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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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아랍어: مُحَمَّد 이 소리의 정보듣기 , 570년경~632년 6월 8일}는 이슬람예언자이며 성사(聖使)이다. 흔히 마호메트 또는 모하메드(Mohammed, Muhammad, Mahomet)라고도 하는데, 이는 무함마드를 영어로 쓴 것을 번역한 표현이다.

생애

어린시절과 청년기

메카의 경제적, 종교적 배경

이슬람의 성지(聖地) 메카아라비아 반도 중부, 홍해 연안에서 약 80 km 지점의 불모지 골짜기에 위치하는 도시로, 인도양에서 지중해 안에 이르는 대상로(隊商路)의 요지였다. 옛날부터 흩어진 유대인들이 살았으며, 에베소 공의회칼케돈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몰린 경교같은 기독교 소수 교파의 교회들이 로마교회의 탄압을 피해 거주하였다. 메카는 카바 신전을 중심으로 아라비아 반도의 종교적 중심지였기에 해마다 많은 대상과 순례자들이 찾아들었다.

탄생

메카의 지배 계급은 5세기 말쯤 부근 황야에서 온 쿠라이시족이었으며, 무함마드는 그 중의 하심가 출신이다. 하심가에는 아브드 알 무탈리브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에게는 열 명의 아들이 있었고 막내의 이름이 아브드 알라였다. 아브드 알라는 아미나와 결혼을 했는데, 그 사이에서 무함마드가 태어난다.

고아

상인인 아버지의 죽음으로 무함마드는 유복자로 태어났으며, 어머니 아미나도 메디나를 방문하고 오는 중 병에 걸려 죽게 되어 고아가 되었다. 무함마드는 하녀의 손을 잡고 메카로 돌아와 할아버지 아브드 알 무탈리브에 의해 자라다가 할아버지가 죽자, 삼촌 아브 탈리브에 의해 키워지게 된다. 삼촌 아브 탈리브는 가난했고 딸린 식구들이 많아 무함마드는 어린 나이부터 삼촌 아브 탈리브의 무역 활동을 따라다니게 된다. 12세에 무함마드는 삼촌을 따라 시리아로 갔다. 그곳에서 바히라라는 이름의 경교, 곧 기독교수도사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대상에 무함마드에게 예언자의 징표가 있다고 말하였다. 그 후 무함마드는 목동일을 하며 자라나게 된다.

다신교

당시 아라비아 각지에는 유대인들과 기독교 신자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셈어족 언어를 사용하던 사바인(Sabaeans)들도 아라비아에 거주하였는데 이들은 서로 종교적인 영향을 주고 받았다. 신성한 달이라 불리던 9월에 금식을 행하던 것은 사바인의 종교적 영향이다. 유대인들과 기독교 신자들의 영향으로 유일신 사상이 아라비아 반도에 전해지긴 했으나 대부분은 여전히 다신교 신앙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카바 신전에는 360개의 우상들이 존재했었다.

청년 시절

목동이었던 무함마드는 가난했던 삼촌 아부 탈리브를 생각하여 수익성이 좋은 직업을 구했고, 삼촌 아부 탈리브의 소개로 부자였던 과부 하디자의 고용인으로 들어가 그녀를 대신해 시리아 지방으로 대상 무역을 떠나게 된다. 무함마드의 이 무역은 큰 성공을 거두고 샴 지방의 특산품을 구해 메카로 돌아왔다. 하디자는 무함마드에게 깊은 감명을 받고 15살이나 어린 무함마드에게 청혼을 하였다. 무함마드 25세, 하디자 40세에 둘은 결혼을 하였다. 부자였던 하디자와의 결혼은 무함마드에게 부와 명예를 주었고, 무함마드는 삼촌의 재정적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사촌 알리를 입양하였다.

이슬람 창시

진리와의 만남

경제적인 부는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한 여유를 주어, 무함마드는 금식하며 사색하며 진리를 찾기 시작했다. 사실 이러한 종교적 감수성은 유년시절부터 타고난 것이었다. 무함마드가 어린이일 때에 그의 삼촌은 카바 신전의 관리인이었다. 카바신전에서는 검은 돌을 숭배하였는데, 이를 본 무함마드는 과연 검은 돌이 신인가라는 의문을 가졌다.[1] 그러던 어느날 무함마드는 히라 산(山) 동굴에서 명상에 잠기던 중, "무함마드여, 그대는 알라의 사도이다"라는 계시를 받았다. 무함마드는 겁에 질려 집으로 돌아왔는데, 부인 하디자가 무함마드를 진정시키고 자신의 사촌이자 이비아니교의 사제였던 와라카 이븐 나우팔에게 가서 사정을 설명하였다.

와라카 이븐 나우팔은 무함마드가 만난 것이 천사 가브리엘이었다며, 무함마드가 예언자라고 말하였고 하디자는 집으로 돌아와 무함마드에게 모두 말한 후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최초의 무슬림이 된다.

설교자

첫 계시를 받은 후 점차 무함마드의 양자들과 노예 그리고 친한 친구들이 무슬림으로 개종하였고, 3년째 되던해 무함마드는 자신이 '알라의 사자'라는 정체성으로 자신의 친구와 친족을 모아놓고, 하늘의 계시에 의하여 유일신 알라의 전지 전능함, 만물의 창조, 최후의 심판천국과 지옥 등을 주장하고 설교를 시작하였다.

탄압

하지만 친구와 친족들은 그를 비난하고 모욕하여 무함마드를 무시했고, 무하마드는 치욕적인 비난을 받았다. 그러자 무함마드는 메카로 오는 순례객들에게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유일신 사상을 전하기 시작했고 메카의 카바신전을 지키며 순례객들로 수입을 얻었던 부족원들이 무함마드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상숭배를 배격하고, 알라(알라는 하나님을 뜻한다. 고로 알라 신은 동어반복이므로 알라라고 하는 것이 옳은 읽고 쓰기이다)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설교함으로써 부유한 상인들의 미움을 받았다. 이에 신도들을 메디나로 피난시키고, 자기 혼자 메카에 남아 포교 활동을 계속하였다.

메디나

622년 그도 메카를 떠나 메디나로 갔는데, 이것을 신도들은 '헤지라(성천)'라 하며 그 해를 이슬람교의 기원으로 하였다. 메디나 시대에 이슬람의 예언자이며, 정치적 지배자, 무장(武將)이기도 한 그는 계속 하늘의 계시를 전하였다. 한편 종교법, 사회적·경제적 여러 규정을 정함과 동시에 메카와 시리아의 통상로를 위협하고, 624년 해마다 메디나를 공격하는 메카 군을 메디나 남서에서 격파함으로써 무슬림의 사기를 크게 높였다. 630년 메카에 입성하여 카바 신전의 우상을 모두 파괴하면서, 그는 "진리는 왔고, 거짓은 멸망하였다"라는 말을 남겼다.

정복 과 죽음

그는 이슬람 신앙을 포교하는 데는 나라의 힘이 강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정복 전쟁을 계속해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을 통일하였다. 632년 3월에는 메카에서 예배를 지내고, 무함마드 자신이 순례를 지휘하였다. 그 후 그의 건강은 갈수록 악화되어, 같은 해 6월 8일(이슬람력 11년 3월 13일) 애처 아이샤가 지켜보는 가운데 메디나의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예언자의 모스크 안에 있는 무함마드의 무덤(초록돔)

그의 유해는 검소하게 장례를 치러 오늘날 메디나에 있는 예언자의 모스크 에 매장되어 있다.

그의 사상은 <꾸란> 속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것은 그가 말한 알라의 계시를 그의 제자들이 기록한 것으로, 6신 등을 중심으로 하는 교리를 이슬람의 다섯 기둥에 의하여 터득하려는 것이다. 이슬람은 계율이 엄하고, 신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며, 종파의 확고한 구분은 있으나 교리의 올바른 본질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함으로써, 신앙이 인간의 생활을 규율에 맞게 지켜준다고 한다.[2]

무함마드 비하 관련 사고

  • 1988년에 발매된 인도 출신의 영국 문학가인 살만 루시디소설악마의 시》에는 무함마드를 비롯한 이슬람에 대한 비하 내용이 주를 이루어 이란에서 궐석재판이 진행되어 사형이 언도되었다. 하지만 실제 살만 루시디는 이란 밖에 체류하였기 때문에 집행되지도 않고 체포되지도 않았다. 또한, 이 소설을 번역한 각 언어의 번역자들이 피해를 입기도 했다.
  • 2006년덴마크 일간지 《윌란스 포스텐》 지에서 무함마드를 테러리스트로 비하한 만화가 출시되자마자 시리아팔레스타인 등지에서는 우상 숭배 반대 시위가 잇따랐으며, 유럽 국가 대사관 건물에 불을 지르는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은 종교적 맹신이 얼마만큼 사회에 치명적인가를 보여주며 종교의 신성과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인정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을 불렀다. (윌란스 포스텐 지 무함마드 만평 논란 참조)
  • 무함마드는 자신이 50세 되던 해에 당시 9세였던 아이샤와 결혼을 하였다. 이것은 중동사회의 모델이 되어 현재에도 미성년 여아가 40~50되는 어른과 결혼하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무함마드는 아이샤가 14세 때 성교를 가졌다고 한다.[3]
  • 무함마드가 한 말 중에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꾸란'이 있다고 하나 이는 근거가 없는 말이다. 이는 이웃 종교인들에게 개종을 강요하는 이슬람의 폭력성을 강조하는 뜻으로 쓰이는데, 역사적 무슬림들은 정복지의 이웃 종교에 대해 너그러웠다. 이슬람 개종이 아니라 세금 징수를 통한 생존을 위해 정복한 것이기 때문이다. 징수하는 세금도 기독교 나라인 비잔틴 제국보다 적어서 스스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이들이 많았다.[4]
  • 사우스 파크 시즌 14의 에피소드 중 200화 특집 방송에서 무함마드를 묘사한 장면이 등장했으나 이슬람 과격 단체의 협박으로 검열 처리되었다.
  • 2012년 미국 대사관 습격 사건 : 2012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 《이노센스 오브 무슬림》이 이슬람을 모욕한다는 것을 이유로, 이에 항의하기 위해 이집트 카이로, 리비아 벵가지 등 아랍 국가의 미국 재외 공관이 2012년 9월 11일부터 차례차례 습격당하였다.
  • 샤를리 에브도 테러

출처

  1. 《이야기 세계사》/김경묵 외 같이 씀/청아
  2.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3. 이맘 부카리의 《진정집》 혼인의 책, 제40장
  4. 《만화 십자군》/김태권 글,그림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