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보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두보(杜甫)
직업 시인
위키문헌에 이 글과 관련된 자료가 있습니다.

두보(杜甫, 중국어 병음: Dù Fǔ, 712년 ~ 770년)는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이다. 자미(子美) 소릉야로(少陵野老). 중국 고대 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시성(詩聖)이라 부르며, 그의 작품은 시사(詩史)라 부른다. 이백과 함께 이두(李杜)라고도 일컫는다.

목차

[편집] 인생

두예의 13대손으로 소릉에 거주했고, 조부는 두심언(杜審言)이다. 공부원외랑이 되었기 때문에 '두소릉', '두공부'라고도 불린다. 중산 관리 계급의 아들로 허난 성의 궁현에서 출생하였다. 24세 때 진사 시험에 낙방한 후 곤주사마였던 부친을 따라 산둥에 가서 이 백과 함께 자연을 즐기고 시를 읊으며 친교를 돈독히 했다.

751년, 《삼대예부》를 조정에 바쳐 인정을 받아, 755년에 우위솔부 주조참군의 벼슬에 올랐다. 이때 당의 현종이 양귀비와의 사랑에 빠져 정치를 게을리하여 국운이 쇠퇴했는데, 이런 나라의 형편을 읊은 장편 시 《영회》는 걸작으로 유명하다.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자, 현종은 촉으로 피하고 숙종이 즉위하였다. 그는 링우로 가는 도중에 도둑 무리에게 잡혀 1년간 갇혀 있다가 탈출, 현종의 행재소로 가서 좌습유라는 벼슬을 받았다.

그 후 그의 시는 비장함을 더하는 변화를 보였다. 황제의 피난지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 지은 장편 시 《북정》은 그의 최대 걸작이다. 가난과 전란으로 양쯔강을 내려와서 친척에게 의탁하려고 내양으로 갔다가, 770년 58세로 일생을 마쳤다. 그의 고시에는 현실을 심각하게 묘사한 《병거행》등 작품이 적지 않은데, 시로 엮은 역사라는 뜻에서 '시사'라 일컫는다. 그는 율시를 완성하고 종래 문학 전통의 집대성이라는 형식으로 서정시·서사시를 창조하였다.

[편집] 작품

  • 두보의 절구 강벽(江碧)
원문 번역
江碧鳥逾白 강 푸르니 새 더욱 희고
山靑花欲燃 푸른 산에 꽃은 불타는 듯
今春看又過 이 봄 또 지나 가는데
何日是歸年 언제나 돌아갈 날 오련지
  • 북정(北征)
  • 추흥(秋興)
  • 삼리삼별(三吏三別)
  • 병거행(兵車行)
  • 여인행(麗人行)
  • 두공부집(杜工部集)

[편집] 번역

[편집] 같이 보기

본 문서에는 다음 커뮤니케이션에서 GFDL 또는 이에 준하는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