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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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 楊, 樑, 襄)/량(梁, 樑)씨는 한국의 성씨 및 중국의 성씨다.

들보 량 梁[편집]

(梁)씨는 중국 인구순위 20위 1800만명이다.

(梁)씨는 한국 인구순위는 25위 38만명이다. 한국 양(梁)씨의 기원은 탐라개국설화에 등장하는 양을라(良乙那)에 두고있다. 양을라는 본래 어질 양(良)씨였는데 신라 진흥왕에게 들보 양(梁)씨을 사성 받았다고 한다.

제주 양씨의 시조는 탐라개국설화에 등장하는 양을라(良乙那)이다. 그의 후손 양탕(良宕)은 559년(진흥왕 20년)에 사신으로 신라을 방문하여, 진흥왕에게 양(梁)씨 성으로 사성 받았다.

남원 양씨의 시조 양우량(梁友諒)은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에 공을 세워 남원백(南原伯)에 봉해졌다. 문헌의 실전으로 선계를 상고 할 수 없어, 양능양(梁能襄), 양주운(梁朱雲), 양윤위(梁潤渭)을 각각 1세조 하여, 병부공파, 용성군파, 장영공파로 나뉘었다. 남원 양씨 문중에서는 양우량(梁友諒)의 세보가 없어, 상계에 대해서는 정의하지 않고 있다.

버들 양 楊[편집]

(楊)씨 중국 인구순위 6위 9천만명이다. 양(楊)씨의 기원은 중국 홍농 사람 당숙우(唐叔虞)의 후손 백교(伯僑)가 주나라로 들어가 양후(楊候)에 봉해진 것에서 비롯되었다. 저족, 막호로(莫胡蘆)족, 양(揚)씨에서 개성한 양씨가 있다. 양(楊)씨는 중국 소수 민족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성씨이다.

(楊)씨는 한국 인구순위는 55위 9만 3천명이다. 한국의 역사 인물로 양만춘이 있는데 17세기 간행된 동춘당선생별집, 열하일기에 楊萬春, 또는 梁萬春으로 다르게 기록하여 양(楊)씨인지 분명하지 않고, 삼국사기에는 출자가 없어,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현재 양만춘을 시조로 하는 본관은 없다. 토착 성본에 대해서는 전하는 문헌이 없으나, 선계 미상의 본관이 다수 존재한다.

  • 남원 양씨 시조는 고려 지영월군사(知寧越郡事)을 역임한 양경문(楊敬文)이다. 인구수는 2000년에 52,197명이다.
  • 청주 양씨 시조 양기(楊起)는 원나라에서 공민왕의 비 노국공주를 따라 고려에 들어왔다. 인구수는 2000년에 27,437명이다.
  • 밀양 양씨 시조는 양근(楊根)은 청주 양씨의 시조 양기(楊起)의 다섯째 아들이다. 인구수는 2000년 기준 4,477명이다.
  • 중화 양씨 시조는 양포(楊浦)는 고려 고종 때 공을 세워 당악군(唐岳君)에 봉해졌다. 인구수는 2000년 기준 총 5,468명이다.
  • 통주 양씨의 시조 양복길(楊福吉)은 중국 북경 통주(通州) 사람이다.

들보 량 樑[편집]

(樑)씨는 조선조 이후에 창설된 성본으로 시조, 연원은 미상이다. 인구수는 2000년 기준 3,211명이다.

도울 양 襄[편집]

(襄)씨는 연원이 없다. 조선씨족통보에 주나라 때 장공의 아들 양중이 시호를 성으로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언제 누가 동래하였다는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襄)씨는 토착 성씨인지, 동래 성씨인지 고증 할 수 없다. 인구수는 2000년 기준 823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