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신격호
출생 1922년 10월 4일(1922-10-04) (92세)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울산군 삼남면 둔기리
(現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일본 일본
본관 영산
학력 와세다대학교 화학공학 학사
직업 기업인
소속 롯데그룹 (총괄회장)
종교 무종교
배우자 노순화(사별), 시게미쓰 하쓰코
자녀 슬하 2남 2녀
부모 아버지 신진수, 어머니 김필순
가족 5남 5녀 중 장남

신격호(辛格浩) 1922년 10월 4일 ~ )는 대한민국일본기업인이자 롯데그룹의 총괄회장이다.[1]

생애[편집]

생애 초기[편집]

신격호는 1922년 10월 4일울산에서 아버지 신진수와 어머니 김필순 사이에서 5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신진수는 재력이 있었으나 신격호의 친척에 의하면 "신회장의 선친은 절대 돈 자랑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2]그가 태어난 울주군 삼동면영산 신씨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유학과 일본 출국[편집]

1940년부산공립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가서 와세다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입학하여 1944년에 졸업했다. 그 뒤 잠시 귀국했다가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국내에서 말을 돌보는 일을 하다가, 돈을 벌 작정으로 일본에 가기로 결심하고 밀항선에 몸을 싣는다.[3]그는 이때만 해도 온갖 일로 생활을 꾸려가며 작가 지망생이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그 꿈을 접고 생활전선으로 뛰어들게 된다.[3]

이때부터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이때 처음 일본에서 시작한 것이 이었다. 사업을 시작하는 이때만 해도 배고픔이 먼저였던 전쟁 직후라 주전부리에 불과했던 '껌 사업'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들이 많았다. 하지만 주변의 예상과는 달리 일본 내에서 '풍선껌'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성공하게 되었다.[3]

일본에서의 기업 활동[편집]

1948년부터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 해에 일본에서 주식회사 롯데를 설립하였으며 1959년 롯데 상사, 1961년 롯데 부동산, 1967년 롯데아도, 1968년 롯데 물산, 주식회사 훼밀리 등 상업, 유통업으로 일본의 10대 재벌이 되었다.

아버지 신진수는 1968년경 고향을 떠나 1973년 작고할 때까지 서울에서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2] 1968년-1969년 사이 울산국가산업단지에 공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대암댐(69년 12월 준공)을 건설하면서 마을이 수몰, 신씨 일가 40여 가구가 이주하면서 대부분 흩어졌고 이때 신격호 역시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2] 마을이 수몰되자 그의 친ㆍ인척과 고향 사람들이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4] 이를 아쉬워한 신격호는 1971년부터 `둔기회`를 만들어 매년 5월 첫째 주말에 마을잔치를 열고 있다.[4] 이후 그는 매년 고향인 울산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에서 마을 잔치를 열었다.[5]

그 뒤 일본에서 계속 기업 활동을 하며 유통업 외에도 다른 분야로도 사업을 확장, 1969년 일본 프로 야구 퍼시픽 리그의 도쿄 오리온스 구단을 보유하는 나가타 마사이치 구단주의 요청에 따라 롯데와의 업무 제휴 관계를 체결하며 롯데 오리온스로 개칭, 1970년 롯데 회관을 세우고, 그 뒤 1970년에는 나가타가 구단주를 사임, 1971년에는 나가타가 전직 총리 기시 노부스케(나가타의 친구)의 중개를 이용하며 나카무라 나가요시(안 前 총리의 비서관)를 구단주로 취임시켰으나, 나카무라는 그 해 시즌 이후에 니시테쓰 라이온스를 동시에 구매하다가 한 사람이 두 구단의 소유주가 될 수 없다는 일본 프로 야구의 규칙에 걸려있기 때문에 롯데의 주주를 구단에 바로 반납하며 구단주를 사임하였고, 1972년부터 그가 본격적으로 롯데 오리온스를 인수해서 현재까지 3대 구단주로 취임하며 재직하고 있다. 1991년 11월(1992년)부터 지바 롯데 마린스라는 구단명으로 개칭하였다. 1972년 롯데리아, 1978년 롯데 리스 등을 세웠다. 또한 전자 쪽으로도 진출하여 1971년 롯데전자를 세우고 1985년 롯데 데이타 센타, 1987년 롯데 엔지니어링 등을 설립하는 등 사업을 확장했으며 일본의 10대 재벌의 한 사람으로 성장하였다.

한국 진출[편집]

1966년 이후에는 사업을 대한민국으로 확장하여 그해 롯데알루미늄을, 1967년롯데제과를 설립하였다. 그 뒤 한국에서도 사업을 다른 분야로도 확장하여 1973년 호텔 롯데·롯데 전자·롯데 기공, 1974년 롯데 산업·롯데 상사·롯데 칠성 음료 등을 설립했고, 1975년 롯데 자이언츠를 설립, 1978년 롯데 삼강, 롯데건설, 롯데 햄, 롯데 우유, 1979년 롯데 쇼핑, 1980년 한국 후지 필름, 1982년 롯데 캐논·대홍기획 등을 설립했다.또한 1978년에는 롯데크리스탈호텔을 건설하였다.

홀수달에는 한국에서, 짝수달에는 일본에 머물며 그룹을 경영해 '대한해협의 경영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와세다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국내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동탑산업훈장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수상하였다. 2006년 포브스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신격호 회장 일가의 재산은 약 45억달러로 세계 136위이다.

일화[편집]

둔기회[편집]

영산 신씨 집성촌인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는 1969년 울산공단 공업용수를 위한 댐 건설로 일부 지역이 수몰되자 신격호의 친·인척과 고향 사람들이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이를 안타까워 한 신격호는 1971년부터 ‘둔기회’를 만들어 매년 5월 첫째 주말에 마을잔치를 열고 있다. 첫해 수십 명에 불과했던 둔기회 회원 수도 자손들이 늘면서 지금은 1100여 세대가 됐다.

형제간 다툼[편집]

롯데가는 유난히 형제간 다툼이 심해 신 총괄회장은 '비운의 빅 브라더'로 불리기도 했다. 1966년 12월 16일, 서울지방검찰청문상익 부장 검사는 롯데주식회사 대표이사를 지내고 있던 둘째 동생 신철호가 롯데 화학공사를 설립하기 위해 형 신격호와 셋째 동생 신춘호의 도장을 위조해 회사공금 4억 2천여 만원을 가로챘다고 고소했으며,[6] 1973년에는 신춘호와 법정 소송을, 1996년에는 막내 신준호와 땅문제로 법정 소송을 벌였다.[7]

신진수 유골 도난 사건[편집]

1999년 3월울산광역시에 있던 아버지 신진수의 묘소 유골이 절도범에 의해 도난당했다. 3월 4일 오전 8시35분께 40대 남자가 서울 소공동 롯데빌딩 26층 신회장 비서실로 전화를 걸어 "회장 부친의 묘소를 확인해보라"고 해 그룹 관계자들이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면 대암리 선산으로 급히 내려가 확인한 결과 아버지 신진수의 묘소가 도굴되고 유골이 없어졌다는 것이다.[8] 이어 범인은 같은날 오후 4시35분과 4시40분께 신회장 비서실로 다시 전화를 걸어 "묘소를 확인해봤느냐"고 묻고 "경찰과 언론에 알리지 말라"고 협박한 뒤 전화를 끊었다.[8]

범인은 또 3월 5일 오전 11시께 2차례 전화를 걸어 "유골을 돌려줄테니 회사 직원 2명이 승용차 트렁크에 8억원을 넣어 5일 밤 8시까지 부산에 내려와 돈을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8] 경찰은 훼손된 묘지 주변에서 곡괭이 1개와 관 뚜껑을 열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장도리 2개를 발견했으며 서울경찰청 감식반 요원들이 현장에 파견돼 지문채취 등 정밀감식 작업을 벌이고 있다.[8] 경찰은 4일과 5일 신회장 비서실에 5차례 협박전화를 걸어 "유골을 보관하고 있다"며 8억 원을 요구한 40대 남자를 추적하였다.[8]

범인들은 1999년 3월 7일에 정금용(鄭金溶·38·무직), 임종순 등이 모두 경찰에 검거되었다. 경찰에 붙잡힌 용의자 가운데 한 사람인 임종순(任鐘淳·34)은 “롯데와는 관련이 없고 원한도 없다. 쉽게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아 일을 저질렀다”라고 말했다.[9] 롯데그룹 관계자들은 그 동안 이 사건이 롯데그룹이나 그룹 총수에 대한 원한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밝혀질 경우, 그룹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주지 않을까 걱정[9]하기도 했다. 그러나 원한관계는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고 수사는 종결되었다.

기타[편집]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대암댐 근처, 그가 살았던 마을과 가장 가까운 곳에 그의 별장이 있으며, 신격호는 매년 한 두차례 이곳에 와서 쉬며 선친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2]고 한다.

친척이며 신격호 회장과 8촌인 신정호는 그에 대해 "서울로 간 후에도 이곳에 있는 가까운 친척들에게 논을 사주는 등 친인척들을 많이 보살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또 "신 회장의 선친은 절대 돈 자랑 하지 않았다"면서 "가난한 친인척들에게는 먹을 양식까지 보내주었다"고 회고했다.[2]

상훈[편집]

가계[편집]

직계 가족[편집]

  • 아버지 : 신진수 (辛鎭洙, 1900년 ~ 1973년)
  • 어머니 : 김필순

방계 가족[편집]

  • 남동생 : 신철호 (辛哲浩, 1923년 ~ 1999년)
    • 조카 : 신동림
    • 조카 : 신동훈 - 제이텔 창업자, 사이드웨이 파트너스 대표이사
  • 남동생 : 신춘호(辛春浩) - 농심 회장. 부인 김낙양.
    • 조카 : 신현주 - 농심기획 부사장. 남편 박재준 전 조양상선그룹 부회장.
    • 조카 : 신동원(辛東原) - 신춘호의 장남 농심홀딩스의 대표이사 사장, 농심의 대표이사 부회장. 부인 민선영(민철호 전 동양창업투자 사장 딸)
    • 조카 : 신동윤 - 신춘호의 차남 율촌 화학의 부회장. 부인 김희선(김진만 전 국회 부의장 딸)
    • 조카 : 신동익 - 신춘호의 삼남 메가마트의 부회장. 부인 노재경(노홍희 전 신명전기 사장 딸)
    • 조카 : 신윤경. 남편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 남동생 : 신준호(辛俊浩) - (주)푸르밀 회장
  • 남동생 : 신선호(辛宣浩) - 일본 산사스(주) 사장
  • 여동생 : 신정희(辛貞姬) - 동화면세점 사장
  • 매제 : 김기병(金基丙) - 롯데관광 회장
  • 사촌형 : 신병호 전 롯데칠성 고문

학력[편집]

각주[편집]

  1. 애국의 기업가 정신, 롯데그룹 신격호의 성공 원인 <미디어펜>
  2. <신격호 롯데회장 선친 유골도난 이모저모> 연합뉴스 1999.03.05
  3. 식품재벌 롯데, 왜 라면은 만들지 않을까
  4. 42년째 마을잔치 연 신격호 총괄회장 "요즘 사람들 힘든 일 안해" 매일경제 2012.05.06
  5. 신격호 회장, 42년 이어진 고향 사랑 문화일보 2012년 05월 07일자
  6. 兄弟끼리 財産獨占 싸움 동아일보 1966.12.17
  7. 롯데「형제간 땅싸움」내일 공판 매일경제 1996.10.9
  8. 신격호 롯데회장 선친유골 도난… 8억요구 문화일보 1999.03.05
  9. 신격호 회장 선친 유골 도난 사건
  10. 이승선. 신격호 '일제 전범 조카딸'과 중혼, 그 진실은…. 프레시안. 2015년 7월 31일.
  11. http://www.business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87
  12. http://luxmen.mk.co.kr/view.php?sc=51100009&cm=Business%20Strategy&year=2012&no=134533&relatedcode=000160051&searchEconomyHosu=18

참고 자료[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