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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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중국어 간체: 道德经, 정체: 道德經, 병음: dàodéjīng 듣기 )은 노자(老子)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도가의 대표적인 경전으로 《노자(老子)》로도 불린다. 노자는 이 저서에서 전체적으로 자연에 순응하는 무위(無爲)의 삶을 살아갈 것을 역설하였다.

도덕경의 내용[편집]

'도(道)'는 만물을 생장시키지만 만물을 자신의 소유로는 하지 않는다. 도는 만물을 형성시키지만 그 공(功)을 내세우지 않는다. 도는 만물의 장(長)이지만 만물을 주재하지 않는다'(10장). 이런 사고는 만물의 형성·변화는 원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며 또한 거기에는 예정된 목적조차 없다는 생각에서 유래되었다.

노자의 말에 나타난 사상은 유심론으로 생각되고 있으나 펑유란은 도에 대해서는 사고방식은 일종의 유물론으로서 무신론에 연결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 이해는 뛰어난 것이다. 또 '도(道)는 자연(自然)을 법(法)한다'(55장)고 하는데 이것은 사람이 자기 의지를 가지고 자연계를 지배하는 일은 불가능함을 설명한 것이다. 이 이론은 유가(儒家)의 천인감응(天人感應)적 생각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자가 보인 인생관은 "유약한 자는 생(生)의 도(徒)이다" (76장). "유약은 강강(剛强)에 승한다."(36장) "상선(上善)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는다. 그러면서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때문에 도에 가깝다"(8장), "천하의 유약하기는 물보다 더한 것이 없다"(78장) 등의 구절에서 보듯이 어디까지나 문명과 나를 내세우지 않고 뭇세상과 조화롭게 함께 하는 소박한 삶의 방식을 권한다. 그러한 사상을 겸하부쟁((謙下不爭) 이라고 하는 말로써 환언(換言)하고 있다.

노자는 또 "도(道)는 일(一)을 생하고 일은 이(二)를 생하고 이는 삼(三)을 생하고 삼은 만물을 생한다."(42장)고 하는 식의 일원론적인 우주생성론을 생각하고 있었다.

도덕경의 판본[편집]

오늘날 우리가 도덕경으로 규정한 판본은 삼국시대 말기에 왕필이 정리한 것이며, 이를 소위 왕필본 혹은 통용본이라고 부른다.

1973년도에 중국 장시성에서 발견된 고분 마왕퇴(BC 168년 추정)에서 발굴된 백서본에 담겨있는 문장들은 왕필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불어 마왕퇴에서 발견된 도덕경 판본은 중국 삼국시대 말기에 왕필이 편집한 통용본보다 연대가 훨씬 앞섰다. 다시 말하자면, 왕필본의 저본이 바로 백서본인 셈이며, 왕필이 정리하기 이전에 중국의 여러 사서에 인용된 판본도 이 백서본인 셈이다. 백서본은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백서본 갑본으로서 전국시대 말기(BC 247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고, 을본은 한나라 초기(BC 195년 이전)에 제작된 판본으로 추정된다.[1]

1993년 중국 화북성의 곽점촌에서 발견된 곽점본(혹은 죽간본, BC 300년 추정)은 백서본에는 있는 중요한 시문들이 많이 빠져있으나, 백서본에는 없는 내용의 일부가 있어 새로운 텍스트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곽점본과 백서본의 주요한 차이는 다음과 같다.

  1. 곽점본은 대나무에 쓰여진 반면에 백서본은 비단에 쓰여졌다.
  2. 곽점본의 내용 상당수가 백서본에는 없으며, 백서본에 없는 내용 일부가 곽점본에 있다. 곽점본은 2000여자로 백서본의 40% 정도의 분량이다.
  3. 곽점본에 비해 백서본의 내용에는 조금씩 추가된 것들이 있으며 문장 형태가 말끔해지는 경향이 있다.
  4. 백서본에는 전사과정의 기본적인 오류와 원래는 주석이었으나 옮기는 과정에서 본문으로 들어간 오류 등이 확인된다.
  5. 곽점본에 비해 백서본이 더욱 반 유가적인 경향을 보인다.
  6. 백서본이 곽점본에 비하여 정치술수적인 내용을 더욱 많이 지니고 있어, 백서본 성립 시기에 유행한 황로학의 영향을 받아 통치술에 대한 내용이 추가된 것으로 생각된다.
  7. 백서본은 음양사상을 받아들여 기화론적 우주생성론의 내용을 담고있다.

처음으로 도덕경을 상하로 나눈 사람은 전한 말기의 학자 유향이다. 완결편 도덕경 주석서로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하상공'(혹은 '하상장인')이 지은 하상공장구가 있다. 후한 시기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하상공장구는 당나라 시기까지 가장 유행한 판본으로 양생론적 성향이 강해 초기에는 도교도들에 의해 많이 읽혔으나 이후 당나라 시대까지 가장 많이 읽히는 판본이 되었다.[2]

왕필은 18세이던 243년에 노자도덕경주를 완성하였고, 이후 그의 저서는 위나라의 재상 하안에 의해 점차 알려지게 되었다. 당나라때까지만 해도 그의 구석서는 하상공장구에 비해 덜 읽혔으나 송나라때 이후 유학자들에 의해 주요한 판본으로 여겨지게 됐으며, 이 지위는 명,청대에 더욱 확고해져서 백서본 출토 이전까지 무려 천년 이상 동서양 도덕경 이해의 근간이 되었다.[3] 그러나 그 탁월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도덕경을 유가적으로 해석한 부분이 많았기에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백서본과 왕필본의 다른점은 다음과 같다.

  1. 백서본은 장절구분이 거의 없이 이어 적혀있었으나, 왕필본은 장절구분이 잘 되어있다.[4]
  2. 백서본은 덕경이 도경보다 앞에 놓이나, 왕필본은 도경이 덕경보다 앞에 놓인다. 다시 말하면, 백서본은 덕도경이라고 불려질 수 있고, 왕필본은 우리가 익히 들언대로 도덕경이라 읽는다.
  3. 왕필본의 장절구분을 기준으로 하면, 백서본은 24-22-23장과 41-40-42장, 66-80-81장의 순서로 구성되어있다.
  4. 백서본은 왕필본에 비해 시대 특성상 (가차자)가 많이 쓰였고, 따라서 그 글자들의 해석이 복잡하다.
  5. 백서본은 왕필본에 비해 허사가 많이 남아있어 왕필본의 끊어읽기 문제를 다소 해결해준다.
  • 가차자 [假借字]

[명사] 가차 [假借] [명사] 1 정하지 않고 잠시만 빌리는 것. ‘임시로 빌림’으로 순화. 2 { ‘있다’, ‘없다’ 따위와 함께 쓰여} 사정을 보아줌. 3 <언어> 한자 육서(六 書)의 하나. 어떤 뜻을 나타내는 한자가 없을 때 뜻은 다르나 음이 같은 글자를 빌려 쓰는 방법으로, 원래 보리를 뜻하는 ‘來’ 자를 빌려 ‘오다’를 뜻하는 글자로 쓰는 따위이다. 4 <언어> 가차의 방법으로 만든 문자. ≒가차자.

곽점본과 백서본 그리고 왕필본의 차이만 보아도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전설처럼 노자가 함곡관을 넘으면서 도덕경 5000여자를 남겼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도덕경은 일거에 성립된 것이 아니고 고대부터 전국시대 말기를 거치면서 발생한 여러 생각들과 사상들이 응축되어 성립된 책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복잡한 성립과정은 도덕경 안에 여러 모순된 사상이 뒤섞여 존재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때문에 도덕경은 동양사상의 명실상부한 근간이며, 시쳇말로 말하면 여러 사상들의 발전의 시작점이 되는 떡밥이 던져진 것이다. 도덕경에 모순과 여러 사상들이 뒤섞여 잇는 만큼, 여러 사상가들과 학자마다 도덕경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는데, 하상공장구는 양생술을 위한 음양사상의 기본 경전으로서 여겼고, 왕필주는 도덕경에 담긴 형이상학적인 면모를 흠모하여 신비주의학적으로 여겼으며, 그 외에도 여러 학자들과 사상가들이 저마다 무위자연주의, 반유가주의, 반법가주의, 음양가 사상, 무정부주의, 병가 사상들의 근간이 되는 저서로 여겼다.

한국으로의 유입[편집]

삼국시대 이후에 이미 도덕경은 읽혔을 것으로 추정되나 해설서로 남은 것들 중 대표적인 것은 아래와 같다.[5]

대부분 왕필의 관점을 따르고 있다.[8]

이후 몇가지 한국어 번역이 시도되었다.

바깥 고리[편집]

각주[편집]

  1. 이석명 역, 백서 노자(2003). 청계. ISBN 89-88473-60-4
  2. 이석명 역, 노자 도덕경 하상공장구(2005). 소명출판. ISBN 89-5626-180-6
  3. 임채우 역, 왕필의 노자(1998). 예문서원.
  4. 도덕경 체계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당 현종대인 742년이다.
  5. 전반적으로 다루는 책은 금장태 저, 한국유학의 노자 이해(2006). 서울대학교 출판부. ISBN 89-521-0702-0 이 있다.
  6. 민족문화대백과의 '순언'
  7. 민족문화대백과의 '노자주해'
  8. 노자강의, 기세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