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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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한성(白漢成, 일본식 이름: 水原鶴人 미즈하라 쓰루닌, 1899년 6월 15일 ~ 1971년 10월 13일[1])은 대한민국정치가이며 법조인이다.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호는 서진(曙津)이다.

학력[편집]

생애[편집]

충청남도 공주부(대덕군 일대)에서 출생하였으며 충청남도 대덕군 유성면과 충청남도 논산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그는 이후 청년 시절이던 1925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평양지방법원판사, 청진, 광주, 대전지방법원 판사 및 대법관을 역임하였다. 1953년 9월부터 1955년 4월까지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그 사이에 1954년 국무총리 임시서리를 일시적으로 역임했다.

사후[편집]

그는 일제 강점기에 사법관 시보시험에 합격하여 판사로 근무한 경력으로 인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사법 부문에 선정되었다. 2005년 서울대학교 교내 단체가 발표한 '서울대학교 출신 친일인물 1차 12인 명단'[2],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전임
변영태
국무총리 임시서리
1954년 11월 18일 ~ 1954년 11월 29일[3]
후임
허정[4]
(내각 수반)
전임
권승렬
제2대 법무부 차관
1948년 10월 31일 ~ 1949년 6월 7일
후임
김갑수
전임
황호현
(서리)
제11대 내무부 장관
1953년 9월 20일 ~ 1955년 4월 23일
후임
김형근

각주[편집]

  1. “白漢成 前大法官” (PDF). 한국일보. 1971년 10월 14일. 7면면. 2008년 3월 29일에 확인함. 
  2. 조호진 (2005년 4월 7일). “서울대 일제청산위, 1차 친일인물 12명 발표”. 오마이뉴스. 2008년 5월 28일에 확인함. 
  3. 이재원, 《한국의 국무총리 연구》 (나남, 2006) 125페이지
  4. 사사오입 개헌으로 직제를 일시 폐지했다. 2공화국 헌법에서 다시 부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