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신호 화재
태신호 화재 사고는 1956년 1월 12일, 삼천포항에 기항 중이던 조선기선 소속의 태신호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60명이 넘게 사망한 사건이다.[1]
사고 경위[편집]
1956년 1월 12일 새벽 3시 30분, 부산발 여수행으로 삼천포 앞바다에서 기항 중이던 조선기선주식회사의 135톤급 선박 태신호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 불은 3시간 만에 진화하였고, 잠자고 있던 승객 147명 중 66명이 사망하였다. 경·중상자를 합하여 사상자는 88명이었다.[2]
태신호는 1955년 12월에도 통영 앞바다에서 태풍호와 충돌하여 5명이 행방불명된 사고가 있었다.[3][4]
사후 처리 및 여파[편집]
국회는 1월 13일 태신호 사건을 조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하였다.[3]
사고의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해 각지에서 위문품이 모여들었으며,[5] 태신호 조난사건대책본부에서는 유족들에게 사망자 1인당 10만 환을 지급하였다. 조선기선에서는 장례비로 1인당 3만 환, 위자료로 10만 환을 지불하기로 하였다.[6][7]
이 사고를 계기로, 선박여객보험제도를 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8]
원인 분석 및 논란[편집]
화재 원인은 선원의 부주의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다.[2] 치안국에서는 선박내의 소방시설과 정원에는 위반이 없다고 하였다.[9]현지 경찰은 조사 결과, 선장이 화재가 발생한 배의 소실을 막기 위해 3등 선실의 하나 뿐인 출입구를 봉쇄하였고, 그로 인한 질식으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고 치안국에 보고하였다.[10] 1월 22일 경찰의 확인에 의해, 태신호는 정원이 승객 122명, 선원 11명이었으며, 사고 당일에는 147명이 승선하였음이 밝혀졌다. 또한 객실 안에 선원실을 둔 것도 사고 확대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다.[11]
각주[편집]
- ↑ 航海中의旅客船에火災, 《동아일보》, 1956.1.13
- ↑ 가 나 生地獄이된旅客船, 《경향신문》, 1956.1.13
- ↑ 가 나 太信號事件調査 國會서決議, 《동아일보》, 1956.1.14
- ↑ 乘客五名行方不明, 《동아일보》, 1955.12.8
- ↑ 49柱의遺骸身元判明 各界서吊慰金品, 《경향신문》, 1956.1.17
- ↑ 一人當 慰藉料 十萬圜씩 支拂, 《경향신문》, 1956.1.18
- ↑ 慰藉料十萬圜 遺族에支拂決定, 《동아일보》, 1956.1.18
- ↑ 船舶旅客保險制度만들라「太信號」事故에輿論, 《경향신문》, 1956.1.20
- ↑ 職員現地派遣 治安局서, 《동아일보》, 1956.1.14
- ↑ 船長이 三等室出入口를封鎻, 《동아일보》, 1956.1.15
- ↑ 定員超過等 새事實綻露 太信號事件, 《동아일보》, 1956.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