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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대수 = 13·15·16
|정당 = [[무소속]]
|지역구 = 前 [[서울영등포구 영등포구의 국회의원|서울 영등포구 갑]]
|학력 = [[서울공업고등학교]]<br>[[중앙대학교]] 약학대학 학사<br/>[[중앙대학교|중앙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br/>[[중앙대학교|중앙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직업 = 대학 교수, 기업가, 정치가
 
=== 정치 입문 ===
서울시약사회 [[회장]]으로 분주하던 [[1980년]] 당시 [[국민당]] [[서울시]] 책임자로 있던 [[정의섭]] (전)[[보건사회부]] [[장관]]은 [[국민당]] 공천을 제의와 함께 정계 진출을 제안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정계진출은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라 망설였으나, [[약사]]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해 그동안 느꼈던 보건과 복지에 대해 제도적 취약점을 바르게 개선하는 더 큰 인물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후보자는 9명으로,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정계에 문을 두드리며 [[대한민국 제5공화국|5공]] 정권의 [[민주공화당 (대한민국)|공화당]] 가락동 연수원 대지 강탈과 [[민정당]] 창당 시 저질렀던 각종 부정불법도 거침없이 비판하고 나섰다. 그의 정치행보는 지역구민들과, 동문, 약사들의 지지를 받으며 이목을 집중시켰고, 매스컴에서는 그를 당선 안정권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의 소속당인 [[국민당]]에서도 당선을 확신하고 있었다. 당선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5공 당국과 여당인 [[민정당]]의 탄압이 심화되면서 그를 지지하던 지역 [[약사]]들까지도 [[불법선거]]를 자행했단 이유로 경찰서로 강제연행해 자인서 작성을 강요했으며, 경찰은 조사할 게 있다며 그의 아내의 핸드백을 빼앗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여기에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은 직접 [[영등포]]로 방문해 [[여당]]인 [[민정당]] 후보를 격려하는 등 [[민정당]]의 입지를 확고히 하려 애썼다. 이후 선거 5일 전에는 지역당 사무실로 찾아온 영등포 남부지청 수사관들이 순식간에 그를 연행했다. [[선거]]관련 서류를 모조리 압수하기 까지했다. 그가 무슨 일이냐며 계속해서 항의하자 남부지청 수사관들은 '선물 공세를 했다는 [[민정당]] 사무국의 제보가 들어왔다'는 한마디가 고작이었다. 연행 후엔 별다른 질문도, 추궁도 없이 8시간 동안 불법 억류를 당한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엎친대 덮친 격으로 그 다음날부터는 선거사무실장이 [[민정당]]에 협박과 회유로 매수되어 선거사무실에 출근을 안하기 시작했고, 선거조직은 한순간에 공중분해 돼버렸다. 선거 당일에는 [[참관인]]까지 매수당해 그는 참관인도 잃은 채 선거를 치루며 당선자와 3000여 표 차이로 낙선하고 말았다. 집권여당에게 혹독한 정치적 술수를 맛본 그는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6.29선언]] 이후 [[노태우]] 정권이 출범하면서 이전에 비하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이해할 만한 수준으로 정세가 변화하면서 민주정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그도 모르는 사이 [[민정당]]에서는 그를 차기 지역구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다. [[6.29선언]] 이후 [[대한민국 제5공화국|5공]] 시절 안하무인으로 야당을 희롱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구속하며 선거를 치르던 [[민정당]]은 예전의 권세는 커녕, 오히려 [[여당]]으로서의 권위가 밑바닥까지 추락하여 사회적으로 매도당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런 와중에 [[민정당]]은 지난 11대 총선에서 그가 보여준 지역내 영향력을 높게 평가해 한 때 자신들이 겁박했던 그에게 공천을 제안했다. [[민정당]]에게 11대 선거에서 혹독하게 치욕을 겪어 다시는 정치판에 나서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는 정세가 바뀐 만큼 여당 내에 야당으로서 건전한 비판세력이 되어 흐트러진 정치권을 바로잡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후 [[민정당]]의 공천 제안을 받아들인 그는 [[1988년]] [[대한민국 제13대 총선|13대 총선]]에서 [[서울특별시|서울]] [[서울 영등포구의 국회의원|영등포영등포구 을]]에 출마해 [[평민당]] [[이용희 (1931년)|이용희]] 부총재를 465표 차로 물리치며 첫 금배지를 달았다.
 
=== 정치 활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