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성 (축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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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
(金鑄城)
개인 정보
출생일 1966년 1월 17일(1966-01-17) (51세)
출생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강원도 양양군
177cm
포지션 은퇴 (과거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센터백)
청소년 클럽 기록
1983-1986 조선대학교
클럽 기록*
연도 클럽 출전 ()
1987-1992
1992-1994
1994-1999
대우 로얄즈
VfL 보훔
부산 대우 로얄즈
100 (31)
034 0(4)
103 0(3)
국가대표팀 기록
1985-1996 대한민국 076 (14)
지도자 기록
2000 부산 아이콘스 (코치)
* 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 기록만 센다. 또한 출장수와 골은 2003년 1월 1일 기준이다.
‡ 국가대표팀의 출장수와 골은 2003년 1월 1일 기준이다.

김주성(金鑄城, 1966년 1월 17일 - )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및 현재 축구 행정가이다. 현재 동아시아축구연맹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그는 1989년부터 1991년까지 3회 연속으로 아시아 축구 연맹이 선정한 아시아 올해의 축구 선수로 뽑혔다. 당시에는 기자단 투표로 선정하는 방식이었으며 아시아 축구 연맹이 공식으로 선정한 것은 1994년부터였으나, 3번이나 연속으로 올해의 선수로 뽑힌 유일한 선수이다.

개요[편집]

강원도 양양군 출생으로 서울로 상경하여 서울 성수중학교, 중앙고등학교, 조선대학교를 졸업하였다. 폭발적인 질주로 그라운드를 종횡무진하며 미친 듯이 공간을 파고들고 상대를 괴롭히며 끈질기게 도전하는 기질로 인하여 '야생마'라는 별명이 붙었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그라운드를 누벼 '아시아삼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1992년 일본 세이부 가이하쓰사에서 만든 '세이부 축구' 라는 오락실용 비디오 게임에는 세계 8개국 팀과 실존인물을 모델로 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대한민국 대표로 등장하기도 한다.

축구인 경력[편집]

선수 경력[편집]

1987년 대우 로얄즈에 입단한 뒤, 그 해 K리그 우승에 크게 공헌하여 신인선수상을 받게 되었고, 1988년 오스트리아 1부리그 FC 스바로브스키 타이롤 클럽에 가계약까지 맺었지만 국내 축구 활성화를 위해 입단을 포기하였다.[1]

1990년 자신의 K리그 통산 2번째 우승에 크게 공헌하였다. 1992년 6월 독일 분데스리가VfL 보훔으로 이적하여 활약하였으나, 1992-93 시즌 결과 팀은 16위로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1993-94 시즌에는 10월 '2부 분데스리가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등 나름 활약하여 팀의 2부 리그 우승과 1부 리그로의 승격에 공헌하지만, 국내로 복귀하게 되었다. 1994년 친정팀 부산 대우 로얄즈로 복귀하였으며 1995년 6월 17일 유공전부터 수비수로 보직을 변경하여 출전하였으며 1997년 자신의 K리그 통산 3번째 우승에 크게 공헌하여 K리그 MVP를 받게 되었다. 1999 시즌이 끝난 뒤 은퇴했다.

부산 대우 로얄즈에서는 김주성을 기리면서 그의 번호 16번을 영구 결번으로 정했다. 축구에서 영구 결번은 김주성이 최초였다. 1999년 11월 25일에는 속초시에서 은퇴 경기를 가졌는데, 축구에서 은퇴 경기가 열린 것도 이 때가 최초였다.

국가 대표 경력[편집]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를 풍미한 윙포워드로 (주로 왼쪽), 1988년 AFC 아시안컵에서 2골을 넣는 등 팀의 준우승에 크게 공헌하여 대회 MVP를 차지하였다. 1986년 FIFA 월드컵1990년 FIFA 월드컵, 1994년 FIFA 월드컵 등의 많은 대회에서 뛰었고, 1985년부터 1996년까지 A매치 76경기에 출전하여 14골을 득점하였다. 1998년 11월 13일 베이징에서 있었던 중국 프로 선발팀과의 친선경기에 출전하였으며[2] 이 경기는 사실상 대표팀간의 경기였지만 프로 선발팀 명목으로 출전하였기 때문에 공식 A매치로 인정받지 못 하였다.[3]

지도자 경력[편집]

1999년 은퇴 후, 부산 아이콘스에서 코치로 활동하였지만, 2001년 결별하고[4] 행정가의 길에 몰두하였다.

행정가 경력[편집]

김주성은 부산 아이콘스 코치에서 물러난 후 2000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에 선임된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행정가의 길을 걷고 있다. 2003년에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FIFA 국제스포츠관리자 과정'에 선발되어 FIFA 행정가 양성과정에 입문하여[5] 2004년 연수를 마치고 귀국하였고,[6] 연수 중에는 FIFA 홈페이지에 소개되기도 하였다.[7] 2005년 2월 홍명보 등과 함께 대한축구협회의 이사에 선임되었으며,[8] 10월 대한축구협회 국제부장으로 선임되었고,[9] 12월 기술위원에 다시 선임되었다.[10] 현재는 대한축구협회 국제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 3월 11일에는 동아시아축구연맹의 사무총장으로 내정됐다.[11]

플레이 스타일[편집]

폭발적인 스피드와 화려한 개인기로 아시아 정상급 선수로 군림했고, 오른발잡이이면서도 왼발 슈팅을 많이 사용을 정도로 자유자재로 양발을 사용하였다. 1980년대에는 주로 윙어로 대표팀에서 활약했으며 그 후 1994년 FIFA 월드컵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뛴 후 K리그로 복귀하여 수비수로 전향하여 센터백으로 활약하였다.

그 외[편집]

선수 시절인 1991년 FIFA 초청으로 '독일 대표팀'과 '세계 올스타'의 경기에 출전하였고, 2007년 6월 FIFA 초청으로 '러시아 올스타'와 '세계 올스타'간 경기에 출전하였고,[12] 2007년 7월 FIFA 초청으로 '넬슨 만델라 생일 기념 올스타전' ('아프리카 대표팀'과 '세계 올스타'간 경기)에 출전하였다.[13]

2001년에는 축구 해설자로 데뷔하여 활동하기도 하였고, 2004년 'FIFA 국제스포츠관리자 과정'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뒤 다시 축구 해설자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경력[편집]

선수 경력[편집]

국가 대표 경력[편집]

지도자 경력[편집]

행정가 경력[편집]

광고 출연[편집]

수상[편집]

개인[편집]

클럽[편집]

대한민국 부산 대우 로얄즈[편집]

  • K리그 우승 3회 (1987년, 1991년, 1997년)
  • K리그 준우승 2회 (1990년, 1999년)
  • 리그컵 우승 1회 (1997년-아디다스컵, 1997-프로스펙스컵, 1998 필립모리스코리아컵)
  • 리그컵 준우승 1회 (1999년-대한화재컵)

독일 VfL 보훔[편집]

국가 대표팀[편집]

참고 자료[편집]

  1. “축구대표 김주성, 오스트리아 프로팀 계약 파기 "월드컵 위해 유럽 진출 미뤄". 동아일보. 1998년 11월 24일. 
  2. “한중친선축구”. 매일신문. 1998년 11월 14일. 
  3. “골 골 골 '공한증' 중국 완파”. 경향신문. 1998년 11월 14일. 
  4. 김주성 부산과 재계약 포기
  5. 김주성, FIFA 행정가 과정 도전
  6. 김주성, FIFA 연수 마치고 행정가 모색
  7. FIFA, 홈페이지에 '예비행정가' 김주성 소개
  8. 김주성, 홍명보 씨 협회 이사에 선임
  9. 김주성씨, 축구협회 국제부장 선임
  10. 김주성 등 신임 기술위원 확정
  11. 동아시아축구연맹 사무총장 김주성 씨 내정 - 동아일보
  12. '아시아의 삼손' 김주성, FIFA초청 올스타전 출전
  13. 만델라 89세 기념 올스타전 3-3 무승부, 김주성 맹활약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

이 전
대한민국 함현기
제3대 K리그 신인선수상
1987년
다 음
 대한민국 황보관 
이 전
대한민국 김현석
제15대 K리그 MVP
1997년
다 음
 대한민국 고종수 
이 전
중화인민공화국 자슈취안
제2대 AFC 아시안컵 MVP
1988년
다 음
 일본 미우라 가즈요시 
이 전
이라크 아메드 라디
제2, 3, 4대 아시아 올해의 축구 선수
1989년, 1990년, 1991년
다 음
 일본 미우라 가즈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