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김두한/보존문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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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을 다루는 드라마의 범위

종전에 행유님과 떠돌이님간에 "김두한을 다루는 드라마의 범위"에 대해서 편집 분쟁과 되돌리기의 반복이 있었습니다. 행유님은, 김두한이 일단 다루어지는 드라마는 포괄해야 한다는 입장이시고, 떠돌이님은 김두한을 부정확하게 다루고 있는 드라마는 빼자는 입장이십니다. 제가 보기에는, 드라마에서 김두한을 어떻게 다루든 그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라면 포괄해야 한다는 전자의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대중문화 속에서 김두한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느냐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해당 목차의 목적이므로, 드라마의 진위 여부나 사실 여부나 픽션, 팩션 여부의 가타부타를 떠나서, 김두한을 소재라고 하고 있다면, 위키백과에서 하나의 정보로서 제공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되돌리기의 반복은 자제해주시고 여기서 토론을 통해 중지를 모아봤으면 좋겠습니다. --hun99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1:18 (KST)[답변]

동의합니다. 결국 동일인물을 다루고 있지 않습니까? 드라마 1공과 2공에선 이정재와의 마찰, 3공에선 오물투척사건으로 비중있게 나옵니다. 주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스치고 지나가는 단역이나 엑스트라도 아닙니다. 허면 떠돌이님께 질문하겠습니다. 김두한은 주먹으로서의 김두한도 유명하지만 정치인으로서도 많이 알려져있습니다. 게다가 픽션과 팩션은 구분하여야 한다 하시지만 왜 사실에 입각하는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의 이름까지 지워야 하는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야인시대에 나온 김두한보다 1~3공, 그리고 무풍지대에 나온 김두한이 사실에 가까우므로 여기에다가 더 비중을 맞춰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0년 6월 3일 (목) 11:25 (KST)[답변]
(편집충돌2) 제공화국 시리즈와 동양극장 왕초에서 김두한은 가쉽거리로서 제3공화국에서는 여색밝히면서 모 인물(연기자 최주봉)가 집으로 와 지시하면서 설정입니다. 또 국회 발언할때 자막부분에서 한국독립당으로 처리되어 나와있고요.(한국독립당으로 당선됐지만 무소속으로 의정활동해습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1:37 (KST)[답변]
(편집충돌) 저는 부적절하다고 빼자고 한 주장한게 아닙니다. 제3공화국에서 국회오물투척사건은 모 배후의 지시로 일어난 사건이다. 설의 내용으로 설정되어있는데.(이 설은 1966년 당시도 그랬지만 오랫동안 일반 인터넷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오마이뉴스 등 언론에서도 사실처럼 다뤘던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설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박정희에게 허위보고를 하면서 자신이 만든 공작이라고 공화당 의원이었던 이만섭도 회고록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저는 팩션이고 픽션이고 김두한 문서뿐만 아니라 어느 인물문서에서 다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고요. 그러나 위 사항처럼 픽션도 아닌 왜곡에대한 사항은 인물의 연기를 한게 아니라 도용 즉 범죄라고 생각합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1:26 (KST)[답변]
삼국지연의에서 조조는 어떠한가요? 조조의 입장에서 보면 나관중의 악인으로서의 윤색은, 드라마에서의 김두한의 묘사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그 이상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누구도 삼국지연의가 조조를 다루고 있는 문학임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해당 드라마의 표현이 범죄인지 아닌지는 위키백과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고소권을 가진 유족의 고소에 의해 공권적인 법원이 판단할 일입니다. 위키백과의 소관 사항이 아닙니다. --hun99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1:33 (KST)[답변]
그게 왜곡이었던가요? 허면 무풍지대에서도 김두한이 이정재를 막으려한 사건 같은 것도 왜곡에 포함되나요? 특히 무풍지대는 야인시대와 전개가 상당히 비슷한 작품입니다. (작가도 같구요.) 내용의 85% 이상이 비슷한 다른 작품까지 지우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0년 6월 3일 (목) 11:33 (KST)[답변]
삼국지 연의는 애초에 팩션이라는 기반을 두고 만든 소설입니다. 어느 누구도 삼국지 연의를 정사라고 보는사람없습니다. 팩션,픽션과 범죄는 다릅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1:38 (KST)[답변]
위에 말씀드렸습니다. 해당 표현이 범죄인지 여부는 위키백과가 가릴 능력도 관심도 없습니다. 위키백과는 기존의 논의를 백과사전이라는 취지에 맞게 반영할 뿐, 자신의 견해를 내보이지 않습니다. 중립적 시각, 독자연구 금지 정책. 만약 해당 드라마에서의 표현이 문제되고 이것이 범죄라는 신뢰있는 출처가 있다면 오히려 김두한 문서에서 이런 표현은 법원에서 어떻게 범죄로 판명되었다, 어느 저명한 학자나 언론이 이 표현이 문제되었음을 밝혔다고 소개해주면 됩니다. --hun99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1:42 (KST)[답변]
본 사용자는 견해를 1%도 집어넣지 않았고요. 김형욱 공작의 해당 자료는 사용자토론:떠돌이에 기재되어있고요. 위키피디아는 선과 악 등 판단하는거 아닌것도 잘 알고있습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1:43 (KST)[답변]
그리고 팔도사나이,장군의아들 등 편집하기도 했습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1:45 (KST)[답변]
신뢰있는 출처가 있다면 그 드라마를 이 문서에서 중립적 시각과 확인가능정책에 따라 그런 내용을 언급하시면 됩니다. 드라마 자체를 원천적으로 삭제할 감은 아니겠지요?--hun99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1:48 (KST)[답변]
그리고 처음 이의제기하신 사용자:행유 사용자 님은 이의제기만 하시면서 되돌리기만 하시고 해당 사용자분은 편집도 안하시고요 심지어 제 기여편집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이유없이 되돌리기하기도 했습니다. (김구와 김좌진 조우, 우미관 등)--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1:49 (KST)[답변]
현재 어느 곳에서도 김두한을 저렇게 표현했다고 소송을 당했다던지 아니면 유족이 승소했다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아 떠돌이님이 남겨놓으신 야인시대는 당했군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0년 6월 3일 (목) 11:49 (KST)[답변]
저는 저렇게 표현했다고 빼자고 말한게 아니고, 픽션이고 팩션이고 어느 인물을 연기한 문화작품이 있으면 다 포함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누누히 말씀드렸습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1:54 (KST)[답변]
무풍지대에서는 당시 시대에 생존인물로서 지나가는 인물이라고 이환경 작가도 인터뷰에서 밝힌 바도 있습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1:56 (KST)[답변]
포함되는 작품이라고 하시면서 자신이 보건대 "왜곡"의 가능성이 있다 하는 이유로 무리하게 지우신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작가들이 대놓고 왜곡을 하지 않은 이상, 인물을 다룬 모든 작품을 열거해야 하는게 옳다 보는데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0년 6월 3일 (목) 12:02 (KST)[답변]
왜곡의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한 적없고요. 제공화국3에서 내용은 비중있게 그린것도 아니고 가십거리로 그린것도 아니라고 제 토론문서에서도 이곳에서도 설명드렸고요. 그리고 팔도사나이, 장군의 아들 인생극장 등도 편집했습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2:05 (KST)[답변]
그럼 떠돌이님의 논지는 대체 무엇입니까? 위에서는 괴설을 드라마에 차용하여 만들었기에 이런 작품을 만든 건 범죄라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결국엔 이러한 괴설을 차용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떠돌이님이 주장하시는 "사실"을 왜곡한 것 아닌가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0년 6월 3일 (목) 12:10 (KST)[답변]
윤성현 님은 제3공화국 (드라마)에서 국회오물투척사건 등 비중있게 나온다고 말씀하셨죠. 그런데 비중있지도 않았고 설정은 엉터리로 나왔고요 무소속인데 한국독립당으로 나왔고요. 발언 내용은 국회회의록에 있는 발언 내용도 아니고요. 그냥 나와서 성질한번 내고 내용물없지만 장관 및 국무위원들에게 투척하고 끝난 설정입니다. 배후설은 괴설이 아니고요 당시에도 언론에서 많이 기사화했고 김두한은 중앙정보부에서 고문받고 배후설에 배를 가르기도했고요. 이만섭 또한 김형욱 등 박정희과 저녁만찬에 참석한 자리에서 김형욱이 박정희에게 배후가 있다고 말했고 저녁식사 끝나고 박정희와 단둘이대화에서 김형욱이 한말은 거짓이라고 하니 박정희는 알겠소라고 말하고 다음날 중앙정보부에서 더고문당했다고 회고에서 밝혔고요. 이만섭은 공화당 의원이고 박정희 측 인물입니다. 팩션이든 픽션이든 단순 오락성 등 그런 문화 작품은 다 김두한 문서뿐만 아니라 어느 인물이라도 다 포함이 되는게맞고요. 그런데 위사항같은 내용하고는 엄연히 차이를 둬야죠.--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2:18 (KST)[답변]
저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그 드라마가 김두한이란 인물을 다룬 것이 아닌가요? 괴작이든 명작이든간에 여러 드라마에서 한 인물을 다루었으면 단순한 정보로 배우 이름을 쓴 것인데 작품이 괴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워진다는 것이 맞지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제 의견은 이것으로 정해졌으니 더 이상의 같은 의견은 달지 않겠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0년 6월 3일 (목) 13:42 (KST)[답변]
1969년 팔도사나이이란 영화는 스토리을 두고 이름 등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팩션픽션위키백과 뿐만 아니라 다른 백과사전에도 등록되어있고요. 팩션픽션은 차이를 둬야죠. 이순신 문서에 있는 이순신을 주제로 한 오락성 영화를 다뤘다는 그런거 등와는 차이가 다르죠.--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3:47 (KST)[답변]

토론이 종결되지도 않았는데, 토론 종결이라는 독단적 편집은 하지 말아주세요, 떠돌이님. 현재 저와 윤성현님, 행유님의 견해가 대체로 일치한데 혼자만의 의견을 고집한 편집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총의를 구득하신 연후에 편집해주세요. --hun99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5:33 (KST)[답변]

Hun99 님이 제가 떠돌이님은 김두한을 부정확하게 다루고 있는 드라마는 빼자는 입장이십니다 라고 말씀하신것에 부적절하다고 해서 빼자는 주장이 아니라고 누누이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후 의견이 없고 윤성현 사용자 님은 더이상 의견남기지 않겠다고 말하시고 당사자인 행유 사용자 님은 의견 하나도없는 상황이고 진행중이면 진행중이다. 종결이면 종결이다. 고 맺을 짖는 게 도리가 아닐까요.--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5:55 (KST)[답변]
해당 드라마는 괴작이거나 범죄이기 때문에 빼시자는 입장 아닌가요? 그렇다면 저도 윤성현님과 같은 입장으로 빼는 것에 반대합니다. --hun99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6:02 (KST)[답변]
제3공화국에서는 비중있지도 않았으며 김형욱의 공작 같은 이야기로 가십거리 같은거와 팩션은 구별해야 된다고 하는 입장입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6:05 (KST)[답변]
팩션이 아니든 이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단, 비중의 문제라면 논의의 여지가 있다고는 봅니다. 그렇다면 드라마를 분리해서 접근하는 게 맞습니다. 범죄이거나 괴작이라는 이유는 뺄 수 없겠지만, 비중이 극미하다든가 그러하다면 뺄 수는 있다고 봅니다. 이럴 경우 각론별로 접근해야겠지요. 드라마를 보신 분들 간에 논의가 있어야 하고요.하지만 위의 토론을 보니 이견이 있는 것 같네요.--hun99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6:09 (KST)[답변]
먼저 범죄이거나 괴작이라는 이유는 뺄 수 없겠지만'라는 주장이 아닌라점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동양극장 (드라마)은 시선을 끌어보자는 취지로 등장시켰다고 밝히고있고요.국민일보 2001년 6월 8일 기사 왕초 또한 극중에서 춘삼이(차인표)하고 이야기할 거리나 그저 지나가는 역할입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6:25 (KST)[답변]
동양극장의 경우에는 기사를 보니 더욱더 확고하게 넣어야 하겠네요. 김두한이라는 인물의 문화적 파급력을 이용해 드라마에 인위적으로 반영하려 했으니 김두한의 상징성과 문화적 힘을 방증하는 의미있는 정보라고 생각합니다. 왕초의 경우에는 지나친 단역이라면 밸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제가 그 드라마를 본 적이 없어 가치판단을 내리기는 어렵고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지요. --hun99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6:31 (KST)[답변]
MBC 홈페이지 왕초 요약영상 (해피타임) (동영상 부분에서 3번째) 요약한 21:50 영상을 광고없이 무료서비스인데, 요약한 영상분이나 원본이나 다르지는 않습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6:49 (KST)[답변]
MBC 드라마 제3공화국 홈페이지에서는 유료이고 미리보기는 무료지만 상세한 내용은 기재되어 있지않네요. 이건 어떤식으로 올려야 할지 모르겠네요.--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17:13 (KST)[답변]
왕초의 경우 다른 두 분의 이견이 없다는 전제에서, 떠돌이님의 견해를 좋은 뜻으로 본다면 원동영상의 별도의 확인없이 비중이 극미하다고 보아 뺄 수 있겠습니다. 허나 다른 드라마 부분에 대해서는 달리 보고 있습니다. --hun99 (토론) 2010년 6월 3일 (목) 23:00 (KST)[답변]
왕초라면 드라마 문서에서 다루더라도 족하다고 봅니다만 제1공, 제2공, 제3공같은 드라마는 비중을 떠나 당시의 정치 상황을 다루기 때문에 그러한 드라마에는 딱히 조연도 단역도 없습니다. 그러니 넣는 것이 당연하구요. 특히나 이 공화국 시리즈 같은 경우에는 심각한 분위기의 정치드라마의 효시인 기념비적인 작품들입니다. 무풍지대는 그 자체가 팩션으로서 대체적으로 사실에 따라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역시 빠져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0년 6월 4일 (금) 06:01 (KST)[답변]
사정상 의견을 못 올린 것은 죄송하고, 의견에 찬성해 주신 Hun99님과 윤성현님께는 감사드립니다. 제가 보기에 두 분께서는 제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전부 다 하신 듯 싶습니다.-- 행유 (토론) 2010년 6월 4일 (금) 13:46 (KST)[답변]
무풍지대 방영분을 확인한다고 의견이 늦었네요. 아무튼, 확인했더니 왕초 (드라마)의 비중과 비슷했습니다. 또, 사사오입 개헌 장면에서는 내레이션도 비롯해서 재적 203명 중 203명이 투표한거로 나오는데 당시 투표당시에는 재적의원 203명 중 김두한은 참석하지 않았습니다.(두산산백과사전,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환경 작가의 언론 인터뷰) 제3공화국 (드라마)는 위에 의견에서 누누이 말씀드렸고요. 제1공화국 (드라마)는 관련 자료 찾는 중 1982년 2월 8일 동아일보란 기사가 있네요.--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4일 (금) 17:20 (KST)[답변]

문서보호 해제 또는 조정 요청

사용자:행유 사용자 님은 주먹 왕에 대한 제기로 토론하였는데, 행유 님은 토론란에는 주먹 왕 의견을 올리면서 같은시간에는 (주먹왕 등 토론 전에는 김두한 문서에 특정판 삭제 신청 틀을 이용함)김두한 문서 되돌리기 하였고 현재도 거기에 대해 언급은 없고 13시:16분에는 사정상 이번 주 내로 답변 또 올리겠습니다. 토요일이 될지 월요일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행유 (토론) 2010년 6월 6일 (일) 13:16 (KST)이란 의견을 남겼습니다. 주먹왕 토론은 본 사용자 토론란에서 계속 토론 중(현재 토론중단 상황)이며 주먹왕 토론과 김두한 토론은 무관합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6일 (일) 13:38 (KST)[답변]

다른 편집자들과 어떤 부분에서 의견의 일치를 못 보고 있는지 파악하시고 정리해 주세요. 몇 사람이 주장하시는 바에 찬동한다면 문서를 정상적으로 편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케골 2010년 6월 6일 (일) 22:55 (KST)[답변]
6월 6일 오전에 주먹왕 관련으로 사용자: 행유 님의 이의제기로 본 사용자의 토론란에서 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런데 행유 님께서는 주먹왕 의견을 올리면서 동시에 김두한 문서를 문서 전체를 지워버리는 되돌리기하였고 되돌리기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도 묵살하며 토론란에서 주먹왕 의견을 올릴때마다 반복적으로 되돌리기 하였습니다. 이후 관리자 사용자:ITurtle 님 의해 되돌리기 분쟁으로 보호조치되었고 행유 님은 바쁘다는 이유로 1주일후에 온다는 글을 남기고 일단락되었는데요. 6월 7일 (월) 08:18에 관리자 사용자:Hun99 님 의해 주먹왕 문서는 삭제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용자:행유 님이 하신 본 사용자의 기여목록을 보복 되돌리기 목록

  1. 청산리 전투
  2. 우미관
  3. 주먹왕 (본래 토론 주제이지만 주먹왕, 주먹 왕 삭제됨.)
  4. 김종진의 호 시야
  5. 왕초
  6. 야인시대
  7. 김구

위키백과:문서 훼손에 정책에는 문서 훼손이 벌어진 문서를 발견하였다면 원래대로 되돌려 놓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문서를 훼손한 사용자의 토론 문서에, 문서를 훼손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남겨 주세요. 문서 훼손이 고의적이거나 반복적일 경우에는 관리자가 그 사용자를 차단할 수도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는데, 본래 주제문서와 무관한 문서가 지속적으로 보호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7일 (월) 10:22 (KST)[답변]

본 문서에서의 쟁점들을 국한해서 정리해 주시면 판단이 더 빨라 질 것 같습니다. --케골 2010년 6월 7일 (월) 11:40 (KST)[답변]
사용자:행유 님이 6월 6일 09시 22 ~ 46분에 김두한 문서를 줄어가며 특정판 삭제 신청 틀 이용함.
  1. (현재 | 이전) 2010년 6월 6일 (일) 09:46 행유 (토론 | 기여) (89,191 바이트) (특정판 삭신, 틀 추가)
  2. (현재 | 이전) 2010년 6월 6일 (일) 09:32 행유 (토론 | 기여) 잔글 (89,042 바이트) (→청년기: 정리)
  3. (현재 | 이전) 2010년 6월 6일 (일) 09:30 행유 (토론 | 기여) 잔글 (89,083 바이트) (→유년기: 정리)
  4. (현재 | 이전) 2010년 6월 6일 (일) 09:27 행유 (토론 | 기여) 잔글 (89,491 바이트) (필요없는 링크 뗌)
  5. (현재 | 이전) 2010년 6월 6일 (일) 09:22 행유 (토론 | 기여) 잔글 (89,518 바이트)

09시 48분 본 사용자가 김두한 문서 원래 버전으로 되돌림 함. 서로 되돌리기 분쟁하다 2010년 6월 6일 (일) 09:58에 문서 전체 삭제함.

6월 6일 (일) 09:55에 사용자:행유 님의 토론란에 본 사용자가 주의 틀 이후 같은시간인 09:55에 본 사용자 토론에 행유 님이 의견올림. 하지만 김두한 문서 관련이 아닌 주먹왕, 주먹 왕 문서 의견. 한편, 김두한 문서 2010년 6월 6일 (일) 10:04 판에는 편집 요약만 중립적이지 못한 시각, 일부 훼손라고 기재함.

애초에 김두한 문서의 토론 관련은 전혀 없고 전부 주먹왕 주먹 왕 토론 의견입니다. 사용자토론:떠돌이 토론란에서 본 사용자가 김두한 문서 훼손하지마세요 등 언급을 함에도 불구하고 묵살하였습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7일 (월) 12:08 (KST)[답변]

김두한 문서

사용자:떠돌이는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김구하고 이범석이 김두한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말한 부분하고, 기타 부분을 상습적으로 훼손하고 있습니다. 출처가 있어도 내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삭제합니까 -- Tarantius (토론) 2010년 6월 14일 (월) 21:02 (KST)[답변]

토론의사 없군요. -- Tarantius (토론) 2010년 6월 15일 (화) 21:01 (KST)[답변]

김두한

민족적 의협적은 두산백과 등 여러 자료에서도 쓰이는 말입니다. 그리고 한곳에서 토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기저기 옮겨가며 의견올리는 게 혼란이 생기네요.--떠돌이 (토론) 2010년 6월 16일 (수) 12:52 (KST)[답변]

되돌리기 및 대량 삭제 자제 요청

대량으로 내용을 삭제하거나 자신의 편집의도와 맞지 않으면 즉시 되돌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자제를 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대량 삭제로 인하여 관련이 없는 필요한 부분이 없어지는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 이는 정상적인 총의 형성 과정이 아니고 훼손행위입니다. 또한 감정적인 즉각 되돌리기는 분쟁일 뿐 입니다. 다른 사람의 편집이 잘못된 편집이라고 판단하더라고 되돌리기 분쟁으로 이행할 가능성이 있으면 즉각적 되돌리기를 하지 마시고, 토론을 먼저 시도해야 합니다. --케골 2010년 6월 17일 (목) 09:54 (KST)[답변]

김두한 문서 정리 의견 요청

떠돌이님하고 중립적인 시각, 저명성, 어울리는 글, 긴 글 등에 대해 긴 토론을 하다가 갑자기 예기치 않게 중지되어서 제가 문서를 따로 정리했는데, 이 문서가 정책에 정확히 부합하는지 확언할 수 없어 의견을 요청하려 합니다.

대조하시기 위해 두 판을 모두 올려 놓았습니다. 비교해 주시고, 현재 판에서 어떤 점이 고쳐졌으면 좋을지 의견을 나누어 주세요. -- 행유 (토론) 2010년 7월 13일 (화) 06:57 (KST)[답변]

현재 후자가 나은 듯 싶네요. 그런데 문서 대조하니까 '2학년 중퇴'가 '1학년 중퇴'로 바뀌었네요. (참고, 두 판을 대조한 것) --가람 (담소 - 편지 - ?) 2010년 7월 15일 (목) 16:55 (KST)[답변]
이 기사에 따라 내용을 '2학년'으로 고쳤습니다. -- 행유 (토론) 2010년 7월 16일 (금) 07:07 (KST)[답변]

위에서 제시한 기사에 국회 오물투척사건에서 김두한이 외친 말이 위키백과와는 다르게 나와 있습니다. 이 발언에 대해 정확히 서술하고 있는 출처 아는 사람 혹시 계신가요? -- 행유 (토론) 2010년 7월 16일 (금) 07:07 (KST)[답변]

허위의견을 올리시군요. 언제 토론을 하셨다고.. 행유 님과 토론의 내용은 [1] 입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8월 7일 (토) 08:12 (KST)[답변]

문서 정리 의견 재요청

지금까지 현재 판 문서가 중립적으로 김두한에게 지나치게 치우친 이유를 서술하면서 가능한 한 중립성을 회복시키려 했습니다만, 한 번 편집하면 한 번 되돌리는 식의 편집이 너무 잦다 보니 제대로 의견이 정리된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이에 문서 정리 의견을 재요청하려고 합니다.

지난번 의견 요청과 달리, 이번에는 두 판 중에 어느 게 더 나아서 마지막으로 편집되어야 할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두 판 사이에서 각 판에서 어떤 내용이 각자 뽑혀서 편집되어야 할지에 대해 논의하려고 합니다. 즉, 두 판의 우세에 대해 논하기는 갑론을박하는 분위기 때문에 어려우니 최소한 절충이라도 했으면 합니다. 저하고 떠돌이님하고의 각축전만을 벌이지는 않을 예정입니다. 최대한 많은 의견을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 행유 (토론) 2010년 8월 9일 (월) 11:32 (KST)[답변]

본인 사용자의 편집과 이전 버전 (행유 님이 편집 하신거 아니죠)에 내용이 섞여 있을 뿐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여지는데요. 문서정리는 자신의 견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중립적 위반은 아닐텐데요. 내용도 중복 내용이 많고 구마적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나와있고.. 시공관 사건이 소위 대한민청 사건입니다.(정진영 (사회주의 운동가)--떠돌이 (토론) 2010년 8월 9일 (월) 11:37 (KST)[답변]
어느 쪽이 맞든지, 제가 편집하면 님이 되돌리기 때문에 편집 분쟁은 무의미해졌고, 저는 약간의 타협을 하려는 것뿐입니다.
일단 정말 간단하고 사소한 부분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잘못 알려진 것 문단에서 "SBS 드라마 야인시대의 인기로... 함께 찍은 최배달이다." 하는 부분이 김두한 문서에 들어갈 만한 이유가 있나요? 이 내용은 야인시대에 들어갈 만한 내용인데요. -- 행유 (토론) 2010년 8월 9일 (월) 18:55 (KST)[답변]
행유 님은 토론을 제기하시고 도중에 바쁘다는 이유로 도중에 끊어진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위에 있는 토론:김두한#김두한 문서 정리 의견 요청에 행유 사용자님과 마지막 토론은 [2]이고요. 주장은 논점을 정리하셔서 제시하세요. 그리고 잘못 알려진 것에는 사진 부분만 있는 거 아닙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05:49 (KST)[답변]
이순신, 유승준 (가수) 문서 참조 하세요.--떠돌이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05:56 (KST)[답변]
무슨 한 번에 세 개의 토론 주제를 다루시나요. 자꾸 논점에서 벗어나시는 말을 하셔서 토론하기가 어렵습니다. 일단 한 가지논제만 갖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루려는 내용을 굳이 끌고 오면
구마적, 신마적, 최동열, 마루오카, 김영태, 박인애 등 실제인물 사진이라며 인터넷에 떠돌아다니기도 하였는데, 잘못 알려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동열이라고 말하는 사진은 박헌영이며 또한 최동열은 최동열 기자(연기자 정동환)의 눈을 통해 근·현대사를 조망한다는 설정한 극 중 내레이션 같은 캐릭터다. 정신적 지주라며 유진산이라는 또한 김두한의 정신적 지주는 심의 적으로 부친 김좌진이며 마루오카라는 인물사진은 한호산이며 첫사랑이라는 인물사진은 본처 이재희이며 구마적이라는 인물사진은 이원조이며 박정희과 찍은 사진을 권력과 손잡았다는 사진은 1962년 3월 1일 건국훈장 수여 뒤에 박정희을 비롯한 여러 인물 들와 기념사진이며 부인과 함께 찍었다는 김영태의 사진은 1944년 부인과 함께 찍은 최배달이다.
이 내용이 김두한이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라고 한 것이지, 별 내용은 아닙니다. "유진산이 김두한의 정신적 지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 지주는 심의적으로 아버지 김좌진이다." 이 정도하고, 박정희 관련 사진하고, 두 가지 부분은 그나마 연관성이 있는데, 다른 부분은 김두한과 직접관련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제외할 필요가 있습니다. -- 행유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07:38 (KST)[답변]
논점 된 주장이 위 내용인가요? 그럼 그동안 문서 전체로 삭제한 것은 이유가 없이 삭제했다는 뜻인가요? 아무튼, 사진 부분은 오래전부터 익명으로 유포되어 현재도 네이버, 다음, 네이트, 야후코리아 포털사이트 비롯해서 인터넷에 관련 검색만 해도 쉽게 볼 수 있는 자료이고 박정희 관련은 확신으로 기사화되기도 했습니다. [3] 김두한은 62년 3월 1일 건국훈장 수여 당시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왜 우리만 주는가라는 말하기도 했습니다.[4]

--떠돌이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09:39 (KST)[답변]

그 내용에 대해서 출처가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문제는, 그 내용이 김두한 문서에 어울리는지에 대해서 말해보자는 것입니다. -- 행유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09:41 (KST)[답변]
당연히 위 인물들은 다 김두한과 관련된 인물들이고 제목도 김두한으로 유포되어 있는 자료입니다. (또 김좌진의 아들이 아니네 맞네 하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위에 구마적 김영태 마루오카 등 위 자료들이 쓰이고 있기도 하고요.)--떠돌이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09:46 (KST)[답변]
최동열 의심 사진은 최동열 문서에, 마루오카 의심 사진은 마루오카에, 구마적 의심 사진은 구마적에 추가돼야 하는 것 아닌가요? -- 행유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09:48 (KST)[답변]
농담하시는거 아니죠?--떠돌이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09:49 (KST)[답변]
본인 사진도 아니잖아요. -- 행유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09:51 (KST)[답변]

인용했던 내용을 대개 사용되는 문맥에 맞추어 정리해 보았습니다.

야인시대의 인물 중 구마적, 신마적, 최동열, 마루오카, 김영태 등의 사진이 실제 인물 사진으로 인터넷에 유포되었는데, 이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은 다음과 같다.
  • 최동열의 실제 모습으로 알려진 사진은, 실제로는 박헌영의 사진이다.
  • 마루오카의 실제 모습으로 알려진 사진은 실제로는 한호산의 사진이다.
  • 첫사랑의 실제 모습으로 알려진 사진은, 김두한의 본처 이재희의 사진이다.
  • 구마적의 실제 모습으로 알려진 사진은 실제로는 이원조의 사진이다.
  • 1962년 3월 1일 박정희와 찍은 사진은 건국훈장 수여 기념 사진이다. 이에 대해 권력 유착 사진이라는 설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 부인과 함께 찍은 사진에 등장한 사람은 김영태로 알려졌는데, 실제로는 최배달의 모습이다.

-- 행유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0:14 (KST)[답변]

하시고 싶은 의견이 무엇인가요?--떠돌이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0:27 (KST)[답변]
토론을 거쳐서 문서를 더 나은 방향으로 고치는 겁니다. 지금 논제는, 위 인용문에서 김두한과 상관관계가 부족한 내용을 떼는 것이 되겠네요. -- 행유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0:30 (KST)[답변]
이 사진 부분은 위에도 언급했지만 전부 김두한의 관련된 인물이고 김두한의 이름 제목으로 현재도 유포되고 있는 자료입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0:33 (KST)[답변]
김두한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을 따지는데, 김두한과 관련 있는 인물이라고 그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을 따질 필요가 있나요? 각자의 문서에서 잘못 알려진 것을 다루면 되지, 굳이 사진을 꼽는다면 김두한의 사진으로 잘못 알려진 사진이나 뭔가 오해의 소지가 있는 행동을 하고 있는 사진을 다루어야 하는 게 논리적이지 않을까요. -- 행유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0:38 (KST)[답변]
이순신, 유승준 (가수) 문서 참조하세요.--떠돌이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0:42 (KST)[답변]
어느 부분을요? -- 행유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0:44 (KST)[답변]
유승준 (가수)#병역 기피 논란과 한국 입국 거부 논란, 이순신#평가--떠돌이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1:00 (KST)[답변]
지금 예시된 내용들은 모두 직접 유승준, 이순신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지금의 논제에서는 김두한을 직접 언급하는 것도 아닌데다 김두한의 사진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아닙니다만. -- 행유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1:03 (KST)[답변]
행유 님이 하신 부분은 본래 본인 사용자가 편집한 것들인데 어디가 정리를 했다는 건지요? 이 사진 부분은 다 김두한의 관련된 것이고 김두한의 제목으로 유포되고 있는 것인데 어디가 관련이 없다는 건지 논점을 정리하셔서 의견 올려주시죠. 그리고 유승준 이순신 관련 이야기를 언급한 거는 저 부분들도 인터넷에서 사실처럼 유포된 내용으로 의견 올린 것입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1:07 (KST)[답변]
정리한다는 거는, 문체만 고친 겁니다. 보기 좋도록만 고쳤습니다.
이순신, 유승준 등의 내용이 인터넷에서 떠돌든 말든, 김두한에서의 그 내용들이 떠돌든 말든, 그 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 내용들은 최동열, 구마적, 신마적 등등등의 인물에 관련된 것이지, 어떻게 김두한 관련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까? 김두한 문서에 "잘못 알려진 것"이라는 문단이 달려 있다는 말은 김두한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일 텐데, 구마적 신마적 등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이 그 곳에 실려 있다는 말입니다. -- 행유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1:14 (KST)[답변]
[5]) 참고하세요. 어느 (인터넷) 곳이든 내용은 중복이지만 각자 블로그,카페 등 커뮤니티 사이트에 퍼가는 중 하나의 링크입니다.) 구마적 신마적 마루오카 최동열 박인애 등등등 사진들이 전부 야인시대, 김두한으로 알려진 겁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1:21 (KST)[답변]
인터넷의 내용들에 대해 신경쓰지 말고, 그 원론적인 내용에 대해서 말하자는 것입니다. 이들의 사진과 김두한이 무슨 연관성이 있나요? -- 행유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1:24 (KST)[답변]
위 거론된 인물들은 김두한의 주변 인물들이고 저명성 부분도 김두한, 야인시대로 알려졌으며 유포된 자료도 김두한, 야인시대 이름 제목입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1:44 (KST)[답변]

아... 저나 님이나 계속 똑같은 말에서만 돌고 있네요. 김두한의 주변 인물들은 각자의 문서에서 다루면 될 것 아닙니까. -- 행유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1:45 (KST)[답변]

(편집 충돌) 그리고 최동열 의심 사진은 최동열 문서에, 마루오카 의심 사진은 마루오카에, 구마적 의심 사진은 구마적에 추가돼야 하는 것 아닌가요? -- 행유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09:48 (KST), 본인 사진도 아니잖아요. -- 행유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09:51 (KST)

위 의견 내용과 원론, 중립 등 이야기와는 좀 맞지 않는듯한데요.--떠돌이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1:47 (KST)[답변]

농담하시지 마시죠. 더는 불필요한 토론은 원치않습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1:48 (KST)[답변]
제 논조를 삼단논법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김두한 문서에서는 김두한의 사진을 다룬다.
  • 그런데 지금 그 사진들은 김두한의 사진들이 아니다.
  • 따라서 김두한 문서에서는 그 사진들을 다루지 않는다.

이해가 안 되신다고 말해주시면 더 궁리해서 더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 행유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1:51 (KST)[답변]

김두한 문서에 사진은 유년 김두한, 반도의용정신대 당시, 56년 7월 27일 62명 거리 시위 사진, 3대 국회의원 당선 후 사진, 하야시 사진 등 김두한의 사진이 맞습니다.(하야시 사진은 이해를 돕기위한 참고 자료이고요) 이 사진들이 지금 토론과 무슨 연관인지요?--떠돌이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2:00 (KST)[답변]
그 사진들은 논외고, 최동열 운운하는 사진들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행유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2:02 (KST)[답변]
구마적 최동열 박인애 등등 인물들은 김두한의 주변인물이 맞습니다. (최동열은 드라마 야인시대의 극중 내레이션 같은 케릭터)--떠돌이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2:03 (KST)[답변]
김두한의 주변인물은 김두한의 주변인물이지, 그들이 김두한이 되는 건 아닙니다. -- 행유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2:04 (KST)[답변]
(편집 충돌) 흐지부지한 주장이 아닌 논점이 무엇인지 정리하시고 토론 제시해주세요. 계속 이런 반복적 토론은 서버 용량과 시간만 허비할 뿐입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2:06 (KST)[답변]
삼단논법 재인용합니다.
  • 김두한 문서에서는 김두한의 사진을 다룬다.
  • 그런데 최동열 운운하는 사진들은 김두한의 사진은 아니다.
    • 최동열 등은 김두한과 관련은 있지만 최동열 등이 김두한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따라서 최동열 등의 사진은 김두한 문서에서 다루지 않는다.

-- 행유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2:08 (KST)[답변]

그거는 행유 님의 위키백과:독자연구일 뿐입니다. 아니라면 아니라는 자료를 보여주세요. 위 인물들은 김두한의 주변 인물이고 김두한과 야인시대로 알려져 있는 인물들입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2:10 (KST)[답변]
저는 최동열이 김두한과 동일인물이 아니라고 했을 뿐인데, 어디서 독자연구라는 부분을 찾으셨나요? 위의 토론을 읽어보세요! 그들이 주변인물이 맞는 건 쭉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이 야인시대로 알려져 있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김두한 문서에서 김두한의 사진이 아닌 사진을 다루고 있으니, 이에 대해서만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김두한 문서에서는 김두한의 사진을, 김두한의 사진은 김두한 문서에서, 김두한의 사진이 아닌 사진은 김두한 문서가 아닌 문서에서 다룬다는 것이라고 순수하게 논리로만 접근하고 있는데, 자료가 있을 턱이 있습니까? -- 행유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2:15 (KST)[답변]
행유 님이 언제 최동열이 김두한과 동일인물이 아니라고만 말하셨는지요.
구마적, 신마적, 최동열, 마루오카, 김영태, 박인애 등 실제인물 사진이라며 인터넷에 떠돌아다니기도 하였는데, 잘못 알려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동열이라고 말하는 사진은 박헌영이며 또한 최동열은 최동열 기자(연기자 정동환)의 눈을 통해 근·현대사를 조망한다는 설정한 극 중 내레이션 같은 캐릭터다. 정신적 지주라며 유진산이라는 또한 김두한의 정신적 지주는 심의 적으로 부친 김좌진이며 마루오카라는 인물사진은 한호산이며 첫사랑이라는 인물사진은 본처 이재희이며 구마적이라는 인물사진은 이원조이며 박정희과 찍은 사진을 권력과 손잡았다는 사진은 1962년 3월 1일 건국훈장 수여 뒤에 박정희을 비롯한 여러 인물 들와 기념사진이며 부인과 함께 찍었다는 김영태의 사진은 1944년 부인과 함께 찍은 최배달이다.

위 부분을 삭제 해야된다는 주장이시고

삼단논법 재인용합니다.
  • 김두한 문서에서는 김두한의 사진을 다룬다.
  • 그런데 최동열 운운하는 사진들은 김두한의 사진은 아니다.
    • 최동열 등은 김두한과 관련은 있지만 최동열 등이 김두한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따라서 최동열 등의 사진은 김두한 문서에서 다루지 않는다.

-- 행유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2:08 (KST)[답변]

위 내용은 행유 님이 올리신 의견입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2:20 (KST)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이야기만 했습니다. 이해 못 하신 건 순전히 님 탓입니다. -- 행유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2:21 (KST)[답변]

계속되는 편집 분쟁에 부쳐

지금 현재 되돌리기의 반복 등(특정판 삭제 이슈를 제외하고) 내용상의 충돌이 상당합니다. 관련자께서는 상호 존중을 바탕에 둔 토론에 따라서 그리고 위키백과의 정책과 지침에 맞추어 정확하고도 중립적인 내용으로 합의된 내용을 반영해주시길 바랍니다. 다음과 같은 원칙 하에서, 즉

  1. 논쟁이 되는 내용에는 반드시 신뢰있는 출처가 있어야 하며
  2. 위키백과에 내용을 옮길 때는 원출처의 내용을 요약하되 사용자의 주관적 해석이 들어가서는 아니되며 중립적으로 옮기고
  3. 1과 2번을 지킨 내용을 제거해서는 안되며
  4. 1번과 2번을 지킨 내용에 관한 반박을 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신뢰있는 출처를 중립적인 어조와 내용으로 내용을 옮긴다

위의 원칙을 반드시 지켜주십시오.

만약 이를 어기고 무작정 되돌리기만 반복하는 사용자는, 위키백과의 기본적인 작업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용자로 보고 장기간 차단하겠습니다. 현대사 인물에 관한 분쟁에 극도의 피로감을 불러 일으키면서 수 개월을 편집 분쟁에 빠져있는 것은 관련자들에게도 이롭지 아니합니다. 따라서 위의 원칙을 반드시 지켜주시고, 편집 분쟁을 자제해주십시오. --hun99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2:20 (KST)[답변]

저작권

김두한#잘못 알려진 것 부분은 인용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내용을 담고 있네요. 원문 자료는 링크, 또는 해당 문헌의 페이지 정도만 언급하면 되지 않을까요? 또한, 김두한#평가와 부정적 평가 부분은 인물에 대한 개인적 평을 다 담고 있네요. 히딩크의 한마디가 왜 여기에 있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ChongDae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8:51 (KST)[답변]

인용 부분은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하지만, 담고있는 내용중 자료를 찾아보면 더 있지만, 현재까지 편집한 것입니다.) 히딩크 부분은 자료 검색하던 과정에서 나온 것이고 부정적 비판은 주로 김좌진의 아들이 아니네 맞네 등 이런 자료밖에 없어서 그렇게 편집했습니다. 제 개인 견해는 아닙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8월 10일 (화) 18:57 (KST)[답변]
"평가와 부정적 평가"는 대부분 개인의 인상비평이 주를 이룹니다. 현재 내용이라면 아예 없애는게 맞지 않을까요? -- ChongDae (토론) 2010년 8월 12일 (목) 18:38 (KST)[답변]

김두한 문서를 나눕시다.

이 문서의 용량이 88 키비바이트(KiB; 1024B) 이나 됩니다..김두한/생애 으로 나누어 봅시다.--정인우 (토론) 2010년 10월 2일 (토) 12:15 (KST)[답변]

문서를 나누기 이전에 대대적인 내용 정리와 불필요한 부분의 삭제와 정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지저분해요. -- (토론) 2010년 10월 19일 (화) 04:13 (KST)[답변]

김두한, 김좌진과 김옥균의 족보상의 관계

항목 내에 연결되어 있는 이들의 관계에 대한 자료는 두 가지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첫째, 김을동씨의 인터뷰에서 김을동씨가 김두한과 김옥균이 11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 다음 지식인에 고균-백야 가계도에 대한 문답이 연결되어 있는데, 여기에서는 김옥균과 김좌진이 실제 혈연으로는 11촌, 양자관계에 의한 계승으로는 19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김을동씨의 언급과 족보 상의 내용이 서로 어긋납니다.

해당 문답에 古筠-白冶-家系圖.ppt 라는 자료에 족보상의 관계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를 다운로드 받아서 살펴 보니, 족보를 기준으로 보면 김옥균-김좌진이 실제 혈연으로 11촌 관계입니다. 따라서 김옥균-김두한은 구태여 촌수를 이야기한다면 12촌의 할아버지-손자 관계가 됩니다. 따라서 김옥균은 김두한의 백부가 될 수 없습니다. 백부(伯父)라는 표현을 조손 관계에서 사용하는 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통 사회에서도 일반적으로 일가친척의 범위는 8촌-삼종형제까지로 잡습니다. 그 이상을 넘어가면 친척이라기보다는 문중의 개념이지요. 김옥균에게 김좌진은 혈연적으로는 4종질(9촌 조카)가 되지만 4종이라는 표현 자체가 사용되는 경우는 없지요. 혈연적으로도 이미 일가친척이라고 하기에는 좀 거리가 있고 양자관계까지 고려하면 아주 먼 친척- 문중의 일원입니다. -- (토론) 2010년 10월 19일 (화) 02:04 (KST)[답변]

  1. 김을동 인터뷰
  2. 안동김씨 족보

김두한김옥균 관계는 11촌으로 백부가 맞습니다. 양가는 김좌진이 12살 당시 김좌진의 형 김경진이 21살 때 서울에 종숙(從叔) 김영균(金榮均)란 인물에게 양자로 간 겁니다.(김좌진 기념사업회) 김좌진의 사촌인 김종진 (1901년)도 재당숙 김학규 (독립운동가 김학규아님)에 10살 때 양자로 가기도 했습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10월 19일 (화) 02:13 (KST)[답변]

당장 김좌진과 김옥균의 항렬자가 맞지 않습니다. 古筠-白冶-家系圖.ppt 다운받을 수 있으니까 받고서 제대로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계도 자체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지만 항렬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김을동씨가 잘못 알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 (토론) 2010년 10월 19일 (화) 02:27 (KST)[답변]
김두한의 조부 김형규는 원래 김형균이었습니다. 갑신정변으로 균에서 규로 바뀐 겁니다. 안동 김씨 항렬 균(규) - 진 - 한 - 동이 맞습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10월 19일 (화) 02:28 (KST)[답변]
그러니까 김옥균-김형균(규)은 항렬자가 같은 형제뻘 관계(10촌), 김옥균-김좌진은 삼촌-조카 관계(11촌), 김옥균-김두한은 종조부-종조손 관계(12촌). 할아버지-손자의 관계를 백부라고 부르는 게 한국어 용법입니까? 기본적인 단어 의미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토론) 2010년 10월 19일 (화) 02:36 (KST)[답변]

김두한에 대한 평가에 다양한 입장 추가의 필요성

역사학자 한홍구가 내린 김두한에 대한 평가를 추가합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그의 어떤 면을 보는가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고, 김두한이라는 인물 역시 여러 측면을 지닌 복합적인 인물로 여러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현재 김두한에 대한 평가는 전적으로 호의적인 내용으로만 채워져 있으며, 이는 김두한에 대해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시각이 제거되어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홍구의 김두한에 대한 평가는 한국 사회에서 김두한을 보는 다양한 시각의 하나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평가에 있는 여러 김두한에 대한 호의적인 시각들이 그것들 대로 의미가 있듯이 말입니다.

실은 한홍구의 의견에 대한 추가가 이번이 세 번째인데 다 되돌리기 당했습니다. 다른 호의적인 평가를 제거한 것도 아니고 또다른 평가를 추가한 것 뿐인데 정당한 이유 없이 되돌리기 당해서 대단히 불쾌합니다. 잘못된 사실을 적은 것도 아니고 여러 다양한 시각 중의 하나로 추가한 것인데 내용에서 제거당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 (토론) 2010년 10월 19일 (화) 03:00 (KST)[답변]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정리가 필요합니다.

2010년 10월 19일 현재 김두한 항목은 극단적으로 난삽하고 깔끔하지 않아 대대적인 편집이 필요합니다.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한다. - 일단 양이 많은데, 김두한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부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부분들은 과감하게 삭제하고, 꼭 필요하면 별도의 항목을 작성해야 되겠습니다.
본문에 나타나는 수많은 비문을 다듬는다. - 내용을 추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비문들이 너무 많습니다. 내용 추가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추가할 때에 비문들 제거해 주시기 바랍니다. 항목 작성시 가장 기본적인 부분인데도 비문이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읽으라고 하는 건지 읽지 말라고 하는 건지.
인물에 대한 적절한 제목과 하위항목으로 분류한다. - 인물에 대해서는 약력 - 인물과 관련된 주요 사항 - 인물에 대한 논란과 그에 대한 다양한 의견 - 평가 등이 일반적인 형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항목은 인물의 기술에 대한 일반적인 형식과 많이 어긋나 있습니다. 인물에 대한 논란의 구체적인 내용을 기술하고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어 있다기보다는 논란을 극도로 간략하게 이야기한 후 바로 인물에 대한 옹호의 내용이 길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인 논란에 대해 사전 지식이 없는 경우에는 내용 이해 자체를 할 수 없습니다. 제목 자체도 '논란'이 아니라 '잘못 알려진 것들'이라고 붙여서 애초부터 옹호 위주의 편집을 지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제목을 수정하고 유사한 내용에 따라 다시 하위 분류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토론) 2010년 10월 19일 (화) 03:30 (KST)[답변]
촌수는 정확한 자료를 찾아야 할 것 같고 김을동 측에서는 백부로 부르고 있습니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정리하셨다고 하시는데 김두한이 김좌진과는 혈연적으로 무관하다는 주장은 일단 현재에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지만 근래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던 의혹이었다. 최근까지 김두한의 구술을 제외한 명백한 근거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기도 하고 김두한 본인에 의해 지나친 미화와 부풀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의견에는 의혹을 제시하는 측은 많은 사람이 아닌 한정되어 있고 주로 "~어떻게 미래희망연대에 있느냐~" 등 김을동이 (의정 활동 말하는 것도 아닌) 미래희망연대에 소속에 되어 있다는 것이 주류입니다. 객관적 입장으로 의혹을 제기했다는 자료는 어디에도 보지못했고 시사저널, 박한용(민족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 한홍구 기사(훗날 대한민국사에 수록) 이 내용에서 또한 극우든 극좌든 구절마다 각자 자신들의 생각에 살을 더 붙이는 격이며 김두한이 1917년에 출생했다는 등 종로에 사람들이 철시했다는 등 (1999년에는 한국 100년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에서도 민족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 박한용이 이 프로그램에 비중 적으로 차지하며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드라마 야인시대의 전후에 급조가 튀며 한홍구 또한 야인시대 방영 당시에 동료 기자가 쓰지 않느냐고 해서 썼다고 직접 본인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정리에는 동의하겠지만, 내용 전체를 삭제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10월 19일 (화) 09:33 (KST)[답변]
'촌수는 정확한 자료를 찾아야 할 것 같고 김을동 측에서는 백부로 부르고 있습니다'라고 했는데, 위 토론에서 제시한 자료는 분명하게 김옥균-김두한이 12촌 종조부-종조손 사이임을 보여 주고 있으며 이는 항렬자를 고려해 보더라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 사항입니다. 김을동씨가 알고 있는 것과 족보에 반영된 내용은 분명히 다릅니다. 왜 계속 10촌이라고 주장하는지 궁금하며 이에 대한 별다른 근거 없이 계속 되돌리기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족보와 항렬자라는 명백한 근거에 따라서 출생관련 사항을 정정합니다. 이에 대해 별다른 설명 없이 되돌리기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 (토론) 2011년 1월 29일 (토) 17:20 (KST)[답변]
그리고 김완섭 산적떼 두목 논란 당시에 김완섭은 검찰 조사와 관련해 '김을동 씨가 김좌진 장군의 진짜 손녀인가, 호적 초본을 제시해야 한다, 아니면 고소권 자체가 없다'고 주장한데 대해 "웃기더라"라고 말하며 "검찰에서 '이 사람을 꼭 처벌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하길레 호적등본을 다 제출했고 검찰에서도 기가 막혀서 웃었다"고 말했다.는 하기도 했습니다. [김완섭 씨가 검찰 조사와 관련해 '김을동 씨가 김좌진 장군의 진짜 손녀인가, 호적 초본을 제시해야 한다, 아니면 고소권 자체가 없다'고 주장한데 대해 "웃기더라"라고 말하며 "검찰에서 '이 사람을 꼭 처벌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하길레 호적등본을 다 제출했고 검찰에서도 기가 막혀서 웃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6])

--떠돌이 (토론) 2010년 10월 19일 (화) 10:22 (KST)[답변]

2011년 1월 29일 현재 김두한 항목에 대한 대대적인 정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Oporous님에 의해 많은 부분이 정리되었는데 기존의 내용에서 불필요하게 항목을 많이 차지한 부분들이 많이 정리되었다고 보며 잡다한 부분들을 정리한다는 점에 대해 불만없습니다. 기존 항목이 지나치게 난삽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이번의 대대적 정리를 환영합니다만,좀더 들어낼 부분이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 (토론) 2011년 1월 29일 (토) 21:44 (KST)[답변]


다른 사람이 작성한 토론 내용을 되돌리기 한 것에 대해 해명을 요구합니다.

김두한 항목의 토론 역사를 살펴 보다가 토론 문서 되돌리기를 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해당 토론 참여자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본 항목도 아니고 토론의 내용을 되돌리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해당 내용이 잘못되었다면 토론에서는 적극적으로 그 잘못된 내용을 지적하면 되지 아무런 문제 제기가 없었던 것처럼 토론 내용까지 되돌리기 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며, 차후에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 (토론) 2011년 1월 29일 (토) 22:19 (KST)[답변]


가독성, 중립성을 위한 항목 간결화의 내용과 그 근거

본 항목을 간결하고 중립적으로 서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며, 불필요한 되돌리기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토론 문서 내에 별도로 소항목을 추가합니다.-- (토론) 2011년 1월 29일 (토) 22:48 (KST)[답변]


  • 수정내용 : 본인이 아닌 주변인물에 대한 상세한 서술은 일반적인 인물에 대한 서술에서 찾아볼 수 없는 불필요한 방식이라고 생각되어 삭제하였습니다. 아울러 이 토론 문서에서 Oporous님이 붙이신 소제목을 교체하였습니다. -- (토론) 2011년 1월 29일 (토) 22:44 (KST)[답변]
  • 수정내용 : 김두한에 대한 한홍구의 평가 추가. 긍정적 서술 일변도인 해당인물 평가 부분에서 중립성의 측면에서 충분히 실릴 수 있는 내용이며, 삭제에 대한 다른 사용자의 문제제기에 별다른 답변 없이 다시 삭제하였으므로 해당 내용을 원상태로 돌립니다. -- (토론) 2011년 1월 30일 (일) 11:58 (KST)[답변]

평가 부분에서 한홍구의 평가 부분의 삭제에 대한 논란

가독성, 중립성을 위한 항목 간결화의 내용과 그 근거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지속적인 되돌리기가 이루어지고 있고 토론이 제 사용자문서 토론란에서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토론과 검증을 위해서 관련내용을 이쪽으로 옮기고 토론하고자 합니다. 이하 사용자 토론 에서 복사해서 붙임. -----

[7] 현재 편집된 해당 인용문은 딱 그 부분만 넣으면 평가하는거처럼 나오는데요.

"장군의 아들, 그것은 김두한을 상징하는 말이다. 한 개인을 논할 때 그 사람 개인이 아니라 누구의 아들이라는 것이 그 사람을 상징하는 수식어가 된다는 것은 그 인물이 끝내 아버지의 후광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된다. 그만큼 김두한 신화에서 김좌진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아버지의 후광이 없었다면 김두한은 그저 뒷골목 깡패의 보스나 해방 뒤 백색테러의 행동대장의 하나로밖에는 기억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김좌진 장군과 쌍벽을 이룬 홍범도 장군의 아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이준 열사의 아들로 진짜 독립군 대장이 되어 중국대륙을 누빈 이용(李鏞) 장군을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이용 장군은 북에서 고위직을 지냈기 때문이다."

여기에 뒷골목 깡패 보스라는 어떠한 근거가 되는 주장, 자료도 나오지 않습니다. 뒤로 갈수록 오류점들이 많고요. 백기완 가대기 일화 기사에서는 못살게 굴던 김두한이라고 강조하고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시위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1916년부터 현재 가장 오랫동안 양복점 운영한 이경주 씨나 종로구 이발사분 등 진짜 종로구 상인들 증언에서는 오히려 김두한을 볼 때마다 전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홍구는 이준 아들이나 홍범도 아들 등 이야기를 언급하는데 이준 아들 이용, 홍범도 당시 시대배경과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것을 끼어맞추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한홍구 자신도 드라마 야인시대가 화제가 되고 있자 왜 안 쓰느냐고 써보라는 권유로 썼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8] 한홍구는 김일성은 1930년대 와해된 독립운동 상황에 보천보 전투는 비록 군사적 성과는 미미했으나 와해된 상황에서 한 것으로 평가하는 반면에 안중근도 엄연한 군인인데 개인의 자격에 의거로 말하는 등 이치가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진짜 일본군이 된 유림의 아들 유원식에 대한 언급도 없으며 아버지를 대신해 이토히로부미 아들에 용서를 구한 행위로 김구가 안준생을 죽이려고 하는 등 노발대발한 백범일지에 있는 내용을 진보 쪽에서는 김두한으로 각색하기도 했습니다.

회고록에 일제 행적은 없고 해방 후 좌우대립 행적 이야기만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회고록과 2권으로 나눈 버전 회고록도 확인했지만, 일제 행적 이야기도 다루고 있으며 자전권 보관소를 근거로 선우영빈을 단순히 친일 인물로 그리고 통합됐다고 단정 짓고 있지만 근거자료도 말하지 못하며 고작 근거는 증언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라는 이 부분은 김동회 인터뷰를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홍구는 김옥균 김좌진 관계를 촌수로는 20촌이 넘는 그냥 문중일 뿐이다. 라고 단정 짓고 있지만, 김형규가 김옥균 생부에게 양자로 간 것도 사실이며 오랫동안 왕래도 한 것도 사실이며 일가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촌수로 11촌도 사실입니다. 안동 김씨 족보 11촌

국군준비대 사상 수로 있었던 사건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백선엽 등 단체 간에 대립 부분 말한 적이 있었고 박갑동 또한 한강에 시체들 손이 올라오는 등 끔찍한 상황이었다고 해방정국 당시 상황을 말한 적 있습니다. 해방정국에 그냥 동네건달로 단정 짓고 있지만 박갑동은 조선청년전위대 전위대장으로 있을 때 그때는 민족진영에서 꼼짝하지 못했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정진룡에 대한 이름을 당시 대한민청 사건(대한민청 본부에서 있었던 살해사건) 기사자료에 정진룡으로 나오고 있는데, 현재 이재용 이재룡 선동열 선동렬([9])등 편한대로 쓰는것으로 볼 때 단정짓기에 무리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정진영(또는 룡)이 부산에서 주먹 보스라는 것도 일명 카더라일 뿐 근거 자료가 없습니다. (김두한의 부하들이 신의주에서 이성순에게 얻어맞고 벼루고 있다 해방 후 종로에서 만나 서로 으르렁하다가 김두한이 화해해서 형님아우 됐다는 일화도 한 때 기정사실화로 인터넷에 유포된 적이 있었는데 출처는 김춘삼 자서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자서전 토대로 드라마 왕초에서도 이 일화를 썼고요.)

대한청년단 감찰국장 밑에서 부국장이 되어 감찰국장으로 승진하고 불법감금·공갈 등의 혐의로 단정짓고 있지만 감찰국장 겸 건설국장을 맡았고 국가보안법입니다. 한국 전쟁 때 김두한은 전쟁에 참전한 것이 허구라고 단정짓고 있지만 김웅수 장군, 김종문 (1919년), 김동길, 등 한국 전쟁 당시 행적에 대해 말한 적 있습니다. 그리고 이승만을 민족반역자로 한 발언 말하면서 김성수를 친일파인데 독립운동가이라며 단정짓고 있지만 제가 알기로 김성수 친일 논란은 현재도 진행형이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서 독립운동가이기도 독립운동가 이강훈도 김성수를 독립운동에 대해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김대중 또한 김성수를 높이 평가한 적이 있습니다.

진보당에서 탈퇴한 게 기회주의로 단정 짓고 있지만 원래 시경에 내사받고 탈퇴하고 노농당으로 옮긴 것입니다. 4대 국회 낙선은 당시에 민주당 열풍과 3대 의정 때 비구승 옹호한 것으로 종교단체에 탄압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독립당 내란음모사건을 김두한이 김종필과 가까워지자, 그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며 단정 짓고 있지만, 김종필과 김두한은 자료를 보았을 때 정치적이나 뭐나 같이 활동했다는 자료도 없습니다. 그리고 피로 물들인 민족사이라 책은 김두한의 회고록 또는 자서전이 아닙니다.

국회오물투척 사건 이후 재판 중에 울먹이며 부친의 훈장을 반납하겠다고 하기도 하고 자해를 시도하는 등 옥중에서도 끊임없이 뉴스를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당시 기사자료 등에는 그런 기사는 없고 자해시도라는 부분은 칼로 배를 그은 사건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칼로 배를 그인 것은 오물투척사건은 배후가 있다는 배후설에 반발한 것으로 네이버 디지털 뉴스 아카이브에서도 당시 기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오물투척 배후설은 김형욱이 박정희에게 배후가 있다고 보고했다고 이만섭이 말한 적 있습니다. 또 이 배후설은 진보 쪽에서는 귀가 얇다는 등 재각색해서 인터넷에 유포되기도 했습니다. 평가는 사실 바탕으로 옳고 그름을 떠나 비판과 비난을 구분해야 합니다. 일부 실제 사실을 자신들에게 맞게 부풀며 각색된 기사를 평가 항목에 넣는 것은 이치가 맞지 않습니다.--떠돌이 (토론) 2011년 1월 30일 (일) 14:29 (KST)[답변]


떠돌이씨의 주장에 몇 가지 문제점을 제기하고자 합니다.


* 김두한이 뒷골목 깡패 보스라는 어떠한 근거가 되는 주장, 자료도 나오지 않습니다. => 김두한에 대해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상식은 개인의 도덕성이나 인물에 대한 여부와는 무관하게 깡패 출신의 국회의원입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일반적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상식에 맞지 않는 내용에 대한 근거 입증은 그 사람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김두한이 깡패 보스가 아니라는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장황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님은 김두한이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지 김두한이 깡패가 아니었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 '김형규가 김옥균 생부에게 양자로 간 것도 사실이며 오랫동안 왕래도 한 것도 사실이며 일가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촌수로 11촌도 사실입니다.'고 했는데, 해당 링크의 기사내용과 첨부된 PDF 파일은 제대로 확인은 했는지요? 김옥균 생부는 병태(炳台), 김형규의 양부는 병태(炳泰)입니다. 한자를 분명히 확인해 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님이 제시하신 링크 주장대로라면 김옥균-김좌진은 실제혈연 11촌, 입양관계 19촌이니 김옥균-김두한은 실제혈연 12촌, 입양관계 20촌이지요. 촌수관계에 대한 한홍구의 주장은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사실에서 크게 어긋나지는 않습니다.(입양관계로 딱 20촌) 그리고 한국의 전통사회에서도 8촌을 넘어가면 친족개념에서 문중의 개념으로 바뀝니다. 일단 김형규가 김옥균 생부에게 양자로 간 것이 사실이라는 언급이 사실이 아니므로 왕래가 있고 일가라는 말도 사실로 인정하기 힘듧니다. 님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할 경우, 김형규-김옥균은 입양관계로 형제가 되고 그럴 때에만 김옥균이 김좌진의 백부가 됩니다. 이게 원래 누구의 주장인지 모르지만 명백한 오류입니다. 그리고 과거 이에 대해 바로 님이 제시한 링크의 근거를 통해서 내용을 확인하고 그 근거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님이 계속 김옥균-김두한의 촌수 관계를 10촌이라고 고친 이유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 '평가는 사실 바탕으로 옳고 그름을 떠나 비판과 비난을 구분해야 합니다. 실제 사실을 자신들에게 맞게 부풀며 각색된 기사를 평가 항목에 넣는 것은 이치가 맞지 않습니다.'=> 님이 작성한 '김두한'이라는 인물에 대한 수많은 평가들은 대한민국의 일반적 상식과는 다르게 전적으로 호의적입니다. 궁금한 건 호의적인 평가를 한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시각에 맞추어 부풀리지 않았고 유독 한홍구만 부풀리고 각색했다는 건지요? 그 많은 사람들은 모두 김두한에 대해 공정하고 풍부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건가요? 그런 명백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면 평가에 포함된 수많은 내용들은 거의 모두 제거되어야 할 겁니다. 그리고, 사실의 기록이 아닌 평가에서는 한 인물에 대해 존재하는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홍구의 평가내용은 그런 다양한 시각 중의 하나이고, 따라서 전기적 부분이 아닌 평가 부분에서 충분히 실릴 수 있는 내용이고 실려야 하는 내용이라고 봅니다. 님이 이야기하고 있는 '한홍구의 김두한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도 비판과 비난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은 좋습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한홍구의 김두한에 대한 평가가 위키백과에 실리지 못할 정도로 편파적이고 문제점이 많은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위의 족보 문제에서 님이 보이고 있는 오류와 모순 때문에 '떠돌이'가 작성한 김두한 항목의 내용에는 문제가 많고, 따라서 항목에서 해당 기여부분은 삭제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 (토론) 2011년 1월 30일 (일) 15:34 (KST)[답변]

답변

깡패라는 말은 1957년 장충단집회 방해사건 이후 언론으로부터 처음 쓰며 폭력배는 깡패로 굳히게 되었습니다. 이 내용은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씨도 참여한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깡패와 건달로 본 100년에서도 방송되었습니다. 박한용 씨는 종로구 상인들이 시위했다는 말을 유포한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김두한이 깡패라는 부분은 김좌진 부자설, 종로구 상인들 시위설, 김구가 김두한을 호부견자했다는 설 등 주로 민족문제연구소 등 진보단체이나 극우 단체 등에서 쓴 말입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이기동, 박춘금이란 자이며 해방 후에는 이정재, 임화수가 깡패 시초로 꼽고있습니다. 특히 이기동, 박춘금이란 인물은 친일파라는 이미지만 있을 뿐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 [10]
  2. [11]


제가 한자 확인은 못했지만 그러나 안동김씨 대동보 제5권 친가 11촌 양가 19촌으로 20촌이 넘고 그냥 문중일뿐이다라는 한홍구이 말한 내용에 대해서는 터무니없는 주장에서는 변화에 없다고 보입니다만, 8촌 개념이 현재같은 가족개념으로 동등하시는거 아니시겠죠? 자식없이 사망하면 양자로 입적해서라도 대를 잇고 있습니다.

  1. [12]
  2. [13]

김두한의 비판 관련은 김좌진 부자 설, 김구가 김두한 호통했다는 설, 종로구 상인들이 시위했다는 설, 김두한이 상인을 못살게 굴고 가대기라는 짐꾼에게 시비를 걸다가 무릎을 꿇게 했다는 설 등 대다수 이런 내용에 크게 다르지 않고 있으며 출처도 위정자 단체뿐입니다. 위키에서도 한국어판은 물론 영어판에서도 김좌진 부자 설이 편집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설마 외국사람들이 편집했다고 생각하시지는 않겠죠? 그리고 한홍구 기사는 한홍구의 전체 생각이 아니며 민족문제연구소, 시사저널 등에 기고된 기사 내용과 굉장히 겹쳐져 있습니다. 아무튼, 저도 그래서 예전에 좌우대립에서 살상에 대해 비판이 있다는 편집을 했지만, 내용이 너무 짧아서 삭제한 적이 있습니다. --떠돌이 (토론) 2011년 1월 30일 (일) 16:22 (KST)[답변]

묻습니다. 깡패라는 말을 현대 한국어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국가가 공인하지 않은 사적인 폭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분쟁을 해결하거나 생계를 유지한다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제1공화국 당시의 친 자유당 정치깡패 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까? 제가 지적하는 것은 깡패라는 단어의 유래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김두한 깡패설을 진보단체에서 유포했다고 하는데 설사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좌우를 막론하고 지금까지 개인의 인간성이 좋다 나쁘다 여부가 아니라 김두한이 깡패(폭력배)출신이라는 사실 자체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요? 애초부터 그의 인생역정에서 너무나 분명한 팩트인데 누가 유포했으니 이게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겁니까? 이기동, 박춘금, 이정재, 임화수가 깡패라는 건 압니다만 그게 김두한이 깡패 출신이 아니라는 증거가 됩니까?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근거를 끌어 오시기 바랍니다.
한홍구가 말한 내용이 터무니없다니요? 8촌은 옛날에 누가 죽으면 상복을 입는 가장 먼 친족입니다. 전통사회에서도 8촌을 넘어가면 문중으로 바뀌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예요. 혈연으로도 이미 김옥균-김좌진은 11촌으로 친족의 개념을 넘어가는데, 입양되면서 19촌으로 더욱 멀어집니다. 김옥균-김두한은 입양관계 기준으로는 딱 20촌이고요. 완벽하게 정확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히 저도 인정한 사항입니다만 과연 터무니없는 낭설로 취급받을 수 있을 정도로 부정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괜히 사돈의 팔촌이라는 속담이 있는 게 아녜요. 문중의 일원으로서의 교류와 친척으로서의 왕래는 구별해야지요. 그리고 교류가 얼마나 없었으면 후손들이 족보를 헷갈려 하겠습니까? 전통사회에서 8촌을 넘어 가는 친족과의 관계가 현재와는 아주 다른 친밀한 관계라고 생각하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입양은 문중 단위에서도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당장 김좌진의 생부가 입양해 간 것이 그런 예이지요. 그리고 관련 내용이라고 링크한 내용은 김두한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내용인데 이를 굳이 링크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김좌진 부자 설? 이거 뭡니까? 김두한은 김좌진의 아들이 아니라는 이야기? 김두한의 출생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는 사실 오래 전부터 떠돌던 이야기였고 지금도 김두한은 김좌진의 친자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에 대해 각종 기록을 추적해서 명확하고 분명하게 '김두한이 김좌진의 아들인 것은 맞다'고 분명하게 확인해 준 기사가 월간 말 2003년 5월호의 기사였던 <'장군의 아들'이 넘나드는 끝없는 거짓말의 경계선>이라는 기사입니다. 진보단체, 진보진영 언론이 유포한 기사라서 신뢰가 가지 않는다면 이 기사까지 부정해서 김두한이 김좌진의 친자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누가 유포했으니 믿을 수 없다고 하지 말고 각종 내용에 대해서 님이 믿지 않는 이유를 명확한 사실정보에 기반해서 제시해 주기 바랍니다. 누가 썼으니 기사가 잘못되었다가 아니라 당시의 관련 기록이나 증언을 보니 이런 내용이 사실과 어긋난다고 밝히는 것은 토론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항에 대해 관련인들의 증언이 엇갈리는 경우는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니 해당 사항에 대해 엇갈리는 증언들도 교차검증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시각을 함께 제시해 주기 바랍니다.
한홍구 기사는 한홍구의 전체 생각이 아니며 민족문제연구소, 시사저널 등에 기고된 기사 내용과 굉장히 겹쳐져 있습니다. => 그래서요? 먼저 민족문제연구소나 시사저널의 기사 내용의 문제점을 먼저 지적해 주기 바랍니다. 위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민족문제연구소나 시사저널의 기사내용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교차검증이 가능하게 제시해 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장하는 내용이 동일하면 한홍구의 전체 생각이 아닙니까? 이는 한홍구씨가 한홍구씨 나름대로 자신이 입수할 수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취사선택을 한 것이라는 가능성을 부정하는 언급입니다.
위정자 단체? 이건 무슨 말뜻인지 모르겠습니다. 현대한국어에서 통용되지 않는 대단히 이상한 단어조합입니다. 누구를 가리키는 겁니까? —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120.50.69.127(토론 / IP 정보)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1. 깡패라는 말은 주로 영어의 갱(Gang)이라는 단어에 패거리라는 말을 덧붙인 조어가 기정사실화로 쓰였는데, 한국의 건달은 건달은 원래 건달바[14][15]에서 준말로 쓰이다가 1957년 장충단집회 방해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폭력배=깡패로 굳히게 된것입니다. 1957년에 김두한은 1954년에 제3대 국회의원 당선 이후 정치인 신분입니다.
  2. 현재 같은 가족개념이나 멀리 8촌까지 안가도 웬만한 관계도 남입니다. 덕수 이씨 안동 김씨 전주 이씨 등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에서는 8촌이면 먼 친척도 아닙니다. 덕수 이씨도 이번에 자녀 없이 사망해서 양자로 입적해서 대를 잇게 하는 논의 되고 있습니다.
  3. 오래전부터 이런저런 이야기가 아니며 과거에는 해방정국에 좌·우 대립에서 좌익에 대한 살상에 대해 비판이 가해졌으며 2000년 이후 김좌진 부자 설이 나오게 된 것이며 유전자 검사를 거부했다는 설은 2006년에 위연홍이라는 조선족분이 자신이 김좌진의 외손녀라고 주장했을 때인데. 2008년에 아고라에서 김좌진의 가족이 폴란드 등 외국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등 내용에 게시글을 계기[16]로 현재 유포되고 있는 김을동이 유전자 거부했다는 설이 나오게 된것입니다. 원출처는 [17]입니다. 여기 자세한 내용은 김좌진 문서에 참고바랍니다.
  4. 시사저널, pd저널(박한용 기고문) 등 내용이 김좌진 부자설, 김구가 김두한 호통쳤다는 설 등 내용에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5. 위정자는 정치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니 그냥 그렇게 말했을 뿐입니다. --떠돌이 (토론) 2011년 1월 30일 (일) 17:45 (KST)[답변]


1 깡패의 어원은 이미 알고 있고 관심도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의 깡패, 그러니까 주먹꾼 출신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야지요. 깡패의 어원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었잖습니까?
2 상복을 입는 가장 먼 친척이 8촌이고, 김옥균-김좌진은 이미 그 제한을 넘어가고 있는데다가 양자관계까지 고려하면 더 멀어집니다. 저는 현대의 기준이 아닌 전통사회의 기준으로 얘기했고, 8촌을 넘어서도 입양은 가능하다는 것도 밝혔습니다.
3 2000년 이후 김좌진 부자설이 나온 것이 아닙니다. 당장 김용옥이 김좌진-김두한이 친자관계가 아니라고 이야기했던 《도올세설》은 1990년에 나온 것이고 이전에도 꾸준히 이야기되던 내용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던 겁니다. 사실 관계를 혼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저는 월간 말 2003년 5월호의 기사였던 <'장군의 아들'이 넘나드는 끝없는 거짓말의 경계선>에서 제시된 여러 가지 내용에 따라 김두한이 김좌진의 친자라는 점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4 민족문제연구소, 시사저널의 내용과 한홍구의 기고문과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구체적으로 인용과 함께 지적해 보시지요.
5 시사저널, 한홍구, 김용옥, 월간말, 민족문제연구소 등등의 인물들이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일 수는 있습니다. 님이 말하는 대로 '정치하는 사람'입니까? 단어의 어감을 이용한 의도적인 불분명한 사용이라고 지적당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모르고 그랬다면 앞으로 주의하기 바랍니다. -- (토론) 2011년 1월 30일 (일) 18:10 (KST)[답변]

여기까지 사용자 토론 에서 복사해서 붙임. ----- -- (토론) 2011년 1월 30일 (일) 18:34 (KST)[답변]

토론 계속합니다.

본 항목 평가 부분에서 한홍구의 평가가 삭제되어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제시해 주기 바랍니다. 일단 편집은 되돌려 놓겠습니다. -- (토론) 2011년 1월 30일 (일) 18:36 (KST)[답변]


토론의 장소를 이곳으로 옮긴다고 밝혔으나 사용자 토론에 답글이 실려 있어서 해당 내용을 이쪽으로 이동하고 그에 대한 반론을 붙입니다.

  1. 저에게 묻습니다. 깡패라는 말을 현대 한국어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국가가 공인하지 않은 사적인 폭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분쟁을 해결하거나 생계를 유지한다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까, 라고 물어보시고 관심이 없다는 말씀하시네요. 아무튼, 1957년에 이른바 주먹도 아닌 사람을 주먹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2. 일반적인 촌수개념으로 보지말고 안동 김씨 덕수 이씨 전주 이씨 등에 대대로 내려오는 족보로 생각해야 하는 사안으로 보이는데요. 이번에 덕수 이씨 양자로 입적해서 대를 잇게하는 논의를 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촌수로 따지면 더 먼 남입니다.
  3. 도올세설이라는 책은 1990년 책인 거 잘 알고 있습니다. 2008년 이전에는 유전거부했다는 설이나 이런 본격적 부자 설 내용이 아닌 단순한 김두한 김좌진 아들 아니다 같은 글이 유포되었습니다. 그리고 김용옥이 주장한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종결된 지도 한참 됐습니다. 그리고 2003년 말 언론잡지 또한, 김두한의 생모가 기생이라는 설을 재구성해서 김계월의 삶 이야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재구성하면 이렇다 이런 글은 삭제하고 그냥 기정사실화처럼 유포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두한의 생모 김계월이 기생이었다는 설은 근거없는 거짓입니다. 조선중앙일보 전신 중앙일보에서도 김좌진 피살 이후 김두한 등 유족이 유린당하며 참상에 대해 취재한 기사에서도 기생이라는 부분은 없습니다.
  4. 처음 2002년 09월 24일 시사저널[18], 2002년 10월 18일 박한용 PD저널[19] 2002년 11월 6일 한겨레21 한홍구[20], 2002년 11월 17일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21](그리고 한홍구 기사 메우흡사하다는 오마이뉴스 독자의견) (김두한이 1917년생이라는 등 우미관화신백화점 옆으로 옮긴 우미관의 사진으로 관련 글을 쓰는 등 똥이나 쳐먹어 이 새끼들아 이라는 앞에 개새끼들아 이라는 추가하는 등 선우영빈을 단순 친일인물로 묘사하는 등 김동회를 아무런 근거없이 김두한의 친구로 단정 짓는 등) 주로 2002년에 가장 처음 기사들입니다. 이 기사들 이후로 여기에 약간 살만 더 붙일 뿐 별다른 차이는 없습니다.
  5. 언론사는 정치, 사회, 연예 등 여러 분야가 다루기 때문에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며 또한 그렇게 지적받기까지 중요한 사항이라고도 생각되지 않습니다.--떠돌이 (토론) 2011년 1월 30일 (일) 19:19 (KST)[답변]


일반적인 '깡패'의 의미냐 '친자유당 정치깡패'의 의미냐를 묻는데 왜 건달바와 갱이 나오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현대한국어의 일상적인 의미, 주먹꾼의 의미로 깡패라는 의미를 사용할 경우에 김두한이 깡패 출신임은 사실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1957년에 김두한은 국회의원이었고, '주먹꾼이라는 의미의 깡패' 출신이었습니다. 이것 자체를 부정합니까?
다시 말합니다만, 저는 옛날 기준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전통 사회에서 '상복을 입는다'라는 의미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듯합니다. 같은 문중임을 부정하지도 않고 한홍구의 족보 언급이 100% 정확하다고 얘기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터무니없다'는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지적했을 뿐입니다. 유서깊은 가문이라고 8촌을 넘겨서 상복을 입던가요?
출생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고, 친자라는 것은 결국 2000년대 초반에 이에 대한 추적을 통해서 님이 이야기하시는 '진보진영'에 의해 확실하게 증명된 부분 아닙니까? 생모 김계월이 기생라는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데, 잘못될 수는 있겟지요. 그렇다면 님은 말지의 취재 이상으로 당시의 상황에 대한 개연성 있는 설명을 제시해야지요. 말지의 기사 이전에는 김두한이 김좌진의 친자라는 내용의 근거를 정확히 밝혔던 기사를 찾을 수 없습니다. 말지야말로 친자설에 대한 가장 확실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지요. 말지의 기사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시고 내용을 거부한다면 김두한이 김좌진의 친자라는 사실도 거부할 생각입니까? 김계월이 기생이라는 설은 어디까지나 추측이긴 합니다만, 그와는 별도로 그 추측이 왜 근거없는지 한번 구체적 자료를 바탕으로 지적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한홍구씨가 김두한의 출생에 대해 과거의 김용옥씨처럼 김좌진의 친자임을 의심하던가요?
언론기사가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렇다면 님이 참고하시는 언론기사들이 완벽하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하실 수 있습니까? 오마이뉴스, 시사저널, PD저널, 한겨례21의 기사의 문제점은 그렇게 전문가 수준으로 잘 찾아내시는데 평가에서 나타나는 여러 인물들의 언급들은 논의의 여지 없시 객관적이고 완벽하다는 건가요?
언론사는 정치, 사회, 연예 등 여러 분야를 다루기 때문에 위정자 단체다? 독특하고 특이한 개념이군요.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인정하면 그걸로 끝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장황하게 이야기하지 말고 한홍구의 평가가 삭제되어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제시해 주기 바랍니다. 한홍구의 평가 관련 내용은 어디까지나 인물에 대한 평가한국 사회에서 김두한을 이해하는 여러 다양한 시각들 중의 하나를 분명히 담고 있습니다. 설사 한홍구씨가 김두한에 대해서 편협한 관점을 지니고 있더라고 하더라도 그건 그대로 김두한에 대한 한국사회의 시각을 제시하는 측면에서 삭제할 이유가 없다고 보이는데 그렇게 삭제를 못해서 안달하는 이유가 뭡니까? 이해될 수 있게 설명 바랍니다. -- (토론) 2011년 1월 30일 (일) 20:12 (KST)[답변]


떠돌이씨가 제 사용자페이지의 내용을 지우고 hardk 사용자 페이지 수정기록 계속 제 사용자페이지에서 토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미리 밝힌 대로 이곳 김두한 항목의 페이지로 사용자페이지에 있는 토론내용을 옮깁니다.


사랑방에 슬슬 분쟁의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같은 의견과 토론 운운 하시고 정작 Hardk 님은 토론 의견을 말씀하시지 않으시네요. 그리고 토론은 여기저기서 하면 결국 복잡해질 뿐 한곳에서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됩니다. 아무튼, 아직 제게 주장만 하실 뿐 제 의견에 반론조차 하지 않으셨습니다.

  1. 일반적인 깡패의 의미냐 친자유당 정치깡패의 의미냐를 묻는데 왜 건달바와 갱이 나오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현대한국어의 일상적인 의미, 주먹꾼의 의미로 깡패라는 의미를 사용할 경우에 김두한이 깡패 출신임은 사실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1957년에 김두한은 국회의원이었고, '주먹꾼이라는 의미의 깡패 출신'이었습니다. 이것 자체를 부정합니까?

다시 말합니다만, 저는 옛날 기준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전통 사회에서 '상복을 입는다'라는 의미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듯합니다. 같은 문중임을 부정하지도 않고 한홍구의 족보 언급이 100% 정확하다고 얘기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터무니없다'는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지적했을 뿐입니다. 유서깊은 가문이라고 8촌을 넘겨서 상복을 입던가요?

  1. 저는 인간성이 좋다는 같은 의견을 기재한 적이 없습니다만 제 의견에서 김두한 인간성이 좋다는 의견이 어느부분인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Hardk 님 스스로도 어떠한 근거가 되는 주장없이 팩트라고 말하시네요. 어느 부분이 팩트라는 건가요?

여기에 이경주 사장이라는 인물은 서울 종로구에서 양복점을 1916년 부터 3대째로 현 종로구에서 가장 오래된 양복점입니다. 그리고 박한용도 참여한 프로그램인 깡패와 건달로 본 100년 1부 방송편은 이정재 (1917년)가 1918년생, 이성순이 1913년생, 이화룡이 1917년생조차 틀리며(이화룡은 1984년 2월 24일에 사망) 박한용이나 주로 진보 단체에서 김두한이 상인들 돈(비속어 삥) 뜯고 괴롭혀 상인들이 시위했다고 조선일보에 기사가 났다고 유포했지만, 조선일보에 그런 기사가 없습니다. 오히려 진짜 상인들이나 종로구에 거주했던 사람들은 정 반대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1. 김좌진, 김옥균의 촌수관계는 친가는 11촌 양가는 19촌인데 어느가 20촌이 넘는다는 말하는 것이 다르것이 아니고 뭔가요? 조선시대 한집안 2대 10명 시인,알고보니 김좌진 직계조상 그리고 덕수 이씨 16대손 이윤용 군은 2004년 생입니다.
  2. 오마이 뉴스뉴데일리와 더불어 보수 진보로 대표되는 인터넷 신문입니다. 미디어 오늘도 진보 쪽이고요. 한홍구 교수는 진보 쪽 교수죠. 그리고 한홍구 교수는 안중근을 가장 정직한 테러리스트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한홍구-서해성의 직설) “근육을 회복하자, 다시 싸우자”), 어떤 뜻을 전하든 제가 알기론 UN 안보위원회 1373호 결의안에서는 테러리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민간인을 상대로 하여 사망 혹은 중상을 입히거나 인질로 잡는 등의 위해를 가하여 대중 혹은 어떤 집단의 사람 혹은 어떤 특정한 사람의 공포를 야기함으로써 어떤 사람, 대중, 정부, 국제 조직 등으로 하여금 특정 행위를 강요하거나 혹은 하지 못하도록 막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범죄행위"이다.([22]) 안중근은 의사도 의사지만 엄연한 대한의군 참모중장입니다. 제 개인적인 또한 김일성의 항일행적은 당연히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며 김일성도 안중근도 두 사람 군인의 신분입니다.(한홍구의 역사이야기) 김좌진 김두한 부자설은 제기가 아니고 단순한 인터넷에서 카더라에 불과합니다. 김희선 (정치인) 작은 조부가 김학규가 맞지만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에서 단순히 할아버지 손녀라는 호칭에 대해 거짓이라고 한때 논란이 있었을 때 김희선 김학규 논란이 진짜 논란이지 김좌진 관련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1990년 김용옥 도올세설 관련은 이미 오래전부터 김용옥이 김을동에게 사과하면서 끝이 난지 한참된 사항김용옥 문서이고 실제로 김완섭김좌진을 산적두목이라고 발언하여 김을동이 고소한 적이 있습니다.(고소 부분은 김완섭 문서에 편집되어있네요.) 저는 한홍구 교수가 김두한 김좌진 부자설에 대해 말한것이 아니라 20촌이 넘는 문중이다는 부분에 말한것입니다.
  3. 언론뿐만 아니라 모든것에는 아무리 훌륭해도 단점은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김두한 김좌진 부자 설, 김구가 김두한 호통했다는 설, 상인들이 김두한이 행패부려 시위했다는 설 등 주로 미디어 오늘,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시사저널 등 내용이 크게 다르지않습니다. 그리고 Hardk 님도 김두한이 폭력배가 사실이라며 단정 짓지 않으셨습니까.
  4. 그 답변이라면 :Hardk 님의 토론란에 가장 위(문서)에서 했다고 보이는데요. 한겨레21이 해당 기사는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오류가 사실보다 훨씬 많습니다.

--떠돌이 (토론) 2011년 1월 30일 (일) 22:41 (KST)[답변]


다른 무엇보다도 한홍구의 평가가 삭제되어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제시해 주기 바랍니다. 수정분란의 가장 큰 원인이 이것이므로 이에 대해 분명하고 명확한 설명이 있어야 합니다.
이 이외에 위에서 제기한 내용들은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났다고 생각되지만 하나씩 하나씩 답해 드리지요.
  1. 토론은 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하면 결국 복잡해질 뿐이므로 좀더 많은 사람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해당항목 토론페이지로 옮기는 것입니다. 2인이 아닌 좀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기회, 그만큼 많은 사람이 의견을 살피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요. 왜요? 두렵습니까? 그리고 저는 분명히 이곳에서 성실히 토론에 임하면서 이렇게 차근차근 반론하고 있습니다. 사실을 왜곡하지 말기 바랍니다.
  2. 김두한이 일제시대에 종로에서 하던 일은 뭔가요? 해방직후 좌우대립 과정에서 했던 일은 뭔가요? 그때 김두한이 지금 우리가 하는 것처럼 치열한 논쟁을 했나요 아니면 주먹을 먼저 휘둘렀나요? 그게 깡패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 특이하고 주관적인 시각이예요. 종로에서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다는 증거, 해방직후 좌우대립에서 폭력적인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내세울 수 있어야 김두한이 깡패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건데, 김두한이 주먹을 휘둘렀음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중의 사실 아닙니까? 그리고 유흥가에도 유흥업소나 일반 가게들을 관리하고 보호하면서 그 명목으로 돈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을 겁니다. 이런 사람들을 통칭 조폭이라고 부르지요? 그리고 조폭을 깡패라고도 부르지요? 명백한 내용을 호도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정재 이성순 등등의 인물의 생년월일이 틀렸다는 것과 김두한이 깡패 출신이 아니라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종로상권을 주먹으로 주름잡았던 것 자체를 부정하려고요? 상인을 뜯어먹었는지 아닌지에 무관하게 그게 깡패가 아니었다는 것에 대한 반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3. 평가 부분에서 님이 추가해 놓은 수많은 사람들의 인물평은 분명히 김두한에 대하여 긍정적이고 인간적인 매력을 강조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본인이 그런 인물평들을 골라서 내용추가를 했는데자신이 직접 작성한 내용도 기억하지 못합니까? 정 기억이 안 나신다면 그간의 문서 히스토리에서 자신이 작성한 부분을 참조해 보세요.
  4.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사실을 기술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지요. 그리고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김두한이 깡패 출신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언론사 봤습니까?
  5. 한홍구는 혈연으로 12촌, 입양으로 20촌인 김옥균-김두한의 관계를 20촌이 넘는 문중이라고 해서 님이 터무니없다고 말하는데, 그럼 한홍구의 해당 기고문에서 확인되는 김두한이 자신의 이름으로 1963년에 간행된 회고록 <피로 물들인 건국전야>에서 김옥균을 자신의 양할아버지로 묘사하고 있는 대목이다. 김좌진이 김옥균의 양자로 들어갔다는 것이다.에서처럼 2촌 관계라고 주장하는 것은 얼마나 터무니없는 주장입니까? 그리고 그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것이 김두한 본인이라면 김두한 본인의 주장의 신뢰성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요? 이런 기초적인 것부터 오류인 김두한의 자기 진술에 대한 검토부터 차근차근 해 나가기 바랍니다.
길게 얘기했습니다만 사실 핵심을 벗어나는 내용일 뿐입니다. 논의의 목표를 분명히 합시다. 한홍구의 평가가 삭제되어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설득력있게 제시해 주기 바랍니다. 이쪽저쪽에서 논의의 핵심과 무관한 이야기 끌고 들어오지 말고요. -- (토론) 2011년 1월 31일 (월) 00:02 (KST)[답변]
그리고 제 사용자페이지에 토론 분쟁 분란을 유도하느냐고 따지는데, 실제로 김두한 항목은 일단 서로 의견이 부딪히고 있기 때문에 분란 상태입니다. 이 분란 상태를 명확하고 투명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중재 가능한 여러 사람이 주목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좀더 열려 있는 공간으로 논의의 경과를 보여 주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토론 분쟁 분란을 유도한다고 비판을 하는 분이 제 사용자페이지에 제가 올린 글은 무슨 생각으로 삭제해서 제가 더더욱 까칠한 태도를 갖게 만듭니까? 그런 비신사적인 행위가 더욱 토론 분쟁 분란을 유도한다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까? -- (토론) 2011년 1월 31일 (월) 00:13 (KST)[답변]


사랑방에서 남긴 의견과 Hardk 님 토론란에 사용자 페이지 2011년 1월 30일 (일) 23:09 판 사용자 떠돌이가 삭제한 부분 복구했다며 삭제하지 말라는 의견을 하셨는데요. 어제 의견 쓰고 2번 정도 위키백과:편집 충돌이 일어났는데 이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삭제했다거나 등 빠진 된 것으로 보입니다. 타인의 토론 의견은 삭제해서도 안 되지만 해당 내용을 삭제할 이유도 없습니다만, 타인의 의견을 함부로 삭제하는 물의를 빚은 사용자에게 말하는 거처럼 하시는 거 아닙니다.2011년 1월 31일 (월) 00:13 판

토론은 제기한 당사자가 이런 의견이 먼저 제시하여 토론이 시작되는 거지 마침 토론이 진행도 되지 않았는데 의견요청을 하는 거 상대방을 기망하는걸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튼, 저는 어느 한 곳에서 시작하면 한쪽에서 하는 쪽이 더 좋다는 생각으로 어차피 토론 의견은 기록이 다 남기 때문에 이곳에서 계속 의견을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1. "장군의 아들, 그것은 김두한을 상징하는 말이다. 한 개인을 논할 때 그 사람 개인이 아니라 누구의 아들이라는 것이 그 사람을 상징하는 수식어가 된다는 것은 그 인물이 끝내 아버지의 후광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된다. 그만큼 김두한 신화에서 김좌진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아버지의 후광이 없었다면 김두한은 그저 뒷골목 깡패의 보스나 해방 뒤 백색테러의 행동대장의 하나로밖에는 기억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김좌진 장군과 쌍벽을 이룬 홍범도 장군의 아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이준 열사의 아들로 진짜 독립군 대장이 되어 중국대륙을 누빈 이용(李鏞) 장군을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이용 장군은 북에서 고위직을 지냈기 때문이다."

같은 의견을 계속해서 말씀하시는데요. 이 내용이 현재 사용자분께서 왜 지우냐는 해당 인용문에 전체 내용입니다. 어디를 봐도 한 인물에 대한 평가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해당 기사 전체 내용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사실보다 오류점이 더 많은 해당 인용문은 부분 편집만 된 상태로 전체 내용을 보면 평가라고 보이지도 않습니다. 김두한이 일제 행적에 폭력배라는 근거자료 및 어떠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주장도 없는 왜 이런 부분 끼어 맞추기 식 내용이 평가 항목에 들어가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넣는다면 논란 반론 같은 항목을 만들어서 편집하면 몰라도 평가 항목에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진짜 독립군 아들이 되어 중국 대륙을 누빈 이용 장군을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이용 장군은 북에서 고위직을 지냈기 때문이다." <-- 1930년대와 40년대 만주와 임시정부가 있는 충칭 등 중국에 대륙을 누비며 활약했다는 자료를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또한, 정작 한홍구는 김일성 관련 기사에서 보천보 전투는 군사적으로 미미했으나 1930년대 만주의 독립운동이 와해된 상황에서 이루어낸 성과였다고 스스로 말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군 출신 박정희와 같이 만주 제8단에서 복무한 신현준, 방원철은 “당시 제8단 지역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전신인 팔로군 토벌을 위해 주둔하고 있었으나 박정희는 복무 당시 팔로군 토벌 기회가 전혀 없었으며 놀고 술먹을 기회가 많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23] 또한, 이용 장군은 김좌진보다 한 살 많으며 환경 자체도 비교 대상이 안 됩니다. 그리고 "이준 열사의 아들로 진짜 독립군 대장이 되어 중국대륙을 누빈 이용 (1888년)(李鏞) 장군을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이용 장군은 북에서 고위직을 지냈기 때문이다." <-- 이 문장은 지극히 사상논쟁 발언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은 한국 교육의 상황과 관심이 없는 사람을 탓하는 것이 문제이지, 아주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다 알 수 있는 법입니다.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한일 병합 조약, 안중근, 윤봉길 인물들은 물론 모르는 인물들 태반입니다. 즉, 이 부분은 논할 가치도 없다고 보이며 답변도 이미 위에서 했습니다.

(Hardk 님이) 말하시는 김두한이 상인들 (비속어 삥) 돈 뜯고 행패부렸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근거 자료는 뭔가요? 님이 말하시는 김두한이 일제때 상인들 돈(비속어 삥)을 뜯고 행패부렸다는 유포되고 있지만, 정작 진짜 상인들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는 자료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님이 말씀하시는 그 생각을 주관적이라고 인정을 못 하는 게 아니고 하지 않으시는 게 아니시고요? 김두한이 행패를 부리는 행적이 있다면 행적이 있다는 자료를 한번 보고 싶습니다. 이성순, 이정재, 이화룡 등이 생년이 틀린 게 뭐 상관이냐는 식으로 비약하지 마세요. 문화방송 한국 100년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깡패와 건달로 본 100년 방송이 1999년에 방송됐는데, 나름의 신빙성을 부여하려 2부 정부수립 이후 정치주먹 사건에 객관적 자료에 짜맞추어 급조로 제작된 프로그램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고 뭔가요? 어쨌든 제작된 1부 내용에서도 옳고 그름을 떠나서 사실보다 오류점들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박춘금, 이기동이라는 인물 관련도 관련 자료는 친일파라는 인물이다. 식으로 아주 적은 자료만 있습니다. 2005년에서야 박춘금 관련 기사 하나가 있군요.2005년 사람일보‘정치깡패 원조’ 박춘금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아무튼, 김구가 김두한 호통했다는 설(원출처는 김구가 안준생을 죽이려고 한 백범일지에 있는 내용), 김을동이 위연홍이라는 인물이 요구한 유전자 거부했다 설(원출처는 2006년 자신이 김좌진의 외손녀라고 주장 때, 2008년 아고라에서 한 게시글) 김두한이 종로구 사람들을 괴롭혀 시위했다는 설(원출처는 PD저널에 박한용이 기고한 기사) 등 이런 관련에는 만들려는 것이 아닌가요? 한 예로 예전에 이순신을 이용하여 경상도, 전라도 이간질하게 하는 지역감정 조작과 인터넷 패러디 사이트에서 유머 식으로 나온 것을 지역감정 조작으로 전략 됐다는 등 이런 일들이 번번했습니다.

  1. 민주당의 선택과 남프라이즈의 길
  2. 남프라이즈의 지역색 조장
  3. 고담대구 관련 (2007년 3월 25일 07시 20분 27초 남프라이즈 라는 사이트 캡처
  4. 범죄통계 어디에도 ‘고담 대구’는 없다…재미로 시작해 지역감정 용어 전락 (2007년 2월 16일자 국민일보 이순신 관련은 이순신 문서에 참고바랍니다.

김두한 김좌진 부자 설, 김구 김두한 호통했다는 설, 종로구 사람들이 김두한의 행패에 시위했다는 설 이 내용이 김두한 관련에 대한 내용에 크게 다르지 않고 출처가 민족문제연구소 같은 단체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우익 성향 쪽에서도 제3공화국 당시 중앙정보부의 모략인 오물투척 배후설을 만들었고 여기에 진보 단체에서는 귀가 얇다 같은 내용으로 재각색되었습니다. 그리고 김학규 장군은 김희선 의원이 작은할아버지로 알고 있는데 한때 김희선 의원이 김학규 장군의 손녀라는 호칭하고 김희선 아버지가 친일파라는 한나라당이나 보수 언론에 논쟁으로 법정싸움까지 됐지만, 김희선 의원이 무죄판결 받았습니다. "2006년 법원 판결에서 재판부는 (전략)재판부는 조선일보 보도와는 다른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법은 지난 1월27일 김희선 의원의 작은 할아버지인 독립운동가 김학규 장군과 혈연관계가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또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을 개연성이 있고 김희선 의원의 부친이 독립운동가라는 주장도 허위라고 보기 어렵다는 내용의 판결을 내렸다.(후략)"보수언론 공격받던 김희선 '무죄'

Hardk 님의 본 주장은 한홍구 기사를 삭제해야 하는 이유를 너무 돌려서 말씀하신 게 없지 않아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 내용이라면 이미 본 위에서 계속 언급한 부분이라고 보입니다. 그리고 의견요청에 대해 이 분란 상태를 명확하고 투명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중재 가능한 여러 사람이 주목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좀더 열려 있는 공간으로 논의의 경과를 보여 주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이 토론 제시 당사자는 본인이 아니고 Hardk 님이십니다. 의견 요청은 토론 사용자 간에 제대로 된 진행이 되지 않을 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떠돌이 (토론) 2011년 1월 31일 (월) 13:21 (KST)[답변]


토론 의견을 말씀해주세요.

  1. [24]
  2. [25]

토론을 제시하시고 주장은 없고 사랑방에 위와 같은 의견으로 대체하시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사랑방이나 의견 요청 등은 토론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다른 사용자분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인데, 토론 당사자분께서 의견은 없고 이러시면 저를 기만과 토론거부로밖에 판단되지 않습니다. <== 해당 내용은 떠돌이 사용자가 토론의 사용자페이지에 남긴 내용입니다. -- (토론) 2011년 1월 31일 (월) 15:10 (KST)[답변]

걱정마세요. 이렇게 이곳에서 성실하게 토론에 임하고 있는데 무슨 토론거부입니까? 떠돌이씨야말로 성실하게 토론에 임하고 있는 저에 대한 부당한 인신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토론 과정의 정리를 위해 사랑방에 자리까지 잡아 놨는데 토론을 회피하다니요?
사랑방이나 의견 요청은 토론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사용한다고 했는데, 사랑방은 토론을 제대로 하기 위해 만든 부분입니다. 오히려 정리도 되고 다른 사용자들의 폭넓은 참여를 위해 환영해야 될 일 아닙니까? 의견 요청도 그런 의미에서 다른 분들도 관심을 지켜 주고 봐 주십사하는 의미에서 한 겁니다.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로 둘이서만 토론하는 것 심심하지 않습니까?
제3자는 물론 토론의 당사자인 저도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게 장황합니다. 짧고 간략하게 핵심적인 내용을 써 주세요.
# "장군의 아들, 그것은 김두한을 상징하는 말이다. 한 개인을 논할 때 그 사람 개인이 아니라 누구의 아들이라는 것이 그 사람을 상징하는 수식어가 된다는 것은 그 인물이 끝내 아버지의 후광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된다. 그만큼 김두한 신화에서 김좌진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아버지의 후광이 없었다면 김두한은 그저 뒷골목 깡패의 보스나 해방 뒤 백색테러의 행동대장의 하나로밖에는 기억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김좌진 장군과 쌍벽을 이룬 홍범도 장군의 아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이준 열사의 아들로 진짜 독립군 대장이 되어 중국대륙을 누빈 이용(李鏞) 장군을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이용 장군은 북에서 고위직을 지냈기 때문이다."
같은 의견을 계속해서 말씀하시는데요. 이 내용이 현재 사용자분께서 왜 지우냐는 해당 인용문에 전체 내용입니다.
=> 사실 왜곡. 떠돌이씨가 지우고 있는 부분은 역사학자인 한홍구는 김두한에 대해 "우리 역사에서 참으로 악역을 많이 맡았지만, 분명히 그 어딘가 미워할 수 없는 구석이 있다.", "나름대로 자기 입장을 갖기 위해 열심히 살았지만, 그는 주변의 모사들에 의해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고, 끝내 자신의 이름보다 장군의 아들이란 아버지의 후광 속에 들어가야만 빛을 발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라고 평가했다. 라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이 평가가 아닌 것으로 보입니까? 떠돌이씨, 자기가 지운 부분을 제대로 보기 바랍니다. 논의의 당사자이면서 논의의 부분을 제대로 찾지 못하면 상대방은 어찌하란 말입니까? 그리고 이 부분이 왜 지워져야 하는가에 대한 주장을 설득력있게 해 보라는 겁니다. 부차적인 것 끌어오지 말고요. 위의 토론에서 말씀드렸지만 일일이 답을 드린 부분도 핵심적 부분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고 핵심적 부분에 대한 대답을 요구했습니다. 한홍구의 인물평이 왜 삭제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묻고 있는데 무슨 김좌진부자설, 김구호통설, 박정희 얘기, 이순신과 지역감정 얘기 나옵니까? 그리고 김두환도 스스로 인정하는 "주먹으로 종로를 주름잡다"라는 말이 지니는 의미를 모릅니까? 직업없이 주먹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경제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지는데요? 상인과 조폭 사이에도 일종의 신사협약은 있을 수 있어요. 그것을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깡패가 아니다? 이해하기 힘들어요. 어쨌든 이런 논의의 핵심을 벗어나는 것 들이대지 말고 핵심적인 부분에 간결하게 대답하기 바랍니다. - 한홍구의 김두한에 대한 평가가 왜 지워져야 하는가?
그리고, 바로바로 답을 달지는 못할 수도 있지만 계속 이렇게 답을 달고 있으니 바로바로 답글 달지 않았다고 토론 회피니 뭐니 하는 소리 하지 마세요. 24시간 컴퓨터 앞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번개같은 속도로 답을 달 정도로 여유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그래서도 안되고요. -- (토론) 2011년 1월 31일 (월) 15:56 (KST)[답변]
사용자토론:Hardk 등 그동안 의견 중 검은색으로 강조하며 어떠한 근거가 되는 자료를 하나라도 없는 김두한은 사회 통용되는 상식 등이라는 의견만 말씀하셨습니다.

일반적인 '깡패'의 의미냐 '친자유당 정치깡패'의 의미냐를 묻는데 왜 건달바와 갱이 나오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현대한국어의 일상적인 의미, 주먹꾼의 의미로 깡패라는 의미를 사용할 경우에 김두한이 깡패 출신임은 사실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1957년에 김두한은 국회의원이었고, '주먹꾼이라는 의미의 깡패' 출신이었습니다. 이것 자체를 부정합니까 토론란에서도 언급했지만 김두한이 깡패로 행패부리고 상인들과 신사협정을 맺었다는 자료를 안내해주시겠어요? 위키백과에서는 어던 성향이든 아무런 의미없습니다. 그리고 종로양복점은 조부,부친에 이어 3대째 대한민국에서 1916년부터 가장 오래된 저명한 종로양복점입니다.

김두한의 생모가 기생이라는 부분은 조선중앙일보의 전신 중앙일보 1930년 2월 18일 자에서도 기생설을 거론되긴 했지만, 중앙일보 1932년 12월 23일 자에서는 김계월이 기생설은 없습니다. 그리고 김계월이 기생설은 월간 말 김성환이라는 기자의 기사글인데, 일부 커뮤니티에서 현재 월간 말에 기사내용을 개인 의견처럼 재각색되어 유포되기도 했습니다. 원본 월간 말 월간말 관련 기사 (현재 월간말은 중단된 상태므로 원본기사 펌글 유포되는 글 링크로 대체했습니다.) 그리고 월간 말 김성환이라는 기자는 방배추라는 인물이라는 미화기사까지 기사화도 했군요([26](기사 내용은 보니 깡패라는 명칭을 쓰며 나름의 신빙성을 부여하려는 듯한 느낌을 받지만 전체적 기사 내용은 미화기사로밖에 보이지않네요. 실제로 방동규가 시라소니 이후 최고 주먹이라는 이야기도 다름이 아닌 황석영이 지어줬다고 전설의 시대에서도 밝히기도 했네요.)

토론란에서 토론란에서 성실하게 토론에 임하고 있고 객관적이고 장황하지 않다고 말하시고 계시지만, 그동안 님께서 남기신 의견을 전체적으로 보면 김두한이 행패부리고 상인들과 신사협정을 맺고 사회적 통용이고 관련 기사는 가장확실한 근거를 제공이 전체적 내용 같은데 어느 부분이 객관적이고 장황하지 않다는 건지 말씀하시는 것이 어울리지 않다고 보이네요. 그리고 이런 님이 주장하는 내용(자료는 없지만)이 자료라는 님의 의견을 보면 토론이라고 하기에는 토론 분쟁 조장하시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긍정적 비판이든 부정적 비판이든 한 사람의 행적에 대해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것인데, 해당 기사가 사실에 해당에 있다면 제가 이미 벌써 편집하고도 남았습니다. 그래서 뜬소문 항목에 반론 형식으로 편집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으시면 근거에 맞게 주장하십시오.

그리고 Hardk 님 혼자 바쁘신 거 아닙니다. 위키백과 활동하시는 분들 다들 바쁘십니다.--떠돌이 (토론) 2011년 2월 6일 (일) 22:39 (KST)[답변]

한홍구의 김두한에 대한 평가를 왜 삭제해야 하는가에 대해 짧고 분명하게 답해 주기 바랍니다. -- (토론) 2011년 2월 6일 (일) 23:53 (KST)[답변]
그것은 이미 답변을 했습니다. 그런데 님은 왜 한홍구 기사를 주장하시면서 문서는 편집 전체로 되돌리기 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상관없는 자료까지 전부 다 삭제됐군요.(그리고 평가부분에서 김선동이 아니고 신출입니다. 처음에 제가 실수로 오타가 나서 수정하건데 이 버전도 같이 삭제됐군요.)


그리고 논란은 사전[27]에 정의를 빌리자면 '여럿이 서로 다른 주장을 내며 다툼.'인데 김두한이 언제 무엇이 논란이 됐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떠돌이 (토론) 2011년 2월 7일 (월) 08:24 (KST)[답변]


- 한홍구의 김두한에 대한 평가를 왜 삭제하려 하는지 짧고 분명하게 답해 달라고 말했지만 이에 대해 요점을 정확하게 정리한 대답은 애초부터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고 그와는 직접적으로 무관한 다른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답을 쓸데없이 길게 한다고 해서 그게 제대로 된 대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논쟁을 회피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미 답변했다고만 주장하는데 도대체 무슨 답변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짧고 분명하게 세 줄 이하로 정리해서 말해 보세요. 정 부족하다면 다섯 줄 이하로. 핵심을 짧고 분명하게 대답하는 것은 토론의 기본입니다.
- 김두한이라는 인물에 대해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마구 붙인다고 항목의 질이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다른 사용자에 의해서 불필요하게 장황하고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부분이 정리되었는데, 님은 이것을 다시 복구했습니다. 님은 이해를 못할 지 모르겠지만 무조건 길고 장황하게 적는 것이 좋은 게 아닙니다. 이건 인물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와는 무관하게 사전과 같은 항목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덕목입니다. 설사 내가 님하고 김두한에 대해 같은 평가를 내린다고 하더라도 이런 장황하고 복잡하고 문장도 제대로 구사할 줄 모르는 내용은 대폭 정리했을 것입니다.
- 인물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에서 당장 나와 님 두 사람의 의견이 다르고 한국에서의 일반적인 인식 역시 다양하게 존재하는데 중립성 이의 표시를 아무런 말도 없이 기어코 제거하는 이유는? 제가 일관적으로 한홍구의 평가를 왜 지우려는가에 대해 계속 묻고 있는데 이에 대해 대답을 하지 않는 이유는? 이는 토론 과정에 성실하게 참여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증거를 실시간으로 보여 줍니다.
- 님과 같이 다른 사용자의 지적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쟁점이 되는 내용을 무시하고 다른 내용을 추가하는 것은 논의를 교묘하게 거부하고 회피하는 것입니다. 님이 좋아하는 위키백과 규정을 들어서 님의 현재 상태를 말해 볼까요? 위키백과 프로젝트의 목적 달성을 중대하게 방해하는 행위.
- 핵심적인 내용에 대해 다시 거듭 지적합니다. 한홍구의 김두한에 대한 평가를 왜 삭제해야 하는가에 대해 짧고 분명하게 답해 주기 바랍니다. -- (토론) 2011년 2월 7일 (월) 12:59 (KST)[답변]
" 왜 삭제하려 하는지 짧고 분명하게 답해 달라고 말했지만 이에 대해 요점을 정확하게 정리한 대답은 애초부터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고 그와는 직접적으로 무관한 다른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답을 쓸데없이 길게 한다고 해서 그게 제대로 된 대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논쟁을 회피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미 답변했다고만 주장하는데 도대체 무슨 답변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짧고 분명하게 세 줄 이하로 정리해서 말해 보세요. 정 부족하다면 다섯 줄 이하로. 핵심을 짧고 분명하게 대답하는 것은 토론의 기본입니다."

'나는 토론에 객관적 입장으로 토론에 임했는데 상대방은 토론을 회피하고 상대방 자료는 무시한다..?' 김두한이 행패를 부리고 깡패라는 게 사회 통용 상식이라는 등 종로구 상인들과 신사협정을 맺었다는 등 그동안 님의 의견과 바로 위 의견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네요. 그리고 어느 부분을 정리를 하셨다는 건지 편집 역사를 봐도 이전 버전 되돌리기밖에 없는데, 어디를 정리를 했다는 건지 알 수가 없네요. 님은 현재 한홍구 기사를 주장하시면서 편집을 님이 편집하신 버전이 아닌 이전 버전으로 되돌리기 하시고 계시는데, 언제 중립성 이의를 하셨나요?


"어~ 내가 생각하고 있던 사실과 다르네~ 에이 이거 틀렸다 김두한은 김좌진 아들 아닌데~ 뭐야 어~ 김두한이 행패부린게 사실이네."라고 맞장구를 하고, 생각하고 있던 내용과 다른 내용이 있다면 찬양 일색이며 질이 올라간다는 건가요? 어떤 분야이든 이런 논리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어떤 분야이든 옳고 그름을 떠나서 김두한이 행패 부린 게 통용상식이라는 등 신사협정 맺었다는 등 찬양 일색이라는 등 이런 의견의 자체가 중립성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걸로 밖의 생각되지 않으며, 분명한 것은 어느 부분이 장황한 부분이 있으면 직접 편집하거나 토론란에 의견을 남기면 되는 것이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저도 한마디 드리면, 주장하시는 내용과 상관없는 내용까지 삭제하시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떠돌이 (토론) 2011년 2월 7일 (월) 14:11 (KST)[답변]

핵심적이지 않은 문제에 대해 일일이 답변할 가치를 못 느낍니다. 한홍구의 김두한에 대한 평가를 왜 삭제해야 하는가에 대해 짧고 분명하게 답해 주기 바랍니다. 이게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분쟁은 계속될 뿐입니다.
항목의 가독성과 장황함에 문제를 느끼고 사용자들이 몇 차례 정리를 했을 때마다 님은 전부 이를 되돌리기했습니다. 김두한에 대해 불리하다 싶은 부분은 늘 님의 삭제 대상이나 옹호의 대상이 되었을 뿐입니다. 뜬금없는 김두한 찬양, 김두한과 직접적으로 무관한 부분을 항목에 실으면서 논점 이탈 및 가독성의 약화.
토론의 편의상 핵심적으로 주장하는 내용을 한정시켰을 뿐이고, 그 이외에도 김두한 항목은 너무 많은 문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실은 님의 편집의 상당 부분- 심지어는 다른 항목에서도-에서 나타나는 문제이고, 문제가 있으니 계속 복구하는 것일 뿐입니다. -- (토론) 2011년 2월 7일 (월) 18:34 (KST)[답변]
사실 관계는 분명히 하고 왜곡하지 말기 바랍니다. 평가 부분의 한홍구의 평가는 님이 삭제했습니다. 뜬소문 등에 한홍구의 기사 중에서 평가와 무관한 부분의 내용을 선택하여 싣고 '한홍구가 ~라고 말했으나 이는 틀린 말이다.' 라는 내용을 장황하게 싣고 있습니다. 이런 걸 복구라고 합니까? -- (토론) 2011년 2월 7일 (월) 18:54 (KST)[답변]
님께서 해당 문서를 편집하셨다고요? 님이 해당 문서를 처음 편집한 날짜가 2010년 10월 때인데 주로 내용은 [28] 이런 내용이네요.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내용 자체만 본다면, 그다지 가독성이 있고 질이 있다는 내용도 아닌 거 같습니다만, 어느 부분이 가독성이 있고 질이 좋은지 참으로 궁금하네요. 님은 그동안 의견에서도 그리고 현재 의견에서도 김두한이 상인들과 신사협정을 맺을 수 있지 않으냐는 등 이런 의견을 반복적으로 말하기도 하셨지요. "김두한은 나쁜 놈이어야 하는데, 내가 알고 있던 내용과 다르니 찬양 일색이다. 그러니 이것은 가독성이 약화다." 이것이 토론을 제시한 의견인가요?--떠돌이 (토론) 2011년 2월 7일 (월) 19:10 (KST)[답변]
한홍구 기사는 복구했고 삭제하지 않았다고 몇 번을 언급을 했고, 문제가 있으면 귀하의 생각으로 주장이 아니 근거가 되는 자료와 함께 직접 편집을 하거나 토론란에 의견을 남기면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귀하는 해당 문서에 편집하신 게 하나라도 있다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이전 버전으로 되돌리기는 토론이 아닙니다.--떠돌이 (토론) 2011년 2월 7일 (월) 18:45 (KST)[답변]

토론 계속 2

토론을 아직 다 안 읽어봤는데 잠깐 중재해도 될까요. 떠돌이님께서는 해당 평가 기술 내용이 위키백과에 쓰기에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그 이유를 짧게 들어볼 수 있을까요. 다만, 위키백과의 내용은 누구의 주장과 관계 없이 백:출처, 백:중립성에 따라 쓰여질 뿐입니다.--Alto (토론) 2011년 2월 7일 (월) 16:24 (KST)[답변]

저는 어떤 인물이든 긍정적, 부정적 평가는 행적이 사실이어야 하고 비판과 비난은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두한의 부정적 평가라면 해방정국 당시 좌우대립에서 있었던 행적이겠죠. 그런데 김두한에 관련 부정적 자료는 김좌진의 아들이 아니네 맞네라는 등, 김두한이 행패를 부렸다는 등(Hardk 님의 그동안 의견에서도 단정을 짓는 의견을 반복적으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백기완의 아는 형에게 시비를 걸다가 백기완 아는 형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등의 이런 내용밖에 없습니다. 아무튼, 그래도 부정적 비판을 있어야지 생각으로 그래도 중립성 평가를 받는다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소개된 김두한 항목을 추가했었습니다.--떠돌이 (토론) 2011년 2월 7일 (월) 17:02 (KST)[답변]
다른 건 몰라도 일명 "깡패"였다는 건 위 기사들로 부터 알 수 있습니다만.--Alto (토론) 2011년 2월 7일 (월) 17:21 (KST)[답변]
일제 강점기와 해방정국 당시에 자료를 아무리 찾아보아도 깡패라는 말 자체가 없었는데, 1954년 이후에는 정치인으로 활동한 사람에게 깡패라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김두한 항목에서도 반도의용정신대란 단체가 활동 내용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며 마침 어떠한 저의가 있는 단체에 뉘앙스 느낌을 받지만, 자료 찾아보면 수색이나 철도공사 등에서 근로 작업한 근로보국대였습니다.(반도의용정신대 사진만 봐도 충분한 개연성도 알 수 있고요.) 반민족행위처벌법에서도 어떤 친일관련 자료에서도 강제징용을 친일에 해당한다는 자료는 보지못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징용피신처로 여러 단체에 들어오기도 한 자료도 많이 보았습니다. 정치깡패로 유명한 이정재도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주먹패 인물이 아닌 이천에서 씨름하던 평범한 인물이었습니다. 김두한의 관련 고작 근거가 주먹 왕이었으니깐 (Hardk 님이 말씀하시는)'상인들과 신사협정을 맺을 수도 있지 않으냐 이런 내용뿐입니다. 어떤 인물이든 그 인물의 행적이 사실이어야 중립성이 아닌가요?--떠돌이 (토론) 2011년 2월 7일 (월) 17:40 (KST)[답변]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만 보면 이해하겠군요. 알겠습니다. 일단 반대분의 이견을 들어보겠습니다.--Alto (토론) 2011년 2월 7일 (월) 19:37 (KST)[답변]
1. 김두한이 '깡패'라는 단어가 없었으니 그의 행위가 오늘날 일반인이 생각하는 깡패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는데, 이게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실 겁니다. 이 논리는 '경제활동'라는 말이 조선시대에 없었으니 조선시대에는 경제활동이 없었다는 말과 동일하지요. '김두한이 깡패였다'는 것과 '김두한이 착하다 또는 악랄하다'는 것은 다른 문제지요.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사항에 대해서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올바른 토론 방법은 아닐 겁니다. '김두한이 깡패가 아니다'라는 것을 입증할 책임은 상대방에게 있습니다만, 하도 닥달하니 근거를 하나 대지요. 시사저널이나 말지와 같은 '진보진영'의 자료가 아닌 조선일보의 방성수 기자가 쓴 월간조선 2001년 11월호의 한국의 조직폭력배의 현황과 계보 라는 기사를 보기로 하지요.
검찰 등 수사기관 관계자들은 그러나 金斗漢(김두한)씨를 우리나라 조직 폭력배의 시조로 꼽는다. 
일제 시대에도 「시라소니」 등 전국적으로 내로라하는 주먹들이나 「패거리」 활동을 하는 조직들이 있었으나 대부분 개인적인 실력에 바탕, 「필마 단기」로 활동해 엄격한 위계질서와 
조직 내부 규율을 갖춘 현대적 의미의 조직 폭력배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장군의 아들」로 널리 알려진 金斗漢씨는 주먹 출신으로 광복 이후 국회의원까지 지낸 폭력 세계의 신화적인 인물이다. 
지금까지도 조폭이나 주먹하면 金斗漢씨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그만큼 조폭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이상 너무나 당연한 팩트에 대해 분명한 근거 제시 끝.
2. 떠돌이의 위의 답변에서 한홍구의 평가가 삭제되어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한홍구 기사를 복원시켰다는 그 내용의 정체는 히스토리 확인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실 수 있을 것이고, 저도 윗쪽에 그것이 사실의 왜곡임을 지적하였습니다.
3. 해당 인물과 직접적으로 무관한 내용을 장황하게 기술하는 것이 올바른 편집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것이 의도적인 옹호와 찬미를 위한 인상비평이라면 항목의 가독성, 신뢰성을 떨어뜨립니다. 그것도 문제지만 한홍구의 평가 이외에도 지금까지 여러 가지 자신의 특이한 관점에 맞지 않는 여러 가지 내용들이 떠돌이에 의해 삭제되고 되돌려졌습니다. 심지어는 토론까지 지우면서! 여러 차례 주의를 받은 경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 사용자페이지에 제가 쓴 토론기록마저 지워 버리는 뻔뻔함과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떠돌이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랑방에서 남긴 의견과 Hardk 님 토론란에 사용자 페이지 2011년 1월 30일 (일) 23:09 판 사용자 떠돌이가 삭제한 부분 복구했다며 삭제하지 말라는 의견을 하셨는데요. 
어제 의견 쓰고 2번 정도 위키백과:편집 충돌이 일어났는데 이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삭제했다거나 등 빠진 된 것으로 보입니다. 
타인의 토론 의견은 삭제해서도 안 되지만 해당 내용을 삭제할 이유도 없습니다만, 타인의 의견을 함부로 삭제하는 물의를 빚은 사용자에게 말하는 거처럼 하시는 거 아닙니다.
해당 부분은 복잡한 편집과정을 거치다가 어쩌다가 제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그냥 내용을 덧붙이는데 삭제가 되다니요. 그것도 토론 장소를 옮기겠습니다. 하는 중요한 메세지를 남겼는데 이를 삭제하고서 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사용자페이지에 자신의 주장을 적었습니다. 떠돌이의 주장이 의심스러운게, 떠돌이는 상습적인 토론 삭제 기록과 분쟁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위에 한홍구 기사를 복원시켰다는 사실 왜곡. 그리고 분쟁의 원인을 오로지 저에게만 있다고 하는 뉘앙스의 각종 발언. 물론 이 항목의 분쟁은 서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가 있으니 양쪽 모두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있습니다만, 떠돌이가 정상적인 토론에 참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4. 토론의 내용이 쓸데없이 길고 장황하며 핵심을 피해가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의도적/비의도적 토론 회피 혐의.
위와 같은 이유로 토론 및 수정에서 절대로 떠돌이가 원하는 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밝힙니다. 과거에 한 번 물러선 적이 있으나 그 사이 다른 항목에서의 분쟁으로 결국 해당 분쟁 당사자가 위키백과 자체를 접어 버리는 것도 봤기 때문에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보수니, 진보니 이런 것 이전에 항목 기술의 형식과 가장 기본적인 팩트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이 통했으면 합니다. -- (토론) 2011년 2월 8일 (화) 00:06 (KST)[답변]
아, 그리고 생각난 김에 사랑방 5주차에 떠돌이가 남긴 글을 더 덧붙입니다.
타인의 의견을 삭제할 생각도 없지만, 해당 내용은 삭제할 만큼 중요한 글도 아니며 어쨌든 삭제한다고 해도 역사에서 얼마든지 글 복구 또는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토론을 맘대로 지우는 자의 적반하장. 이상 끝. -- (토론) 2011년 2월 8일 (화) 00:49 (KST)[답변]

20110208 Hardk 님의 답변

  1. 김두한을 시조로 꼽는다는 내용 나올 줄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검찰 등 수사기관 관계자들이 아니고 1992년 법무연수원이 펴낸 조직폭력배의 발호 실태와 대응이란 책입니다. 하지만, 해당 책은 김두한 관련 내용이 아닌 범죄 관련 책입니다. 그리고 이후 관련 내용은 시사저널은 물론 님이 말씀하신 월간조선뿐만 아니라 신동아에서도 그리고 진보, 보수든 이념에 상관없이 내용이 중복 내용입니다. 한국 100년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깡패와 건달로 본 100년이라는 프로그램은 1999년 방송입니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말하면, 이기동이나 박춘금에 이전인 대한제국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현대사 시조로 나옵니다. 이 내용은 역시 김두한을 부정적으로 그리기 위해 여러 인물 생년 정보와 행적들이 오류가 있던 한국 100년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깡패와 건달로 본 100년 1부 내용입니다.
  2. 한홍구 기사는 삭제하지 않았다고 반복적으로 언급했으며, 그리고 한홍구 기사는 비판이 아닌 비난이므로 위에 의견처럼 어떤 인물이든 비판과 비난은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또, 한홍구 기사에 지적한 것은 김옥균 김좌진 촌수만 말씀하셨습니다.
  3. 어느 부분이 무관하다는 이야기인지 먼저 말을 해야 상대방이 아는 겁니다. 일단 언급이 없을 때 말한다면, 안준생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안준생의 이야기는 백범어록에 김구가 김두한을 호통을 쳤다는 내용에 백범어록에는 관련 내용은 없고 백범일지에 친일행위를 안준생에 대한 노발대발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님은 2010년 10월 18일 16:28 ~ 2010년 10월 19일 04:00까지 직접 편집한 내용은 없고 주로 독자연구식으로 무슨 논란 같은 내용만 편집했고, 이 내용도 주로 어디 근거가 되는 자료도 없고 자신이 평하는 거처럼 편집하셨습니다.[29] 그리고 김두한이 행패를 부리고 상인들과 신사협정을 맺고 나쁜놈이라고 맞장구를 해야 가독성이 있다라는 것이 님의 논리라는 말씀같은데, 위키는 블로그가 아니고 어떤 성향이든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위키백과:충돌 과정에서 고의로 삭제를 했다고요? 의견을 쓰고 편집충돌이 일어나 제일 하단에 의견을 쓰는데, 보통 토론란에 의견이 많고 또, 구글 크롬으로 위키편집할 때 마우스 드래그 과정에서 실수를 가끔합니다. 김두한 문서에서도 드래그 실수로 확인하지 못해서 저장을 눌려 문서에 [[]]에서 ]하나를 제외되어 저장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구글 크롬 경우는 드래그할 때 드래그한 글자들이 뿡 떠서 다른 쪽으로 이동되기도 합니다.(크롬 카나리아 빌드 사용합니다.) 해당 내용은 삭제하고 싶은 수치스럽다거나 부끄럽다거나 그런 내용은 더욱이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에 기록이 다 남는데, 누워서 침 뱉는 행위는 하지 않습니다.
  4. 직접 편집한 부분은 없고, 김두한이 행패를 부리고 상인들과 신사협정을 맺었고 김두한이 김좌진 논란이 있다는 등 이런 편집을 하신 님은 객관적 자료라고 계속해서 주장하시네요. 그리고 위키백과는 싸움터가 아닙니다.

--떠돌이 (토론) 2011년 2월 8일 (화) 02:26 (KST)[답변]

다른 건 모르겠고 비판과 비난은 구분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어디까지나 예시일 뿐입니다만 김대중 문서에 빨갱이라고 비난한 기사를 인용해 실을 수 없고 한겨레신문과 한괴뢰신문도 마찬가지 일테고요.--Alto (토론) 2011년 2월 8일 (화) 12:00 (KST)[답변]
1. 비판과 비난은 구분되어야지요. 그 말은 전적으로 맞습니다. 그러나 사실의 기술과 일방적 옹호 역시 구분되어야 합니다. 위키백과가 싸움터는 아닙니다만 일단 생긴 분쟁에 대해 위키백과는 싸움터가 아니라는 말 등으로 상대방이 위키백과의 관습과 규정을 어기는 것처럼 몰고 가는, 떠돌이의 그간의 여러 토론에서 보여준 각종 행위 역시 비판받아야 될 것으로 봅니다. 위 답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떠돌이는 김두한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은 어떠한 출처 및 근거를 명시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2. 과거의 편집과 토론에서 지저분한 내용에 대한 정리를 하고자 했었고, 너무나 문제가 많아서 문제의 글을 대부분 작성한 떠돌이 본인에게 제발 좀 짧게 정리하고 비문도 고쳐 달라는 부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반응 비문은 그다지 줄지 않았고 내용은 불필요하게 늘어나기만 합니다.
3. 떠돌이는 (작성 후 추가: 제가) 김두한이 행패를 부리고 상인들과 신사협정을 맺었고 김두한이 김좌진 논란이 있다는 등의 주장을 하면서 제 의견이 객관적이지 않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정말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기 괴롭고 읽기 싫겠지만-당사자인 저도 이런 불필요하게 긴 토론은 읽기 괴롭습니다.- , '김두한이 행패를 부리고 상인들과 신사협정을 맺었다'고 제가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조폭 일반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나왔던 부분입니다. 그 부분을 인용해 보지요.
김두한이 일제시대에 종로에서 하던 일은 뭔가요? 해방직후 좌우대립 과정에서 했던 일은 뭔가요? 
그때 김두한이 지금 우리가 하는 것처럼 치열한 논쟁을 했나요 아니면 주먹을 먼저 휘둘렀나요? 
그게 깡패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 특이하고 주관적인 시각이예요. 
종로에서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다는 증거, 해방직후 좌우대립에서 폭력적인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내세울 수 있어야 김두한이 깡패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건데, 
김두한이 주먹을 휘둘렀음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중의 사실 아닙니까? 
그리고 유흥가에도 유흥업소나 일반 가게들을 관리하고 보호하면서 그 명목으로 돈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을 겁니다. 
이런 사람들을 통칭 조폭이라고 부르지요? 그리고 조폭을 깡패라고도 부르지요? 명백한 내용을 호도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정재 이성순 등등의 인물의 생년월일이 틀렸다는 것과 김두한이 깡패 출신이 아니라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종로상권을 주먹으로 주름잡았던 것 자체를 부정하려고요? 
상인을 뜯어먹었는지 아닌지에 무관하게 그게 깡패가 아니었다는 것에 대한 반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제가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제 주장의 핵심은 종로상권을 주먹으로 주름잡았다 -> 깡패라는 사회 일반의 개념에 합당하다.였습니다. 그리고 떠돌이가 이를 어떤 식으로 왜곡해서 받아들이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항목의 논의가 불필요하게 길어지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주장의 핵심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해의 거부, 그리고 여기에 이어지는 말꼬리잡고 장황하게 핵심에 어긋나는 말을 이어가기 때문입니다.
4. 김좌진의 친자 논란이 있었다는 것 자체는 분명한 사실이고 김두한이 이에 대해 툭하면 자신의 과거와 경력을 부풀리기했다는 것도 사실이며 이는 김두한이 비판받아도 되는 부분입니다. 김두한이 김좌진의 친자가 맞기는 맞다는 것은 제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었고 김두한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매체의 추적기사를 인용해서 '김두한이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부풀려서 그렇지 김좌진의 친자는 맞다'는 취지의 내용을 편집에 반영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친자설 논란이 발생한 원인과 친자여부에 대한 진실성에 대해 가장 분명하게 기술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것마저도 되돌리기하더군요. 최초의 편집과 이에 대한 떠돌이의 반응 제가 현제 편집의 기준이 되는 부분은 결국 다른 사용자에 의해 이루어진 부분을 택하고 있습니다.
5. 현 논의의 핵심이며 발단이라고 할 수 있는 한홍구의 평가 삭제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제 입장은 분명히 제시되었습니다만 이 토론은 그냥 씹혔습니다. 그리고 짧고 간단한 대답을 계속 거부해 오다가 이제 겨우 나왔습니다. 한홍구 기사는 비판이 아닌 비난이므로 위에 의견처럼 어떤 인물이든 비판과 비난은 구분해야 한다. 한홍구의 기사가 비난이었는지 비판이었는지, 그리고 평가에서 이 기사의 내용이 과연 삭제되는 것이 맞는지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 (토론) 2011년 2월 8일 (화) 14:02 (KST)[답변]
일부러 흠을 잡자면 '한홍구 기사는 비판이 아닌 비난이므로 위에 의견처럼 어떤 인물이든 비판과 비난은 구분해야 한다'는 것도 삭제하는 이유에 대한 논리적으로 명확하고 깔끔한 문장은 아니죠? -- (토론) 2011년 2월 8일 (화) 14:47 (KST)[답변]


  1. 김두한 문서 김두한 연기한 배우들 관련과 2010년 7월에 사용자:행유님과 분쟁은 자중입니다만, 그 외에는 이범석, 김구가 김좌진의 죽음을 알려주었다(명백한 실제로 있지도 않은 내용)는 내용, 이전 버전 되돌리기 등 주로 이런 뿐이 없는데, 명백한 내용을 호도하지 말기 바랍니다.이라는 말은 무엇을 지칭하는 건가요? 2010년 10월에 "김두한은 나쁜 놈인데~ 내용이 잘못됐다."라는 식에 편집 되돌리기인데, 장황하고 비문이 아닌 정리하셔서 의견을 말씀해주세요. 그리고 본인을 전과의 핑계로 차단을 되게 하려는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본인의 토론 태도도 좀 공격적인 성향이지만, 첫 토론 의견부터 인신공격적 발언과 그리고 그냥 오타라고 생각하고 언급하지 않았지만, 삼가시길 바랍니다.
  1. '김두한이 행패를 부리고 상인들과 신사협정을 맺었고 김두한이 김좌진 논란이 있다는 등의 주장을 하면서 제 의견이 객관적이지 않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이 의견을 한 적이 없고 본인이 했다고요? 아래 링크는 대필인가요 본인이 귀신을 본 건가요?
  1. 명백한 사실이라는 그 자료를 말씀만 하지마시고, Hardk 님이 그렇게 알고계시다는건 자료가 있다는 뜻이 아닌가요? 무의미하게 서버용량낭비와 서로간에 시간 낭비가 없도록 직접 편집을 하시거나 아니면 토론란에 의견을 남겨주세요.
  2. [33] 해당 링크에 어떠한 참고자료도 없이 하는 건 위키백과:독자연구가 아니고 다시 객관적 자료라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리고 호칭은 형, 누나, 할아버지, 삼촌 등 부르는 거 상관없습니다. 2006년한나라당, 보수언론과 김희선 의원 김학규 관련 논란 당시 재판부에서도 "증거자료에 따르면 김 의원은 독립군 3지대장 김학규의 증손녀인데 단순히 `손녀'라고 표시했다는 점 만으로는 허위사실이라고 보기 힘들다. "재판부 판결 일부 내용입니다.[34] 김두한은 김옥균을 친조부라고 말한 거라고 보단 회고록과 자서전에서도 김옥균을 일가로서 언급하고 있으며 동아방송 노변야화 당시에도 김형규를 조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양자 부분에서는 오류이지만, 백부라는 호칭은 명백한 오류라고 부분과는 다릅니다.

--떠돌이 (토론) 2011년 2월 8일 (화) 16:38 (KST)[답변]

특별히 덧붙일 말은 없습니다. 분쟁의 제3자분들은 바로 위에서 떠돌이가 남긴 링크를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 (토론) 2011년 2월 8일 (화) 23:12 (KST)[답변]
2011년 2월 8일 (화) 14:47 (KST)에 작성된 답변을 분명하게 다듬었습니다. 다소 흥분+위키 편집툴로 인해 문장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내용을 수정하거나 추가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 (토론) 2011년 2월 9일 (수) 05:15 (KST)[답변]
10월 18일 ~ 19일과 1월 29일 ~ 현재, 한홍구 기사, 김옥균 김좌진 촌수 이 두 가지 의견만 말씀하셨습니다.(한홍구 기사도 수용했으며 그리고 강준만 교수도 한홍구 교수와 마찬가지로 김두한에 대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교수입니다,) 의견요청 틀은 개인의 자유이니 상관하지 않겠으나, 이 두 가지 의견 외에 내용은 삭제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떠돌이는 등 반말 삼가시라고 말씀드렸는데,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반말성과 인신공격성 어조는 삼가시길 바랍니다.--떠돌이 (토론) 2011년 2월 9일 (수) 11:01 (KST)[답변]

일단, 김두한이 깡패라는 말에는 출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명예훼손에 대한 일이니까요.--Alto (토론) 2011년 2월 9일 (수) 14:06 (KST)[답변]


과거 항목 내에 깡패라는 말이 잠시 들어갔었습니다. 바로 되돌려졌고, 그 이후에 더 이상 본문 내에서 사용한 적은 없어요. 토론 내에서는 '깡패'란 말을 자주 쓰긴 썼지요. 이 토론 내에서는 그 대신 '조폭', '폭력배', '주먹꾼' 등으로 바꾸면 되나요? '조폭의 시조' 등등의 내용은 위에서 보신 근거도 있으니까요. 기사 내의 내용에 대해서라면 그 부분은 애초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런 건 어떻습니까? 김두한(金斗漢, 1918년 5월 15일~1972년 11월 21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대한 학도의용군 참모장· 청년운동가· 사회운동가· 노동운동가, 테러리스트이다.
나는 백색 테러리스트다! 지금은 이름난 반공지도자들도 많지만 8.15 혼란을 틈타서 남한 전역을 적화하고 있던 공산당들은... (중략) 
나는 이 때에 힘을 통한 감공 이외로는 누란의 위기에 선 조국을 구출할 방법이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무자비한 피의 대공투쟁을 전개할 수 밖에 없었다.  - 김두한회고록 (김용옥 '도올세설'에서 일부 재인용)
깡패라는 말이 출처가 필요해서 쓰지 못한다면 테러리스트라는 말은 김두한이 자신의 회고록에서 스스로 자신을 테러리스트로 인정하고 있으니 출처와 근거도 확실하고 김두한 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명예훼손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너무 당연한 것에 대해 출처를 요구하는 상대방의 출처만능주의에 놀아나고 싶지 않습니다. 토론 내에서 김두한이 깡패 출신이라는 것은 단어 자체를 무슨 터부처럼 꺼리는 사람이 아니면 충분히 허용될 수 있다고 봐요. 토론 내에서까지 사용하지 말라고 하신다면 좀 심한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한홍구 기사도 수용했다고 하는데, 수용한 것이 아니네요. 끝까지, 제가 포함시켰던 그 기사의 그 부분은 집어넣지 않으면서 오직 그 기사의 다른 부분을 언급하며 수용했다?


떠돌이의 현 편집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독특한 관점과는 다른 관점을 절대 기사 내에 포함시키려 하지 않고 이를 남에게까지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김두한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 잔뜩 집어넣는 것, 김두한과 직접적인 관련 없는 내용들을 마구 적어대면서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것, 오문 비문 가리지 않고 마구 써대는 건 좋다고 합시다. 그러나 김두한이라는 복잡한 인물에 대해 갈릴 수밖에 없고 부정적인 관점에서의 평가 등은 분명한 출처를 제시하고 포함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게 당연한 건데 그간의 편집에서 그런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가 분명한 출처를 집어 넣으면 말없이 삭제 -> 토론을 제기하면 토론 회피/자신의 마음에 안 드는 내용은 출처불분명, 신뢰도 없음으로 몰아가기, 토론 삭제, 그러면서 토론 상대방에 대해 위키백과의 규칙을 지키라는 등등의 인신공격성 발언, 그 와중에 꿋꿋하게 되돌리기.


자, 앞으로 누가 김두한에 대해 내용을 추가하고 글을 쓴다고 합시다. 김두한 항목은 총의가 아닌 떠돌이라는 특정 사용자의 일방적인 관점에 적합하지 않을 경우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되돌리기 당할 것이 뻔합니다. 항목 자체에 기여를 하는 것이 꺼려질 수밖에 없어요. 끝까지 이런 피곤한 논쟁을 벌이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 가장 중립적이고 기본적인 두 가지가 족보 문제, 그리고 한홍구의 평가 추가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최초에 지적했던 족보 문제, 떠돌이 자신이 제시한 링크자료를 근거로 분명히 제시해서 설명했는데, 자신이 링크시킨 항목의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지금껏 자신이 맞다, 자신이 기술한 내용에 문제 없다고 하다가 지금에야 겨우 내용이 바로잡혔습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문제 없다고 주장합니다. '백부'라는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할 때 이미 벽을 보고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중립적인 내용을 고치는 데에도 지금껏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한홍구의 평가 추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해결되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김두한 항목의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지요. 정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모를 정도로 많습니다. 지금부터 시작일 뿐이고 하다 못해 잠시 휴전을 할 정도의 수준에도 이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문제제기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다 해결됐으니 손을 떼라고 강요하는 사람이 있지요. -- (토론) 2011년 2월 9일 (수) 23:36 (KST)[답변]
  1. 위키백과는 싸움터가 아니며, 어떤 성향이든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주관적 견해로 편집돼서도 해서도 안 되는 곳입니다. 주관적 견해, 더구나 모호한 표현으로 단정 주장하시지 마시고 그 근거가 되는 자료를 함께 직접 편집하거나 토론에서 의견을 이의제기하시라는 누누이 말씀드렸는데, 이 의견에 회피하시네요. 김두한이 행패를 부리고 깡패라는 등에 근거자료를 제시해주세요.
  2. 해당 한홍구 기사에 인용문은 제가 편집한 것이 아닌 님이 편집한 인용문입니다. 강준만 교수도 한홍구 교수와 마찬가지로 김두한에 대한 굉장히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교수라는 거 모르시나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떤 인물에 평가든 사실하에 하는 것이 평가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내용이 있으니, 거기에 추가 내용으로 편집된 것입니다.
  3. 누누이 떠돌이는 라는 등 반말, 인신공격 발언은 삼가주시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계속해서 떠돌이라는 등 반말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아무튼, 저의 큰 문제가 상대방의 자료를 무시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상대방 자료를 무시했다는 링크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토론란에 의견이 있으면 삭제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김두한 토론란에 김두한 역 연기한 배우들과 사용자:행유님과 분쟁 말고는 님이 올린 의견과 그리고 김좌진 김두한 아들이 아니네 글(이건 토론이 아닌 훼손 사항이므로 삭제한것입니다.). 이범석, 김구가 김좌진의 죽음을 알려주었다는 의견인데 이범석, 김구가 김좌진의 죽음을 알려주었다는 내용은 역사문제연구소 관련 출판 책인데, 역사문제연구소 측 답변에서는 정확한 근거로 제시해서 한 것이 아니라고 답변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Hardk 님은 김좌진 친자 설이라는 등 김두한이 행패를 부렸다는 등에 이런 내용은 가독성이 있으며 이 우수하며 사실이며 객관적 자료라고 말씀하시는 거 아니겠죠? Hardk 님은 2010년 10월 18일 ~ 19일 그리고 2011년 1월 28일부터 현재 김두한 김옥균 촌수와 한홍구 기사에 이 두 가지 주장하셨고, 문서는 가독성, 중립성이라는 이유로 전체 문서를 삭제했으며, 정작 2010년 10월 18일 ~ 19일에는 직접 편집한 부분은 없고 오히려 김좌진 친자 설이라는 등 실제 논란이 되지도 않은 내용만 편집하셨습니다. 1월 28일부터 현재까지 의견을 보면 어떠한 근거자료 없이 주관적 견해와 상대방의 생각을 단정 하는 등, 적반하장, 휴전 등에 공격성 어조는 토론에 대한 이의제기가 아닌 싸움하려는 느낌을 받습니다.--떠돌이 (토론) 2011년 2월 10일 (목) 00:58 (KST)[답변]


우리 어느 쪽이 위키백과 프로젝트의 목적 달성을 중대하게 방해하는 행위를 더 저지르는지 서로 비교나 해 볼까요? -- (토론) 2011년 2월 10일 (목) 02:05 (KST)[답변]

평가

평가에서 부분에서 한홍구의 평가가 삭제되어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제시해 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중립성에 대한 토론 없었습니다. 임의로 중립성 틀 지우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 Leno (토론) 2011년 2월 1일 (화) 22:49 (KST)[답변]

토론 계속 3

일단 항목이 임시로 동결되는 변화가 있었으므로 판갈이. -- (토론) 2011년 2월 10일 (목) 05:33 (KST)[답변]


한홍구의 평가에 대한 삭제와 관련된 논란에 대해서는 임시 동결 해제가 된 지금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을 보니 일단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또는 상대방이 일단 수정을 포기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다음번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단, 이후 또 해당 부분에 대한 일방적인 삭제 및 되돌리기가 진행될 경우에는 다시 수정전쟁을 피하지 않을 것이며 아울러 문서 사유화로 위키백과에 해악을 끼치는 행위로 간주하고 사용자 관리 요청 단계로 넘어갈 것임을 미리 경고합니다.-- (토론) 2011년 2월 11일 (금) 13:43 (KST)[답변]


평가와 일화의 구분

인물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와 해당 인물에 대한 단순한 인상비평, 소소한 일화 등은 구분해야 합니다. 물론 각종 일화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항목이긴 합니다.

그러나 인물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그 사람이 어떤 사상을 갖고 있었는가, 사회에 어떤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주었는가, 이를 당시의 역사적 맥락에서, 그리고 현재의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하는 다소 학술적인 부분입니다. 그 과정에서 논란은 논란대로 반영해야 합니다.

현재의 평가 부분은 평가와 일화가 구분되어 있지 않고 뒤섞여 있습니다. 이는 일화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평가에 대한 정보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혼란을 주는 동시에 불필요한 내용이 많아지므로 가독성에 큰 영향을 줍니다. 상당 부분은 삭제해야 합니다.

그러나 김두한에 관한 일화들은 어쨌든 그것 자체로는 의미있는 정보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김두한의 일화라는 별도의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고 내용을 그 쪽으로 옮기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가독성을 높이면서도 기존의 내용 자체는 없어지지 않으니까요. -- (토론) 2011년 2월 11일 (금) 13:42 (KST)[답변]


김두한의 경력에 대해 어떻게 정의를 내릴 것인가?

2011년 2월 11일 현재 이 항목은 다음과 같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김두한(金斗漢, 1918년 5월 15일~1972년 11월 21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대한 학도의용군 참모장· 청년운동가· 사회운동가· 노동운동가이다.

김두한, 정치인 맞지요. 그런데 대한 학도의용군 참모장· 청년운동가· 사회운동가· 노동운동가 라는 것이 과연 김두한을 규정할 수 있는 경력이 될 수 있을까요?

학도의용군 참모장이라는 게 언제 경력인지, 그리고 정말 유의미한 경력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 남자들이 상당수 군대 다녀 왔으니 군 경력이 있으므로 군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주요 경력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인지 의심스럽습니다. 더구나 경력에 대한 설명에서는 계급을 적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직종을 적어야지요.

청년운동가, 사회운동가, 노동운동가라... 제가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김두한이 활발히 참여한 청년운동, 사회운동, 노동운동 경력이 있는지요?

그 중에서도 특히 노동운동이라면 좌우대립 과정에서 노동조합 까부시고 사람들 마구 죽이곤 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그런 것도 노동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런 활동을 하기 위해서 노동단체에 이름을 올릴 수는 있겠지만 이름을 형식적으로 올리는 것과 실질적인 노동운동은 구분해야 하지요. 오히려 노동운동을 탄압했다고 보여지는 사람에게 노동운동가라...

그래서 대한 학도의용군 참모장이라는 계급명과 노동운동가라는 경력은 삭제합니다. 노동운동가라는 것은 사실 여부가 극히 의심스러우며 '대한 학도의용군 참모장' 이란 부분은 그런 직함을 갖고 활동하던 시기의 행적에 충분히 기재 가능한 사항이기 때문에 삭제합니다.

청년운동가ㆍ사회운동가 라는 경력에서는 제가 잘 모르는 것일 수 있으니 일단 남겨 둡니다. -- (토론) 2011년 2월 11일 (금) 14:19 (KST)[답변]


김두한의 생모 문제

김두한의 출생 및 생모에 관해 과거(2008년)의 토론 기록에 의견과 출처가 대단히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토론:김두한/보존문서3 아울러 끝까지 말꼬리를 잡으면서 논쟁을 엉망으로 만드는 사용자가 그때에도 있었더군요. 어쨌든 그 정도 근거면 생모가 김계월이라고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김두한의 김좌진 친자설, 김두한의 생모와 관련되어 이후에 분쟁이 생긴다면 과거의 토론 기록을 찹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두한의 생모인 김계월이 생활고 등의 이유로 기생(권번) 생활을 한 것도 당시의 여러 신문기사의 공통적인 내용으로 확인됩니다. -- (토론) 2011년 2월 12일 (토) 04:39 (KST)[답변]

CBS라디오 인터뷰 - 김용옥의 주장과 김을동을 입장

[35]에 김을동을 인터뷰한 것이 있네요. 위연홍과 김을동의 DNA 검사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본문에 추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케골 2011년 11월 4일 (금) 10:45 (KST) 김두한이 김좌진의 아들이라는 것이 조작되었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하나도 없네요. 10k (토론) 2012년 4월 19일 (목) 03:49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