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서도호부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찾기

안서도호부당나라 때 당시 수도인 시안을 중심으로 하여 정벌과 방어기지의 역할을 하는 도호부(都護府)를 설치하였다.

목차

[편집] 개요

640년 당 태종 정관 14년에 후군집가오창을 정벌하고, 그곳에 서주도호부(西州都护府)를 설치하였다. 그곳을 다스리는 곳을 서주(西州)라고 불렀다. 640년 9월 교하성에 안서도호부를 설치하였는데, 이곳은 서돌궐을 상대하기 좋은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최초의 안서도호는 교사망(喬師望)이었고, 후임으로 곽효각(郭孝恪)이 부임을 했는데 당시의 군사는 수 천명에 지나지 않았다. 648년 정관 22년 곽효각은 구자국을 패퇴시키고, 안서도호부를 쿠차(龟兹)로 옮겼다.

전성기에는 6도호부까지 설치가 되었는데, 동쪽은 만주와 고구려를 통괄하는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서쪽은 타림분지까지 이어지는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를, 남쪽은 베트남 등 인도차이나 지역까지 아우르는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 북쪽은 외몽골 안북도호부(安北都護府)를 설치하였다.

이 도호부는 당 고종측천무후의 통치기간 그리고 당 현종(712년 ~ 756년) 때 이르러 절정을 이루다가 안사의 난 이후 국력이 급격히 쇠퇴하면서, 그 영향력이 줄어들었다. 고선지가 활약한 시기도 바로 이때였다.

이 중 서역과의 교통을 담당하는 안서도호부는 그 역사가 BC 5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전한 시대 서역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나라 이전에 서역의 수호와 통상로의 보호는 서역도호부에 의해 이루어 졌는데, 기원 전 60년 경 한나라서역도호부가 대표적이다.

그 뒤 안사의 난에 이르어서 급격히 영향력이 쇠퇴했으며 772년 토번의 난주함락, 781년 재상 상치싱얼의 돈황함락으로 교통로가 단절되었으며 2차 북정성 전투에서 패배해 토번에게 그것을 넘겨주게되었다. 3차 북정성 전투에서는 위구르가 안사일부를점거했지만 주요영토는 여전히 토번의 소유였다,

[편집] 관련 항목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주석

개인 도구
이름공간

변수
행위
둘러보기
인쇄/내보내기
도구모음
다른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