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의 해양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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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는 매년 크고 작은 해양 사고가 발생하였다. 다음은 일제강점기 한반도 연해에서 일어난 해양 사고의 목록이다. (사망 또는 행방불명자 10인 이상을 등록 기준으로 한다.)

1920년대[편집]

보도에 의하면, 1923년 한해 모두 1,023척이 조난되었다. 도별로는 경기도가 가장 많고, 월별로는 8월이 가장 많았다. 1923년 1년간 해양 사고로 524명이 사망하였으며, 449명이 행방불명되었다.[1]

발생년도
월 일
발생시각 선호
선주
톤수
선령
사고지점
운행구간
정원/선원
승선인원
구조
사망 / 행방불명
사고 원인 수사기관 특이사항
1923년
4월 12일
22시 이후 어선 110여 척
영일만
69명 / 355명
돌풍
파도
항구에 피신 중에
폭풍으로 침몰
1923년
11월 1일
3시 30분경 진주환호[2]
조선우선회사
177톤 명천 쌍포 남쪽 약 40명 실종 충돌 우편선.
10분만에 침몰
1924년
6월 10일
13시경 어선 5척[3] 원산 부근
10여 명 실종
폭풍 원산경찰서
1926년
12월 6일
어선 6척[4] 목포 부근
35명 실종
폭풍
파도
조선인과 일본인 포함
1927년
4월 11일
12시 10분 제3진해환호[5]
진해기선회사
16톤 진해 부근 약 240명 승선
25명 / 7명 추정
승무원 실수 부산지방법원 종선을 분리하다가
전복
1927년
4월 20일
12시경 천진환호[6] 524톤 부산 해운대 부근
16명 실종
조선인과 일본인 포함
1927년
5월 1일
21시경 속조환호[7] 240톤 제주 가파도 부근 25명 승선 2명
18명 / 5명
좌초
1928년
1월 28일
15시경 함경환호[8]
조선우선회사
제주 대포항 50명 승선 18명
9명 / 23명
과적
바람과 비
종선 침몰. 유족들이
위자료 청구[9]
1928년
11월 1일
13시경 어선 50척[10]
진남포 덕도 부근 300여 명 승선
300여 명 실종
폭풍우 시신 6구 발견
  • 내륙에서 발생한 선박 사고로 1926년 8월 26일 황해도 옹진군 서면 나룻배 전복 사고(사망·실종 26명)[11], 1926년 8월 27일 평안북도 태천군 나룻배 전복 사고(사망·실종 34명)[12], 1929년 4월 12일 충남 당진군 나룻배 전복 사고(사망·실종 15명)[13] 가 있다.

1930년대[편집]

발생년도
월 일
발생시각 선호
선주
톤수
선령
사고지점
운행구간
정원/선원
승선인원
구조
사망 / 행방불명
사고 원인 수사기관 특이사항
1931년
8월 19일
19시 이후 어선 52척[14] 전남 무안 부근 464명
10명 / 289명[15]
폭우 전국적으로 피해
1932년
9월 2일
1시 이후 어선 3척[16]
원산수저망위원회
호도 부근 12명 승선
12명 실종
폭풍우 어선
1933년
10월 23일
20시경 현어환[17] 해주 형제도 부근 2명
2명 / 8명
폭풍 어선
1934년
1월 21일
14시경 '미요시'환[18] 해주 형제도 부근
12명 실종
폭풍
1934년
6월 2일
어선 264척[19] 연평도 부근
12명 / 9명
폭풍우 어부 1,900명 조난
1934년
11월 18일
오후 범선[20]
다대포 어구 54명 승선 25명
29명 실종
폭풍우 부산수상경찰서 밀항선
3명 구조 후 도주
1935년
5월 6일 이후
이용환[21]
함남 마양도 부근 10명 승선
4명 / 6명
어선
1936년
3월 14일 이전
발동기[22]
영일 구만동 부근 12명 승선
12명 실종
나뭇조각 발견
1936년
10월 2일
20시 30분경 녹도환
인천기선회사
28톤 인천 팔미도 부근 71명
7명 / 64명
10명
50명 / 11명
풍랑 해원심판소 외
1937년
8월 13일
화물기선[23]
함남 서호진 부근 20명 승선
20명 실종
화재
1938년
3월 19일
18시경 해룡환[24]
인천환성
45톤 서산 황금산 부근 30명 승선 14명
2명 / 14명
안개로 좌초 발동기선
1939년
9월 30일
17시경 어선[25]
광양 섬진강 입구 27명 승선 13명
10명 / 4명
과적
파도
유가족들이 사공을
상대로 고소
  • 내륙에서 발생한 선박 사고로 1931년 4월 28일의 김포 발동기선 전복 사고(사망·실종 20여 명)[26], 1934년 8월 31일의 대고산(압록강) 대안환호 침몰 사고(사망·실종 148명), 1937년 9월 18일의 압록강 웅비환호 침몰 사고(사망·실종 15명)[27] 가 있다.

1940년대[편집]

1934년의 밀항선 침몰 사고에 이어 1940년에도 100명이 넘게 실종된 밀항선 침몰 사고가 있었다.

발생년도
월 일
발생시각 선호
선주
톤수
선령
사고지점
운행구간
정원/선원
승선인원
구조
사망 / 행방불명
사고 원인 수사기관 특이사항
1940년
1월 6일
5시 이후 지영환[28] 10톤 대마도 부근 145명 승선
15명 / 130명
전복 밀항선
선장, 브로커 실종
1940년
3월 14일
15시경 여항산환[29] 16톤 통영 돈지리 부근 43명
59명
15명
42명 / 2명
과적
파도
순항선

각주[편집]

  1. 昨年中의遭難船, 《동아일보》, 1924.4.27
  2. 明川雙浦近海에서 郵船晋州丸沈沒, 《동아일보》, 1923.11.3
  3. 元山遠海에大慘事, 《동아일보》, 1924.6.18
  4. 木浦에도暴風 卅五名溺死, 《동아일보》, 1926.12.19
  5. 鎭海의大慘事 發動機船突然顚覆 乘客八十名遭難, 《동아일보》, 1927.4.13
  6. 天眞丸沈沒 十六名溺死, 《동아일보》, 1927.4.23
  7. 死者判明廿三 선댱이하이십일명이익사 濟州近海坐礁汽船遭難者, 《동아일보》, 1927.5.7
  8. 多數溺死의責任 大部分은朝郵에, 《동아일보》, 1928.2.7
  9. 事實證據收集하야 遺族의慰藉料請求, 《동아일보》, 1928.3.20
  10. 警備船도徒勞空歸 三百漁父畢竟沒死?, 《동아일보》, 1928.11.5
  11. 瓮津溺死者는 全部二十六名, 《동아일보》, 1926.8.30
  12. 四十七名中 卅四名慘死, 《동아일보》, 1926.8.31
  13. 屍體搜索에 郡警大活動, 《동아일보》, 1929.4.17
  14. 判明된溺死者十五名 百八十名去處不明, 《동아일보》, 1931.8.21
  15. 四百六十名救助 生死不明二百九十, 《동아일보》, 1931.8.22
  16. 十二名乘組員의 救助는絕望?, 《동아일보》, 1933.10.30
  17. 海州兄弟島에暴風 漁父十二名失踪, 《동아일보》, 1932.10.4
  18. 暴風에發動船沈沒 船員十二名溺死, 《동아일보》, 1934.1.23
  19. 續續判明되는延坪島實情과 遭難民應急救濟策, 《동아일보》, 1934.6.6
  20. 密航船이暴風에顚覆 五十四名이全沒, 《동아일보》, 1934.11.20
  21. 鰯漁船轉覆으로 漁父十名溺死, 《동아일보》, 1935.5.20
  22. 暴風東海掩襲 發動船一隻浸沒 十二名生死不明, 《동아일보》, 1936.3.17
  23. 航海中汽船서 揮發油爆發 二十名死傷, 《동아일보》, 1937.8.18
  24. 發動船海龍丸沈沒 乘員三十名溺死, 《동아일보》, 1938.3.21
  25. 廿七名中十四名沒死 被害家族情况凄慘, 《동아일보》, 1939.10.8
  26. 漢江에서發動船顚覆 乘客六十名慘沒, 《동아일보》, 1931.4.30
  27. 二十九名은救助!判明된溺死者十五名, 《동아일보》, 1937.9.21
  28. 密航船,之榮丸沈沒 一百三十名溺死, 《동아일보》, 1940.1.8
  29. 屍體42個를發見 十五船客이겨우救命, 《동아일보》, 1940.3.21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