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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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朝

618년~907년
기원후 700년경 최전성기의 당나라.
기원후 700년경 최전성기의 당나라.
수도장안(618년 ~ 904년),
낙양(904년 ~ 907년)
정치
정치체제전제 군주제
황제
618년 ~ 626년
626년 ~ 649년
712년 ~ 756년
904년 ~ 907년

고조 신요제
태종 문무제
현종 명황제
애종 소선제
역사
 • 성립618년 6월 18일
 • 안사의 난755년 12월 16일 ~ 763년 2월 17일
 • 멸망907년 6월 1일
인문
공용어중세 중국어

(唐 618년 ~ 907년)은 수나라(隋) 이후 건국된 중국의 황조이다. 당나라는 선비족 계열의 귀족인 이연(李淵)에 의해 세워졌다.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력을 자랑할 정도로 매우 번영했고, 정치와 경제와 문화 등 다방면적으로 완벽히 발달된 제국이었다. 현재까지도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대제국으로 평가받는다.

역사

초기

선비족 출신인 고조 이연이 수나라 말기의 혼란을 수습하고, 당 황조를 세워 장안을 수도로 삼았다.

정관의 치

건국 당시 당나라는 돌궐의 막강한 군사력에 눌려 돌궐의 요구에 여러차례 굴복하였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돌궐에 내분이 일어나자 당과 돌궐의 관계는 역전된다. 이세민(李世民)은 고창국비단길일대를 장악하고 돌궐을 정복하여 당나라의 영토를 크게 넓혀 대제국으로 성장하였다. 또한 조세제도와 토지제도와 군사제도도 정비하였다.(조용조) 이러한 것들이 복합적으로 이뤄져 당나라 시대의 율령 체제가 완성되었다. 태종이 대천황에 있었던 시대에 이러한 치세를 두고 정관의 치라고 부른다.

대외확장

당나라 태종이 천황으로 즉위할 무렵 돌궐족이 수도 장안성을 공격해오자 이들을 물리친 설도 있지만 굴복을 한 설이 있었다. 돌궐족들이 물러가자 군을 일으켜 돌궐족의 땅을 기습해 돌궐족들을 물리쳐 승전을 했으나, 돌궐족들은 이를 빌미로 내부분열로 당에게 망해 당의 영토로 자리를 잡게된다. 당 태종은 서쪽은 고창국 등 여러 국가들을 공격해서 정복했으나 여러 국가들이 겁을 먹어 동맹을 청했다. 대표적으로 고구려인데 당시 고구려의 영류왕은 호화로운 사치를 했으나, 정치를 안해서 대신들과 백성들의 불만으로 일어난 대신인 연개소문은 군을 일으켜 영류왕을 시해하고, 정권을 잡아 새로운 국왕인 보장왕을 옹립을 했다. 이 사실을 안 당 태종은 일단 동맹을 맺어 국력을 강화시키는 데 주력했고 그러는 한편 첩자를 파견해 지리를 파악했으나, 요동지역에 천리장성을 쌓았다는 정보를 얻는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태종은 관심을 두지 않았고 오히려 남쪽으로 베트남에 산 부족들을 토벌해 교지지역을 얻었다. 고구려에서 전쟁의 빌미를 잡히게 되자 군사를 모아 정벌를 떠난다.(당시의 군사는 보병 7만명과 수병 6만명과 기병 3만명으로 추정.) 하지만 요동지역의 수비지역인 안시성의 태수 양만춘의 활약으로 결국 고구려에게 막혔다.(설에 의하면 당 태종은 안시성을 공격하는 도중 고구려 군사의 화살에 눈이 실명을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래서 회군을 했으나 이 사건을 빌미로 군을 다시 일으켜 공격한다. 그러나 또 패배를 겪어 당 태종은 결국 마지막 출정 할 당시 병을 얻어 결국 죽고 만다.(649년 9월)

이후 황태자 이치(李治)는 당 고종이 되어 부황인 태종의 뜻을 받들어 삼국시대의 제국인 고구려 제국과 백제 제국과 신라 제국 중 두 제국을 정복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신라와의 전쟁에 패해 안동도호부는 요동으로 옮겼으나 요동지역에 백성들이 민란을 일으켜 신성으로 옮겼다. 750년에 당 고종은, 투르크를 정복하기 위해서 고선지(高仙芝)에게 명령하여 투르크와 전쟁을 감행한다. 당나라군이 승승장구하여 수도인 타슈켄트를 점령하고 투르크 국왕을 처형했다. 투르크 국왕의 왕세자는 당나라군을 몰아내기 위해 아랍인에게 도움을 청했고, 결국 751년 4만 명의 아랍과 투르크 군대가 중국 영토로 진격했으며, 오늘날의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탈라스 강에서 고선지의 군대와 맞섰다. 당시 전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당나라군이었으나, 주로 보병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랍과 투르크 기병에 허를 찔렸다. 이 전투로 겨우 몇 천 명의 당나라 군사만이 탈출했고, 당나라는 더 이상 아랍과 투르크와 전쟁을 하지 않았다.

중기

측천무후

개원의 치

이후 잠시 쇠퇴하였다가 이융기(李隆基) 시대에 다시 대제국이 부흥하였으니 이를 개원의 치라고 한다. 이 시기는 이란조로아스터교기독교 교회경교가 전래될 정도로 국제적이고 개방적인 모습을 띠었다. 현종은 안으로는 민생안정을 꾀하고 조운 개량과 둔전 개발 등으로 경제를 충실히 하였으며, 부병제의 붕괴에 대처하여 신병제를 정비하였다. 또한 동돌궐, 토번, 거란 등의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았고, 수년간의 태평성세를 이루었다.

안사의 난과 쇠퇴

토번, 돌궐 등의 이민족의 침략 등으로 국력이 약화된 당나라는 현종 재위 말기부터 귀족들의 장원토지가 증가하여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755년에는 안·사의 난이 일어났는데 이 사건은 중앙 정부의 통치력을 매우 약화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많은 농민들이 소작농이 되었다.

후기

절도사의 성장과 붕당정치

황소의 난과 당나라의 멸망

결국 당나라의 조세 제도는 양세법, 군사 제도는 모병제로 바뀌었다. 수많은 반란 속에서 절도사 세력이 성장하였고, 중앙정부에서는 환관과 외척들이 권력다툼을 벌였다. 결국 황소의 난을 거쳐 당나라는 절도사인 주전충에게 멸망하였다.

정치 체계

당나라는 3성 6부제를 실시하여, 3성은 중서성(中書省), 문하성(門下省), 상서성(尚書省)으로 나누고, 6부는 이부(吏部), 호부(戶部), 예부(禮部), 병부(兵部), 형부(刑部), 공부(工部)로 나누었다.

율령 체제는 당나라의 행정법으로써 당나라 통치의 기본을 이루는 것이다. 3성 6부로 이뤄진 통치 조직과 지방에 설치된 주,현 체제로 인해 황제권을 강화하였다. 지방관리는 중앙에서 파견하였다.

토지제도는 균전제였고 조세제도는 조용조, 군사 제도는 부병제를 실시했다.

경제 체계

당나라는 귀족 중심 사회였고 그들은 과거음서라는 제도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였다.

당나라 때는 차가 처음으로 재배되어서 해외로 많이 수출됐다. 또한 화북 지방에는 2년 3모작이 가능하게 되어 농업 생산량이 크게 증가하였고 영토가 넓어짐에 따라 비단길을 통한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상업이 발달하고 양저우 같은 도시들이 크게 성장하였다. 또한 화폐 유통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어음인 비전이 사용되었고 (行)이라는 상인 조합도 생겼다.

문화

과거 제도에서는 유교에 관련된 서적에 대한 지식을 테스트했다. 그래서 유학과 문학이 크게 발달하였는데 당나라 때에는 훈고학이라는 것이 크게 발달하였다. 이로 인해 사상의 획일화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문학 역시 귀족 중심의 시가 발달하였는데 이백(李白)과 두보(杜甫)가 대표적인 시인이다.

종교적으로는 불교가 매우 발전하였고 현장(玄奘)이 지은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라는 책은 인도동남 아시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당나라 때는 무역이 크게 발달하였기 때문에 조로아스터교,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마니교 등도 전파되었다. 도교는 황실의 지원을 받았다.

당나라의 문화는 아시아 각국에 영향을 미쳤으며 일본에서도 나라 시대헤이안 시대견당사(遣唐使)를 파견하여 당나라 문물을 수입해갔다.

대외 관계

일본의 나라 시대(710–794년) 당과 왜는 긴밀하게 통교하였다.[1] 당과 교역을 하면서도 항상 견제를 하던 발해는 812년 당의 요구에 따라 신라가 발해원정에 참여하자 신라를 적대시하는 반면 신라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일본과 동맹을 추구했다. 따라서 정세는 신라와 당, 발해와 일본의 이분구도를 이루게 되었다. 일본은 836년 견신라사 파견을 중단하고 838년에는 견당사 파견을 중단하여 발해와의 관계만을 유지했다. [2]

역대 황제

참고로 당나라 시대에는 황제와 황후의 칭호를 각각 천황(天皇)과 천후(天后)로 고쳐 불렀다.

틀:중국 황제 (당) 1

690년에서 705년까지는 측천무후무주의 황제로서 통치함.

틀:중국 황제 (당) 2

같이 읽기

참고 문헌

  • Chinese history (영국, 소책자)
  • 이야기 중국사 (대한민국, 서적)
  • Great dragon of Asia (영국, 소책자)

주석

  1. 연민수 (1998). 《일본역사》. 보고사. 55쪽. ISBN 89-86142-81-3. 대외적으로는 신라·당과의 통교를 긴밀하게 하는 한편, ... 
  2. 허홍범 (2006). 《군함 이야기》. 좋은책만들기. 82쪽. ISBN 8989222931. 당과 교역을 하면서도 항상 견제를 하던 발해는 812년 당의 요구에 따라 신라가 발해원정에 참여하자 신라를 적대시하는 반면 신라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일본과 동맹을 추구했다. 따라서 정세는 신라와 당, 발해와 일본의 이분구도를 이루게 되었다. 일본은 836년 견신라사 파견을 중단하고 838년에는 견당사 파견을 중단하여 발해와의 관계만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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