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공주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브리쿠티(좌)-송첸캄포(中)-문성공주(우)

문성공주(중국어: 文成公主, 623년경 ~ 680년)는 당나라의 공주로 토번이라 일컫는 티베트 손챈감포 왕의 제2왕비이다. 640년 토번으로 시집가 40여년간 그곳에서 살면서 두 나라의 우호와 장족의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독실한 불교신자로, 손챈감포의 제1왕비 '브리쿠티 데비'와 함께 티베트에 불교를 소개했다고 전한다.

생애[편집]

결혼 과정[편집]

634년 손챈감포는 당나라의 선진적인 문물과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였고, 가르통첸은 당나라의 황제에게 혼인을 청할 것을 권했다.[1] 이에 따라 손챈감포는 당나라에 사절단을 파견하여 국혼을 하고자 한다는 의향을 전달하였지만 거절당하였다. 마침 당나라는 돌궐형양공주를, 토욕혼홍화공주를 시집보내기로 한 상황이었고, 당나라에 크게 위협이 되지 않는 토번의 혼인 요청을 완곡하게 거절하였다.[1] 손챈감포의 구혼이 실패로 돌아가자 질책받을 것을 두려워한 사절단은 토번에 돌아와 토욕혼이 사이를 이간질하여 허락을 받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했다.[1] 대노한 손챈감포는 638년 작은 충돌을 이유로 토욕혼을 공격하였고 당나라에도 공주를 내놓지 않으면 당나라를 정벌하겠다고 선포했다. 실제로 손챈감포는 25만의 군사를 이끌고 송주(지금의 쓰촨 성 쑹판 현)까지 진격했다. 태종은 병부상서 후군집을 보내 토번의 군사를 물리치는데 성공했으나 이 일로 태종과 손챈감포는 서로의 국력을 무시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2] 손챈감포는 640년(정관 14) 황금 오천 냥과 수백 가지의 진귀한 보물과 함께 가르통첸을 장안에 보내 화친을 요청하고 자신을 대신해 구혼하게 하였고, 이 청혼 장면은 염립본이 그린 〈보연도〉라는 그림으로 남아 있다.[2] 장족의 전설에 따르면 당시 장안에는 각국에서 찾아온 구혼 사자가 무척 많았는데 태종은 이들 사자에게 난제(難題)를 풀게 하였다.[3] 가르통첸은 태종이 낸 난제를 모두 풀었고 태종은 결국 문성공주를 토번으로 시집보내기로 결정했다.

토번의 왕비[편집]

문성공주는 본래 황족 출신이 아니었으나 어려서 부친과 함께 궁중에 들어갔다가 당 태종의 눈에 띄어 문성공주로 책봉되고 후궁에서 지내게 되었다.[4] 혼사가 결정되었을 당시 공주는 스물 세 살로 외모가 아름다웠으며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나, 천문과 지리에 정통하고 점을 칠 줄 알았으며 불교예도 조예가 깊었다.[5] 문성공주는 자신이 토번에 시집가야 한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실망하였으나 가르통첸에게서 어떤 나라인지 자세히 듣고 충분한 준비를 하였다.[5] 그녀는 자신의 혼인이 한족의 문물을 토번에 전수하는 의미있는 일임을 알고 있었기에 사서오경과 아상가의 《유가사지론》, 《예림삼백육십법보감》(藝林三百六十法寶鑒), 《공예 육십법》(工藝六十法)을 비롯한 방대한 양의 서적과 석가모니 불상 등을 가지고 가기로 했고,[6][7] 토번의 풍토에서도 견딜 수 있는 순무 종자 등도 챙겼다.[5] 또한 공주의 혼수에는 토번에 없는 곡물, 과일, 채소 종자와 누에 종자 등도 포함되었으며 의약품과 공구 등도 있었다.[8] 공주는 유모와 수행원 일가를 비롯해 장인, 요리사, 호위병 등도 데려갔다.[8] 태종은 예부상서 강하왕(江夏王) 이도종에게 공주를 호위하도록 했고 641년(정관 15) 문성공주는 이도종의 호위 하에 토번으로 향했다. 장안에서 토번까지 가려면 큰 강을 건너야 했는데 강의 물살이 완만해지는 시기가 겨울이었던 터라 공주 일행은 한겨울에 길을 떠나야 했다.[9] 청해에 다다른 공주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천하의 강물이 모두 동쪽으로 흘러가건만, 나만 홀로 서쪽으로 가는구나.[9]

공주 일행이 토번의 변경인 하원에 도착하자 손챈감포는 라싸 근방까지 마중나가 영접을 하였다. 그는 당나라의 사위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당나라에서 보내온 옷을 입었는데 이로써 한족의 옷을 입은 최초의 토번 사람이 되었다.[9] 손챈감포와 문성공주는 백해(지금의 칭하이 성 찰릉호)에서 혼례를 치렀고 이도종은 당나라로 돌아갔다.[8] 토번의 백성들은 명절에 입는 옷차림을 하고 춤과 노래로 공주를 열렬하게 환영했다.[10] 손챈감포는 공주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서적과 당나라 장인들의 기술의 도움을 받아 포탈라 궁을 지었다.[11] 또 손챈감포는 불교 신자인 공주의 영향으로 불교를 제창하고 대소사(大昭寺)라는 절을 지었다.[12] 대소사를 지을 때 공주는 문을 서쪽으로 내어 서역에서 경전을 구하는 것을 상징하게 했다고 전한다.[13] 대소사 앞에 당나라에서 가져온 버드나무를 심었는데 사람들은 이를 당류(唐柳), 또는 공주류(公主柳)라고 불렀다.[8] 건축 외에도 공주는 토번에 당나라의 여러 문물을 전파했는데 토번 사람들에게 농업 기술을 전수하여 농작물의 수확량을 크게 늘려 주었으며[14] 토번의 부녀자들에게 길쌈을 가르쳐 야크 가죽과 털이 아닌 얇고 가벼운 옷을 입을 수 있게 했다.[15] 공주가 당나라의 장인들에게 만들게 한 물방아로 토번 사람들은 수력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공식적인 역법이 존재하지 않았던 토번은 공주의 소개로 당의 천문역법인 육십갑자를 사용하게 되었다.[16] 또한 공주가 데려온 악사들은 당의 음악을 알렸으며, 문사(文士)들은 토번의 대신과 귀족 자제를 가르쳤다.[15] 손챈감포는 토번의 귀족 자제를 장안으로 보내 학문을 배우게 했고 당나라도 많은 학자와 장인들을 토번에 파견해 문화를 전수하게 했다.[12]

1649년 태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고종은 손챈감포에게 부마도위로 제수하고 서해군왕(西海郡王)에 봉하였다.[17] 손챈감포가 고종에게 충성을 표하고 태종의 영전에 열 다섯 종의 보석을 헌상하자 고종은 그를 빈왕(賓王)으로 진봉하고 비단 3천 필을 하사했다.[17] 649년 손챈감포가 병사한 뒤에도 공주는 당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토번에 남았다. 680년 문성공주가 세상을 떠나자 토번은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고 그녀를 손챈감포의 묘에 합장시켰으며 이를 역사에 기록했다.[18] 문성공주는 한족과 티베트족의 우의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고 평가받고 있으며[12] 여전히 그녀에 관한 민가, 회곡 등이 남아 있다. 현대로는 문성공주를 타라의 화신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현재 포탈라 궁 내부의 법왕동(法王洞)에는 손챈감포, 가르통첸과 함께 문성공주의 채색 조각상이 남아 있으며,[19] 대소사에는 공주가 가져온 석가모니 불상 외에도 손챈감포와 문성공주의 조각상이 있다.[13]

일화[편집]

문성공주가 시집갈 때 태종은 그녀에게 고향이 그리워지면 보라고 일월보경(日月寶鏡)을 하사했다. 토번으로 가던 도중 츠링산(赤嶺山) 근방에서 고향 생각이 난 공주는 일월보경을 꺼내게 했는데 대의를 생각하여 보경을 보지 않고 산 아래에 던져 깨뜨렸다. 후세 사람들의 공주를 기리기 위해 산의 이름을 르웨산(日月山)이라고 바꾸었다.[20]

각주[편집]

  1. 왕번강, 《여인들의 중국사》, 구서인 역, 김영사, 2008, p.162, ISBN 978-89-349-2849-2
  2. 왕번강, p.163
  3. 허청웨이, 《중국을 말한다 9》, 김동휘 역, 신원문화사, 2008, p.165, ISBN 978-89-359-1448-7
  4. 왕번강, p.160
  5. 왕번강, p.164
  6. 우더신, 《한 권으로 읽는 불교》, 주호찬 역, 산책자, 2008, p.390, ISBN 978-89-01-07926-4
  7. 루링, 《중국 여성》, 이은미 역, 시그마북스, 2008, p.165, ISBN 978-89-8445-304-3
  8. 허청웨이, p.166
  9. 왕번강, p.165
  10. 박덕규, 《중국역사이야기 2》, 일송북, 2008, p.658, ISBN 978-89-5732-075-4
  11. 왕번강, p.168
  12. 중국사학회, 《중국역사박물관 5》, 강영매 역, 범우사, 2004, p.21, ISBN 978-89-08-04303-9
  13. 위안싱페이, 《중국문명대시야 2》, 장연 역, 김영사, 2007, p.318, ISBN 978-89-349-2737-2
  14. 왕번강, p.168
  15. 왕번강, p.169
  16. 위안싱페이, p.313
  17. 왕번강, p.170
  18. 위안싱페이, p.314
  19. 위안싱페이, p.310
  20. 위안싱페이, p.316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