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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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버그

피츠버그(Pittsburgh)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서남부의 앨러게니 군의 군청 소재지이며, 인구는 306,211명(2012)이다. 앨러게니 강(Allegheny River)과 모논가헬라 강(Monongahela River)이 합류하여 오하이오 강을 이루는 삼각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피츠버그 대학교카네기멜론 대학교가 위치해 있다. 피츠버그는 제철(製鐵)도시로서, 18세기에 영국인이 본국의 수상 피트의 이름을 따서 포트피트라고 부른 것이 이 도시의 시초이다.

세계 최대의 석탄지대의 중심이며, 미국의 석탄과 철강의 주산지이다. 이 밖의 주요공업으로는 알루미늄 제품·전기기구·유리제품 등이 있다. 수운(水運)이 좋은데, 앨레게이니강이나 오하이오강을 비롯하여 많은 운하가 있고, 5대호나 미시시피강을 이용하여 미국 각지와 연락한다. 또 학술의 중심이기도 하여, 피츠버그대학·카네기공과대학·메론 재단 등이 유명하다. [1]

주민[편집]

도시의 초기 역사에 피츠버그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에서 온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1800년대 중반에는 독일아일랜드 이민들이 그들에게 가입되었다. 1880년에는 동유럽, 남유럽과 중유럽에서 온 많은 이민들이 들어왔다. 오늘날, 폴리시 힐 같은 몇몇의 피츠버그 이웃들은 아직도 강한 민족적 주체성을 가지고 있다.

1900년대 초반에 다수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피츠버그로 이주하였다. 1930년대와 1940년에 피츠버그의 힐 구역은 미국에서 번영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들 중의 하나였다. 오늘날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피츠버그 인구의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힐 구역이 아직도 중앙적인 흑인 이웃이라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도시를 둘러싸는 이웃들과 펜 힐, 윌킨스버그와 먼로빌을 포함한 외곽들에 살고 있다.

경제[편집]

다운타운 피츠버그

피츠버그 지역의 경제는 1980년대에 주요 변함을 통하여 갔다. 이전에 중공업 - 현저히 철강 생산에 의지해왔다. 하지만 중공업이 쇠퇴하고 제철소와 다른 공장들이 폐문하였다. 결과로 실업자의 수가 올랐다. 결국 다른 경제적 활동의 발달은 피츠버그의 경제적 조건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오늘날 보건업과 교육이 지역의 경제에 큰 공헌을 한다. 금융업, 연구와 개발, 관광업도 다수의 근로자들을 고용한다. 제조업은 아직도 지방 주민의 수만명을 고용하지만, 더 이상 경제를 지배하지 않는다.

제조업[편집]

피츠버그의 제철소는 전에 철강의 여러 종류를 생산하였다. 오늘날의 남아있는 제철소들은 주로 연장과 자동차를 만드는 데 쓰이는 전문 철강을 만들게 되었다. 피츠벅의 공장들은 유리 제품, 합성 금속, 화학품과 기계류를 생산하기도 한다.

피츠버그의 가장 큰 개인적 고용주들은 주요 알루미늄 생산회사 앨코아, 최고 철강 제조업 U.S. 스틸 주식회사와 유리, 페인트와 화학품 제조업 PPG 산업이다. 식품회사 H. J. 하인즈 컴퍼니도 피츠버그에 본사를 두고 있다.

서비스업[편집]

피츠버그 지역은 보건의 주요 중심지로서 랭킹에 들어와있다. 피츠버그 대학교 부속 의료 센터는 , 신장, 심장 인식에 전문적이다. 학문, 산업, 정부 연구의 실습소들이 피츠버그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다. 그들의 공학자,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의학 기술,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산업 기계 사용 같은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교통과 통신[편집]

피츠버그 국제 공항은 앨러게니 카운티의 남서부에 있다. 주요 철도와 주간 고속도로도 또한 이 도시를 봉사하고 있다. 전차-지하철이 다운타운을 남부 외곽들과 연결한다. 피츠버그의 강들은 도시로 원료를 나르고, 도시에서 생산품들을 싣는 배에 의하여 이용도고 있다.

피츠버그는 하나의 일간 신문 피츠버그 포스트-개제트가 있다. 그린스버그 근처에 있는 트리뷴-리뷰는 또한 피츠버그 판을 출간한다. KDKA는 1920년 방송을 시작할 때 미국에서 첫 상업적 라디오 방송국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역사[편집]

초기 역사[편집]

1764년으로 거슬러 와가는 피트 요새는 피츠버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현재 피츠버그 지역의 가장 초기의 거주자들은 인디언들이었다. 1600년대에 뉴욕 서부의 이로쿼이 어족이 원래의 부조들을 내쫓았다. 1740년대에 프랑스의 군인들이 프랑스 국왕을 위하여 그 지역을 요구하였다. 많은 인디언들은 프랑스와 캐나다 교역자들과 물건들을 교역하였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는 지방의 통치를 얻기 위해 싸웠으며, 이 경쟁이 프렌치 인디언 전쟁으로 이끌어졌다. 1754년 프랑스군들은 앨러게니와 모논가헬라 강들의 합류점에 듀크스너 요새를 지었다. 조지 워싱턴 당시 22세의 영국 버지니아 식민지군의 중령은 그 남쪽에 네서시티 요새를 지었다. 프랑스군은 네서시티 요새의 전투에서 워싱턴의 군대를 물리치고 워싱턴에게 요새를 항복하는 데 강요하였다. 전투는 프렌치 인디언 전쟁의 첫 교전들 중의 하나로 특징을 지었다.

자신들의 첫 패배에 불구하고 영국군은 1758년 피츠버그 지역의 통치에 이겼다. 그들은 앨러게니와 모논가헬라 강의 가랑이 근처에 윌리엄 피트 수상의 이름을 따서 피트 요새를 지었다. 요새 주위에 정착이 자라나고 피츠버그가 되었다.

미국의 식민지군이 독립 전쟁에서 영국군에 승리를 거둔 후, 피츠버그는 서부로 향하는 개척자들의 시작점이 되었다. 1788년 피츠버그는 앨러게니 카운티의 소재지가 되었고, 1794년에는 자치 도시로서 합병되었다.

1857년 경의 모논가헬라 강의 모습

산업의 발달[편집]

서부 정착자들로부터 제조품을 위한 요구는 피츠버그에서 산업이 빠르게 자라나는 원인을 가져왔다. 1816년 도시가 합병되었고 당시 인구는 대략 5,000명이었다. 석탄석유의 매장들이 1800년대 중반으로 피츠버그가 철강과 유리 공업의 중심지가 되는 도움을 주었다.

교통의 발달도 또한 피츠버그에서 산업 번영에 도움을 주었다. 도시에서 만든 평저선, 하천의 화물선과 증기선들은 1800년대 초반에 오하이오 강미시시피 강으로 사람들과 물건드를 실었다. 피츠버그와 필라델피아를 잇는 펜실베이니아 운하 시스템이 그 주요 라인을 1834년에 개통하였다. 1851년에는 철도가 피츠버그에 들어갔고, 그때로 봐서 도시에 46,000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피츠버그에서 철강 산업을 시작한 앤드루 카네기

남북 전쟁은 무기와 군수품을 위한 거대한 요구를 창조하였다. 피츠버그는 북군을 위한 주요 공급지가 되었다. 1800년대에는 앤드루 카네기헨리 클레이 프릭이 도시에 산업적 제국을 세웠다. 피츠버그의 제철소들은 미국의 번영에 중요한 역할이었다. 그들은 다리, 공장과 철도들을 위한 철강을 공급하였다.

산업의 번창이 1800년대 후반에 수천명의 근로자들을 끌어들였다. 많은 수는 남유럽과 중유럽에서 왔다. 1870년부터 1900년까지 도시의 인구는 세배 이상을 넘었으며, 86,076명에서 321,616명으로 뛰어올랐다. 1900년으로 봐서 세계의 유리와 철강의 절반이 피츠버그의 공장들에서 왔다. 도시의 제철소들은 미국에서 철강 생산의 3분의 2를 만들었다.

1900년대 초기[편집]

1907년 앨러게니 강의 북쪽 언덕에 있는 앨러게니 시티는 피츠버그 시와 융합하였다. 더 많은 유럽 이민들과 남부에서 온 흑인들의 도착은 1930년으로 봐서 피츠버그 인구가 669,817명으로 증가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936년 세인트 패트릭의 날에 앨러게니 강과 모논고헬라 강이 골든 트라이앵글에 홍수를 일으켜 74명의 사망과 큰 손해를 입혔다.

제2차 세계 대전[편집]

1941년 12월에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 연합국으로서 참전하였다. 그때부터 1945년 9월에 연합국이 승리할 때까지 피츠버그 지역의 제철소들과 공장들은 전쟁 노력을 위하여 철강, 유리와 다른 생산품들을 마련하는 데 전임적인 수용력을 운영되었다. 전쟁이 일어나는 동안에 피츠버그 지역의 제철소들은 독일일본을 합친 동맹국들의 생산보다 더 많은 철강을 생산하였다.

또 그 동안에는 피츠버그가 공공 단일 주택의 많은 수를 짓는 데 미국에서 첫 도시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도시가 전쟁에 관계된 산업들에 붐을 일으키면서 수천맹의 사람들이 그 직업을 구하러 피츠버그로 이주하였다. 사람들의 흘러들러옴이 주택 부족의 원인을 가져오고 지방과 연방 정부가 근로자들을 위하여 낮은 전세의 주택을 건설하는 데 이끌었다.

도시 재개발[편집]

1946년 시장 데이비드 L. 로런스, 재정가 리처드 K. 멜론 과 다른 도시의 지도자들은 도시 재개발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도시는 피츠버그의 공해된 공기와 물을 정화 하기 위한 엄격한 연기 조절과 수자원 공해 조절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1960년대로 봐사 정화 노력의 대부분이 완료되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많은 백인들이 도시에 둘러싸인 외곽들로 이주하였다.

피츠버그 르네상스로 알려진 도시 재개발의 첫 단계는 1970년대 초반에 끝났다. 그 일은 다운타운에 전념하고 힐 구역의 저지대 에 있는 새로운 스포츠와 오락장을 포함하였다. 두번째 르네상스는 1980년대에 시작되었으며, 집회 센터, 전차-지하철 시스템과 PPG 빌딩을 포함한 새로운 초고층 빌딩을 건설하였다.

최근의 발전[편집]

1980년1990년 사이에 큰 경제 문제들의 이유로 피츠버그의 인구가 423,959명에서 369,879명으로 떨어졌다. 많은 젊은이들은 일거리를 찾으러 다른 도시들로 이주하였다. 1990년대 동안에 보건소와 다른 종업들이 가능해지면서 실업자들의 수가 쇠퇴하였다.

1992년 피츠버그 국제 공항이 개장되어 교통의 중심지로서 지역의 역할에 추가되었다. 이런 개발에 불구하고도 피츠버그의 인구는 1990년2000년 사이에 또 다시 334,563명으로 떨어졌다.

스포츠[편집]

메이저 리그 야구 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NFL 미식 축구 팀 피츠버그 스틸러스, NHL 아이스 하키 팀 피츠버그 펭귄스 등의 스포츠 팀들이 있다.


한인 사회[편집]

다른 미국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피츠버그에도 한인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다.

지역 단체[편집]

한인 지역 지도[편집]

바깥 고리[편집]

주석[편집]

  1.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피츠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