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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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국
சோழர்நாடு

기원전 3세기 ~ 서기 1279년
국기
Rajendra map new.svg
수도우라이유르
(기원전 3세기 ~ 서기 1세기)
카베리파타남
(1세기 ~ 3세기)
탄자부르
(848년 ~ 1025년)
강가이콘다 촐라푸람
(1025년 ~ 1279년)
정치
정부 형태전제군주제
벤탄(왕)
120년 ~ 210년
차크라바르티갈(황제)
850년 ~ 870년
985년 ~ 1014년
1014년 ~ 1044년
1246년 ~ 1279년

카리칼라

비자얄라야
라자라자 1세
라젠드라 1세
라젠드라 3세
국성촐라
역사
 • 건국기원전 3세기
 • 전기기원전 3세기 ~ 250년
 • 중기848년 ~ 1070년
 • 후기1070년 ~ 1279년
 • 멸망1279년
지리
위치타밀라캄
인문
공용어타밀어, 산스크리트어[1]
공용문자타밀 문자
민족타밀족

종교
국교힌두교
기타 종교불교, 자이나교
주신시바, 비슈누
기타
현재 국가인도의 기 인도
스리랑카의 기 스리랑카
몰디브의 기 몰디브
인도네시아의 기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기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의 기 싱가포르
인도의 역사
भारत का इतिहास
Red Fort in Delhi 03-2016 img3.jpg

촐라국(타밀어: சோழர்நாடு 촐레나두), 약칭 촐라(타밀어: சோழர் 촐레)는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 1279년까지 남인도타밀라캄 지역에 존재하던 타밀계 왕국으로, 체라, 판디아와 함께 타밀 3왕국 중 하나인 국가이다.

초기에는 체라, 판디아와 함께 타밀라캄의 패권을 겨루었으며 카리칼라때 전성기를 맞이한 후 서기 3세기경에 쇠퇴하였으나, 9세기 후반부터 비자얄라야에 의해 촐라 제국(타밀어: சோழ சாம்ராஜ்யம் 촐레 삼라젬)으로서 다시 부활하여 13세기 초까지 남아시아 남부에서 동남아시아까지 세력을 떨치는 해상 제국으로서 번영하였다.[2] 라젠드라 1세에 의한 갠지스 원정과 스리비자야 정벌은 촐라 제국의 대표적인 정복 활동이었으며,[3] 특히 스리비자야의 막강한 해군을 격파하는 등 촐라 제국은 당시 남아시아·동남아시아에서 최강의 해상 전력을 지니고 있었다. 1010년부터 1153년까지, 촐라 제국은 남쪽으로는 몰디브스리랑카, 북쪽으로는 안드라프라데시까지 영역을 확장하였는데,[4] 라자라자 1세는 스리랑카 섬아누라다푸라 왕국인도양몰디브 제도를 정벌하였으며, 라젠드라 1세는 갠지스강 유역과 동남아시아스리비자야를 정벌하였다.[5] 그러나 1251년부터 판디아 왕국이 부흥하기 시작하며 촐라 제국은 점점 쇠퇴하였고, 결국 1279년에 판디아 왕국에 의해 멸망되면서 촐라 제국은 막을 내렸다.[6]

촐라 시대에 타밀의 예술, 종교, 음악과 문학 등은 탁월한 발전을 이룩했다.[7] 팔라바 왕국 초기에 정형화되기 시작한 타밀 문화를 발전시켜 형성된 촐라 문화는 지금의 타밀 문화의 고유한 특징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8] 팔라바식 성전 건축의 전통을 유지해 나갔으며 드라비다식 사원 형태 설계에 큰 기여를 하였다.[9] 웅장한 사원 형태의 기념비적인 건축물과 석조와 청동으로 제작한 조각품들은 인도 역사 상 실현된 적 없는 기교에 이르렀다. 타밀 문학 또한 촐라 제국 시대에 황금기를 맞이하였는데, 대부분의 문헌은 시 형태로 서술되었으며 수많은 문인과 학자가 왕의 보호 아래 자신들의 학문 연구에 몰두했다. 촐라 제국은 중국의 여러 제국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지역 문화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10] 촐라 제국의 예술 학교가 동남아시아로 퍼지며 촐라식 힌두 문화가 동남아시아에 전파되었다.[11][10]

역사[편집]

전기 (기원전 3세기 ~ 서기 250년)[편집]

촐라의 기원을 신화적으로 설명한 고대 타밀어 문학상감 문학에 따르면 촐라는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가문인 수리야밤사의 후손으로 여겨지며,[12] 벨 벨 타다카이 페루비랄킬리라는 인물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전해진다. 역사적으로는 기원전 3세기경 타밀족 계통의 씨족인 촐라족이 인도 남부를 흐르는 카베리 강 유역에 우라이유르를 수도로 하여 촐라국을 세웠다. 촐라는 판디아, 체라와 함께 타밀라캄에 존재하던 3개의 군주국으로서,[13] 나머지 군주국인 판디아, 체라와는 사이가 좋지 않아 서로 자주 충돌하였다. 또한 초기 스리랑카의 역사에 대해 기록된 역사서인 마하밤사에 따르면 엘라란이라는 이름의 촐라 왕자가 기원전 205년부터 기원전 161년까지 아누라다푸라 왕국을 지배했다는 기록이 존재하는데,[14] 이를 보아 스리랑카섬에도 영향력을 떨치던 것으로 보인다.

전기 촐라의 전성기를 이끈 왕은 서기 120년부터 210년까지 재위했다고 전해지는 카리칼라 왕으로, 그는 서기 130년경 베니 전투에서 체라·판디아 연합군을 격파하였고 촐라국의 수도를 카베리파타남으로 천도하였으며, 아누라다푸라 왕국에서 잡아온 포로 1만 2천여명을 동원하여 카베리 강에 160km에 이르는 거대한 제방을 쌓아 관개농사를 짓도록 하는 등 전기 촐라를 크게 성장시켰는데, 당시 수도였던 카베리파타남에서 이 같은 거대한 부두의 유적이 발굴되면서 이곳이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카리칼라 왕 사후 촐라는 체라·판디아 연합군의 군세에 밀리며 점차 쇠퇴하였으며, 서기 250년경 판디아에 점령당하면서 전기 촐라는 막을 내리게 된다.

공위기 (3세기 ~ 848년)[편집]

상감 시대 말기인 서기 3세기에 새로이 출현한 타밀계 왕조인 칼라브라는 촐라를 비롯한 기존 타밀 국가들을 복속시키고 6세기까지 타밀라캄 지역을 통치하였으며, 비자얄라야에 의해 촐라 제국이 탄생할 때까지 촐라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15] 당시 촐라 왕조는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있었다. 서기 4세기 초 , 칼라브라의 왕인 아츄타 칼라팔란이 우크라푸람에서 카베리 강둑을 통치한 것으로 보이며 그의 치세 동안 촐라 영토의 지배권을 두고 칼라브라팔라바 사이에 경쟁이 있었다.

탄자부르 안팎에서 발견된 비문에 따르면, 6세기부터 9세기까지 3세기 동안 무타라이야르라는 이름의 왕조가 상감 시대 촐라의 영토에 속했던 탄자부르를 통치하였다.[16] 아마도 무야라이야르는 촐라가 쇠퇴하고 판디아팔라바가 서로 패권을 겨루는 틈을 타 세력을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 촐라는 수도인 우라이유르 부근을 다스리는 소국 신세였지만 왕조의 명성 자체는 여전했기 때문에 판디아팔라바 왕족들이 촐라 공주들과 결혼하기도 했으며, 팔라바 비문에서는 팔라바가 촐라 통치자들과 싸웠다는 내용이 존재하지만 비자얄라야 이전까지 촐라가 수도 우라이유르 인근의 옛 영토들을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17][18] 이처럼 칼라브라무타라이야르의 지배로 인해 촐라의 위세가 약화될려고 하자 촐라의 차리칼란 3세는 칼라브라와 무타라이야르를 촐라 영토에서 몰아내고 팔라바 왕 트릴로사나 팔라바를 물리침으로써 톤다이나두를 차지하였으나, 차리칼란 3세 사후인 서기 550년에 팔라바의 왕 심하비슈누에 의해 촐라는 팔라바의 지배하에 놓였다. 이후 한 동안 촐라 왕실은 자신들의 영토인 타밀나두 남부를 떠나 팔라바에 속한 타밀나두 북부와 안드라프라데시 남부로 이주하였다.

차리칼란 3세의 아들인 난디바르마 촐라벤카타말라이 북쪽의 카다파, 찬드라기리, 아난타푸르콜라르 지역과 벤카타말라이 남쪽의 칼라티, 넬로르, 티루파티, 치토르푼가누르 지역을 통치하였으며, 난디바르마 촐라의 후계자인 심하비슈누 촐라는 팔라바와 전쟁하였다. 그의 후계자들인 순다라난다 촐라타난자야 촐라팔라바국에 항복하였으며, 팔라바, 찰루키아, 동강가 출신의 공주와 결혼하였다. 또한 영토에 존재하던 숲을 벌목하고 넬로르, 치토르, 푼가누르티루파티와 같은 새로운 마을들을 건설하기도 하였다.

푼니야쿠마라 촐라의 치세에 촐라를 방문한 중국인 여행자 유얀 추황은 그들의 국가를 '술리에'라고 불렀고 촐라 차리칼란 왕조에 속했다고 언급한다. 아치나파야니는 그의 여행기에서 촐라 영토가 탄야 카다감에서 남서쪽으로 200 마일에 있고 둘레는 480석이며 수도는 2석이라고 언급한다.[19]

중기 (848년 ~ 1070년)[편집]

8세기경 촐라 지역은 팔라바 왕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이 지역의 토후이자 촐라 왕가의 후예인 비자얄라야가 848년에 탄자부르를 점령하고 수도로 삼은 후 팔라바 왕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면서 촐라 왕국이 다시 부활하였으며, 이후 촐라 제국(타밀어: சோழ சாம்ராஜ்யம்) 시대가 시작되었다.[20] 비자얄라야 사후 촐라의 황제로 즉위한 아디트야 1세는 팔라바 왕국과 중기 판디아 왕국을 정복함으로서 타밀라캄 지역을 사실상 통일하였고, 차기 촐라 황제인 파란타카 1세는 920년에 판디아의 수도인 마두라이를 점령하며 중기 판디아 왕국을 멸망시키고 925년에 스리랑카섬을 정벌함으로서 촐라의 남쪽 변방을 강화시켰으며, 949년에 라슈트라쿠타 왕국과 격돌하면서 벌어진 발랄라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타밀라캄 외의 다른 지역에도 확장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21]

라자라자 1세와 라젠드라 1세 시대는 촐라의 최전성기로서,[10] 이 시기의 촐라는 남쪽의 스리랑카섬몰디브 제도에서부터 북쪽의 갠지스강 유역, 동남아시아수마트라섬말레이반도까지 진출하였다. 라자라자 1세는 촐라 제국의 토지 측량을 실시하는 동시에 강에 댐 등의 시설 등을 건설하는 등 농업을 진흥시켰고, 무역 지원이나 광산 및 염전 시설들을 건설하는 등 촐라 제국의 내정에 힘썼다. 1010년에는 오늘날 남인도 지역의 대표적인 사원들 하나인 브리하디스와라 사원을 짓는 등 힌두교 지원에도 힘을 쏟았다.[22] 또한 당시 아라비아 상인들의 주요 거점인 몰디브 제도를 공격해 정복하였으며, 스리랑카섬아누라다푸라 왕국을 정벌해 수도인 아누라다푸라를 파괴하는 등 정복 활동에도 힘을 쏟았다.[23]

1014년부터 촐라 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라젠드라 1세는 1017년에 스리랑카섬아누라다푸라 왕국을 정복하였고, 1019년부터 1024년까지는 북쪽의 오디샤를 정복하고 벵골 지역의 팔라 제국을 물리침으로써 갠지스강 유역까지 진출하였으며,[24]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1025년 타밀나두 지역에 강가이콘다 촐라푸람이라는 도시를 건설한 후 촐라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삼았다.[25] 이후 라젠드라 1세는 해군을 동원해 동남아시아 지역의 스리비자야 해군을 무찔러 인도양 지역의 제해권을 장악하였는데,[26] 당시 기록에 의하면 스리비자야의 수도인 팔렘방을 비롯해 탐브라링가, 케다 등 스리비자야 도시 14곳이 촐라 제국에 의해 점령되거나 약탈당했다고 한다. 이후 11세기경 촐라 제국의 황제였던 비라라젠드라는 당시 데칸 서부 지역에 존재하던 서찰루키아를 크게 무찔렀으며,[27] 이로 인해 서찰루키아가 쇠퇴하며 세부나 왕국, 호이살라 제국 등이 새로 등장하는 결과를 낳았다.[28] 또한 비라라젠드라는 라젠드라 1세때처럼 또다시 스리위자야를 침공하여 케다를 약탈하는 등 여전히 동남아시아 지역을 영향을 끼쳤다.[29] 이렇듯 촐라 제국의 잦은 침공으로 스리위자야의 세력이 크게 약화되면서 기존의 말레이 상인 대신 촐라 상인들이 동남아시아 무역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등 촐라 제국은 인도양 지역의 패자로 군림하였다.

후기 (1070년 ~ 1279년)[편집]

촐라 제국은 9세기경부터 동찰루키아와 결혼 동맹을 맺고 있었는데, 1070년부터 동찰루키아계의 쿨로툰가 1세가 촐라 황제로 즉위하면서 후기 촐라 시대가 시작되었다. 쿨로툰가 1세의 통치 말기인 1118년에 호이살라 제국에 의해 마이소르 지역을 상실하였지만, 후계자인 비크라마 1세에 의해 다시 수복하는 등 한동안 촐라 제국때의 위상이 유지되었으며, 1146년부터 1215년까지는 에라바테스와라 사원 등의 힌두교 사원들이 건축되거나 촐라 제국의 행정 제도가 발전하는 등 황금기가 지속되었다. 그러나 1216년부터 마라바르만 순다라 2세에 의해 판디아인들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결국 1251년에 자타바르만 순다라 1세에 의해 판디아 왕국이 촐라 제국으로부터 독립하여 부활하였으며, 부활한 판디아 왕국과 호이살라, 세부나 등의 침입을 받으며 촐라 제국은 쇠퇴하였고 결국 1279년에 판디아 왕국에 의해 정복당하면서 촐라 제국은 멸망하였다.

정치[편집]

12세기 초 촐라 제국의 만달람

촐라의 정부 체제는 전제군주제였으며,[10] 촐라의 군주는 절대적인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촐라의 왕은 만디르를 자주 건설하였는데, 촐라 제국의 만디르는 단순히 종교적 시설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경제 활동의 중심지 역할 또한 수행하였다.[30]

라자라자 촐라 이전에는 수도 근방은 촐라 황제가 통치하고 외곽 지역은 촐라 황제와 유력한 관계를 지녔던 벨리르(토후)에 의해 통치되는 봉건제 형식이었지만, 라자라자 1세 이후 촐라 제국의 행정 구역은 8개의 만달람(속주)으로 세분화되었는데,[31] 만달람발라나두(군), 발라나두는 코람(현) 등으로 세분화되었고, 코람은 행정의 가장 작은 단위인 몇 개의 촌락으로 세분화되었으며,[32] 촌락은 30여 개의 구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들 행정 구역들의 지방관들은 초기에는 중앙정부에 의해 임명되었지만 후기에는 그 권한을 세습하였으며,[33] 촌락에서는 행정·물 관리·사법 등 마을에 필요한 위원회를 마련한 후, 각 위원회 운영에 참여할 만한 식견을 갖춘 사람의 이름을 나뭇잎에 적어서 어린아이가 제비뽑기를 하는 방식으로 운영 위원을 선출하였으며 촐라 제국의 이 같은 자치 제도는 마을 고유의 행정과 문화가 유지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34]

군사[편집]

육군[편집]

촐라 제국의 육군은 기병대, 코끼리 군단, 보병 사단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35] 평상시에는 전국 곳곳에 설치된 군사 시설인 코다감에 주둔하였다. 하우더를 얹은 전투 코끼리는 촐라 육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전투 코끼리에 탄 병사들은 장거리에서 화살을 쏘고 근거리에서 창으로 싸우는 역할을 하였다.[36]

촐라 제국은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몇 개의 궁전과 요새를 지었는데, 요새는 주로 벽돌로 만들어졌지만 돌, 나무 및 진흙과 같은 다른 재료도 사용되었으며,[37][38] 고대 타밀어 문헌인 "실라파디카람"에 따르면, 돌을 던지는 투석기, 끓는 물 또는 녹은 납의 가마솥, 고리, 사슬 및 함정으로 요새를 방어했다고 한다.[20][39]

촐라 군인들은 강철로 만든 칼, 활, 창 던지기, 창 및 방패와 같은 무기를 사용했으며,[21] 특히 남인도는 다마스쿠스 강으로도 알려진 "우츠 강"의 주요 원산지 중 하나였기 때문에 "우츠 강"으로 만든 철제 무기 또한 사용되었다.[40] 촐라 군대는 다양한 카스트 출신의 사람들로 구성되었지만 카이콜라르벨라라르 카스트 출신의 전사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41][42] 촐라 황제를 호위하는 근위대인 "벨라이카라파다이갈"도 촐라 군대의 주요 구성원 중 하나였다.

해군[편집]

촐라 해군은 초기에 무역선 기반의 선박을 전함으로 사용하였지만, 후기부터는 전투용으로 제작한 선박을 전함으로 사용하였으며, 정규 해군(Kappal-Padai)외에도 해상 전투에 투입되도록 편제된 보조부대가 존재하였다. 또한 촐라 해군은 스리랑카섬 정복과 스리비자야 침공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으며,[43] 9세기에서 11세기까지 강력한 전력을 보유한 채 촐라 군대의 주축을 이루었지만, 촐라 제국이 서찰루키아와 충돌하기 시작하며 육상 전투가 빈번해지면서 촐라 해군의 중요성은 점차 줄어들었다.[8]

경제[편집]

촐라국의 주요 수입원은 토지세과 무역세로,[44] 수확된 농산물의 3분의 1을 세금으로 거두었다. 세금은 화폐[31]나 현물로 거두었고, 토지는 생산되는 산물에 따라 각기 다르게 분류되었으며 그에 대한 세금은 생산된 양에 의해 결정되었다.[45] 이 밖에도 무역과 광산, 염전 등을 통해 얻어지는 세금은 국가의 경제를 풍요롭게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면직물은 촐라 제국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였는데,[46] 초기 촐라 왕국의 수도였던 우라이유르는 면직물의 주요 생산지였으며,[20][47][31] 이곳의 면직물 산업을 담당하는 직공 길드가 형성되기도 하였다.[48] 직공은 모든 도시에서 자체 주거 부문을 가지고 있었으며, 후기에는 살리야르와 카이콜라르 주축의 직공 공동체들이 면직물 산업을 주도하였다.[31] 촐라 제국 시대에 실크 직물은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칸치푸람은 실크의 주요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다.[49][50] 쳄비안 마데비와 같은 촐라 왕들이 금속 장인들에게 후원을 확대하면서 금속 산업 또한 발달하여 제철 산업이 크게 발달하였는데,[47] 이들에 의해 가공된 우츠 강은 후에 다마스쿠스 강으로 알려지며 중동 및 유럽에도 전파되는 등 촐라의 주요 수출품이 되었다.[51]

농부들은 사회에서 가장 높은 지위 중 하나를 차지했는데,[52] 이들은 경제적으로 강력한 카스트 집단인 벨라라르 공동체를 형성하였고 이 벨라라르 공동체는 촐라 제국의 지배층으로서 군림하기도 하였다.[53] 이와 같이 농업이 촐라 공동체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였기 때문에 촐라 황제들은 주요 수입원의 근간이 되는 농산물의 수확을 더 증진시키기 위하여 카베리강에 여러 개의 댐을 건설하고 호수를 만들었다.[47][54]

촐라 전국 각지에는 조직화된 상인 길드가 대내 상업을 주도하였으며 이들에 의해 금속 산업과 보석상 예술은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다. 해상 무역을 주도하는 길드인 나나데시스는 상선들을 보호하기 위해 용병들을 고용하였으며, 칸치푸람마말라푸람과 같은 대규모의 항구 도시에는 "나가람"이라고 불리는 상인들의 현지 조직들도 존재하였다.[55][54]

대외 무역[편집]

촐라 제국은 9세기 말부터 동남아시아에 광범위한 해양 및 상업 활동을 전개하였는데,[10] 이때 촐라 해군의 지원을 받으며 활동한 마니그라맘과 아야볼레 등의 길드들이 대내외 무역에서 모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54] 라젠드라 1세때 촐라 제국이 스리비자야스리랑카섬으로 진출하면서 마니그라맘과 아야볼레 등의 길드들이 촐라 본토뿐만 아니라 스리비자야 지역에도 길드 거점을 형성해 활동하기도 하였다.[56]

1025년 라젠드라 1세가 이끄는 촐라 해군이 동남아시아의 해상 강국인 스리비자야 해군을 격파한 이후 촐라는 인도양 무역의 중심지로 기능하였으며,[10][12] 중국, 스리비자야, 아바스 칼리파국, 칼리파트 등과 주요 교류하기 시작하였다.[11]

특히 코끼리와 말을 얻으려 촐라 제국에 방문한 중국 상인들에게 숙박시설과 선물, 경비원들을 제공하였다는 기록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중국과의 무역이 꽤 성행한 것으로 보인다.[57] 또한 송나라의 기록에는 1077년에 촐라 사신들이 중국 지역을 방문했다는 내용이 존재하는데,[10][9] 당시 촐라 제국의 황제였던 쿨리안훙가 1세에 대해서도 기록된 것으로 보아 단순히 중국과의 무역 활동뿐만 아니라 사신들을 파견하는 외교 관계또한 가졌던 것으로 보이며, 촐라 제국의 사신들이 유리와 향신료를 포함한 공물을 조공으로 바치고 대신에 송나라 화폐를 얻어오는 방식의 조공 무역 또한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58]

사회[편집]

촐라 시대에는 여러 길드, 지역 사회 및 카스트가 등장했다. 길드는 남인도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였으며 상인들은 길드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안주반남과 발란지야르와 같은 다른 길드도 존재했지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마니그라맘과 아야볼레 길드이다.[54] 농부들은 사회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했는데, 이들은 귀족층인 벨라라르 공동체를 구성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강력한 그룹이었다.[31] 벨라라르 공동체는 촐라의 지배층 세속 귀족 계급으로, 재판관들, 군 장교들, 관료제 하층 계급, 농민 상류층 대부분이 이 공동체 출신이었다.[53] 벨라라르 일부는 스리랑카 북부로 이주해 정착하기도 하였다.[59] 울라바르 공동체는 농업과 관련된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고 농민은 칼라마르로 알려졌다.

카이콜라르 공동체는 직조자이자 상인이었지만 군대에서도 활동하였다.[60] 촐라 제국 시기에 직공 및 상인과 같은 하위층들이 성장하면서 성전 관리와 토지 소유권에 큰 변화가 있었는데, 본래 브라만들만이 담당하던 성전 관리에 비브라만 카스트들이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토지 소유권 또한 브라만과 벨라라르만이 아닌 다른 계급 출신의 사람들도 토지 소유권을 지닐 수 있도록 바뀌었다.[61] 촐라 제국에는 신분 제도가 존재했지만 계급 간의 통혼이 허용되었으며 이를 통해 계속해서 새로운 계급이 형성되었다. 여성의 지위도 비교적 좋은 편으로 사회·종교적 행사에 자유롭게 참여하는 등 힌두 사회의 수많은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상속권이 보장되어 여성도 자신의 재산을 가질 수 있었다. 촐라 제국에서는 여성의 사티가 그리 성행하지 않았으며 결혼은 대체로 일부일처제였다.

교육[편집]

촐라 제국 시대에 기록된 비문은 촐라인들의 수준높은 문해력을 보여주는데, 비문의 내용은 법정 시인이 작성했으며 재능있는 장인이 새겼다. 현대적 의미의 교육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일부 마을 협의회가 학교를 조직하여 어린이들에게 읽고쓰기의 기초를 가르치도록 했다는 정황 증거가 있다.[62] 대중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의 기록은 없지만,[63] 직업 교육이 아버지가 자신의 기술을 아들에게 전수하는 훈련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기록은 존재한다. 대중을 위한 교육의 매개체로 타밀어를 활용하였으며, 힌두교 수도원은 교육의 중심지로서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8]

인프라[편집]

촐라 제국은 만디르 주변을 중심으로 인프라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는데, 만디르 주변에 교육 기관과 병원을 설립하고 만디르 역할의 유익한 측면을 강화했으며 인세를 매우 강력하고 성실하게 매겼다.[61] 비라라젠드라 촐라 시기의 촐라 기록에 따르면, 이러한 시설들은 베다, 샤스트라, 문법 및 학생들을 위한 병원, 연구를 위한 사원 내 자난나만다파의 학교 유지와 관련이 있는데, 학생들은 토요일에 음식, 목욕용 기름 및 애완동물용 기름을 제공받았다. 비라솔란이라는 이름의 병원에서는 아픈 사람들을 위해 다섯 개의 침대가 제공되었으며, 편의를 위한 쌀, 의사, 외과 의사, 환자 간호를 위한 2명의 하녀 및 병원의 일반 하인들이 존재하였다.[64]

종교[편집]

촐라의 나타라자 동상

촐라의 주류 종교는 힌두교였다. 초기 촐라 시대의 힌두교도인 코센간난은 상감 문학에서 리쉬로 묘사되며 시바파 힌두교도들에 의해 칭송받았다.[8]

촐라 제국은 주신인 시바를 모시는 만디르들을 많이 지었지만 촐라 제국의 황제인 아디트야 1세가 시바비슈누를 위한 만디르를 지었다는 기록이 존재하기 때문에 촐라 제국이 시바파 힌두교만을 믿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890년대의 촐라 비문에 따르면 아디트야 1세는 서강가 왕국 서부의 스리랑가파트남에 있는 랑가 나타 사원 건축에 기여했는데, 이 지역은 그의 봉건지였으며 결혼으로 연결되어 있었다.[65]

파란타카 2세는 카베리 강 유역에 있는 안빌의 기대하는 비슈누(Vadivu Azhagiya Nambi)의 신봉자로서 비슈누에게 많은 선물과 장식을 봉헌하거나 시바비슈누를 위한 수많은 만디르들을 건축하였으며,[30], 칸치와 아코트를 되찾기 위해 라슈트라쿠타를 공격하거나 판디아와 스리랑카에 대한 원정대를 파견하는 등의 전쟁을 시행하기 이전에 비슈누에게 기도했다.[12] 라자라자 1세는 스리비자야 왕인 스리 출라마니바르만의 요청에 따라 나가파티남에 존재하던 불교 수도원인 추다마니 비하라를 개축하기도 하였다.[11][66]

후기 촐라 시대에 비슈누파,[67] 특히 그들의 종교 지도자인 라마누자에 대한 박해가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30] 이 주장에 따르면, 크리미칸타 촐라라고 불리는 촐라 황제는 라마누자를 박해했다고 하며, <파르파난나므리탐>이라는 17세기 문학에서도 크리미칸다가 치담바람 나타라자 만디르에서 고빈다라자 신상을 제거했다고 기록되어 있다.[68] 일부 학자들이 크리미칸타 촐라를 쿨루퉁가 2세와 동일시하지만, 스리랑감 사원의 기록에 따르면 쿨루퉁가 2세는 크리미칸타 촐라의 아들로 크리미칸타와 달리 비슈누파를 지지하였고,[69][70] 라마누자는 쿨루퉁가 2세를 그의 조카인 다사라티의 제자로 삼았으며 그 후 왕은 라마누자의 소원에 따라 다사라티와 그의 후손들에게 랑가나타스와미 사원의 관리를 허락했다고 한다.[71][72] 역사가 닐라칸타 샤스트리는 크리미칸타 촐라와 아디라젠드라 촐라, 비라라젠드라 촐라를 식별하였다.[73][74] 서기 1160년의 비문에 따르면 비슈누파와 사회 관계를 가진 시바파 힌두교 사원의 관리인은 재산을 몰수당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만, 이것은 촐라 황제가 공식적으로 선포한 칙령이 아닌 시바파 힌두교 공동체에서 규정한 규범으로 보인다. 촐라 황제가 시바를 위해 촐라 내에서 가장 큰 힌두교 사원을 지었고 라자라자 1세와 같은 황제가 "시바파다세카란"라는 별칭을 사용하긴 했지만, 그들의 비문에서 촐라 황제는 촐라 제국이 시바파 힌두교만을 믿거나 시바파 힌두교가 촐라 제국의 국교라고 명시한 내용은 없다.[8][11][75]

건축[편집]

촐라 제국 시대에 탄자부르에 건설된 브리하디스와라 만디르

촐라는 팔라바 왕국의 만디르 건축술을 물려받아 드라비다식 만디르 건축술을 크게 발전시켰다.[12] 촐라 제국은 카베리 강변에 많은 시바파 힌두교 만디르를 지었는데, [37][76][7] 이들 만디르들은 팔라바식 만디르들에 비해 표면적으로 섬세하다는 특징이 있다.[77] 촐라 건축술은 만디르의 외곽에 고푸람이라는 거대한 관문을 추가하는 형태를 취하며 더욱 발전하였고, 판디아만디르 건축술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동남아시아의 건축과 예술에도 영향을 미쳤다.[78][79]

촐라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두 황제인 라자라라 1세와 라젠드자 1세 또한 만디르 건축에 큰 관심을 가졌는데,[30] 1009년에 라자라자 1세에 의해 탄자부르 지역에 건설된 브리하디스와라 만디르는 촐라 제국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만디르들 중 하나이며, 1030년에 라젠드라 1세에 의해 강가이콘다 촐라푸람에 건설된 강가이콘다촐리스바람 만디르브리하디스와라 만디르보다 세련된 정교함을 갖추었다.[12][80] 오늘날 이들 촐라 제국의 만디르들 중 일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81]

예술[편집]

얼스터 박물관의 촐라 청동상

촐라 시대는 조각품과 청동으로도 유명하다.[75][7][9] 촐라 시대의 예술품은 힌두교의 유지의 신 비슈누와 그의 배우자 락슈미나 파괴의 신 시바의 다양한 모습들을 묘사한 작품들이 대부분으로,[12] 이 중 춤추는 나타라자 동상은 촐라 시대의 예술품들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82]

문학[편집]

촐라 제국 시대는 타밀 문학의 황금기로서, <라자라제스바라 나타캄>, <비란우카비얌> 및 <칸니바나 푸라남> 등 수많은 문학 작품들이 만들어졌다.[11]

힌두교의 부흥은 수많은 사원의 건설을 촉진시켰고, 이들은 차례로 시바파비슈누파의 경전 문학을 낳았다.[8] 자이나교와 불교 문학가들도 존재했지만, 몇 세기 전보다 적은 수의 사람들이 있었다.[8] 티루타카테바르의 <지바카친타마니>와 톨라몰리의 <술라마니>는 비힌두교적인 색채가 가미된 대표적인 촐라 문학이다.[75][8][83] 촐라의 불교 문학에서는 타밀어 문법에 "비라솔리얌"이라는 텍스트를 썼다.[84] 주석은 전쟁의 윤리를 언급하는 <톨카피얌>이라는 작품에 사용되었다.[85][31][86] <페리아푸라남> 또한 촐라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들 중 하나인데, 촐라의 국가 서사시인 이 작품은 촐라 제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서사로 엮였다.[87]

쿨라통가 촐라 통치 기간 동안 번성한 촐라 문학가인 쿨반은 발미키가 지은 라마야나를 촐라 문학으로 재구성하여 <라마바타람>이라는 작품을 저술하였으며,[88] 이 서사시에서 라마찬드라가 다스리는 코살라는 촐라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여겨졌다.[83][89][75]

자얌콘다르가 저술한 <칼링가투파라니>는 역사와 가상의 관습 사이에 명확한 경계를 그리는 서사시의 한 예로서, 이 서사시는 쿨루퉁가 1세때 칼링가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전쟁을 묘사하고 전쟁의 화려함과 전투의 상황뿐만 아니라 전쟁의 참혹함도 묘사하였다.[75][8] 또 다른 촐라 시인인 오타쿠탄은 촐라 황제들의 미덕을 칭찬하는 시인 <쿨루퉁가 촐란 울라>를 쓰기도 하였다.[90]

<난눌>은 촐라 시대의 타밀어 문법을 다루는 문학으로, 타밀어의 주요 5가지 문법을 모두 다루는 이 작품은 오늘날 가장 유명한 타밀어 문법 규범서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91]

촐라 제국에서는 타밀 문학뿐만 아니라 텔루구어 문학 또한 발전하였는데, 티카나 소마야지, 아빈나바 단디 케타나, 마라나 및 소마나 등의 저명한 텔루구어 시인들이 이 시대에 활동하며 텔루구어 문학을 번성시켰다. 티카나 소마야자는 <니르바차노타라 라마얀나무>와 <안드라 마하바라타무>를, 아빈나바 단디 케타나는 <다사쿠마라차리트라무>, <비즈난네스와라무> 및 <안드라 바샤브샤나무>를 저술하였으며, 마라나는 <마르칸데바 푸라나>, 소마나는 <바사바 푸라나>를 저술하였다.[92]

각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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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Keay, p. 215
  3. K. A. Nilakanta Sastri, A History of South India, p. 158
  4. Majumdar (contains no mention of Maldives)
  5. Meyer, p. 73
  6. K. A. Nilakanta Sastri, A History of South India, p. 195–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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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Sastri (2002), 130, 133쪽Quote:"The Cholas disappeared from the Tamil land almost completely in this debacle, though a branch of them can be traced towards the close of the period in Rayalaseema – the Telugu-Chodas, whose kingdom is mentioned by Yuan Chwang in the seventh century 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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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