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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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씨는 한국의 성씨 및 중국의 성씨이다.

파평 윤씨[편집]

파평 윤씨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윤신달(尹莘達)은 고려 태조를 도와 후삼국을 통일한 공으로 개국통합삼한벽상익찬공신(開國統合三韓壁上翊贊功臣) 2등에 책록되었고 관직은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에 이르렀으며 소양(昭襄)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파평 윤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46명을 배출하였으며, 전체 합격자의 2.28%를 차지하였다. 왕실 국혼(國婚) 가문으로 왕비 5명(성종비 폐비윤씨 포함)으로 조선조에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가문이다. 인구는 2000년 기준 713,947명이다. 인물로는 윤관, 윤동주, 윤봉길 등이 있다.

칠원 윤씨[편집]

칠원 윤씨의 시조는 신라 무열왕 때 태자 태사를 지낸 윤시영(尹始榮)이다. (尹)씨는 본래 신라에서 나온 성씨로 한국 윤씨 가운데 가장 오래 되었다. 윤시영의 17세손 윤길보는 고려조에 삼중대광 첨의찬성사를 역임하였으며 귀성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칠원에 정착 세거하면서 본관을 칠원으로 하였다. 인구수는 2000년 기준 54,253명이다. 인물로는 윤탁연, 윤지술등이 있다.

해남 윤씨[편집]

해남 윤씨의 시조는 윤존부(尹存富)이다. 그는 11세기인 고려 중엽 문종(재위 1046~1083년)때의 인물이다. 인구수는 2000년 기준 55,627명이다. 인물로는 윤의중, 윤선도가 있다

해평 윤씨[편집]

해평 윤씨 시조는 고려 말 금자광록대부을 지낸 윤군정(尹君正)이다. 손자 윤석은 고려 충숙왕 때 경상 북도 해평부원군에 봉해지므로 해평을 본관으로 삼아 해평 윤씨라 하였다. 인구수는 2000년 기준 26,341명이다. 인물로는 윤방, 윤치호, 윤덕영, 윤웅렬, 윤보선이 있다.

무송 윤씨[편집]

무송 윤씨의 시조는 윤양비(尹良庇)이다. 그의 선조는 중국 당나라 사람 윤경(尹鏡)으로 중국 오계시대의 난을 피하여 무송(전북 고창)으로 내려와 정착했다. 그 뒤 후손인 윤양비가 고려 예종 때 보승랑장으로 무장현 호장을 지냈으므로 본관을 무송으로 하였다.[1] 인구수는 2000년 기준 13,384명이다. 인물로는 윤회이 있다.

경주 윤씨[편집]

경주 윤씨 시조는 인물로 조선 태종조에 문과에 급제한 윤통(尹統)으로 호조참판을 지냈다. 2000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전국에 543가구 1,684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된 성본이다.

예천 윤씨[편집]

예천 윤씨의 시조는 고려에서 추밀부사 윤충(尹忠)이다. 그 후 후손들이 경북 예천에 세거하여 예천을 본관을 삼았다. 인구수는 2000년 기준 1,362명이다.

  • 상계 : 시조 윤충(尹忠) - 2세 윤신단(尹臣端) - 3세 윤선(尹善) -4세 윤상(尹祥) (호 별동(別洞))

평산 윤씨[편집]

평산 윤씨의 시조는 윤번(尹璠)으로 선계는 알수없다. 그는 고려조에 판대부감사(判大府監事)를 지냈다. 인구수는 2000년 기준 421명이다.

영천 윤씨[편집]

영천 윤씨(永川尹氏)의 시조는 윤절생(尹切生)으로 고려조에 호장(戶長)을 지냈다. 그의 증손 승관이 고울(高鬱:영천의 옛 이름)백에 봉해진후 영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인구수는 2000년 기준 841명이다.

주석[편집]

  1. 무송 윤씨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