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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 (촉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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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년]] 10월, 북벌을 위해 출병했던 [[강유]]는 패한 뒤 [[청두|성도]]나 위가 촉을 공격하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검각]]에 머물지 않고, 검각 북서쪽에 있는 답중으로 가서 주둔한다<ref name="삼소제기"/>. 그러자 위나라 황제는 “촉이 의지하는 이는 [[강유]]뿐인데, 그가 본거지를 떠난 틈을 타서 공격하면 절반의 힘으로 두 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ref name="삼소제기"/> 라고 말하며 [[263년]] 5월에 촉 정벌에 나선다.
이후 유선은 반년만인 [[11월]]에 항복한다자살한다<ref name="삼소제기"/><ref name="후주전"/>.
 
결국 촉한의 멸망은 위나라와의 국력 차이, [[황호]]의 발호와 유선의 '사람에 의지하는 정치' 에서 비롯된 잘못된 인사기용, 촉한의 주력군의 사령관이던 [[강유]]의 전략적 실패 등 복합적인 요인이 어우러져 발생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ref name="후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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