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간 (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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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간(高幹, ? ~ 206년 3월)은 중국 후한 말의 무장으로, 원재(元才)[1]이며 연주(兗州) 진류군(陳留郡) 어현(圉縣) 사람이다.

생애[편집]

이름 고간(高幹)
시대 후한
생몰  ? ~ 206년(건안 11년) 3월
원재(元才)[1]
본관 · 출신 연주 진류군 어현
관직 병주자사(幷州刺史)
또는 병주목(幷州牧)〔원소〕
작위
소속 원소원상조조 → 독립

원소의 밑에서 병주자사(幷州刺史)를 지냈다[2].

초평(初平) 2년(191년), 순심(荀諶) · 신평(辛評) · 곽도(郭圖) · 장도(張導)와 함께 원소에게서 세객으로 파견되어 기주를 다스리던 한복(韓馥)을 협박했다. 한복은 반대의견을 무릅쓰고 기주를 내주었다. 194년에는 7촌 조카[3] 고유(高柔)를 불러 하북으로 오게 하였고, 이후 원소는 그를 병주자사(幷州刺史)에 임명하었다.

건안(建安) 7년(202년) 원소가 죽고 원상(袁尙)이 뒤를 이은 후 조조(曹操)가 공격해 왔다. 원상은 자신의 부하 곽원(郭援)을 보내 하동(河東)을 공격하게 하고, 남흉노(南匈奴) 선우(單于) 난제호주천(欒提呼廚泉)과 고간으로 하여금 지원하게 했다. 그러나 곽원종요(鐘繇)에게 패해 죽고, 호주천이 조조군에게 항복했기 때문에 병주로 돌아왔다.

건안 9년(204년), 원상조조에게 패하자 원상에게서 고간의 감찰역으로 파견되어있던 견초(牽招)는 원상을 도울 것을 권하지만, 고간은 원상의 위기를 틈타 자립을 계획하고 있었으므로 오히려 은밀히 견초를 죽이려고 계획한다. 이를 알아챈 견초는 황급히 달아난다. 심배(審配)가 지키던 (鄴)이 함락당할 때, 고간 역시 독자적으로 업을 공격해 함락시키려고 획책했으나 업성 내부에서의 내응이 탄로나 내응자들이 철저히 주살되었다. 조조와의 정면 대결을 피했던 고간은 그대로 조조에게 항복하였다. 조조는 항복을 받아들이고 예전처럼 병주를 다스리게 했다. 그러나 원상원희(袁熙)가 오환(烏丸)으로 달아난 후 조조의 시선이 오환에게 쏠리자, 그 틈을 타 이듬해 10월에 반기를 들고 호관(壺關)을 지켰다. 또 하동의 관리 위고(衛固)와 내통하여 하동을 장악하려 하였으며, 조조가 보낸 하동태수 두기(杜畿)를 공격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건안 11년(206년) 1월, 조조가 직접 공격해 오자, 고간은 부하에게 호관을 지키게 하며, 직접 흉노로 가 호주천에게 구원을 청했으나 거절당했다. 3월에 호관이 함락당하자 남쪽으로 달아나던 중 상락도위(上洛都尉) 왕염(王琰)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했다.

고간에 대한 기록[편집]

사승(謝承)의 《후한서(後漢書)》에 고간의 열전이 있었으나, 현재는 유실되어 주석으로 인용된 극히 일부분밖에 전해지지 않는다.[4]

범엽(范曄)의 후한서에 의하면 고간은 본디 명성을 얻는 것을 귀하게 여겼으므로 각지의 선비들과 어울려 사귀었고 전란으로 인해 생긴 유사들을 불러 모았는데, 이로 인해 고간에게 수많은 선비들이 귀의하였다. 후한의 명사 중장통(仲長統)은 병주를 지날 때 고간을 만나 후한 대접을 받았다. 중장통은 고간이 거대한 포부가 있으되 거대한 재능은 없으며 선비를 경애하면서도 스스로를 높이 여기는 성품 때문에 사람을 가려 쓸 줄 모르는 점에 대해 충고하였으나 자신의 재능을 과신하고 있던 고간은 귀담아듣지 않았다고 한다.

《삼국지연의》 속 고간[편집]

사서에서는 자립을 노리며 원상의 몰락을 방관하며 은밀히 모략을 꾸미는 등 야심가다운 다소 음험한 면모가 보이지만 《삼국지연의》에서는 대체로 평범한 인물로 묘사된다.

원소가 창정(倉亭)에서 조조와 싸울 때 병주의 군사 6만 명을 이끌고 합류했다. 패주하는 원소를 호위하다가 화살을 맞았으며, 여양(黎陽)에서도 원담(袁譚)과 원상을 도와 조조군과 싸웠다. 조조에게 항복했던 일은 나와 있지 않으며, 호관을 지키던 중 조조에게 항복한 장수 여광(呂曠)과 여상(呂翔)의 거짓 귀순에 속아 야습을 시도했다가 패하고 관을 빼앗기는 것으로 나온다.

고간을 섬긴 사람들[편집]

고간의 친족관계[편집]

고간.png

관련 인물[편집]

고유

주석[편집]

  1. 사승(謝承): 《후한서(後漢書)》
  2. 병주목(幷州牧)이라 적힌 문헌도 있다.
  3. 《삼국지(三國志)》에서는 고간이 고유의 종형이라고 하였으나, 고간의 조부는 고유의 증조부 고식(高式)의 동생이므로 고간은 고유의 7촌 족숙이다.
  4. "고간의 자는 원재이다. 재능과 뜻이 원대했고, 문무 모두 뛰어났다. 부친 고궁(高躬)은 촉군태수(蜀郡太守)를 지냈고, 조부 고사(高賜)는 사례교위(司隷校尉)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