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스토리우스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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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신격과 인격을 구별하는 그리스도 이성설(二性說), [[성모 마리아|마리아]]에게는 |
[[그리스도]]의 신격과 인격을 구별하는 그리스도 이성설(二性說), [[성모 마리아|마리아]]에게는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라는 호칭을 붙일 수 없다는 주장을 하여, [[431년]] [[에페소스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몰려 네스토리우스는 면직되어 [[리비아]]로 추방당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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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파는 [[424년]]경부터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티나]] 지방 및 [[인도]]에까지도 전도되었다. 또 [[7세기]]에는 [[중국]]([[당 태종]] 때)에서 '''경교'''(景敎)라 불리었고, 그 교회를 파사사(波斯寺)라 불렀다. [[당 현종]](玄宗) 때에는 대진사(大秦寺)라 개칭하고, 각지에 이를 건립하여 교세를 제법 떨쳤다. 그 후 200년간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당 무종|무종]] 때 박해를 받아 쇠퇴하였다. 그러나 [[원나라|원조]]의 치하(治下)에서는 그 신앙이 다시 허락되어 신자와 교회가 증가하였다. |
이 파는 [[424년]]경부터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티나]] 지방 및 [[인도]]에까지도 전도되었다. 또 [[7세기]]에는 [[중국]]([[당 태종]] 때)에서 '''경교'''(景敎)라 불리었고, 그 교회를 파사사(波斯寺)라 불렀다. [[당 현종]](玄宗) 때에는 대진사(大秦寺)라 개칭하고, 각지에 이를 건립하여 교세를 제법 떨쳤다. 그 후 200년간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당 무종|무종]] 때 박해를 받아 쇠퇴하였다. 그러나 [[원나라|원조]]의 치하(治下)에서는 그 신앙이 다시 허락되어 신자와 교회가 증가하였다. |
2011년 8월 3일 (수) 20:38 판
네스토리우스파(Nestorianism)는 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 네스토리우스(?∼451?)를 시조로 하는 기독교의 일파이다.
그리스도의 신격과 인격을 구별하는 그리스도 이성설(二性說), 마리아에게는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라는 호칭을 붙일 수 없다는 주장을 하여, 431년 에페소스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몰려 네스토리우스는 면직되어 리비아로 추방당했다.
이 파는 424년경부터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티나 지방 및 인도에까지도 전도되었다. 또 7세기에는 중국(당 태종 때)에서 경교(景敎)라 불리었고, 그 교회를 파사사(波斯寺)라 불렀다. 당 현종(玄宗) 때에는 대진사(大秦寺)라 개칭하고, 각지에 이를 건립하여 교세를 제법 떨쳤다. 그 후 200년간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무종 때 박해를 받아 쇠퇴하였다. 그러나 원조의 치하(治下)에서는 그 신앙이 다시 허락되어 신자와 교회가 증가하였다.
한국에는 당(唐)과 빈번한 문화적 교류를 가졌던 통일신라시대에 경교가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특히 경교 유물인 '돌십자가'와 '십자무늬장식', '마리아상'이 발견됨으로써 통일신라시대(8~9세기)에 이미 기독교가 한반도에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1].
같이 보기
주석
- ↑ 한국기독교박물관 안내책자(2009), 한국기독교박물관 홈페이지 http://www3.ss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