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해양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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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며, 매년 크고 작은 해양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다음은 대한민국 영해에서 발생한 해양 사고의 목록이다.[1] (사망·실종자 10인 이상 또는 기름 유출 100톤 이상을 등록 기준으로 한다.)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선박은 초기에는 규모가 영세하고, 나무로 만든 배가 대부분이었다. 선박은 강과 바다에서 운용되었는데, 발생한 선박 사고는 특히 명절을 앞두고 승객과 짐을 지나치게 실어 전복된 경우 피해가 컸다. 항구에는 방파재와 부두와 같은 항만시설이 충분하지 않았다. 영세한 선박들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점차 대형화되었고, 대형 선박에 의한 원양어업이 활성화되면서 먼 바다에서 발생하는 사고가 증가하였다. 사고의 규모 또한 점차 대형화되었다. 1960년대 후반 이후로는 과적이나 자연재해 외에 남북간 갈등에 의한 사고, 유조선 기름 유출 사고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해양 사고가 등장하였다.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연구소에 의하면, 1983년부터 1999년까지 대한민국의 연근해에서 총 1,290척의 선박이 침몰되었다. 그 대부분은 중소형 어선이며, 유조선과 화학선을 포함한 16척의 대형 선박이 포함되어 유류나 화학 물질의 유출로 인한 환경오염이 우려되었다.[2]

연대별 사고[편집]

1940년대[편집]

발생년도
월 일
발생시각 선호
선주
크기(톤수)
선령
사고지점
운행구간
정원/선원
승선인원
구조
사망 / 실종
사고 원인 수사기관 특이사항
1947년
8월 19일
15시 태양환호[3] 36톤 거제도 밖 6마일 94명
23명 / 24명
경비선과 충돌 해양경비대사령부
경찰당국
1948년
4월 11일
10시 범선 2척[4] 수원군우정면 해안 0명
2명 / 81명
태풍
1948년
6월 8일
11시 반경 어선 15척[5] 독도 부근 0명
9명 / 5명
미군기의 폭격 미군이 피해 배상[6]
1949년
7월 28일
16시 밀항선[7] 부산 영도 부근 19명
20명 실종
태풍
1949년
10월 5일
12시 50분 평해호 17톤 작약도 부근
인천항 ↔ 강화도 사기리
50명
200여 명
86명
71명 사망
과적 인천지검 추석을 앞두고 발생

1950년대[편집]

승객과 화물의 과적으로 인한 대형사고가 다수 발생하였다. 태풍 사라의 피해가 컸다.

발생년도
월 일
발생시각 선호
선주
크기(톤수)
선령
사고지점
운행구간
정원/선원
승선인원
구조
사망 / 실종
사고 원인 수사기관 특이사항
1951년
6월 10일
15시 제13호(第13湖)호[8]
영암부삼호면사업계
12톤 목포항 근해 39명
?

30여 명 사망
과적
1951년
7월 11일
18시 20분 제5편리호
다대포간순항선조합
17톤
24년
부산 송도 앞바다
부산 충무동 ↔ 다대포
91명
170명
55명
74명 이상 사망
과적 부산지검
1951년
11월 18일
11시 50분 삼해남호[9]
해남운수주식회사
31톤 진도항 부근
진도항
57명
130명
55명
45명 / 3명
초과승선
운전수 과실[10]
1952년
5월 15일
14시 조일환호[11] 려호도
제주도 연평항 ↔ 부산

29명
15명
14명 사망
운전수 과실 선착 중 전복
1953년
1월 9일
14시 창경호
대동상선
147톤
20년
거북섬 부근
여수 ↔ 부산
240명
300여 명
8명
266명 이상 사망
파도
과적
부산지검
1953년
1월 25일
15시 30분 행운호[12]
한국미곡주식회사
충남 완포리 부근
충북 칠산 ↔ 전북 군산
75명
200여 명
10여 명
64명 이상 사망[13]
과적 도착 직전에
전복
1954년
6월 3일
21시 8분 태양호[14]
전남 돌산도 앞바다
목포 ↔ 부산
23명 실종 풍랑
1954년
8월 16일
새벽 범선[15]
강화도 앞바다
17명 승선 3명 구조
14명 사망
조류와 파도
1955년
4월 3일
19시 발동화물선[16]
김해 앞바다
13명 승선 13명 실종 암초에 파선
1955년
4월 23일
4시 삼영호[17]
하동 앞바다
73명 승선 12명 실종 암초에 파선
1955년
5월 10일
17시 전후 연평도 어선단[18]
연평도 부근
중상 9명
6명 / 12명
북한군 포격 1척 침몰
4척 실종
1955년
8월 17일
22시경 괴선박[19] 전남 흑산도 부근

7명 / 13명
1956년
1월 12일
3시 30분 태신호
조선기선주식회사
135톤 전남 흑산도 부근
122명 / 11명
147명

66명 사망
화재 치안국
현지 경찰
1956년
2월 1일
7시경 목선[20] 전북 비안도 부근
3명
18명 실종
풍랑
1956년
9월 22일
오후 어선[21] 전남 위도면 부근
11명 실종 풍랑
1956년
12월 4일
6시경 어선[22] 충남 당진 부근

1명 / 22명
풍랑
1957년
4월 14일
9시경 강남호[23] 인천 월미도 서쪽
57명 승선 26명
3명 / 31명[24]
충돌
풍랑과 퇴조
화물선과 충돌
1957년
8월 29일
11시 30분 목선[25] 화성군 서쪽
63명 승선 31명 생존
1명 / 31명
과적
1958년
1월 15일
정오경 제87대양호[26]
한국수산주식회사
84톤 전남 흑산도 부근
11명 실종 풍랑
1958년
2월 12일
기범선 4척[27]
강원 거진항 부근
11명 실종 풍랑
1959년
1월 16일
16시 30분 삼성호[28]
해동유류부주식회사
54톤 제주 죽도항 부근

9명 / 4명
정박 중 표류
암초에 충돌
구조에 해녀 50명,
잠수부 5명 동원[29]
1959년
4월 22일
16시 45분 통도호[30]
순항선조합
57톤 전북 고창 부근
36명 승선 4명
7명 / 25명[31]
풍랑 치안국
현지 경찰
1959년
9월 17일
10시경 어선 4척[32]
전남 완도 앞바다
43명 승선 2명
41명 사망
태풍 태풍 사라
  • 강에서 발생한 선박 사고로 1954년 6월 낙동강 나룻배 전복 사고(사망·실종 27명)[33], 1954년 8월 5일 충북 청양군 장진 도선 침몰 사고(사망·실종 20명)[34], 1956년 8월 마포강나루터 모터보트 사고(사망·실종 10명 이상)[35], 1958년 5월 충북 초평면 놀이배 사고(사망·실종 19명)[36], 1959년 3월의 안동 나룻배 사고(사망·실종 11명)[37] 가 있다.
  • 치안국 집계에 따르면, 1957년 한해 187건의 해상 사고가 발생하였고, 350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부상하였다.[38]

1960년대[편집]

폭풍·해일시 항구에 피신하지 못한 선박들의 피해로 항만 시설의 부실이 지적되었다. 남북간의 분쟁이 해상 사고의 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발생년도
월 일
발생시각 선호
선주
크기(톤수)
선령
사고지점
운행구간
정원/선원
승선인원
구조
사망 / 실종
사고 원인 수사기관 특이사항
1960년
1월 16일
11시 직영호[39]
8톤 강원 판교리 부근 13명 승선 1명
12명 실종
안개와 풍랑
1960년
5월 13일
20시 어선 4척[40]
연평도 부근 6명
1명 / 13명
풍랑
1960년
5월 31일
15시 백구호[41]
남양수산
74톤 제주 연평리 부근
성산포 ↔ 부산
39명 승선 26명
13명 실종
풍랑
1961년
11월 10일
0시 2분경 광복호[42]
17톤 경남 통영 부근 13명 승선 1명
12명 실종
1962년
1월 2일
13시 40분~
17시 30분
속초항 어선단
속초항 부근 5명[43]
3명 / 21명
해일 244척 중
5척 침몰
1963년
1월 18일
12시 연호
명진합명회사
34.5톤
21년
전남 영암 부근
목포 ↔ 해남
86명 / 8명
141명
1명
120명 이상 사망
과적
돌풍
5분 내에 침몰
1963년
11월 8일
새벽 어선 2척[44]
강원 속초 앞 13명 실종 돌풍
1963년
12월 18일
4시 高砂丸[45]
83톤 제주 남쪽 4명
10명 실종
파도 일본 선박
일본 순시선이 구조
1964년
4월 16일
11시 보승 2호[46]
[47]
소연평도 부근 13명 승선 2명
11명 실종
안개 속에
암초에 충돌
납북후 풀려나
귀환 도중 침몰
1964년
7월 29일
서해 어선단
연평도 부근 219명
32명 / 62명 추정
태풍 2명은 북한에 억류
1964년
8월 2일
19시 신성호[48]
전남 완도 부근 20여 명 승선 2명
3명 / 15명
풍랑
1964년
11월 24일
8시 5분경 나룻배[49]
4톤 충남 서산 부근 32여 명 승선 8명
11명 / 13명
과적
1964년
12월 4일
17시 대성호[50]
4톤 충남 서산 부근 승객 10명
13명 실종
기관 고장
돌풍
1965년
4월 4일
8시 30분경 채취선[51]
전남 여천 부근 25명 승선 2명
2명 / 21명
돌풍
1965년
12월 30일
6시 30분 제3영생호[52]
삼척 앞바다 21명 승선 7명
14명 사망
풍랑으로
암초에 충돌
1965년
12월 30일
13시 편리호[52]
22톤 묵호 앞바다 25명 승선 2명
2명 / 21명
파도와 폭설
1966년
1월 13일
14시 전마선[53]
충남 삼길포 부근 36명 승선 11명
15명 / 10명
파도
1967년
1월 14일
21시 54분경 한일호
여수천양기선
140톤
11년
경남 가덕도 부근
여수 ↔ 부산
165명 / 13명
불명
12명
66명 / 27명 추정
함정과 충돌 해난심판위원회
검찰
1967년
1월 19일
13시 50분 ~
14시 10분
당포호
동해경비분대
650톤 동해어로저지선
부근
79명 승선 40명
11명 / 28명
북한의 포격 어선단 보호 중 피격
1968년
1월 3일
2시 제5삼양호[54]
삼양사
추자도 남쪽 13명 승선
1명 / 12명
암초에 충돌
1968년
5월 17일
15시 천지호
대한유조선회사
5,243톤 목포 부근 48명 승선 31명
3명 / 13명
암초에 충돌 기름 유출로
해양 오염 피해
1968년
5월 24일
11시 30분 서조호[55]
5톤
12년
충남 장항 부근 20명
61명
40명
16명 / 5명
과적
무허가 운항
서천경찰 폐선 연령을 초과한
어선을 개조
1969년
3월 27일
5시경 어선 3척[56]
제주 근해 21명 실종 돌풍
1969년
9월 24일
2시경 무장간첩선[57]
50톤 흑산도 근해 15~18명
추정
15~18명 사망
추정
교전 대간첩대책본부 무반동포 등 무장
1969년
10월 14일
6시 42분 무장간첩선[58]
75톤 소흑산도 근해 20여 명
추정
20여 명 사망
추정
교전 대간첩대책본부 무반동총 등 무장
  • 강에서 발생한 선박 사고로, 1962년 9월 7일 한강 한남동 나룻배 전복 사고(50명 승선, 10여 명 구조)[59], 1966년 8월 25일 경기도 여주읍 나룻배 침몰 사고(12명 실종)[60], 1969년 9월 17일 창녕 남지읍 나룻배 전복 사고(5명 사망, 71명 이상 실종)[61] 가 있다.
  • 1962년 1월과 2월 두 달 동안 풍랑에 의한 선박 사고로 93명이 사망하였다고 보도되었다.[62]
  • 교통부는 1968년 1년간 총 251건의 해상 사고가 발생하였고, 95명이 사망, 2명이 부상하였다고 발표하였다.[63]

1970년대[편집]

보도에 의하면, 1970년초 대한민국의 연안여객선은 약 200척이고, 그중 20척 정도가 200톤 ~ 300톤 가량의 대형 선박이고, 나머지는 소형 선박이었다. 전체 연안여객선의 75%인 150척은 목선이며, 그중 90여 척은 선령이 20년이 넘었다. 자격이 있는 선원수는 부족하고 선원의 임금은 적었다. 소형 선박에는 통신 장비 뿐 아니라 라디오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정원제가 엄격하게 지켜지면서 생필품을 제대로 반입할 수 없게 된 섬마을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었다.[64]

공장 폐수로 인한 해양 오염과 어린 물고기의 남획으로 연근해 어족의 고갈 현상이 심화되었고, 어부들은 북방 어로 한계선을 넘어서 고기를 잡다가 납북되거나 먼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조난되기도 했다.[65]

해양경찰대의 집계에 따르면,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총 4,670척의 선박, 46,510여 명의 인원이 사고를 당했다. 이중 구조되지 않은 선박이 904척, 인원은 2,692명이었다.[66] 이는 연평균 약 150척이 침몰 또는 행방불명, 450명이 사망 또는 실종된 셈이다. 발생 해역으로는 남해가 가장 많았고, 톤수는 20톤에서 100톤 사이가 가장 많았다. 사고 원인으로는 정비 불이행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였는데, 선박의 노후화에 따른 선체 손상과 기관 고장이 잦았다고 하였다. 해운 불황에 따른 무리한 운행으로 악천후로 인한 사고가 10% 남짓하고, 선원의 운항과실이 20%가 넘었다. 사고 후 보상금이 적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66]

발생년도
월 일
발생시각 선호
선주
크기(톤수)
선령
사고지점
운행구간
정원/선원
승선인원
구조
사망 / 실종
사고 원인 수사기관 특이사항
1970년
1월 30일
어선 4척[67]
강원 명주 부근 18명 사망 풍랑
1970년
4월 3일
23시 49분 무장간첩선[68]
50톤 서해 격렬비열도 15~17 명
추정
15~17명 사망
추정
교전 대간첩대책본부 무반동총 2문 무장
1970년
5월 4일
명신호[69]
대경해운
339톤 부산 동남쪽 16명 승선
5명 / 11명[70]
풍랑 한일간 화물선
1970년
12월 15일
1시 20분 남영호
남영해운
362톤
2년
거문도 동쪽
서귀포 ↔ 부산
321명 /19명
338명
12명
326명 이상 사망
과적 경찰, 검찰
진상조사 특위
일본 배에 8명 구조
1971년
1월 4일
2시 어선 3척[71]
흑산도 부근 22명 승선 22명 실종 풍랑 파편 발견
1971년
1월 7일
10시 20분 질자호[72][73]
24톤
18년
전남 여수 부근 64명 / 5명
90여 명
61명
30명 / 2명
충돌 화물선이 충돌
1971년
5월 14일
1시 35분 무장간첩선[74]
50~60톤 동해 휴전선 남방 15~17명
추정
15~17명 사망
추정
교전 대간첩대책본부 48노트의 쾌속정
1973년
1월 25일
14시 30분 한성호
목포한일기선

12년
진도 앞바다
95명
109명
48명
19명 / 42명
과적 육지 부근에서 침몰
1973년
2월 26일
10시 35분 성산호[75]
57.3톤 통영 부근 13명 승선 4명 / 9명 돌풍 저인망 어선
1974년
2월 22일
11시 10분경 YTL30호
대한민국 해군
120톤
충무 앞바다

316명
152명
158명 / 1명
과적
운항부주의
해군조사위원회 소형 항만 예인정
1974년
5월 19일
3시 칠성호[76]
58톤 경남 거제 해안가 12명 승선 12명 실종 폭우 저인망 어선
정박 중 침몰
1974년
6월 28일
10시 30분 경비정 863호[77]
200톤
33년
동해 분계선 부근 34명
28명
8명 / 20명 피격 국방부 해경 경비정
북 경비정들과 교전
1974년
8월 29일
15시 20분 어선 4척[78]
소흑산도 남쪽 10명
47명 실종
풍랑
1974년
11월 12일
15시 20분 광진호[79]
4.6톤 전남 완도 앞바다 64명 승선 23명
13명 / 28명
과적
풍랑
암초에 충돌
1976년
1월 17일
14시 50분 만덕호[80]
7.2톤 울릉도 천부항 부근 56명 승선 19명
11명 / 26명
풍랑 오징어잡이 목선
1976년
10월 29일
어선 17척
대화퇴 해상 327명
34명 / 293명
4일간의
풍랑
대한민국 역대 최대
어선 해난 사고[내용주 1]
1976년
12월 8일
610광덕호[81]
71톤 제주도 근해 11명 승선 0명
1명 / 10명
풍랑 시신 1구 인양
1977년
12월 2일
23시경 제11강원호[82]
속초항
85톤 울릉도 서쪽 해상 31명 승선 5명
26명 실종
강풍
파도
생존자 65시간 동안
표류
1977년
12월 3일
풍성9호[83]
충무항
28톤 10명 승선 1명
9명 실종
태풍 출항신고,
무전 연락 없음
1978년
1월 21일
8시 어선 2척[84]
충무항
각 0.7톤 13명 승선 7명
6명 실종
돌풍 무동력 어선
1978년
2월 17일
어선 8척[85]

29명 사망[86]
강풍
눈보라
동해안 일대
1978년
11월 29일
4시 어선 5척[87][88]
전남 무안 부근
23명 실종
풍랑
1979년
1월 29일
11시경 어선 2척[89]
전남 소흑산도 부근 2명
20명 실종
풍랑
1979년
2월 17일
16시경 제1선북호[90]
부산항
49톤 울산 방어진 부근
13명 실종
풍랑
1979년
10월 5일
10시 30분경 제2병묵호[91]
인천항
100톤 전남 홍도 부근
12명 실종
풍랑 대형 저인망 어선
1979년
11월 18일
제2영풍호[92]
군산안강망어협
48톤 제주 남쪽 해상
10명 실종
풍랑 어선
  • 강에서 발생한 선박 사고로, 1976년 6월 8일의 금강 도선 전복 사고(사망·실종 19명 이상)[93], 1976년 8월 8일의 나주 지석강 유람선 사고(사망·실종 12명)[94], 1978년 7월 20일의 금강 동력선 사고(사망·실종 16명)[95] 가 있다.

1980년대[편집]

나룻배 사고가 줄어들었다. 해상 사고로는 태풍 셀마로 인한 피해가 특히 컸다.

발생년도
월 일
발생시각 선호
선주
크기(톤수)
선령
사고지점
운행구간
정원/선원
승선인원
구조
사망 / 실종
사고 원인 수사기관 특이사항
1980년
6월 21일
무장간첩선[96]
북한
6~7톤 서산 앞바다 10명 승선 1명 생포
9명 사살
교전 대간첩대책본부
1980년
8월 31일
20시 50분 제5성남호[97]
부산항
83.7톤 전남 거문도 부근 14명 승선
14명 실종
충돌 화물선이 충돌[98]
1980년
10월 31일
10시 이후 제5종봉호[99]
여수항
156톤 대화퇴 부근 35명 승선
35명 실종
오징어잡이 어선
1981년
9월 6일
3시 30분경 제1명신호[100]
40.4톤 통영 앞바다 27명 승선 9명
18명 실종
충돌 화물선이 충돌.
1981년
11월 24일
제36한일호[101]
291톤 전남 보길도 부근 11명 승선
11명 실종
밀감 상자 발견
1982년
10월 24일
14시 제2동해호[102]
42톤 울릉도 동북방 36명 승선
36명 실종[103]
풍랑 오징어잡이 어선
1983년
10월 7일
오후 거성호[104]
78톤 제주 화도 서쪽 13명 승선 2명
11명 실종
풍랑 어선
1984년
1월 12일
5시 30분 제7삼성호[105]
삼천포항
35.6톤 제주 우도 부근 13명 승선
1명 / 12명
풍랑 트롤어선
1984년
4월 18일
23시 30분 동남점보페리호
동남점보페리
2,904톤
14년
전남 거문도 부근 584명 / 32명
183명
203명
12명 사망
풍랑 합동조사반 침수 상태로 견인
1984년
7월 5일
23시 제7동아호[106]
경북영일군 수협
44톤 전남 신안 부근 20명 승선 3명
17명 실종
암초에 충돌 오징어채낚이어선
1984년
11월 17일
17시 30분경 영암호[107]
3.3톤
4년
전남 신안 부근 64명 승선 53명
9명 / 2명
해태발목에
충돌
목조 굴 채취선
1985년
1월 29일
17시 25분경 화평 에이스호[108]
동화해운
1,992톤
13년
제주 남동 해상 20명 승선 3명
3명 / 14명
갑자기
기울어짐
화물선
1985년
2월 1일
3시경 제일크리스탈호[109]
정금해운
1,470톤
대마도 근해 16명 승선 4명
2명 / 10명
한일정기화물선
1985년
3월 15일
11시 19분 세진호[110]
삼호물산
150톤
제주 우도 부근 31명 승선 4명
27명 실종
풍랑으로
전복
선어운반선
1985년
4월 11일
12시경 제77신성호[111]
부산시 수협
41톤
제주 동쪽 해상 11명 승선 11명 실종 풍랑 장어잡이 통발어선
1985년
4월 18일
0시 50분경 제11원근해호[112]
인천 수협
98.2톤
소흑산도 서남 12명 승선 12명 실종 충돌 중국 상선과 충돌
1985년
7월 27일
19시 50분경 신안2호[113]
27톤
신안 홍도리 부근 37명 승선 19명
18명 실종
엔진 고장 경찰 유람선. 표류하다가
암초와 충돌.
1985년
8월 14일
8시경 광일호[114]
옹진항
42톤
전남 영광 부근 14명 승선 2명
12명 실종
태풍 22시간만에 구조.
1986년
3월 16일
5시 40분경 604상진호[115]
목포항
67톤
전남 진도 부근 10명 승선
10명 실종
충돌 이름을 모르는
선박과 충돌.
1986년
11월 25일
20시 30분경 천양호[116]
속초항
78톤
26년
속초 동쪽 해상 26명 승선 1명
4명 / 21명
풍랑 오징어잡이 어선
1986년
11월 26일
10시 30분경 카페리2호[117]
신정해운
54.8톤
강화 석포리 부근 70명 승선 43명
13명 / 14명[118]
균형상실
급류
불균형으로
전복
1987년
1월 13일
7시경 제224경인호[119]
인천경인수산
95톤
격렬비열도 부근 10명 승선
10명 실종
풍랑 저인망어선
1987년
2월 12일
7시경 제88지영호[120]
부산항
39톤
대마도 동북방 해상 11명 승선 1명
10명 사망
풍랑 장어통발어선
1987년
2월말
영지호[121]
목포수협
109톤
제주도 남쪽 해상 35명 승선
35명 실종
풍랑 추정 오징어채낚기어선
1987년
6월 16일
14시 40분 극동호 화재 사고
충무유람선협회
24톤
약 7년
충무 앞바다 87명 / 3명
87명
51명
29명 / 7명
엔진 고장
화재
경찰 목선.
20분 만에 침몰
1987년
7월 16일
어선 12척[122]
전남 신안 부근 58명 승선 5명
53명 실종
태풍 셀마 전국 278명 해상
사고로 사망·실종[123]
1987년
8월 31일
2시 동익호[124]
울릉
99톤 울릉도 부근 8명
1명 / 24명
태풍 다이너
1987년
10월 7일
5시경 제31진영호[125]
동진수산
45톤 백령도 서쪽 1명
11명 실종
북한 군함에
피격
수산청 추석. 피격 후
북한 군함에 충돌
1987년
12월 1일
19시경 제11복성호[126]
울릉도
35.6톤 제주항 부근 1명
13명 실종
강풍
파도
채낚기어선
1987년
12월 6일
8시경 제2장영호[127]
부산항
294톤 오륙도 동쪽 1명
10명 실종
폭풍
불균형
화물선. 폭풍으로
짐이 기울어 전복
1987년
12월 30일
3시 15분경 제101영성호[128]
부산항
105톤 홍도 남서쪽 28명 승선 17명
4명 / 7명
폭풍 오징어채낚기어선
1987년
12월 30일
5시 40분경 제391동영호[129]
통영
33.6톤 마라도 서쪽 10명 승선
10명
침수
1988년
4월 17일
12시 50분경 거룻배[130]
0.5톤 신안 용섬 부근 5명 이하
19명
5명
12명 / 2명
정원초과
파도
바지락 채취선
1988년
4월 18일
4시 10분경 제13해림호[131]
부산
96톤 마라도 남쪽 11명 승선 1명
10명 실종
파도 어선
1989년
1월 5일
5시경 원경호[132]
주문진
74.7톤 대마도 부근 21명 승선
21명 실종
오징어채낚기어선
1989년
1월 14일
0시 45분경 제7창명호[133]
창명수산
95.8톤 전남 여천 부근 12명 승선
12명 실종
충돌 저인망어선
카페리와 충돌
1989년
2월 26일
1시경 제3세일호[134]
충무
37톤 마라도 남쪽 12명 승선
12명 실종
파도 장어통발어선
1989년
6월 5일경
어선 4척[135]
신안 재원도 부근 17명 승선
17명 실종
풍랑 무동력선
1989년
10월 31일
19시 남성호[136]
부산
67톤 전북 어청동 부근 14명 승선
14명 실종
풍랑으로
좌초
기선저인망어선
1989년
11월 1일
4시 25분 82근성호[137]
주문진
97톤 대화퇴 부근 1명
6명 / 6명
풍랑
1989년
11월 1일
15시 20분 제26현진호[137]
경북구룡포
89톤 울릉도 부근
10명 / 12명
풍랑
1989년
11월 4일
4시 30분 제12일성호[138]
속초항
56.6톤 대화퇴 부근 16명 6명
4명 / 6명
화재 실종 선박 수색 중
화재 발생
  • 강에서 발생한 선박 사고로, 1984년 5월 19일의 경기도 산정 호수 보트 전복 사고(사망·실종 10명)[139] 가 있다.

1990년대[편집]

1990년대에는 대형 또는 외국 국적의 배가 충돌·좌초하는 사고가 다른 시기에 비해 많아졌다. 유조선의 기름이나 대형 선박의 연료가 누출되어 해양이 오염되는 사고도 잦아지고, 심각해졌다.

1991년에 보도된 해운항만청 집계에 의하면, 1985년부터 1990년까지 358척의 선박이 대한민국 연안과 공해상에서 침몰되어 1,520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었다.[140]

1990년에 보도된 통계에 의하면, 10년 간 대한민국 근해에서 발생한 사고 중 85%가 어선이었으며, 사고 선박의 75.7%, 인명은 94.2%가 구조되었다. 원양어선을 포함한 9만 8천여 척의 선박 중 90.5%가 목선이었다. 사고 원인으로는 선박 불량 등 관리 부실로 인한 사고가 87%를 차지하였다. 사고 장소는 남해가 가장 많았고, 계절별로는 겨울이 가장 많았다.[141]

원양어업이 활발해진 가운데 1990년대에는 선상 폭력 문제가 대두되었다. 1991년에는 하루 평균 2.4명의 선원이 선상에서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것으로 보도되었고,[142] 관련된 사고들이 발생하였다.

서해훼리호 사고를 계기로 대한민국 중소 선박 건조 업체들의 영세성과 안전성보다 편안함을 중시하는 설계, 해양 인력의 부족 등의 문제가 지적되기도 하였다.[143]

해양경찰청의 집계 보도에 의하면, 1993년 한해 동안 151척이 침몰되고 333명이 사망, 1백 명이 실종되었다. 선원의 조종 미숙으로 인한 사고와 소형 선박의 사고 비율이 증가하였으며, 제주 해상에서 가장 많은 사고가 발생하였다.[144] 1998년에는 26명이 사망하고 117명이 실종되었고, 1999년에는 43명이 사망, 121명이 실종된 것으로 집계되었다.[145]

발생년도
월 일
발생시각 선호
선주
크기(톤수)
선령
사고지점
운행구간
정원/선원
승선인원
구조
사망 / 실종
사고 원인 수사기관 특이사항
1990년
1월 13일
4시 20분 화영55호[146]
부산건화수산
98톤 서귀포 남쪽 12명 승선
12명 실종
충돌 화물선이 들이받음.
1990년
4월 12일
11시 40분 88대성호[147]
동해항
55.8톤 울릉도 부근 11명 승선
11명 실종
1991년
1월 21일
13시 10분 88대운호[148]
묵호항
130톤 울산 부근 12명 승선
12명 실종
풍랑
1991년
2월 21일
6시경 퍼시픽 프렌드[149]
파나마
4,417톤 태안군 의항리 부근 20명 승선 6명
14명 실종
침수 원목 운반선
1991년
6월 5일
23시 10분경 제21성진호[150]
인천
90톤 제주 서쪽 11명 승선 1명
10명 실종
충돌 저인망어선
중국 상선에 충돌
1991년
6월 21일
17시 30분경 제102거경호[151]
부산
90톤 오륙도 남방 11명 승선 1명
10명 실종
충돌 오징어채낚기 어선
일본 냉동운반선이 충돌
1991년
6월 28일
20시 50분경 화물선 2척[152]
파나마
4,000톤 외 옹진군 울도 부근 47명 승선 15명
32명 실종
충돌 JE스카이에이스호
치아웨이호
1992년
10월 13일
16시 50분경 제3준양호[153]
포항
103톤 영일군 용한리 부근 22명 승선 4명
18명 실종
강풍
풍랑
오징어채낚기어선
1992년
12월 6일
18시 5분경 제52덕성호[154]
동경수산
133톤 양산 대변리 부근 12명 승선 1명
11명 실종
충돌 트롤어선
1993년
10월 10일
10시 10분경 서해훼리호
서해훼리
110톤
3년
부안 위도 부근
위도 ↔ 부안
207명 / 14명
362명
70명
292명 사망
과적 전주지검 수십 초 만에 전복·침몰
1994년
3월 29일
20시 20분경 제5영덕호[155]
남해
39톤 전남 여천 부근 11명 승선
11명 실종
화재 장어잡이어선
1994년
11월 12일
6시 30분경 92춘동호[156]
마산
93톤 대흑산도 서쪽 11명 승선 1명
10명 실종
충돌 저인망어선
대형 상선과 충돌
1995년
6월 22일
3시 30분경 미네랄뎀피어[157]
라이베리아
87,000톤 마라도 남쪽 27명 승선 2명
25명 실종
충돌 대형 화물선이 서로
충돌
1995년
7월 23일
14시 20분경 씨프린스호
키프로스
144,567톤 여수 앞바다 20명 승선 19명
1명 실종
좌초 광주지검 원유와 벙커C유
5천여 톤 유출
1995년
9월 21일
4시 55분경 제1유일호[158]
유일해운
1,591톤 부산 앞바다 좌초 유조선. 벙커C유
450여 톤 이상 유출
1995년
11월 17일
4시 15분경 호남 사파이어호[159]
호유해운
142,488톤 여수 앞바다 부두에 충돌 유조선. 원유
173톤 유출
1996년
2월 2일
6시경 제7경신호[160]
부산경신수산
115톤 마라도 남서쪽 12명 승선 1명
11명 실종
대형 기선저인망어선
1996년
6월 15일
23시 10분경 안나스피라토[161]
키프로스
16,352톤 통영 남여도 부근 26명 승선
26명 실종
충돌 두 화물선이 충돌
벙커C유 유출
1997년
1월 7일
19시경 261남해호[162]
부산
168톤 제주 마라도 부근 26명 승선 3명
23명 실종
채낚기 어선
1997년
4월 3일
19시경 제3오성호[163]
부산
786톤 통영 매몰도 부근 9명 승선 9명 구조
좌초 벙커C유 186톤
유출 추정
1997년
9월 13일
17시 40분경 98원양호[164]
부산
89톤 제주 마라도 부근 11명 승선 1명
1명 / 9명
충돌 저인망어선
1998년
1월 15일
15시경 뉴바론호[165]
파나마
4,400톤 울산 울주군 부근 20명 승선 3명
2명 / 15명
좌초 벙커C유 345톤
시멘트 5천 톤 유출
1998년
9월 23일경
제3대영호[166]
인천
70톤 인천 울도 부근 11명 승선
1명 / 10명
유자망 어선
1999년
6월 15일경
신흥급어뢰정
북한
37톤 서해 연평도 부근
교전 대한민국
군당국
교전으로 30명 이상
사망 추정

2000년대[편집]

2010년 대한민국 해양경찰청에서 발행한 백서에 의하면, 2000년부터 2009년까지의 10년간 발생한 해양사고는 연평균 선박 사고가 870여 척, 인명 사고는 5600여 명이었고, 사고 유형으로는 충돌 사고가 가장 많았다. 2009년에는 이전 9년간 평균의 2배로 사고 인원이 급증하는 현상을 보였다.[169] 2000년대 후반에는 선원의 노령화, 외국인 선원의 대한민국내 취업 증가, 사고 보상 등 비용 증가, 내국인 선원의 소득 감소 등이 보도되었다.[170]

발생년도
월 일
발생시각 선호
선주
크기(톤수)
선령
사고지점
운행구간
정원/선원
승선인원
구조
사망 / 실종
사고 원인 수사기관 특이사항
2000년
2월 17일
12시 24분경 제5대성호[171]
속초항
강원 고성군 부근 10명 승선
10명 실종
속초해경 어구 일부만 발견
2000년
9월 1일경
어선 12척[172]
인천 일대
1명 / 20명
태풍 태풍 프라피룬으로
피항 중 침몰·좌초
2000년
9월 23일
0시 10분경 주원호[173]
목포항
57톤 소흑산도 남쪽 11명 승선
5명 / 6명
충돌 추정 목포해경 앞 부분에 충돌 자국
2001년
1월 15일
9시 55분경 프로하모니호[174]
파나마
5,544톤 거제 남여도 부근 16명 승선 7명
3명 / 6명
선내 폭발 부산해경 유조선
기름 200여 톤 유출
2002년
6월 29일
6시 ~ 12시 참수리고속정
대한민국 해군
170톤 서해 연평도 부근
북한군과
교전
대한민국
군당국
양측 약 10 ~ 20명
사망 추정
2005년
3월 8일
5시 45분경 썬 크로스호[175]
제주
3,785톤 가거도 서쪽
247 km 해상
13명 승선
14명 실종
충돌 23,000톤급 컨테이너
운반선과 충돌
2005년
4월 2일
18시 이후 부영호[176]
태안군
26톤 격렬비열도 근해 10명 승선
10명 실종
꽃게잡이 통발어선
2005년
12월 1일
15시 40분경 한동호[177]
부산
134톤 전남 병풍도 남서쪽
33 km 해상
14명 승선 1명
13명 실종
충돌 89,000톤급 선박과
충돌
2005년
12월 30일
23시 40분경 한일호[178]
목포
79톤 전남 보길도 남쪽
9 km 해상
11명 승선
2명 / 9명
전복 만선 상태에서 전복
2006년
3월 20일
4시 5분경 신하이7호[179]
중국
2,972톤 인천 무의도 남쪽
4마일 해상
17명 승선 5명
3명 / 9명
충돌 대한민국
해경
위험물 운반선과
충돌
2007년
12월 7일
7시 15분경 허베이 스피릿
홍콩
147,000톤 태안 만리포 서북쪽
8 km 해상
충돌 대한민국
해경
12,500여 톤 원유 유출
2007년
12월 25일
4시 20분경 이스턴 브라이트[180]
인천선적
1,300톤 여수 백도 동북쪽
13 km 해상
15명 승선 1명
7명 / 7명
과적 대한민국
해경
화학약품 운반선
2008년
1월 30일
18시 10분경 102소양호[181]
부산선적
136톤 제주 마라도 남서쪽
65 km 해상
10명 승선 3명
10명 실종
악천후
추정
대한민국
해경
쌍끌이 저인망어선

2010년대[편집]

2013년 대한민국 해양경찰청에서 발행한 백서에 의하면, 해양 사고에서 구조된 인명은 2009년부터 연간 5천 명 정도에서 1만 명 가까이로 2배 가까이, 사고 선박수도 연간 700척 부근에서 1,600척 정도로 2배 이상 늘어났고, 집계가 작성된 가장 최근인 2012년까지 그러한 추세가 지속되었다.[182] 해양 사고의 증가 원인으로는 기상 여건 악화, 선박의 노후화, 선박 정비 불량, 선원의 고령화 등이 지목되었다.[183][184] 또한, 2010년대 초에는 동·남·서해 모두 해양오염사고가 급증하였다고 보도되었다.[185][186][187]

발생년도
월 일
발생시각 선호
선주
크기(톤수)
선령
사고지점
운행구간
정원/선원
승선인원
구조
사망 / 실종
사고 원인 수사기관 특이사항
2010년
1월 27일
8시 25분경 삼봉 11·12호[188]
부산선적
166톤 통영시 국도 남동쪽 10명 승선
1명 / 9명
통영 해양
경찰서
모래운반선
2010년
3월 26일
21시 22분경[189] 천안함
대한민국 해군
1,220톤 백령도 서쪽 해상 104명 승선 58명
40명 / 6명
어뢰에 의한 피격
추정
대한민국
합동조사단
초계함
2011년
2월 9일
6시경 알렉산드라호[190]
캄보디아 선적
1,500톤 울산 동구 앞바다 11명 승선
4명 / 7명
울산 해양
경찰서
액체화물운반선
2011년
12월 26일
2시경 739건아호[191]
부산 선적
139톤 울산 간절곶 동쪽
15마일 해상
14명 승선 3명
1명 / 10명
복원력 상실
추정
울산 해양
경찰서
트롤어선
2012년
1월 15일
8시 5분경 두라3호
부산선적
4,191톤 인천 자월도 북쪽
5.6 km 해상
16명 승선 5명
5명 / 6명
내부 폭발 인천 해양
경찰서
유류운반선
2013년
10월 15일
15시 40분경 쳉루15호[192]
파나마 선적
8,000톤 영일만 동북쪽
1 km 해상
19명 승선 8명
9명 / 2명
파도와 강풍으로
방파제에 충돌
포항 해양
경찰서
화물선
2014년
4월 4일
1시 19분경 그랜드 포춘 1호[193]
몽골 선적
4,300톤 거문도 남쪽 공해상
청진 → 양저우
16명 승선 3명
2명 / 11명
강풍 여수 해양
경찰서
전원 북한 선원
2014년
4월 16일
8시 48분경 세월호
청해진해운
6,835톤 진도군 병풍도 부근
인천 → 제주
921명 / 33명
476명 승선
172명
295명 / 9명
복원력 상실 해양 경찰청 209일간 수색
2015년
1월 23일
2시 30분경 기임어00791호[194]
중국 선적
138톤 제주 차귀도 남서쪽
164 km 공해상
13명 승선 3명
10명 실종
충돌 제주해양경비
안전서
미확인 상선과
충돌
2015년
9월 5일
19시 30분 이후 돌고래호[195]
해남 선적
9.7톤 추자도 인근 해상 21명 추정 3명
14명 / 4명
엔진 이상
너울성 파도
제주해양경비
안전본부
낚싯배
2017년
12월 3일
6시 12분경 선창1호[196] 9.77톤 인천 영흥대교 인근 해상 22명 7명
15명 사망
급유선과 충돌
파도
인천해양경비 낚싯배[197]

역대 최대 사고[편집]

일제 강점기를 포함하여 역대의 해양 사고들을 규모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인명 사고[편집]

인명 사고는 집계된 사망자와 실종자 수를 기준으로 하였다. (1위에서 10위까지만 나열)

순위 발생년도
월 일
선호
선주
크기(톤수)
선령
사고지점
운행구간
정원/선원
승선인원
구조
사망 / 실종
사고 원인 특이사항
1 1923년
4월 12일
어선 110여 척
영일만
69명 / 355명
돌풍
파도
항구에 피신 중에
폭풍으로 침몰
2 1976년
10월 29일
어선 17척
대화퇴 해상 327명
34명 / 293명
4일간의
풍랑
대한민국 역대 최대
어선 해난 사고
3 1970년
12월 15일
남영호
남영해운
362톤
2년
거문도 동쪽
서귀포 ↔ 부산
321명 /19명
338명
12명
9명 / 317명 이상
과적 일본 배에 8명 구조
4 1953년
1월 9일
창경호
대동상선
147톤
20년
거북섬 부근
여수 ↔ 부산
240명
300여 명
8명
269명 / 40여 명
파도
과적
5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청해진해운
6,835톤
약 20년
진도군 병풍도 부근
인천여객터미널 ↔ 제주
921명 / 33명
476명 승선
172명
295명 / 9명
과적
복원력 상실
209일간 수색
6 1928년
11월 1일
어선 50척 진남포 덕도 부근 300여 명 승선
300여 명 실종
폭풍우 시신 6구 발견
7 1931년
8월 19일
어선 52척 전남 무안 부근 464명
10명 / 289명
폭우 전국적으로 피해
8 1993년
10월 10일
서해훼리호
서해훼리
110톤
3년
부안 위도 부근
위도 ↔ 부안
207명 / 14명
362명
70명
292명 사망
과적 수십 초 만에 전복·침몰
9 1974년
2월 22일
YTL30호
대한민국 해군
120톤
충무 앞바다

316명
152명
158명 / 1명
과적
운항부주의
소형 항만 예인정
10 1963년
1월 18일
연호
명진합명회사
34.5톤
21년
전남 영암 부근 86명 / 8명
141명
1명
140명 사망
과적
돌풍
5분 내에 침몰

해양 오염 사고[편집]

해양 오염 사고는 누출된 오염물의 톤수를 기준으로 하였다. (1위에서 3위까지만 나열)

순위 발생년도
월 일
선호
선주
크기(톤수)
선령
사고지점
운행구간
정원/선원
승선인원
구조
사망 / 실종
사고 원인 특이사항
1 2007년
12월 7일
허베이 스피릿
홍콩
147,000톤 태안 만리포 서북쪽
8 km 해상
충돌 12,500여 톤 원유 유출
2 1995년
7월 23일
씨프린스호
키프로스
144,567톤 여수 앞바다 20명 승선 19명
1명 실종
좌초 원유와 벙커C유
5천여 톤 유출
3 1995년
9월 21일
제1유일호
유일해운
1,591톤 부산 앞바다 좌초 유조선. 벙커C유
450여 톤 이상 유출

각주[편집]

내용주[편집]

  1. 일제 강점기를 포함하면, 69명이 사망하고 355명이 실종된 것으로 보도된 영일만 대참사가 가장 피해가 크다.

참고주[편집]

  1. 海難事故日誌, 《동아일보》, 1974.2.23 -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어서 목록만 참고.
  2. 침몰 대형 유조선.가스선등 16척 연근해 방치,해양오염 '재앙'키운다, 《경향신문》, 2000.12.19
  3. 旅客船과海警船衝突로 23名死亡24名行方不明, 《경향신문》, 1947.8.22
  4. 水原雨汀面海岸에서 帆船二隻이沈沒 乘員八三名行方不明, 《동아일보》, 1948.4.15
  5. 正體모를飛行機 鬱陵島漁船爆擊, 《경향신문》, 1948.6.12
  6. 獨島事件賠償, 《경향신문》, 1948.7.16
  7. 渡日船沈沒 行方不明20救助19, 《동아일보》, 1949.8.7
  8. 이러니까沈沒할수박게 定員보다훨신超過乘船, 《동아일보》, 1951.6.19
  9. 木浦珍島間旅客船沈沒, 《동아일보》, 1951.11.21
  10. 行方不明卅名 死亡者만四十五名, 《동아일보》, 1951.11.22
  11. 漁船朝日丸沈沒, 《경향신문》, 1952.5.26
  12. 屍體53 具引揚 幸運號沈沒事件續報, 《동아일보》, 1953.1.29
  13. 壇上壇下, 《동아일보》, 1953.5.1
  14. 突山島앞바다서慘事 機帆船沈沒,廿三名行方不明, 《동아일보》, 1954.6.7
  15. 乘客十四名溺死 江華島앞海上서帆船沈沒, 《동아일보》, 1954.8.19
  16. 發動船이 沈沒 十三名이 行方不明, 《경향신문》, 1955.4.7
  17. 乘客十二名이溺死, 《동아일보》, 1955.4.26
  18. 延坪島조기잡이에 異狀 우리漁船團被擊, 《동아일보》, 1955.5.16
  19. 正體모른船舶 沈沒, 《경향신문》, 1955.8.20
  20. 船員十八名失踪, 《동아일보》, 1956.2.5
  21. 漁夫11名溺死, 《경향신문》, 1956.9.25
  22. 海女等23名溺死 暴風으로漁船이沈沒, 《동아일보》, 1956.12.7
  23. 曳引船沈沒 30餘名溺死, 《동아일보》, 1957.4.15
  24. 無心한갈매기 떠도는가운데 雲集한遺族들통곡, 《동아일보》, 1957.4.16
  25. 華城郡下 앞바다서 木船沈沒로慘變, 《경향신문》, 1957.8.30
  26. 漁船一隻또浸沒, 《경향신문》, 1958.1.17
  27. 또11名行方不明, 《동아일보》, 1958.2.15
  28. 船員13名이溺死, 《경향신문》, 1959.1.19
  29. 또三具를引揚 船員13名溺死事件, 《동아일보》, 1959.1.24
  30. 35名이行方不明 三名溺死·四名이生還, 《경향신문》, 1959.4.24
  31. 警報解除前에出航許可, 《경향신문》, 1959.4.27
  32. 溺死및失踪46名, 《동아일보》, 1959.9.18
  33. 나룻배顚覆事件 13名의屍體引上, 《경향신문》, 1954.6.12
  34. 廿名의乘客溺死 靑陽郡長津「나루터」서渡船沈沒, 《동아일보》, 1954.8.7
  35. 文總主催 謝肉祭에 一大椿事, 《경향신문》, 1956.8.21
  36. 배뒤집혀19名溺死, 《동아일보》, 1958.5.28
  37. 三名이 죽고 八名 行方不明, 《경향신문》, 1959.3.12
  38. 11個月에 三百50名死亡, 《경향신문》, 1957.12.23
  39. 漁夫12名行方不明, 《동아일보》, 1960.1.19
  40. 漁船八隻沈沒·大破 한名죽고13名行方不明, 《경향신문》, 1960.5.17
  41. 船員13名이溺死, 《동아일보》, 1960.6.2
  42. 12名이行方不明 貨物船 光復號浸水事故, 《동아일보》, 1961.11.12
  43. 너무나뜻밖의일, 《경향신문》, 1962.1.3
  44. 5名溺死20名失踪, 《경향신문》, 1963.11.9
  45. 日船沈沒 10名溺死 濟州島南方서, 《동아일보》, 1963.12.18
  46. 第2보승호 沈沒, 《경향신문》, 1964.4.17
  47. 普勝2號 歸港中沈沒 13名中 11名이溺死 2名救助, 《동아일보》, 1964.4.17
  48. 海女셋溺死 15名이失踪, 《동아일보》, 1964.8.5
  49. 瑞山앞바다서 無免許나릇배 顚覆 장꾼등 24名溺死, 《동아일보》, 1964.11.25
  50. 船客 13名失踪 麗川郡 앞바다서, 《경향신문》, 1964.12.7
  51. 男女13名失踪 2名 生還, 《동아일보》, 1965.4.5
  52. 43名溺死, 《동아일보》, 1966.1.1
  53. 瑞山앞 바다서 慘事, 《동아일보》, 1966.1.14
  54. 漁夫12명溺死 1명生還, 《경향신문》, 1968.1.4
  55. 16名溺死·9名실종, 《경향신문》, 1968.5.25
  56. 선원21명失踪 어선3척침몰, 《경향신문》, 1969.3.28
  57. 大型무장間諜船 격침, 《경향신문》, 1969.9.24
  58. 大型間諜船 격침, 《동아일보》, 1969.10.14
  59. 나룻배뒤집혀 一大慘事, 《동아일보》, 1962.9.7
  60. 나룻배 침몰 12명실종, 《경향신문》, 1966.8.26
  61. 나룻배 뒤집혀 근80명溺死, 《동아일보》, 1969.9.18
  62. 올해들어 死亡者만93名, 《경향신문》, 1962.3.3
  63. 2백51件발생 68年度중해난사고, 《매일경제》, 1969.1.31
  64. 도사린海難 現場검증 西南海 연안海運의 아찔한實態, 《동아일보》, 1971.1.20
  65. 가난만 낚는 오징어 잡이 의悲哀, 《동아일보》, 1976.11.10
  66. 海運立國의 불명예 海難사고, 《동아일보》, 1980.2.18
  67. 심한風浪에 漁船4척 沈沒 東海서 漁夫18명溺死, 《경향신문》, 1970.1.31
  68. 對間諜대책본부 발표 西海서 武裝간첩선 撃沈, 《경향신문》, 1970.4.4
  69. 釜山 東南海底서 명신호船體 발견, 《동아일보》, 1970.6.16
  70. 失踪명신號 船員屍體五구 발견, 《동아일보》, 1970.5.15
  71. 西海서 船員36명 실종, 《경향신문》, 1971.1.12
  72. 낮잠자는 運航管理 질자號沈没서 본 잇단海難의 原因, 《동아일보》, 1971.1.8
  73. 30명死亡 둘失踪, 《매일경제》, 1971.1.8
  74. 오늘 새벽 東海 침투 大型重武裝간첩선撃沈, 《경향신문》, 1971.5.14
  75. 漁船침몰 13명溺死, 《동아일보》, 1973.2.27
  76. 영등포 一家六명 壓死傷, 《동아일보》, 1974.5.20
  77. 乘務員28명 탄 海警 哨戒艇 세北傀艇과 交戰…沈沒추정, 《동아일보》, 1974.6.28
  78. 小黒山島근해 西海서 漁夫47명 失踪, 《경향신문》, 1974.8.30
  79. 莞島앞바다서 거룻배顚覆 35명溺死·失踪, 《경향신문》, 1974.11.13
  80. 울릉島천부港서 旅客태운漁船뒤집혀37名死亡失踪, 《동아일보》, 1976.1.19
  81. 11名이溺死·失踪 濟州近海 交信끊긴漁船 沈沒확인, 《동아일보》, 1976.12.21
  82. 실종船員5명奇蹟的구조, 《동아일보》, 1977.12.5
  83. 船員10명탄 漁船실종 屍體1具발견 9명도溺死한듯, 《동아일보》, 1977.12.7
  84. 漁船2척침몰 11명溺死실종, 《동아일보》, 1978.1.23
  85. 東海岸일대·濟州근해 強風·暴雪 漁船등 4척沈沒, 《경향신문》, 1978.2.18
  86. 집계가 명확하지 않다.(2월 20일자 《경향신문》 25명, 《동아일보》 29명, 《매일경제》 35명)
  87. 새우잡이배 沈沒 모두13명실종, 《경향신문》, 1978.12.1
  88. 新安근해 漁船사고 2척 더 沈沒, 《동아일보》, 1978.12.2
  89. 어부20명失踪, 《경향신문》, 1979.1.29
  90. 폭풍으로 漁船 沈沒 船員13명失踪 方魚津앞 海上서, 《경향신문》, 1979.2.20
  91. 新安 흑산앞바다 漁船침몰,12명失踪, 《경향신문》, 1979.10.6
  92. 南·西海서 폭풍注意報속 선원12명 失踪, 《경향신문》, 1979.11.19
  93. 下學길 학생등 19名 실종, 《매일경제》, 1976.6.9
  94. 鐵製遊覽船침몰…12名溺死, 《동아일보》, 1976.8.09
  95. 燕岐 龍水川서 中學生16명 거룻배뒤집혀 溺死, 《동아일보》, 1978.7.20
  96. 瑞山 앞바다 서쪽 40마일 해상에서 북괴 무장간첩선이 침몰, 《경향신문》, 1980.6.23
  97. 船長등 14명이 失踪, 《경향신문》, 1980.9.1
  98. 화물선에서 1시간여 구조 작업을 벌였으나 1명도 구조되지 못했다.
  99. 「종봉」號 東海어장서 船員35명태운 漁船실종, 《경향신문》, 1980.11.3
  100. 統營앞바다 漁船·貨物船충돌 18명실종, 《경향신문》, 1981.9.7
  101. 失踪된 한일호 沈沒한듯, 《매일경제》, 1981.11.28
  102. 울릉도近海 오징어잡이 어선 침몰, 《매일경제》, 1982.10.25
  103. 6~7명이 구명 보트를 타고 있었으나 구조하지 못했다.
  104. 어선침몰 11명실종, 《동아일보》, 1983.10.8
  105. 濟州근해 어선침몰 1명死亡·12명실종, 《동아일보》, 1984.1.12
  106. 木浦근해 어부17명 失踪도, 《경향신문》, 1984.7.6
  107. 新安 木船침몰 11명死亡·失踪, 《경향신문》, 1984.11.19
  108. 濟州道東南쪽 90마일해상 貨物船침몰 3명死亡 14명失踪, 《동아일보》, 1985.1.30
  109. 표류4명은 구조 貨物船 또침몰 12명 사망 실종, 《동아일보》, 1985.2.2
  110. 오늘上午 濟州 牛島근해서 생선運搬船침몰 27명실종, 《경향신문》, 1985.3.15
  111. 漁船침몰 11명失踪, 《경향신문》, 1985.4.12
  112. 小黑山島앞 公海 우리漁船 中共商船과충돌 침몰, 《경향신문》, 1985.4.18
  113. 紅島서 27일저녁에 遊覽船침몰 18명死亡실종, 《동아일보》, 1985.7.29
  114. 漁船침몰 漂流 두船員 22시간만에 劇的 구조, 《동아일보》, 1985.8.16
  115. 어선 침몰 10명 失踪, 《경향신문》, 1986.3.17
  116. 漁船침몰 25명 사망·실종 束草앞바다, 《동아일보》, 1986.11.26
  117. 江華서 카페리 顚覆 신정海運소속, 《경향신문》, 1986.11.26
  118. 江華카페리死亡·失踪 27명으로 늘어나, 《경향신문》, 1986.11.28
  119. 操業어선 침몰 10명 失踪, 《경향신문》, 1987.1.14
  120. 溺死10·구조1명, 《매일경제》, 1987.2.13
  121. 35명탄漁船 실종, 《동아일보》, 1987.3.3
  122. 死亡·실종 2百40여명 오늘 正午현재, 《동아일보》, 1987.7.17
  123. 人命피해 83%가 漁夫, 《동아일보》, 1987.7.18
  124. 漁船침몰 25명 死亡 실종, 《동아일보》, 1987.9.1
  125. 北傀에 어선被擊 침몰, 《경향신문》, 1987.10.8
  126. 漁船 침몰 13명 실종, 《동아일보》, 1987.12.2
  127. 船員10명 失踪, 《경향신문》, 1987.12.7
  128. 漁船 침몰 11명死亡·실종, 《경향신문》, 1988.1.1
  129. 失踪동영號 침몰된듯, 《경향신문》, 1988.1.1
  130. 거룻배 침몰 14명 死亡 失踪, 《동아일보》, 1988.4.18
  131. 濟州서 漁船침몰 10명 失踪, 《동아일보》, 1988.4.18
  132. 漁夫21명 숨진듯, 《동아일보》, 1989.1.9
  133. 濟州發釜山行 카페리에 받혀 漁船침몰 선원12명 失踪, 《경향신문》, 1989.1.14
  134. 濟州서 漁船침몰 船長등 12명실종, 《경향신문》, 1989.2.27
  135. 新安앞바다 새우잡이船 4척침몰 漁夫 17명 실종, 《동아일보》, 1989.6.5
  136. 어선 침몰 14명 실종, 《경향신문》, 1989.11.1
  137. 어선2척 침몰 36명死亡실종, 《동아일보》, 1989.11.2
  138. 실종선원 수색船에 불 10명 사망실종, 《동아일보》, 1989.11.4
  139. 山井호수 行樂客태운 보트 전복 9명溺死·1명失踪, 《동아일보》, 1984.5.21
  140. 船上폭력 한해308명 死亡, 《동아일보》, 1991.8.4
  141. 겨울철의 海難事故, 《동아일보》, 1990.12.26
  142. 船員 사망 실종많다 작년이후 5百여명 海警집계, 《동아일보》, 1990.8.18
  143. 소형선박"주먹구구 造船", 《경향신문》, 1993.10.12
  144. 작년 배百51척 침몰 4百33명 死亡실종 해양경찰청 집계, 《동아일보》, 1994.5.18
  145. 99년 해양사고, 인명피해 70% 늘어 등…해양부 발표, 《한국경제》, 2000.1.10
  146. 漁船침몰 12명실종, 《동아일보》, 1990.1.13
  147. 11명탄漁船 12일째실종, 《동아일보》, 1990.4.24
  148. 漁船침몰 12명실종, 《동아일보》, 1991.1.22
  149. 원목船 침몰 14명실종, 《동아일보》, 1991.2.21
  150. 中國船에 받혀 漁船침몰 선원10명 실종, 《동아일보》, 1991.6.6
  151. 어선침몰 10명 死亡실종, 《동아일보》, 1991.6.22
  152. 화물선 2척 충돌 침몰 中國人등 32명 실종, 《동아일보》, 1991.6.30
  153. 어선침몰 18명실종, 《동아일보》, 1992.10.14
  154. 船員11명 실종, 《동아일보》, 1992.12.7
  155. 어선화재 침몰 선원10명 실종, 《동아일보》, 1994.3.31
  156. 怪선박 어선받고 도주 선원10명 실종, 《경향신문》, 1994.11.13
  157. 국내-외국화물船 제주남쪽해상 충돌 외국선원 27명 실종, 《동아일보》, 1995.6.23
  158. 부산앞바다 유조선 침몰, 《경향신문》, 1995.9.22
  159. 麗川앞바다 또 기름오염, 《매일경제》, 1995.11.18
  160. 저인망어선 침몰 12명 실종·사망, 《한겨레》, 1996.2.3
  161. 외국화물船 충돌…한척 침몰 통영앞바다 기름오염 비상, 《동아일보》, 1996.6.17
  162. 26명탄 어선 침몰한듯 인근서 시체3구 인양, 《경향신문》, 1997.1.9
  163. 좌초유조선서 벙커C油 187t 유출, 《매일경제》, 1997.4.5
  164. 선박충돌 10명사망·실종 제주해상서 어선1척 침몰…1명은 구조, 《경향신문》, 1997.9.14
  165. 파나마 화물선 침몰 선원20명 사망·실종, 《경향신문》, 1998.1.16
  166. 서해서 어선침몰 11명사망·실종, 《경향신문》, 1998.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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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9. 해양사고 발생 현황, 《해양경찰백서》, 해양경찰청, 2010
  170. 국내 연근해 업계 외국선원 급증, 《파이낸셜뉴스》, 2007.5.11
  171. 어선 침몰 선원10명 실종, 《동아일보》, 2000.2.18
  172. 태풍피해 전국 5명 사망 25명 실종…선박12척 침몰, 《동아일보》, 2000.9.2
  173. 어선 전복 11명 사망.실종 - 전남 신안서…충돌사고 당한듯, 《경향신문》, 200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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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 26일 21시 21분 57초 ‘천안함 비극’ 그때 시작됐다, 《문화일보》, 2010.4.7
  190. 남해서 캄보디아 배 침몰… 선원 4명 사망 7명 실종, 《한국일보》, 2011.2.10
  191. 울산 어선 침몰… 11명 사망·실종, 《문화일보》, 2011.12.26
  192. 파나마 선적 대형 화물선, 포항 앞바다 침몰 9명 숨져, 《동아일보》, 2013.10.17
  193. 몽골 화물선, 여수 해상서 침몰 탑승자 16명 전원이 북한 선원, 《경향신문》, 2014.4.5
  194. 제주 공해상서 중국어선 침몰…선원 10명 실종, 《매일경제》, 2015.1.23
  195.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국민안전처 체제’, 《한겨레》, 2015.9.8
  196. 영흥도 사고 ‘선창 1호’는 어떤 배…바다 낚시꾼들에 유명 Archived 2017년 12월 3일 - 웨이백 머신, 《동아일보》, 2017.12.3
  197. "갑자기 천둥치더니…" '영흥도 낚싯배 전복' 목격자가 전하는 당시 상황, 《중앙일보》, 201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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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