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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나라의 차에 대해[편집]

  • 차의 기원과 전래
  • 차나무
  • 차 문화
  • 차 역사
  • 차 종류


차의 기원과 전래[편집]

차의 기원[편집]

중국 전설의 황제 신농씨神農氏가 기원전 2737년에 차를 발견하였다.“약초를 시음하다가 72 가지 으로 고생하였는데 茶로서 해독하였다." 먼저 기원전 2700년경에 차가 처음 발견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신농씨神農氏가 지었다는 『식경(食經)』에 '차는 오래 마시면 힘이 나고 마음을 즐겁게 한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신농씨神農氏 황제 때인 기원전 2737년 무렵에 인류가 처음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신농설의 요지다. 이 설에 따르면 신농씨神農氏은 자연에서 나는 모든 풀을 일일이 먹어보던 중 바람에 날려온 윤기 있는 잎에 반해 이를 맛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농씨神農氏의 뱃속에 들어간 찻잎이 위장 곳곳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깨끗하게 청소를 해주더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신농씨神農氏은 수많은 풀을 맛보다가 독초에 중독됐는데 찻잎을 씹어 먹고는 말끔히 나아 찻잎이 해독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이로써 인류와 차의 첫 인연이 시작됐다는 것이 가장 널리 알려진 차의 기원설이다. 이처럼 신농설에 따르면 최초의 차는 약용으로 개발된 것이었다.

차의 전래[편집]

중국에서 시작된 차는 승려들이 불교를 전파하면서 함께 전해지거나 통상무역의 발전에 따라 세계 각국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당시 수양을 하는 승려들은 정신을 맑게 하고 피로를 없애준다고 하며 차를 애용하였기 때문에 사원에는 항상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당나라문성공주가 티벳왕에게 시집을 가면서 차를 가지고 가 티벳에 음다풍습을 전한 것이 계기가 되어 차가 외국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서기 805년에는 일본의 승려 사이조우선사가 중국에 불교를 배우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차 종자를 가지고 와서 일본 자가현의 고꾸다이산기슭에 파종을 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보급은 1187년에 1191년 사이에 에이자이선사가 차 종자와 더불어 차의 제조법을 전하면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는 가야시대부터 차 종자가 전해졌다는 주장도 있으나 기록상으로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김대렴이 당나라로부터 차 종자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은 이후부터 사찰을 중심으로 점차 확대되었다고 한다.


차나무[편집]

차나무

재배 환경[편집]

차나무의 일생은 종자발아로부터 혹은 삽목으로부터 시작하게 되며 신초의 생장, 화아분화, 개화, 결실 등을 거치면서 노화와 기능 저하, 개식기상환경의 악화 등에 의해 일생을 마치게 된다. 현재 재배되고 있는 차들은 3~5년의 유목기간 동안에 기계수확이 가능하도록 수형을 잡고 매년 3~4회 수확을 한다. 수확반복하다보면 가지가 상승하여 가지가 가늘어지고 잎이 작아져 3~5년에 한번씩 정지를 하며, 갱신을 실시하게 되면 30여년간 용이하게 경제적인 재배를 계속할 수 있다. 차는 신초와 잎을 수확의 대상으로 하는 식물로서 자연상태에서는 봄, 여름, 가을에 걸쳐 지상부와 지하부가 생장하는 생장 주기를 갖고 있다. 이러한 생리를 잘 이용하여 재배함으로써 바람직한 관리가 이루어져 품질이 좋은 고급차를 생산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차 재배적지의 연평균 기온은 13~16℃이고 겨울 최저 평균온도가 -5℃ ~ -6℃이상의 지역이 좋으며 최저 극기온이 -13℃ ~ -14℃이하가 되면 청고현상과 적고현상 등 차나무의 뿌리 윗부분이 갈라지는 (열상형) 동해로 인한 피해가 심하여 차나무 줄기 부분의 동사 내지 전체가 고사되는 경우가 많아 경제적인 재배가 어렵다. 차나무에서 최종적인 목표 산물은 열매가 아닌 신초(새싹)이며 신초 생장에 필요한 요인은 광, 온도, 수분이 필요하다. 차재배를 위해서는 연강수량이 1,500mm 이상, 연간최저 1,300mm 이상이 필요하며 3월~10월 생육기 중에 1,000mm 이상 내려야 한다. 특히 3~4월 첫물차 생육기에 강수량이 적을 경우 맹아가 늦어지고 수량에도 영향을 주므로 비가 적은 지역에서는 스프링쿨러 등에 의한 관수가 필요하다. 7월 중~9월초에는 수분 증발이 많으므로 차나무의 생육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강수량이 많아야 차나무 생육에 좋다.


제다법[편집]

녹차

녹차 제다법[편집]

1. 녹차는 딴 즉시 찌거나 덖어 산화효소를 없애며 도중에 발효될 짬을 주지 않도록 한다.

2. 200~300도에서 재빨리 뒤집고 살짝 눌렀다가 다시 뒤집으며 고루 익힌다. 이 약하면 풋내가 나거나 발효되고, 너무 뜨거워도 좋지 않다.

3. 향기나 빛을 보아 줄기가 익었다고 생각되면 찻잎을 꺼내 두 손을 뭉쳐쥐고 빨래하듯 비빈다. 찻잎 비비기 작업은 세포막을 파괴시켜 차를 우릴 때 각종 수용성 성분이 쉽게 우러나도록 하고, 차의 형상이 잘 말아지게 하며 찻잎 중의 수분을 고르게 하는 작업이다. 약하게 비비면 차를 우릴 때 차성분이 잘 녹아 나오지 않고, 너무 심하게 비비면 잎조직이 뭉개져 다탕이 탁해진다.

4. 잎들이 서로 붙지 않도록 두 손으로 털며 다시 덖는다. 이때는 처음보다 불의 온도를 낮춘다.

5. 차가 잘 우러나고 부피를 줄이기 위해 다시 비빈다.

6. 의 온도를 더 낮추어 100~130도에서 고루 뒤집으며 말린다. 눌은 냄새가 나지 않도록 솥바닥을 긁거나 행주로 닦아 깨끗이 한 후 다시 말려야 한다. 건조상태는 잎을 손으로 문질러 가루가 되면 완성된 것이다.


차 문화[편집]

한국 차 문화[편집]

한국 차문화는 궁중 왕실, 조상숭배 예식, 불교공양 등 스님 위주로 정착하기 시작했다. 삼국 시대 역사를 기록한 『삼국유사(三國遺事)』 「가락국기조(駕洛國記條)」의 기록으로는 수로왕을 이은 거등왕이 제정한 세시풍속(歲時風俗)에 떡, 밥, 차, 과일 등을 갖추어서 차례를 지내도록 했으며, 삼국을 통일한 신라문무왕은 즉위한 해인 661년에 명하길 가야국종묘의 제사를 합해서 계속 지내라고 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 화랑들은 차를 끓여 마시며 서로의 결속을 다지며 예절을 지켰다. 고려불교 국가로서 불교 전성과 함께 차를 겸한 불교 행사들이 궁중 행사 예식으로 더욱 크게 개발되었으며, 궁중 차 예식이 도자기, 청자, 다식, 다악 등 한국 전통문화 개발에 도움을 주었다.

중국 차 문화[편집]

중국에서는 4000여 년 전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속담에 생활을 영위하는 일곱 개의 물건으로 땔나무, 쌀, 기름, 소금, 간장, 식초, 차를 꼽을 정도라고 한다. 기원 후 280년 중국 남방에 오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는데 국왕연회대신들을 초대해 술을 먹었다고 한다. 그 중 위소라는 대신이 술을 못 마셔 차로 술을 대신했다고 하는데 이때부터 문인들은 차로 손님을 대접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차는 독특한 문화현상으로 발전하였는데 차를 끓이고 차를 마시는 것을 일종의 예술로 여기고 있다. 차 종류도 다양한데 베이징 사람들은 화차, 상해 사람들은 녹차, 중국 동남의 복건인들은 홍차를 즐겨 마신다고 한다 일부 지방에서는 차를 마실 때 일부 양념을 넣기도 하고, 남방의 호남 일부 지역에서는 강염차로 손님을 대접하며 찻잎뿐 아니라 소금, 생강, 볶은 콩, 참깨 등을 같이 넣는다고 한다. 차를 마신 후 나중에 콩과 참깨, 생강, 찻잎을 함께 천천히 씹으며 향을 음미하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차를 마신다가 아니라 차를 먹는다고 표현하고 있다.

영국 차 문화[편집]

1600년대 초반,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에 소개된 차, 동양에서 온 이 신비롭기도 하고 향긋한 차는 당시 상류사회에서만 맛볼 수 있던 기호음료 였는데, 상류사회 뒤에는 각국이 중국차에 대한 무역경쟁이 쟁쟁하였습니다. 영국을 비롯하여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국가는 중국차에 대한 무역경쟁을 하였는데 1685년 중국이 연안의 항구를 유럽 무역업자들에게 개방을 하면서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영국이 빠르게 치고 나가 1721년 영국동인도 회사가 중국차 전매권을 손에 쥐면서 유럽시장의 중국차 독점을 하게되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차는 높은 세율로 인해 상류층 사람들의 '사치품'으로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였는데 훗날 세율이 낮아지면서 차는 더이상 상류사회의 기호음료가 아닌 대중음료로 전락되었고 오늘날까지도 영국인들은 차를 세끼 식사 못지 않게 즐겨 마시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차 역사[편집]

한국 차 역사[편집]

1.신라 시대(新羅 時代)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신라 사신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차의 종자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 차는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632~647)부터 있었지만, 이 때에 이르러 성하였다고 한다. 차나무의 재배는 828년을 시작으로 할 수 있지만, 이보다 앞서 신라에서 차를 마신 기록이 있었다. 신문왕(681~692)에게 설총(薛聰)이 지어 바친 [화왕계(花王戒)]라는 이야기에는 '차와 술로서 정신을 맑게 해야한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에 따르면 신라에서는 늦어도 7세기에는 차를 마셨을 것이 분명하다.


2. 백제(百濟)

그런데 최근 신라보다 백제에서 차를 더 일찍 마셨다는 주장이 제시되었다. 한국에서 차 생산이 가장 많은 지역은 백제가 자리했던 전라도 지역이다. 백제는 차나무를 재배하기 좋은 지리적인 여건을 갖추었다. 게다가 차 문화가 발달한 중국 화남지역과 교역이 많았다.


3.고구려(高句麗)

백제 지역에서는 차를 마셔왔지만, 고구려 지역은 백제에 비해 기후가 낮아 차를 재배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는다. 고구려백제와 달리 차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북조의 나라들과 교류가 많았다. 기후지리, 대외 관계의 여러 여건 등으로 인해, 고구려는 차 문화가 발전하기 어려웠다.


4. 고려(高麗)

한반도의 차문화는 고려시대에 이르러 그 꽃을 활짝 피우게 되었다. 당대에 조정에서 신하들에게 차를 하사했음과 같이, 고려시대 연등회 행사 때 또한 왕이 태자 이하 신하들에게 차를 하사하였다. 차는 외교상에서도 중요 예물로 사용되었는데, 고려는 거란, 금, 원나라에 차를 보내기도 했다. 또한 외국사신을 영접하는 예빈시에서 가장 주요한 절차는 차를 내는 일이었다. 고려시대에 차 문화가 전성기를 맞이한 그 배경에는 크게 두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주변 국가들의 차문화 극성과 둘째, 고려시대 불교 숭상정책(冊)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고려의 차생활 문화는 왕실, 사대부, 승려들 사이 뿐 아니라 민간에게까지 확대되어 대중화의 일면을 갖게 되었다. 차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왕실풍습과 더불어 차에 대한 제도가 발달되었다. 고려왕조는 ‘차방(茶房)’,‘차군사(茶軍士)’,‘차소(茶所)’ 등의 제도를 만들어 이에 대한 직무와 직제를 마련하고 이에 대한 응분의 대우를 하였다. 고려의 왕실은 상단(商團)을 이끌고 외국과 무역을 주로 한 세력이었기 때문에 차(茶)문화에 대한 접촉 배경은 어떤 계층보다 많이 노출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고급문화에 갈증을 느끼던 신흥사대부들은 자연스럽게 차를 가까이하게 되었고, 차(茶)문화는 한층 더 발전하게 되었다. 따라서 좋은 차를 생산하여 궁중은 물론 신하들과 사원에 하사품으로 많이 사용했다. 고려의 무신집권 시기에는 집권층이 대부분 술을 즐기던 주객(酒客)이었지만, 차로써 마음의 때를 씻어 내던 차인들도 있었다.


5. 조선 시대(朝鮮 時代)

조선시대는 고려의 융성하고 화려했던 차(茶)문화를 이어받았으나 유교를 지배이념으로 삼았던 배경으로 인하여 불교를 지배이념으로 하였던 고려시대의 차문화와는 다른 양상으로 발달하였다. 좀 더 정제되고 진지한 차생활을 형성하였으며, 차도 맑은 차탕이 주류를 이루어 궁중제사에도 차탕을 썼다. 조선 건국 후 유교이념에 입각한 절대왕권의 확립으로 불교는 점차 경제적 기반과 인력을 잃어가고, 사원을 중심으로 했던 고려시대의 융성했던 사원 차풍은 선비들에게 옮겨져 선비를 중심으로 한 차문화가 조선시대에 꽃피우게 되었다. 대부분 지배계층 사람들은 사원을 통하여 조선차나 중국차를 음용하였다. 중국차를 음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들 상당수가 중국에 사행으로 다녀 온 인물이라는 것이며, 이는 당시 조선과 청나라를 외교 목적으로 왕래하면서 기록한 여행기인『연행록(燕行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중국 차 역사[편집]

1. 당 이전(唐 以前)

이전의 차(茶)에 대한 자료는 그리 많지 않으며, 그 기록은 육우 『다경』 「칠지사」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이전 차는 이용방법에 따라 약용, 식용, 음용의 단계로 발전하였으며, 정신적 안정을 찾고자 하는 수양의 음료로써도 이용되었다. 「칠지사」에 나타난 역사적 인물들을 살펴보면 전설 속의 제왕부터 시작하여 왕, 고위 벼슬아치들이 주를 이루었으며, 서민들도 차를 마셨다. 하지만 이전의 차 문화는 아직 윤곽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2. 당대(唐代)

당대에는 차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어 일반화 되고 정착되기에 이른다. 오랜 혼란기를 겪은 뒤에 사회가 안정되며 차의 생산과 소비도 발전하였고, 차문화는 강남을 포함해 강북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중국을 재통일시킨 (隋)는 대운하를 건설하며 강남의 식물자를 북방으로 운송하고 북의 정치, 문화가 남방에 영향을 미치게 하였다. 주로 장강유역이 주산지였던 차 또한 대운하의 개통을 통해 북방으로 대량 운반되어 북방에 차문화가 획기적으로 확산되었다. 당시 조정에서는 신하들에게 신분에 따라 차등을 두어 차를 하사하였고, 외국 사신들에게도 차를 하사함으로써 중국의 차 문화가 변방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당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시행된 과거제도 또한 차문화의 확산에 큰 계기를 마련하였는데, 과거를 보기 위해 모여든 전국 각지의 신지식인들에게 조정에서는 차를 내려 그 노고를 치하하였고, 이를 통해 차 문화가 전국으로 퍼지고, 문인들이 차를 즐기게 되는 데 기여하게 되었다. 『척언』에서 정광업이 과거시험에서 만난 선비에게 차를 끓여 주었다는 것은 과거제도가 차문화의 확산에 기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고사이다.


3. 송대(宋代)

송대는 전(前)대로부터 이어진 차문화를 진일보시켜 중국 역사상 가장 발전된 차문화를 이룩한 시기이며 사회적. 경제적인 안정과 변화를 통해 문화적 발전을 이루었다. 차 또한 황제로부터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널리 전파되어 쌀이나 소금등과 같이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생활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특히 송대의 공다(貢茶)는 예술성과 정교함이 극치를 이루었으며 제다법의 발전을 가져와 중국 차문화 발전에 있어서 최대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술을 못 마시는 주필대를 위해 대신 차를 하사했다는 내용으로 육우 『다경』 「칠지사」에 나타나는 차로써 술을 대신한 사례가 송대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후산총담後山叢談』 에서도 술을 못하는 태부인을 위해 생일날 차로 대신 축수한다는 내용이 있다.


4. 원.명.청대 (元, 明, 淸代)

송대에 성행했던 단차는 사치스러움과 번거로운 과정으로 인하여 서서히 도태되어 갔다. 대신 산차(散茶)의 발달과 초청(炒靑) 제다법으로 이어지면서 다양한 종류의 차가 만들어 지는 계기가 되었다. 명.청에 이르러서는 오늘날의 음다법과 제다법, 다구의 근간을 제공하고 수많은 명차를 탄생시켰다. 원대에 이르러 유목 민족이었던 몽.만주족들로 국가 주도 세력이 바뀌면서 차문화도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호쾌하고 소박한 민족 특성상 화려하고 복잡한 송대의 단차 대신에 산차가 빠른 속도로 유행하게 되었다. 또한, 명대에는 평민 출신이었던 태조 주원장이 단차의 제조를 폐지하는 칙령을 내림으로써 중국 차문화를 이끌어 왔던 단차는 점차 쇠퇴하게 되고 산차의 시대가 도래하였으며, 더불어 제다법의 발달은 지역별로 다양한 종류의 명차를 탄생시켰다. 이를 통해 귀족적이고 화려한 문화에서 차 본래의 맛을 음미할 수 있으면서도 번잡하지 않은 서민적인 문화로 바뀌며 차는 서민들의 생활과 한층 더 가까워지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차 종류[편집]

중국 차 종류[편집]

Ⅰ. 녹차

녹차는 채취한 신선한 찻잎을 고온에서 가열해서 잎 속에 있는 산화효소의 작용을 억제한 후 비비고, 말리고, 정제하는 등의 가공을 거쳐서 만들어 진다고 한다. 중국이 원산지로 알려진 녹차나무는 상록활엽관목으로 잎은 차로 만들어지고, 열매는 착유한 후 기름으로, 줄기단추의 재료로도 이용된다고 한다. 중국의 녹차는 대부분 산동성(山东省), 저장성(浙江省), 허난성(河南省), 안후이성(安徽省), 장시성(江西省), 장쑤성(江苏省), 쓰촨성(四川省), 후난성(湖南省), 후베이성(湖北省), 광시성(广西省), 푸젠성(福建省), 귀주성(贵州省)등의 많은 지역에서 재배되고 있다.


- 육안과편(六安瓜片)

안후이 성 육안시에서 생산되는 녹차의 한 종류로, 그윽한 뒷맛이 좋고, 깔끔한 향이 오래가는 차이다.

- 벽라춘(碧螺春)

장쑤성 태호 부근 동정산에서 생산되는 고급 녹차로, 빛깔향기가 뛰어나다는 특징이 있으며 순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선호한다고 한다.

- 황산모봉(黄山毛峰)

안후이성의 황산 일대에서 재배되는 녹차로, 향이 높고 맛이 신선한 특징이 있다. 작고 흰 은 빛 털이 마치 밍크를 감은 귀부인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 롱징(龙井)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차로, 저장성의 서호 부근에서 나는 부드러운 녹차이며 최상품은 20만 위안(대략 3600만 원)까지 거래된다고 한다.

Ⅱ. 홍차

홍차는 80% 이상 발효된 차이다. 향이 강하고, 카페인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중국에서 찻물의 색이 붉은빛을 띄는 것을 보고 홍차라고 지은 것과 달리 서양에서는 찻잎이 검은색이라는 의미로 black tea라고 부른다고 한다. 홍차에는 카페인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서 홍차를 마시면 정신을 맑게 해주고, 체내에 쌓인 노폐물을 배출해주어 피로회복에 매우 좋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뇨작용, 해독작용은 물론 위장보호에도 탁월하고, 노화방지와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당뇨병환자나 어린이, 임산부, 신장결석환자 혹은 영양부족으로 인한 식이요법 환자, 간질병 환자 등이 과다하게 복용할 경우 체내의 철분 흡수에 방해가 되어 불면증, 심장병, 소화불량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하니 주의해야 한다. 중국 홍차는 인도스리랑카 홍차보다 더 유명하다고 한다. 중국 3대 홍차라고 손꼽히는 기문홍차(祁门红茶), 운남홍차(云南红茶), 정산소종(正山小种)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홍차라고 한다.


- 기문홍차(祁门红茶)

사과난초의 향이 은은하게 어우러져 최고의 풍미를 지닌 차로 세계 3대 명차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지금도 영국의 일부 상류층에서 찾아 즐기는 홍차라고 한다. 안후이 성의 기문에서 생산되며 안후이성의 차밭은 대부분 구릉지대로 이루어져 있어, 온난한 기후와 풍부한 강수량이 늘 유지되고 봄과 여름에 질 좋은 차가 재배된다고 한다.

Ⅲ. 보이차(普洱茶)

보이차

보이차는 중국차를 분류하는 방법인 6대분류법 중 흑차에 속한다. 보이차는 중국 윈난성(云南省)이 주 생산지인데, 윈난성 남부지역의 소수민족들이 마시던 발효 흑차의 한 종류이다. 보이차의 유래로는 제갈공명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제갈공명이 남정을 끝내고 촉나라로 돌아가던 중에 유락산에서 잠시 쉬었는데, 허약한 병사들이 잠에서 깼을 때 제갈공명이 이미 떠나고 없었다고 한다. 병사들이 제갈공명의 뒤를 따라 갔지만, 제갈공명은 그 병사들을 받아주지 않고 대신 차 열매를 주며 재배법을 가르쳐 주었다는 이야기 이다. 보이차는발효차인만큼 충분히 발효키기 위해서 몇 년 이상의 긴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발효가 잘 된 보이차는 수량이 제한되어있고, 그에 따라 가격도 굉장히 비싸다. 중국에서는 보이차로 재테크를 하는 경우도 있고, 또한 보이차에는 비만방지에 효과가 있는 지방분해력이 있고 콜레스테롤 분해 효과가 있어서 인기가 많다고 한다.


영국 차 종류[편집]

Ⅰ. 홍차

홍차는 찻잎 배합에 따라 <스트레이트티, 블렌디드티, 향차>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블렌디드 홍차나 스트레이트 홍차는 흔히 클래식 홍차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먼저 다른 지역의 찻잎 섞지 않고 한 원산지의 찻잎만을 사용한 스트레이트티에는 다즐링, 아쌈, 닐기리 등의 종류가 있다.그리고 여러 산지의 잎을 섞어 만든 블렌디드티의 종류에는 오렌지페코, 애프터눈티, 잉글리쉬 블랙퍼스트가 있고 향료, 과일 등을 첨가하여 만든 향차에는 얼그레이, 애플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홍차 본연의 빛과 향을 즐기려면 스트레이트티가 좋고, 진하고 달콤한 향기를 음미하려면 향차를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한다.

영국 홍차의 종류

-잉글리쉬 블랙퍼스트 : 아삼, 실론, 닐기리 등 찻잎을 블렌딩해서 만들기도 하는데 브랜드에 따라 스트레이트로 된 것도 있다. 다른 차보다 카페인 함량이 높고 맛이 강해 아침에 마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스트레이트&블렌딩)

-얼그레이 : 중국의 합상소총을 구하기 어려운 유럽에서 비슷한 맛을 내기 위해 찻잎에 열매과일 베르가못의 향을 합한 차이다. (가향)

-다즐링 : 세계 3대 홍차 중 하나로 인도 북동부 히말라야지역 해발 1,200m에 위치한 다즐링이라는 지역에서 생산된다. (스트레이트)

-실론 : 스리랑카와 실론이라고 하는 차 산지에서 채취한다. 맛이 은은하며 차를 우린 물의 색이 다른 모든 차와 비교하여 가장 황금색에 가까워 황금의 차라고 한다. (스트레이트)

-아삼 : 1853년 인도 아삼 지역의 정글에서 발견되어 인도 차의 상징이 되었다. 향기가 진하고 맛이 강하다. (스트레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