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훈 (19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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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훈
출생1920년 3월 30일(1920-03-30)
일제 강점기 경기도 인천시 항동 4가 3
(현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중구 항동 4가 3)
사망2002년 11월 17일(2002-11-17) (82세)
성별남성
국적대한민국
본관양주
별칭호 정석(靜石)
경력초대 한진그룹 회장
직업기업인
부모부 조명희, 모 태천즙
배우자김정일
자녀조양호, 조남호, 조수호, 조정호

조중훈(趙重勳, 1920년 3월 30일 (1920년 음력 2월 11일)[1] - 2002년 11월 17일)은 한진그룹을 창업한 대한민국기업인이다.

생애[편집]

1920년 경기도 인천시에서 직물 도매상을 하던 조명희와 태천즙 사이의 4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2] 8대조는 노론 4대신 중 하나인 조태채이다. 휘문고보를 중퇴하고 국비 교육기관이었던 경상남도 진해의 해원양성소(현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대학)에 진학했다. 2년 만에 해원양성소 기관과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20세 때 일본에 건너가 2등기관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일본 화물선을 타기도 했다.[3] 1942년 일본에서 돌아와 서울 종로구 효제동에 목탄차 엔진을 수리하는 이연(理硏)공업사를 차렸다. 마모된 트럭엔진을 수리하는 회사였다.[4]

1945년 11월 이연공업사를 정리할 때 받은 보상금과 그동안 저축한 돈을 모아 인천시 해안동에서 '한진상사'를 창업했다. 당시는 트럭 한대 뿐이었다.[5] 창업 2년 만에 화물자동차 10대를 보유하게 됐다. 1947년에는 교통부로부터 경기도 일원에 대한 화물자동차 운송사업 면허를 정식으로 받았다. 창업 5년째 되던 해에는 종업원 40명, 트럭 30대, 화물운반선 10척을 보유한 운송전문회사로 성장했다. 1957년 처음으로 미군과 7만달러짜리 수송계약을 체결했고, 이후 연평균 300%씩 급성장했다. 한진상사는 미군 운송권을 독점하다시피 했고, 1960년 한해 계약고만 220만 달러, 용차를 포함한 가용차량이 500대에 이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1961년 8월 주한미군 통근버스 20대를 매입해 서울-인천 구간에서 한국 최초의 '좌석버스' 사업을 시작했다. 이것이 한진고속의 시초이다.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적자인 대한국민항공을 인수하여 대한항공으로 사명을 바꾸고 운영을 시작하였다.

1977년 5월에는 대진해운을 해체하고 컨테이너 전용 해운사인 한진해운을 설립했다. 1988 서울올림픽 유치에 앞장섰다. 한국항공대학교, 인하공대 등을 인수해 정석학원을 설립했다. 대한항공이 성공적으로 A300 여객기를 도입, 운용하면서 에어버스는 그 이후부터 유럽 외 지역의 판매로를 열었다. 그 공로로 대한항공의 조중훈 당시 회장은 199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 중 2등급인 그랑도피시에를 받았다. 이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 중 사실상 가장 높은 훈장으로, 가장 높은 훈장인 그랑크루아 등급은 프랑스 대통령에게만 수여된다.[6]

1999년 4월 22일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장남 조양호를 그룹 회장에 낙점했다. 2002년 11월 17일 인하대 부속병원에서 82세 일기로 타계했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에 있다.

경력[편집]

가족[편집]

논란[편집]

항공기 리베이트 탈세 혐의[편집]

1991년 부터 1998년까지 외국 기업 두 곳의 항공기를 구매할때 특정 회사의 엔진을 장착하는 조건으로 리베이트를 받았다. 이 중 일부인 1천685억원을 국내로 들여와 조중훈 명예 회장과 조양호 회장 등이 개인적으로 사용했다. 지난 1997년 11월 26일 600만달러의 리베이트를 국내로 반입하고 1998년 7월 29일에 이 중 18만달러 (2억 5천만달러)를 개인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3개를 당좌수표로 분산하여 현금화한것으로 밝혀졌다. 또, 조중훈 일가는 이때 받은 리베이트를 조세 회피 지역인 '아일랜드 더블린' 지역에 100만달러를 출자해 설립한 현지 법인 KA사에 이전하여 1억 8천 400만 달러가 해외로 유출됐고, 이로 인해 814억원을 탈세한 혐의가 밝혀졌다.[9]

계열사 부당 지원[편집]

대한항공은 국제통화기금(IMF) 이후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한진투자증권이 발행한 후순위채 170억원을 고가로 매입했다. 또, 주가가 3천 100원이던 한진투자증권의 유상증자에 참여, 주식 94만 2천 193주를 5천원에 취득해 대한항공의 이익을 부실 계열사에 넘겨줬다.아울러 계열사에 대해 우회적인 자금지원과 상습적인 부당지원으로 578억원의 과세소득을 누락시켰다.[10]

변칙 증여[편집]

조중훈 명예회장은 1990년 이후 자녀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해 회사 자금 1천 579억원을 유출시켜 계열사 주식 취득 자금으로 이용했다. 1994년 10월에는 대한항공 주식 75만주를 매각하고 취득한 대금을 5개 은행 지점에서 수표로 찾아 본인 명의의 종합금융사 어음관리계좌(CMA)에 분산관리 하다가 1995년 1월 조양호 등 6명의 수익 증권 계좌에 입금 시키는 방식이었다. 이 돈은 유상 증자 대금으로 사용됐으며, 이 수법으로 총 967억원의 소득세와 증여세를 탈세했다.[11]

각주[편집]

  1. 링크
  2. 한진그룹 조중훈(趙重勳)씨, 서울신문 2011년 7월 21일, [기획] 최고경영자=①한진그룹 조중훈(趙重勳)씨
  3. 한진 조중훈 창업회장의 起業家정신, 세계일보 2012년 11월17일, [재계 3.0] 한진 조중훈 창업회장의 起業家정신
  4. 한진 조중훈 창업회장의 起業家정신, 세계일보 2012년 11월17일, [재계 3.0] 한진 조중훈 창업회장의 起業家정신
  5. 트럭 한 대로 시작한 ‘수송보국’의 꿈…정석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 12주기, 아주경제 2014년 11월13일, 트럭 한 대로 시작한 ‘수송보국’의 꿈…정석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 12주기
  6. 출처 :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code=920101&artid=201511050840501#csidxc03cb97f8699cdb86b360b0a0bfe107
  7. 李在澈 초대 과기처 차관 별세
  8. 李相實氏 別世
  9. “한진그룹 탈세수법”. 연합뉴스. 1999년 10월 4일. 
  10. “한진그룹 탈세수법”. 연합뉴스. 1999년 10월 4일. 
  11. “한진그룹 탈세수법”. 연합뉴스. 1999년 10월 4일. 
전임
신용남
(국민항공 총수)
제3대 대한항공 회장
1969년 11월 19일 ~ 1999년 11월 16일
후임
조양호
전임
신설
초대 한진그룹 회장
1945년 11월 ~ 1999년 4월 22일
후임
조양호
전임
신설
초대 한진그룹 명예회장
1999년 4월 23일 ~ 2002년 11월 17일
후임
조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