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인 게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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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인 게이시
별명 삐에로 아저씨
희생자 수 33명
범죄 특성 가출 청소년
범행 기간 1972년 ~ 1978년
체포 1978년 12월 13일
형벌 사형 집행

1942년 알콜중독자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존 웨인 게이시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계집애 같은 놈이라는 비웃음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는 자신의 이런 동성애적 성향을 혐오하며 자기를 비하했다. 성인이 된 게이시는 지역사회에서 성공한 사업가였다. 그는 결혼도 빨리 해 가정을 이룬 평범한 남자였고 그 지역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며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게이시의 철저한 가면이었다. 그는 부인 몰래 10대 소년들을 상대로 잠자리를 이어왔다.

그러던 1968년 게이시는 10대 소년을 성추행한 혐의로 체포돼 10년형을 선고 받고 그의 부인에게 이혼 당한다. 게이시는 감옥 안에서 모범수로 생활하며 형을 단축시켜 2년만에 감옥에서 가석방된다. 그 후 그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해 건축 도매업을 시작하는데 크게 성공한다. 그는 지역사회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다시 재기하며 지역사회에서 존경을 받는다.

일주일에 한번씩 지역 병원을 찾아 아픈 아이들 앞에서 광대 옷을 입고 공연을 하는가하면 지역사회 자선사업에도 열심히 후원했고 그 지역의 의원들과 소통하며 친분을 쌓아갔다. 하지만 그는 철저한 사이코패스였다.

낮에는 이렇게 지역사회를 일하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밤에는 10대 소년들을 유인해 성관계 맺고 고문과 살인을 일삼았다. 그의 범행 대상들은 주로 가출 청소년이었다. 1978년 한밤중에 비명소리를 들은 마을 주민의 신고로 경찰은 존 웨인 게이시의 집을 방문한다. 하지만 게이시는 아무 일돌 없다고 말했고 경찰은 지역에서 존경받는 사람의 말을 믿고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날 게이시 회사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던 15살 아들이 집에 돌아오지 않자 그의 어머니는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한다. 경찰은 실종 신고를 받고 뒤를 조사한 결과 그는 10년전에 10대 소년을 성추행한

혐의로 형을 산것을 발견하고 그의 집에 찾아갔다. 그의 집을 수색한 경찰은 그를 연쇄살인범으로 긴급 체포한다. 경찰은 게이시 집에서 노인과 어린 소년이 성관계하는 사진이 실린 포르노 잡지와 배설물이 묻는 진동 자위기구, 그리고 피해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장신구와 옷, 지갑등을 발견되었다.

또한 경찰은 거실 바닥에서 29구의 사체를 발견했다. 게이시는 자신의 범행을 모두 인정했고 나머지 4구는 가까운 강가에 버렸다고 자백했다. 그는 법정에서 자신은 오래전부터 이중 인격으로 고통 받았다고 호소했지만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94년 5월 10일 그는 치사주사를 맞고 처형되었다. 그가 죽기전 마지막에 남긴 한마디는 " 내 엉덩이나 핥아라 "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