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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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공(公孫恭)
국적 후한위나라
경력 요동태수 겸 거기장군
직업 정치가
작위 영녕향후 → 양평후
적수 공손연(조카)
부모 공손탁
친척 공손강(형)
관련 활동 요동에서 독자 세력 유지

공손공(公孫恭, ? ~ ?)은 중국 삼국 시대 위나라에 종속한 요동의 세력가이다. 고자였으며 조카 공손연에게 쫓겨났다.

생애[편집]

고자였다. 204년(건안 9년) 공손강아버지 공손탁을 이으면서 공손공은 영녕향후(永寧鄕侯)에 봉해졌다. 공손강 사후 그 아들들이 어려 대신 요동태수를 이었다. 221년(황초 2년) 위나라 황제 조비로부터 거기장군을 받았다.[1] 228년(태화 2년) 공손강의 차남 공손연에게 태수직을 빼앗기고 유폐당했다. 238년(경초 2년) 위나라의 사마의가 공손연을 토벌하면서 구출되었다.[2] 이후의 삶은 알 수 없다.

삼국지연의[편집]

사서가 아닌 소설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한테 완전히 패해 공손강에게 의탁하러 온 원희, 원상 형제가 장차 공손강을 도모하려는 속셈을 품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까치을 빼앗으려는 비둘기와 같다’[3]며 먼저 죽이자고 한다. 정사대로 공손강의 직위를 이었다가 공손연에게 태수직을 빼앗긴다.

가계[편집]

공손탁.png

각주[편집]

  1. 《삼국지》2권 위서 제2 문제 조비 황초 2년
  2. 진서》1권 제기 제1 고조선제 사마의
  3. 구탈작소(鳩奪鵲巢). 《시경》의 〈작소〉(鵲巢)에서 유래한 말이다. 비둘기의 실제 습성이 그렇지는 않다.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