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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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高柔, 174년 ~ 263년)는 중국 후한 말 ~ (魏)의 정치가로, 자는 문혜(文惠)이며 연주(兗州) 진류군(陳留郡) 어현(圉縣) 사람이다.

생애[편집]

원래 진류에서 살았으나, 원소(袁紹)를 섬긴 7촌 족숙 고간(高幹)의 초청에 응하여 일족을 이끌고 병주(幷州)로 가 그에게 몸을 의탁하였다. 당시 고유의 부친인 고정(高靖)은 촉군도위(蜀郡都尉)였는데, 부친이 촉(蜀)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고유는 3년에 걸쳐 익주(益州)로 가 부친의 시신을 모셔왔다.

조조(曹操)가 원씨(袁氏)의 세력을 흡수한 후, 고유는 관현장(菅縣長)에 임명되어 치적을 쌓았다. 고간에 조조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고유는 고간을 따르지 않고 조조에게 갔다. 조조는 어떻게든 고유를 추궁하여 죽이고자 자간령사(刺奸令史)에 임명하였으나, 고유가 직무를 훌륭히 수행하였기 때문에 승상창조속(丞相倉曹屬)에 임명하였다.

그 후 고유는 상서랑(尙書郞)에 임명되었고, 이후 승상이조속(丞相理曹屬) · 영천태수(潁川太守) · 승상법조연(丞相法曹掾)을 역임하였다.

건안(建安) 25년(220년), 문제(文帝)가 (魏)의 제위에 올랐다. 이때 고유는 치서시어사(治書侍御史)에 임명되었고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다.

황초(黃初) 4년(223년)에는 정위(廷尉)로 승진하였다.

명제(明帝) 즉위 시에는 연수정후(延壽亭侯)에 봉해졌으며, 정시(正始) 7년(246년)에는 태상(太常)이 되었고 10일 후에는 사공(司空)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사도(司徒)로 전임하였다.

가평(嘉平) 원년(249년), 사마의(司馬懿)가 조상(曹爽)을 숙청했을 때 고유는 황태후의 조칙으로 가절행대장군사(假節行大將軍事)에 임명되었고, 조상의 진영을 점거하는 공적을 세워 만세향후(萬歲鄕侯)에 봉해졌다. 조모(曹髦)가 즉위하였을 때는 안국후(安國侯)에 봉해졌으며, 태위(太尉)에 임명되었다. 조환(曹奐)이 즉위하였을 때는 식읍이 더해저 4천 호에 이르렀다.

경원(景元) 4년(263년), 9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고 손자 고혼(高渾)이 뒤를 이었다.

고유의 친족관계[편집]

고간.png

관련 인물[편집]

고간

전 임
조엄
조위의 사공
245년 8월 19일 ~ 248년 4월
후 임
왕릉
전 임
위진
조위의 사도
248년 4월 ~ 256년 9월
후 임
정충
전 임
사마부
조위의 태위
256년 9월 ~ 263년 9월
후 임
등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