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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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디아국
பாண்டியதேசம்
기원전 4세기 ~ 서기 1345년
국기
ImperioPandya1251-1283AD.svg
수도마두라이
정치
정부 형태군주제
벤탄
기원전 270년경
560년 ~ 590년
1251년 ~ 1268년

네둔질리얀 1세
카둔군
자타바르만 순다라 1세
국성판디아
지리
지역타밀라캄
인문
공용어타밀어
민족타밀인

종교
국교힌두교
주신시바, 미나크시
기타
현재 국가인도의 기 인도
인도의 역사
Red Fort in Delhi 03-2016 img3.jpg

판디아국(타밀어: பாண்டியதேசம் 판티아데캄), 또는 판디아(타밀어: பாண்டியர் 판티아)는 체라, 촐라와 함께 타밀라캄에 존재하던 타밀계 왕국이다.

약 기원전 4세기부터 마두라이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기원전 3세기부터 같은 타밀계 왕조인 촐라, 체라남인도의 지배권을 놓고 대립하다 기원후 3세기 경 새로이 탄생한 타밀계 왕조인 칼라브라 왕국에 의해 복속되면서 일시적으로 멸망하였다.[1]

그러다 6세기 칼라브라 왕국을 물리친 카둔곤 왕에 의해 다시 부활한 판디아 왕국은 영토를 꾸준히 확장하고 세력을 넓혀 나갔지만 9세기 무렵부터 점차 성장하던 촐라 제국과 대립하던 판디아 왕조는 10세기 무렵 영토 전역을 촐라 제국에 점령당하며 이후 한 동안 촐라의 지배를 받았다.

시간이 흘러 1251년 자타바르만 순다라 판디얀 1세에 의해 다시 부흥한 판디아 왕국은 1279년에 촐라 제국을 멸망시켰으며 이후 판디아 고다바리 강의 근처의 텔루구 국가로부터 스리랑카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그러나 13세기부터 남인도의 중소 왕국 및 북인도 이슬람 세력과의 충돌로 판디아 왕국은 차즘 쇠락하였으며 결국 1345년에 멸망하였다.

역사[편집]

경제[편집]

판디아 왕조의 동전

판디아에서 가장 번창하던 산업은 진주 어장 산업으로, 항구도시 코카이는 진주 무역의 중심지였다. 그리스와 이집트 항해자들의 서면 기록 중 에리트레이안해의 페리푸스는 "인도에서 소비되지 않는 질이 낮은 진주는 아폴로가와 오마나의 시장에서 대량으로 수출된다"고 언급하고 있다.[2] 타밀지역에서 사용하지 않던 질 낮은 진주조차도 외국 시장에서 매우 큰 수요를 보였던 것이다. 진주는 아주 질좋은 모슬린 천으로 포장되어서 수출되었다. 로마 제국이 인도로부터 수입한 가장 비싼 제품은 만나르 만에서 나온 진주였으며 판디아 왕국의 진주도 북인도 왕국에서 수요가 있었다.[3] 왕실의 전차들을 끌고 가는 말들조차 진주로 꾸며져 있었으며, 진주의 사용량이 워낙 많아 진주의 공급이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진주 어장에 대한 문헌상의 언급은 바다에 뛰어들고 상어의 공격을 피한 어부들이 어떻게 오른쪽으로 휘어진 껍질을 들고 소리나는 껍데기를 불었는지 등이 나타나 있다.[4] 메가스테네스는 판디아의 진주 어장에 대해 보고했는데, 판디아 제국이 진주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얻었음을 알 수 있다.[5]

판디아 왕국의 초기 동전은 구리동전에 은으로 된 펀치 마크가 찍혀진 형태였다.[6] 이후 판디아 통치자들이 새겨진 몇 개의 금화도 발굴되었으며, 이 동전들은 물고기 이미지 역시 하나 또는 둘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처럼 물고기 기호를 가진 동전은 '코단다라만'과 '칸치 발랑금 페루말'이라고 불렸다. 이 외에도, '엘람탈라이야남'은 한쪽 면에는 서 있는 왕이 있고 다른 한쪽에 물고기가 있는 동전들을 뜻하며, '코네니라얀'은 황소가 있는 동전, '칼리가라만'은 발 한 쌍을 그린 동전을 뜻한다.

문학[편집]

타밀계 학자와 시인들이 모여 토론과 문학회를 여는 아카데미인 상감을 바탕으로 하는 상감 문학이 발달하였으며, 그 중 '탈라이얄랑가의 승리자'인 네둔젤리얀 2세와 '희생의 무두쿠디미 페루발루디'는 특별하게 언급되고 있다. 전통 타밀 시 형태인 아카누루와 푸라누루에서 발견되는 몇 편의 짧은 시 외에도, 상감문학 중 판디아 왕국의 사회와 상업 활동을 엿볼 수 있는 두 개의 주요 작품인 마투라이칸키와 넷발트바타가 있다. 이 작품들에서 작가 만쿠디 마루타나르는 그의 후원자인 네둔체지얀 왕을 코카이의 영주로, 남부 파라다바의 군벌로 언급하고 있다. 실라파티카람은 판디아 왕국의 상징이 물고기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건축[편집]

판디아 왕조때 지어진 힌두교 사원 중 하나인 메나크시 암만 사원

바위를 잘라 사원을 건축한 것은 판디아 건축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으로 타밀나두의 티루치라팔리 지역에 판디아 왕조때 지어진 작은 사원들이 무리지어 건축되어 있으며, 시바 사원은 성우 난디의 조형물을 가지고 있다. 판디아 왕조 후기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비마나(탑 형태로 지어진 힌두교 사원)의 고푸람(사원의 직사각형 입구와 문)이 개발되었다. 마두라이의 메나크시 암만 사원과 티루넬벨리의 넬리아파르 사원은 판디아 왕조 시절에 지어졌다.[7]

각주[편집]

  1. Romila Thapar (2003). The Penguin History of Early India: From the Origins to AD 1300. Penguin Books India. ISBN 978-0-14-302989-2.
  2. Venkata Subramanian, T. K. (1988). Environment and Urbanisation in Early Tamilakam. Issue 92 of Tamil_p Palkalaik Kal_aka ve?iyi?u. Tamil University. p. 55. ISBN 978-81-7090-110-5.
  3. https://books.google.co.kr/books?id=ERq-OCn2cloC&pg=PA189&ots=Fp5loyJrzM&dq=musiri+pandyas&sig=aNcEToGTkngMTlXNVQAYgL95TTc&redir_esc=y#v=onepage&q=musiri%20pandyas&f=false
  4. https://books.google.co.kr/books?id=ERq-OCn2cloC&pg=PA189&ots=Fp5loyJrzM&dq=musiri+pandyas&sig=aNcEToGTkngMTlXNVQAYgL95TTc&redir_esc=y#v=onepage&q=musiri%20pandyas&f=false
  5. Kulke and Rothermund, p99, p107
  6. The Journal of the Numismatic Society of India. Numismatic Society of India. 2005. p. 67.
  7. https://books.google.no/books?id=6HAeAgAAQBAJ&pg=PA470&dq=meenakshi+temple+pandya&hl=no&sa=X&ved=0ahUKEwjr0v67sbXZAhVOCewKHVTZA-kQ6AEIKDAA#v=onepage&q=meenakshi%20temple%20pandya&f=false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