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내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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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과 주황색이 의원 내각제 국가이다. 빨간색은 입헌 군주제 국가, 주황색은 총리가 국가 원수보다 우월한 지위를 가진 국가이다.

의원 내각제(議院內閣制, 영어: Parliamentary system)란 일단 행정입법이 분리된 근현대 헌법 기관 형태를 갖추고는 있으나, 내각(행정부)의 존립 근거가 전적으로 의회 신임 여부에 달려있는 정부 형태이다. 대통령제는 내각이 통수권자의 임명 후 의회의 추인에 따른 절차적 형태를 띄는 데 반해, 의원 내각제의 내각 구성은 집권당 혹은 연정에 참여한 여러 정당의 의원들에 의해 구성되고 정당이 모든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이 특징이다. 내각책임제 또는 의회정부제라고도 한다.

역사[편집]

17세기 시민혁명[편집]

의회민주주의는 시민혁명이 실천된 17세기영국에서 입헌군주제와 함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의회가 군주에 대해 불신임을 주장한 혁명인 명예혁명을 통해 의회 주권의 원칙이 확립되었고, 이후 의회를 대신해 집행권을 행사하고, 의회의 통제에 따르며, 국왕의 자문에 응할 기관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튜더 왕조 시대에 성립한 추밀원(Privy Council)에서 내각이 분화되면서 초기에는 국왕이 주재하였다.

입헌군주제[편집]

1714년조지 1세가 각의를 주재하지 않게 되었고, 1721년에는 로버트 월폴(Robert Walpole)이 조지 1세의 신임에 따라 각의를 주재하면서 이른바 ‘각의의 수석’(Primius inter pares, the first in equals)이라는 관념이 생겨났다. 이는 동시에 ‘군주는 군림하지만, 통치하지는 않는다’는 입헌군주제의 원칙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원과 상원의 구분[편집]

1782년프레드릭 노스의 내각이 하원의 불신임 결의에 따라 총사직하고, 1783년에는 윌리엄 피트의 내각이 하원의 불신임 결의에 대해 하원의 해산을 단행한 뒤 1784년의 총선거에서 승리하게 된 이후에 의회의 내각에 대한 불신임과 내각의 의회에 대한 해산의 관행이 정착하면서 의원내각제가 본격적인 시대를 맞게 되었다.[1]

유형[편집]

고전적 의원내각제[편집]

고전적 의원내각제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영국과 같이 내각과 의회의 다수파가 형식적으로 일치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내각이 상대적으로 우월한 형태인 영국형 의원내각제(이른바 내각책임제)이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의 제3·4공화국과 같이 강한 의회와 약한 내각을 특징으로 하는 프랑스형 의원내각제이다. 프랑스형 의원내각제의 경우 수상이 행정을 담당하고, 대통령은 의례적 권한을 행사하는데 의회는 정부에 대하여 불신임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정부는 의회를 해산하지 않는 것이 관계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외견적 의원내각제[편집]

바이마르 공화국이나 프랑스의 제5공화국과 같이 이원정부제적 요소를 가진 의원내각제를 말한다.

건설적 의원내각제[편집]

건설적 의원내각제는 통제된 의원내각제라고도 하는데, 독일 기본법과 같이 강한 정부와 약한 정부를 기초로 한다. 이 경우 의회가 의결을 통해 후임 수상을 선출하지 않은 경우에는 현 수상에 대하여 불신임을 할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특색[편집]

의회의 다수파에 의하여 정부가 구성된다. 이는 민주적 정당성을 일원화해 주는데, 집행부의 장인 수상이 의회에 의하여 선출되고 수상이 인선하는 각료가 수상의 정책노선을 따라 구체적으로 집행업무를 담당한다. 이 경우 수상과 함께 내각 전체가 의회에 대하여 정치적인 책임을 진다.

장점[편집]

내각의 존속과 진퇴가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에 의존하기 때문에 민주적 정당성이 강하며, 민주적 요청을 만족시킬 수 있다. 또한 내각이 의회에 대하여 책임을 짐으로써 책임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 또한 내각의 의회해산권과 의회의 내각불신임권은 서로의 정치적 대립을 해결하는 데 주효한 역할을 할 수 있고, 내각이 입법부에 대하여 신임을 얻기 위해 유능한 인재를 기용할 확률이 커진다.

단점[편집]

의원내각제의 단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우선 내각제는 장관직을 전문가나 행정 관료가 아닌 집권당의 국회의원들이 맡게 되고, 통수권자의 명령이 아닌 합의를 요구하는 절차적 특성 탓에 국가 위급 사태 등이 닥쳤을 때 대통령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제 해결 속도가 느리다. 특히 소수의 의석을 가진 여러 정당이 난립하는 경우에는 연정을 구성해 장관직 등을 의석 수대로 각 당에 분배할 수밖에 없어 긴급 현안에 대한 대처가 더욱 더뎌질 우려가 있다. 의사결정의 빠름은 독재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를 타개하기 위해 대연정과 같이 내각을 대통령제처럼 행정 관료나 대학 교수등 비정치인들이 담당하고 다수당이 결정권을 독점할 경우 오히려 다수결의 횡포를 가져올 수 있으며, 견제장치를 마련하기가 곤란하다. 이 점은 대통령제의 단점과 같다. 대표적으로 양차에 걸친 세계 대전 당시 영국 상,하원의 경우가 그 역사적인 예가 된다.

주요 국가[편집]

(2011년 현재)

앤티가 바부다, 오스트레일리아, 바하마, 바베이도스, 벨기에, 벨리즈, 캐나다, 덴마크, 도미니카, 그레나다, 자메이카, 일본, 리히텐슈타인, 룩셈부르크, 말레이시아,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세인트키츠 네비스,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에스파냐, 스웨덴, 영국

오스트리아, 방글라데시,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키르기스스탄, 체코, 에스토니아, 독일, 그리스, 헝가리, 아이슬란드, 인도, 아일랜드 공화국, 이라크, 이스라엘, 이탈리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몰타, 에티오피아, 세르비아, 싱가포르, 트리니다드 토바고

대한민국[편집]

4·19 혁명 직후인 1960년 6월 15일에 개정된 대한민국 제2공화국 헌법(제3차 개정헌법)을 통해 대통령제에서 의원내각제로 개헌하였다. 그러나 의원내각제는 9개월 만에 5·16 군사 정변으로 군인출신 대통령인 박정희가 통치를 한 군사정권이 등장하면서 막을 내리고 말았으며, 정변 이후 개정된 제3공화국 헌법(제5차 개정헌법)에서 다시 대통령제로 회귀하였다.

1987년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홍숙자는 내각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1990년 3당 합당 직후 여당인 민주자유당에서 한때 내각제 도입을 주장한 바 있으며, 그 후에는 자유민주연합에서 내각제의 도입을 주장한 바 있다. 2010년에도 한나라당 의원이 내각제 개헌론을 지지했으나 진행되지는 않았다.[2]

관련 항목[편집]

주석[편집]

  1. 홍성방, 헌법학, 현암사, 2007년, 709~710쪽.
  2. 친이 안경률 "개헌, 이원집정부제 거쳐 내각제로 가야" - 아시아경제