충(尹忠)이다. 그 후 후손들이 경북 예천에 세거하여 예천을 본관을 삼았다. 인구는 2000년 기준 1,362명이다.

  • 상계 : 시조 윤충(尹忠) - 2세 윤신단(尹臣端) - 3세 윤선(尹善) -4세 윤상(尹祥) (호 별동(別洞))

평산 윤씨[편집]

평산 윤씨의 시조 윤번(尹璠)은 고려 조에 판대부감사(判大府監事)를 지냈다. 인구는 2000년 기준 421명이다.

영천 윤씨[편집]

영천 윤씨(永川尹氏)의 시조는 윤절생(尹切生)으로 고려조에 호장(戶長)을 지냈다. 그의 증손 승관이 고울(高鬱:영천의 옛 이름)백에 봉해진후 영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인구수는 2000년 기준 841명이다.

주석[편집]

  1. 무송 윤씨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