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완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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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완(陳完, 기원전 706년 ~ ?)은 중국 춘추 시대 사람으로, 전제의 시조이다. 성은 (嬀), 씨는 (陳), 바꾼 씨는 (田)이다. 시호는 경중(敬仲)이다. 통칭으로 진경중(陳敬仲) 혹은 전경중(田敬仲)이라고 부른다.

왕망이 신나라의 황제로 등극하자 진완을 통조(統祖)로 추존하였다.[1]

생애[편집]

본디 진나라의 공자로, 진 여공의 아들이다. 진 선공 21년(기원전 672년), 선공이 사랑하는 첩의 아들 관(후의 진 목공)을 세우고자 태자 어구를 죽였다. 완은 진나라 대부 전손과 같이 태자 어구의 당이었으므로 제나라로 달아났다. 이때가 제 환공 14년이었다. 제 환공은 완을 경으로 삼으려 했으나, 완은 사양하고 공정(백공을 관리하는 관직)을 지냈다.[2][3]

완은 본국의 이름인 진(陳)에서 따서 전(田)으로 족명을 삼았다. 완의 후손들은 진씨와 전씨를 혼용했다. 《사기집해》에서는 서광이 인용한 응소의 주장을 재인용해서 주석했다. 이에 따르면, 진완이 전 땅을 식읍으로 받았기 때문에 전씨를 썼다고 한다. 그러나 사마정은 《사기색은》에서 진(陳)과 전(田)의 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전씨가 된 것이라고 했다. 장수절은 《사기정의》에서 완이 본국의 이름을 꺼려 진 대신 전을 족명으로 썼다고 주석했다.

진완의 후손들은 제나라에서 점차 권세를 잡았고, 8대 종주인 전 성자 대부터는 임금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사실상 제나라 임금 노릇을 했으며, 11세손 제 태공이 정식으로 제후에 등극하기에 이르렀다.[2]

시조 설화[편집]

전제의 시조로서, 이를 예언하는 점괘가 사적에 남았다. 진완이 태어났을 때, 진후가 주나라 태사로 하여금 시초점을 치게 했다. 태사는 관괘를 뽑고는 이를 두고 진나라 본국이 쇠망할 때 이 아이의 후손이 강성(姜姓)의 나라[4]에서 흥성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또 장인[5]이 딸을 주려 할 때 점을 쳤는데 5세가 지나면 정경이 되고 8세가 지나면 누구도 맞설 수 없으리라고 했다.[3]

각주[편집]

  1. 《漢書卷·九十九下》:九廟:一曰黃帝太初祖廟,二曰帝虞始祖昭廟,三曰陳胡王統祖穆廟,四曰齊敬王世祖昭廟,五曰濟北愍王王祖穆廟,凡五廟不墮云;六曰濟南伯王尊禰昭廟,七曰元城孺王尊禰穆廟,八曰陽平頃王戚禰昭廟,九曰新都顯王戚禰穆廟。
  2. 사마천 : 《사기》 권46 전경중완세가제16
  3. 정태현 : 《역주 춘추좌씨전》 1권, 전통문화연구회, ISBN 89-85395-72-6 94140, 424 ~ 433
  4. 제나라의 왕성이 강(姜)이었다.
  5. 《사기》에서는 제나라 대부 국의중이라고 하고, 《좌전》에서는 다만 '의씨'라고만 했는데 두예가 진나라 대부라고 주석을 달았다.
선대
(초대)
제1대 제나라 전씨종주
? ~ ?
후대
전 맹이 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