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렬 (18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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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렬
劉升烈
대한민국 국방부 특임고문
임기 1954년 6월 23일 ~ 1956년 5월 16일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함태영
총리 변영태 국무총리
백한성 국무총리 임시서리
장관 손원일 국방부 장관
차관 이호 국방부 차관
장건식 국방부 차관 직무대리
김용우 국방부 차관
신상정보
출생일 1893년 3월 9일(1893-03-09)
출생지 조선 충청도 공주
사망일 1968년 5월 18일(1968-05-18) (75세)
사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거주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본관 강릉(江陵)
학력 대한민국 육군보병학교
정당 무소속
배우자 유정렬
자녀 유재흥(장남)
종교 불교개신교
군사 경력
군복무 일본 제국 육군
대한민국 육군
복무기간 1914년 ~ 1945년 (일본군 육군)
1949년 ~ 1954년 6월 16일 (대한민국 육군)
최종계급 일본군 육군 대좌
대한민국 육군 소장
지휘 부사령관
근무 대한민국 육군 경북지구 계엄사령부
참전 태평양 전쟁, 한국 전쟁

유승렬(劉升烈, 1893년 3월 9일(1893-03-09) ~ 1968년 5월 18일(1968-05-18))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군인이다.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생애[편집]

충청남도 공주군 출신으로, 대한제국 말기에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에 유학했다. 신태영, 이응준, 홍사익 등과 함께 육군중앙유년학교에 진학했다. 1914년에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제26기로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로 임관했다.

유승렬은 조선군사령부에 근무를[1] 하면서 일본군 보병 대좌에 올랐다. 현재의 서울 용산구에 있던 조선 주재 일제 육군 제79연대에서 복무했으며, 1934년을 기준으로 종6위 훈5등에 서위되어 있었다.

대한민국 국군 창설 후인 1949년에 군 경력자로 다시 육군에 입대하였다. 육군사관학교 제8기 특별과정을 거쳐[2] 대한민국 육군 장교가 되었고, 일본육사 후배인 아들 유재흥과 함께 복무했다. 한국 전쟁 발발 전 육군 제102여단장과 육군 제2사단장(1949년 5월 12일~)[3], 육군 제1사단장, 육군 제3사단장(1950년 4월 22일~)을 역임했다.[4]

한국 전쟁 때는 육군 대령으로 참전하였다. 전쟁 발발 직후 조선인민군낙동강 북쪽을 점령했을 때, 경상남도 지역을 담당하는 경남지구 계엄사령관에 임명되었다.[5] 이후 임시수도가 있는 경상남도 부산의 부산지구 계엄사령관으로 모병 업무를 주관했다.[6]

1954년 대한민국 육군 소장 예편 이후 1954년 6월부터 이듬해 1956년 5월까지 대한민국 국방부 특임고문을 지냈고 1958년 8월부터는 만성 당뇨증과 만성 폐렴으로 투병하다가 1968년 5월 18일에 향년 76세로 사망하였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군 부문에 아들 유재흥과 함께 선정되었다.

학력[편집]

가족 관계[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

  • “軍部에 잇는 朝鮮人士官”. 《삼천리》 제6권 (제9호). 1934년 9월. 

각주[편집]

  1. 이규태 (1996년 6월 24일). “[이규태 역사에세이] 조선군 사령부 이야기”. 조선일보. 2010년 8월 2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8월 6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2. “국방부, 李俊植·金錫源 등 군사경력자 9명을 고급장교로 기용”. 평화일보. 1948년 12월 21일. 
  3. “각 여단을 사단으로 승격”. 동아일보. 1949년 5월 20일. 
  4. “參謀副長에 金大領就任”. 경향신문. 1950년 4월 23일. 
  5. “경남지구 계엄사령관에 유승렬대령이 임명”. 민주신보. 1950년 8월 1일. 
  6. “유승렬 부산지구 계엄사령관, 모병 문제에 대해 담화를 발표”. 민주신보. 1950년 8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