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HanKooKin/유대민족주의·시오니즘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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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대·식민실증주의자들 일명 '매식자'들은 재야사학자와 비주류사학을 이탈리아파시스트(파시즘)나 독일의 나치스트(나치즘)로 몰아대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민족을 찾는 일이 2차세계대전을 일으킨 무솔리니히틀러쯤으로 생각하다니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파시즘이 뭔가요? 1919년 이탈리아 무솔리니가 주장하고 조직한 국수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또는 반공적인 정치적 주의와 운동을 말하는 건가요? 파시즘이란 이탈리아어인 파쇼(fascio)에서 나온 말이란 걸 잘알텐데 이게 가당하기나 한 비교입니까? 잃어버린 역사를 찾는 일이 어떻게 파시즘으로 비교할 수 있는지 그 정신적 장애같은 사고가 더 의심스럽습니다.

나치즘히틀러를 당수로 하여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정권을 장악한 독일파시즘 정당이니까 결국 재야사학자가 파시스트라는 얘기입니다. 왜 이 자들은 이런 비교밖에 못하는지 덜떨어져도 한참 덜떨어진 자들이 분명합니다. 시오니즘을 찾는 이스라엘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같은 민족주의인데 느낌이 다른가요? 고대 유대인들이 고국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 유대민족주의 운동이라 이들의 눈에는 차원이 다르겠지요. 바로 매국식민실증주의자들 일명 '매식자'들의 못된 짓거리 중에 하나인 폄하·매도하는 작태들입니다. 이것이 위키백과 곳곳에 독버섯처럼 편집·수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있듯이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유대인 출신의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년 3월 14일 ~ 1955년 4월 18일)도 평화주의자였지만 유대민족주의·시오니즘운동의 지지자였습니다. 또한 유대민족처럼 민족국가를 찾는 것이 지탄받아야할 일도 아니지요. 유대민족의 대단한 민족성은 이미 정평이 나있기에 여기서 더 이상의 언급은 피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북부 이스라엘왕국은 남부 유다 왕국 멸망 보다 130여년 전인 기원전 722년경에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남부 유다왕국은 기원전 587년경에 바벨론의 침략으로 멸망되어 포로 되어 갔다가 기원전 539년경에 포로에서 풀려나기 시작하였지요.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으로 새로운 이스라엘을 만들려고 했으나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통치하에 놓여졌고 2천년을 넘어선 나라없는 민족의 신세가 되었던 것이 아닌가요? 그래서 19세기부터 유대인들의 새로운 시오니즘이 생겨나게 되었던거지요. 오랜 유랑생활에서 스스로 민족의 자각심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옛땅으로 알려진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국가를 건설하자는 운동, 생각만해도 너무나 무리한 꿈같은 목표를 세웠던 것입니다. 이게 바로 시오니즘이라는 유대민족주의 운동의 발로였습니다. 무려 '2천년동안 잊혀진 역사와 잃어버린 고토'를 전설같은 이야기와 성서에 기록된 내용만을 가지고 찾고자 하였으니 어떻게 보면 억지같은 주장을 한다고 볼 수도 있었는데 그 꿈을 실현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그 민족성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세계인들이 이스라엘을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1910년 한일합방으로 나라를 잃었고 갖은 고욕을 겪으며 끝내 해방을 맞았는데 이제 해방이 된지 100년도 안되어 동족의 역사를 폄하하고 훼손하는 자들이 생겨나 인터넷 곳곳에 악취를 풍기고 있습니다. 신사대·식민실증주의자들 일명 '매식자'라는 이들의 머리속이 정말 의심스럽습니다. 스스로는 강력하게 부인하지만 바로 이것이 중국의 변방사만을 배워온 열등의식의 발로중에 하나라는 것이고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없이 습득된 암기식 수험 공부법의 폐해중에 하나입니다.

2천년이나 넘는 잊혀진 역사를 찾아 잃어버린 고토를 헤매던 유대인과 잊혀진 역사를 찾기위해 현재 중국땅을 헤매는 한국인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요? 분명히 한민족이 만주벌판과 요동땅에 살았던 것이 중국역사에도 뚜렷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국수주의이고 파시즘이라니 말이나 되는 얘기입니까? 고조선부여는 어디에 있었고 고구려발해는 어디에 존재했던 나라인가요? 그곳에 출토되고 있는 유물들이 모두 중국인들의 유물이라는 얘기입니까? 참으로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같습니다.

그저 들어온 것이 극우주의자나 파시즘, 나치즘이니 동족을 그런 사고로 몰아대는 겁니다. 어떤 때는 1901년에 결성되었다는 흑룡회(黑龍會)라는 일본 제국주의에서의 국가주의 우익 조직까지 들먹이는 미친 애도 있더군요. 그래서 나오는 결론이 역사의 반푼이밖에 안되는 것들이 줏어 들어온 것을 가지고 이리저리 옮겨 나열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위키백과에서의 더이상 대응은 이들의 노리개감이 되어간다는 느낌이 들고 일고의 가치도 없는 글들에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접고자 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대한민국의 역사에 선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사시는 모든 분들의 건승을 빕니다. (아래의 글은 어줍지 않은 생각으로 '신화의 본질'을 얘기한 매식자가 있어 옮겨봅니다. 이들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읽혀지니까요. 결국 '신화의 본질'도 모르고 위키백과의 편집에 참여하고 있다는 거지요. 더구나 자신의 조상을 허구나 거짓으로 매도하면서 민족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 세계 역사학계의 추세라네요. 이스라엘 민족이나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랑으로 여겨 인기있는 이름이 아브라함이라는 것을 모르는지 미국인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아브라함 링컨의 미국식 발음)이 보면 이름도 바꿀 것같습니다. 그래서 이게 그럴듯한 말이지만 전혀 이치에도 맞지 않은 허무맹랑한 주장이라는 것입니다. 그저 한국에 이런 매식자들이 있다는 것이 치욕스러울뿐 더 이상 할말이 없습니다.)

유대인들도 930살을 살았다는 아담이나 무드셀라 같은 이들은 실존인물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게다가 역사학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아예 아담이라는 것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아브라함 역시 신화적인 조상으로만 파악할 뿐, 실존 인물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이는 중국이나 일본, 세계사 어느 영역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 어느 역사학자도 로마가 정말 트로이의 아이아네스의 후손이라던가 로물루스와 레물루스가 실존인물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중국은 최근들어 지극히 정치적인 이유로 신화 속의 인물인 황제 헌원이나 신농, 복희 등을 실존인물 또는 실존했던 부족 수준으로 만들려 하고 있고, 그로 인해 세계 역사학계에서 말 그대로 병신 취급을 당하고 있지요. 송호정 교수가 하고 있는 단군신화에 대한 연구도 이러한 세계 역사학계의 흐름과 하등 다를바가 없습니다. 고조선이라는 국가의 지배층이 단군신화라는 것을 꾸며냈고, 이는 고조선의 정체성, 더 나아가 한민족의 정체성을 구축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것이 신화의 본질이지요. - 위키백과에 기생하면서 상고사에 대한 문서들을 엉터리 내용으로 만들어가는 어느 덜떨어진 매식자의 궤변(Sophistry, sophism, 詭辯)

* 역사상의 허구로 꾸며진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이나 그의 아들 솔로몬은 민족의 구심점을 만들기 위한 소설속의 창조물인가요? 그 소설같은 내용을 송호정 교수는 경건한 마음으로 왜 일요일마다 찾아다니며 믿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또한 자신의 종교가 인정되기를 원하다면 다른 사람들이 경건하게 믿는 것도 인정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지요. 실증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네거티브로 보고 증명할 수 있는 것을 포지티브로 본다면 그런 규칙의 적용은 공정하게 하여야 합리적이 내용이 되는 거구요. 어느 역사서에 허구의 내용이나 거짓과 꾸밈의 신화를 그럴 듯하게 소개하던가요? 단군이나 아브라함처럼 실존과 신화가 명확하지 않다면 그런 단정지을 수 있는 어휘같은 '허구나 꾸밈'이란 말을 함부로 쓸 수가 없는 겁니다. 원래 신화의 본질은 그 실증할 수 없는 불확실성 때문에 더욱 단정짓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정체성도 부정하는 오류를 이들은 주장하고 있다는 거지요. 허구의 하나님이나 꾸며진 조상 아브라함이나 환인환웅 그리고 단군 왕검까지 동일한 눈으로 보아야 이들의 주장은 공정성을 인정받을 것입니다. 바로 이게 성서도 신화의 일부라는 인식이 필요한 것이고 '신화의 본질'을 찾는 첫걸음일 것입니다.

* 같은 신화속의 인물이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유감스럽게도 신사대·식민실증주의에 빠져있는 몽매인들과 일부 기독교인들 위주로 단군 왕검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 부족장 아브라함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 큰 차이입니다. 더구나 삼국유사의 일연스님이 인용하였듯이 중국의 역사서인 위지(魏誌)에도 기록되어 있는 인물을 신화속의 인물로만 치부하면서 역사상의 허구로 인식한다는 것이 큰 문제일 것입니다. 결국 잘못된 역사인식의 부정적인 시각으로 일관하기에 신화의 본질도 모른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진정한 한국인으로 살고싶은 한국인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20세기 이후 역사학계에서 자주 언급된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Edward Hallett Carr, 1892 ~ 1982)는 주요 저서 《새로운 사회 The New Society》(1951)에서 소비에트형과는 다른, 자유와 평등을 기조로 하는 사회주의의 실현을 시사하는 한편, 아시아의 민주주의운동을 유럽인들도 이해하여야 한다고 역설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역사란 무엇인가? What is History?》(1961)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했듯이 과거와 현재는 시간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이어져 지속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논리의 글을 한국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독사신론ㆍ1908》을 비롯한 많은 역사 관련 서적을 저술하여 근대민족사학의 기초를 확립했던 단재 신채호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has no future.)"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이것은 '타자에게 말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철저하게 반문해야할 명제'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특히 신채호중국인고구려의 관계에 잘 적용시켰습니다. 그의 저서(독사신론)에 의하면 “지나족이 우리 상고사에서의 신성한 부여족의 영원한 교전 상대였으며, 그 아(我)와 피(彼) 투쟁사의 꽃은 바로 고구려지나족 사이의 전쟁들이었다”라고 밝혔습니다. 신채호고구려지나인들의 ‘사투의 역사’에 주목하고 광개토대왕을지문덕을 한국사상 최고 영웅의 반열에 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즉, 만주지역의 주변정세에서 만들어지는 역사에 대한 통찰로 어떤 전쟁들이 끊임없이 발생할 수 있었는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연구(대화)에서 영웅들의 행적을 찾았던 것입니다.

'터무니없이 거짓되고 실속이 없음'을 뜻하는 말로 '허무맹랑하다'라고 표현합니다. 만일 '단군신화'를 '꾸며진 신화'나 '역사상 허구'로 주장하고자 한다면 우선 자신의 믿고 있는 종교속의 신화를 '꾸며진 신화'나 '역사상 허구'로 말해야합니다. 단군과 한울님을 믿고 있는 천도교를 비롯하여 민족종교라 불리우는 많은 종교신앙으로 모시고 있고 유교, 불교, 원불교에서 조상으로 인정하여 모시고 있습니다. 같은 기독교 계열의 가톨릭(천주교)에서 조차 조상으로 인정하는 현실에서 '꾸며진 신화'나 '역사상 허구'로 매도하는 것은 종교의 모독입니다.(송호정 교수의 말처럼 학문을 하는 학자로 얘기한다는 이러한 이론은 그래서 이율배반적인 주장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성서신화 속의 내용은 '꾸며진 신화'나 '역사상 허구'로 보지 않기에 신앙의 대상으로 믿는 것이라는 '편협된 말장난'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성서의 신화는 종교로 분리하여 얘기하고 단군신화는 실증되지 않는 역사로 분류하여 폄훼하는 이중적인 잣대가 잘못된 시각이라는 것입니다. 아니 환웅천황에서 시작된 개천절의 의미도 제대로 모르는 모습이기에 기본지식도 없이 상고사 편집에 참여한다는 것이고 이것이 송교수와 추종무리들의 역사를 보는 눈이 공정해야 할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역사를 평가하는 여러가지 방법 중에서 '실증할 수 있는 역사만을 실증적 시각'으로 보고 문헌이나 유물이 소각이나 유실, 훼손되어 실증할 수 없는 역사는 실증주의, 유물론적 시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인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것이지요. 현재 겪었거나 겪고 있는 역사도 제대로 모르는데 4,000 ~ 7,000년 전의 역사를 허구니 실증이니 어떻게 단정할 수 있다는 것인지 그래서 이러한 이론은 전혀 '합리적인 주장'이 될 수 없는 '허무맹랑한 말장난'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송교수와 추종무리들에게 진정으로 묻고 싶습니다. 아무리 종교의 자유라지만 성서신화 속의 조상은 신앙처럼 믿으면서 자신의 조상은 '역사상의 허구'로 매도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라 생각합니까? 같은 신화의 내용을 어떻게 이같이 다르게 볼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이게 바로 잘못된 사관의 역사인식이라는 것입니다. 한번 본질을 꿰뚫는 통찰로 살펴보십시요. 우리땅에 살던 조상들의 풍습이나 습관, 지혜들이 모여 이루고 있다가 어떤 계충이나 장인들이 기록물로 남겨두게 되었는데 전쟁이나 재난으로 훼손이나 망실, 또는 소각, 약탈, 분실 등을 당했다면 무엇으로 다시 정립할 수 있을까요? 아니 세월이 많이 흘러 그 시대의 역사를 알 수 없는데 어떻게 복구가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이웃 나라에 쓰여 있는 역사물 중 우리의 조상에 대한 짧은 기록을 참조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들을 외면하고 사료불충분으로 허접으로만 몰고가려는 강단사학의 매국식민사관을 개탄과 함께 우려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환단고기는 아직도 쓸데없이 폄하논란이 계속되면서 위서론으로 매도하기에 더욱 귀중한 역사책 하나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터넷에 올려져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는 다음 내용을 이곳에 옮겨봅니다.

환단고기 위서론을 주장하는 자들에게 한말씀 드립니다.

한사람이 쓴 작품이 아닌데 진서가 어디 있고 위서가 어디 있습니까? 위서니 진서니 하는 말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역사에 관련 된 책들을 작품으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위작, 위품, 진품으로 구별하는 것은 소설, 그림 같이 작가가 분명한 것은 그렇게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보는 시각에 따라 씌여진 글들을 위서라는 해괴한 말로 구분하려고 하니 논란이 되는 것입니다.

환단고기는 신라, 고려 시기에 그 옛날부터 전해지던 역사에 대한 기록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이유립이나 계연수는 후대에 역사서를 모아 편찬한 사람들입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견해가 나올 수는 있지만 위서로 매도 해서는 안됩니다. 성서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기록물이었듯 오직 환단고기는 한민족의 역사기록물로 보면 됩니다. 특히 구약성서는 상고사 이전부터 전해지던 역사 얘기들을 어느 시점에서 파피루스라는 종이 대용품에 기록해 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환단고기도 상고사 이전의 전해지던 역사 얘기를 신라와 고려시대에 기록하여 남겨졌고 근세에 와서 우연히 발견되어 이 시대에 맞게 편찬한 기록물중에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